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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Dec 01. 2017

우연히, 그곳에서...<75화>

[ 제75화 _ 난 이제, 뭐래도 널 따를거야 ]


“아영씨, 우리... 진행하는 사업 조금 미뤄야겠다...”

한참 동안이나 아영이 내민 사진을 들여다보던 야마다가 나지막이 아영에게 말했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같이 갈 거지? 아영씨도? 바로 가는 티켓 사려면 좀 비싸려나...”

사업차 바쁘게 이것저것 조사하다 잠시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상황이었거늘, 갑자기 이 무슨 소리인지...

“뭐야? 찾는 사람이 그 사람 맞다는 거야, 뭐야... 똑바로 말해봐!!"

야마다는 굳은 표정으로 아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에릭슨... 맞아. 본인이야... 그렇게 찾아 헤맸었는데...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저...정말이야? 이 사람 맞는 거야?”

야마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사진을 응시했다.

“어떻게 잊겠어...이 쌍판떼기를... 남의 돈 등쳐먹고 자기 자식한테 부끄럽지도 않나... 쳐 웃고 있는 꼬라지하고는...”

분노로 가득찬 야마다, 아마도 만난 이래, 가장 거친 표현을 구사하고 있었다.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는 듯, 깡마른 야마다의 볼 안쪽의 어금니는 부서질 듯 꽉 깨물어 꿈틀대고 있었다.

아마 크리스를 찾게 되면 자신도 비슷한 반응일 거라는 생각에 아영은 그런 야마다에게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에릭슨이 거기 있다는 건, 주변에 분명 아영씨 찾는 놈도 같이 있다는 소리일거야. 가서... 만나게 되면 아영씨 친구한테 고맙단 말부터 해야 겠네...”

힘겹게 분노를 누르며 한마디를 남기고는 잠시 동안 이어진 두 사람 사이의 침묵. 

야마다는 정말로 당장 스마트 폰으로 유렵 행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아영은 잠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얼굴로 돌아와 야마다에게 말했다.

“네 말... 맞을 지도 몰라 에릭슨, 크리스 이 두 사기꾼 놈들...지금 같은 장소에 있을 거란 거... 당장 날아가 조져버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근데... 이번엔 내가 부탁을 좀 할게. 조금만 기다려줘...”

“뭐? 아영씨도 당장 잡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물론, 나도 당장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그런데... 지금은 내 친구들하고 일이 복잡하게 좀 꼬여있어서 당장 우리가 찾아가 뭐라도 하게되면 좀 곤란해질 수도 있어서 그래.”

야마다는 폰으로 계속 뭔가를 찾던 손을 멈추고 아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그 친구란 게  [ 그들만의 세상 ] 출판사 공모전 때문에 시끄러운 임형우씨 아들...말이지? 
아영씨 여러 번 이야기 했었던...”

“그래... 다른 친구도 있고... 알다시피 지금 터진 일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해... 근데 우리까지 가서 그러면...”

아영은 해인과 세현에게서 들었던 현재의 얽힌 사연들을 모두 야마다에게 이야기 했다.
해인의 작업실에 염탐해 찍었다는 사진과 주변 화가들과의 현재 관계까지. 사정을 듣고 난 뒤, 조금은 냉정을 되찾은 듯한 야마다가 다시 아영에게 물었다.

“근데...아영씨는 괜찮아? 나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찾아다니더니...이제 찾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건데...?”

“흥, 괜찮을 리가 있어? 그래도 어쩌겠어? 이렇게 찾게라도 해준 사람이 곤란해질 수 있는데 이기적으로 굴 수 없잖아? 그리고, 잠깐 기다리자고 했지 이대로 끝낸다고는 안했다...!"

야마다는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이어 말했다.

“그래... 그럼...! 뭐 소재 파악 된 것만 해도 어디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아영씨가 알아서 해 그럼...!”

“어라? 왜 이렇게 순순하게 응하는 거야? 막 성질내고 이래야 되는 장면 아니냐?”

“리더가... 그렇게 하라는데 따라야지. 아영씨가 대표님이니까...”

“대...표라...”

어색한 호칭에 살짝 인상을 찡그린 아영. 그렇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세현에게 사진을 받는 순간부터 이 상황을 떠올리며 대답을 준비해두었던 아영. 

만일 야마다가 찾던 그 사람이 맞다 해도, 친구들을 위해 바로 행동하지 않고 좀 더 지켜보리라고 혼자 어렵게 내린 결론. 그렇지만 같이 추적 중인 야마다가 어떻게 나올 지는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헌데 정색을 하고 반대를 할 줄 알았던 야마다가 순순히 이렇게 응해준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아영씨 친구 말야... 그 소설가... 지금 들리는 얘기는 어디까지가 진짜인거야, 한국에선 꽤나 큰 문제가 되어 있는 것 같던데...”

“흥, 다 헛소리야...!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래저래 안 좋은 소문 안나게 한다고 세현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살았다고... 하긴... 뭘 해도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태생이 문제라면 문제지...”

"그럼 완전 헛소문이라는 거야? 수상자 발표가 나자마자 바로 어떻게 소문 돌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누가 일부러 퍼뜨렸을 수도 있다는 거네...?”


아영은 생각지도 않다가 별 의미없이 꺼낸 듯한 야마다의 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본 바, 무언가를 조사하거나 알아내는 데에는 병적으로 집착을 가지고, ‘오타쿠’소리를 들어왔던 야마다가 세현의 소문을 파헤친다면...?

“왜? 너 마치 뭐 안다는 투로 얘기한다?”

“내가 추리소설, 추리만화 이런 데 엄청 매니아잖아... 아무튼 이런 경우는 뻔해...!”

“매니아라기보다 오타쿠지...! 뭔데?”

“오타쿠는 아니다!! 암튼 이런 경우... 제일 유력한 건 측근 시샘 같은 거랄까...”

“측근 시샘? 주변 아는 사람 짓이라는 거야?”

동그란 안경 속 눈빛을 빛내며 ‘이런 건 내 전공이지!’ 라는 표정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야마다. 

아영이 관심을 보이자 반색하며 본격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고 설을 풀기 시작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야! 이런 경우,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 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제일 커! 시기적으로도 딱 발표나자마자 터뜨렸다는 건 과정을 알고있었을 확률이 크고, 그 사람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아영 역시도 세현의 떠도는 소문과 벌어진 일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 그럴 싸한 논리를 펴는 야마다의 추측은 아영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있을 법한 얘기긴 한데... 주변사람이면 왜 할 일 없이 남 성공이나 부러워하고 있겠어? 그리고,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감당 안되게 큰 일 벌이겠어?”

“뭘 모르네...! 아영씨는...!! 할 일이 잘 안되고, 자기가 잘 못나가는 사람이니까 남 성공을 부러워하는 거지!! 근데 내 생각엔 말야...”

“내 생각엔 뭐...?”

“아무리 큰 공모전이라도 해도 문학 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가 잘되든 말든 상관 안할 거 같거든? 그러니까... 아무래도 문학계에 관련된 누군가가 아닐까 싶기도 해... 더군다나 아버지가 그렇게나 유명한 작가인데, 시기하는 세력이 어디 하나 둘이겠어...?!”

“문학계라...”

단계를 밟아 좁혀 들어가는 듯한 야마다의 추리. 아영은 자신의 머릿속 세현의 정보 안에 그 추리를 적용시켜 보았다.

"아영씨 근데 왜? 궁지에 몰린 친구 위해 범인 찾기라도 해 주려고?"

"음? 찾긴 뭘 찾아!? 정작 내가 쫓고 있는 사람도 아직 못 찾고 있는 마당에...!"

"아니...우리 조사할 때처럼 막 추궁하는 느낌을 받아서..."

"됐고, 쓸데없는 말 말고 더 검토하게 얼른 사업자료나 내놔봐!!"

급하게 다시 화제를 전환시키긴 했지만, 아영은 야마다의 추리가 이상하게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거 함께 일을 할 때에도 세현은 자신의 과거나 지인들에 대해 그다지 많이 얘기하지 않았기에, 지금 세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극복을 위해 택한, 작가의 여정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찜찜함이 남는 야마다의 추리 속 한마디 [ 측근 시샘 ]...

'측근이라...누구였지... 전에 세현이가 몇 번 얘기한 적 있었는데...'

“아영씨...아, 혹시 한국에 있었을 때 뭐 비슷하게 사업을 했다던가 하는 그런 경험 있어?”

아영이 실컷 딴 생각을 하는 중, 혼자 진지하게 조사내용을 검토하던 야마다가 사업얘기를 꺼냈다.

“음? 아... 뭐 초창기에 시도하다가 망해먹은 적은 있어, 왜?”

“해외라도 그런 기록 있으면 우리가 골라놓은 장소 들어가는데 좀 유리하다는데 혹시 증빙 서류 같은 거 준비할 수 있어?”

“에이... 한참 전인데... 그런 것 까지 필요해? 수익도 별로였는데...”

귀찮은 듯 야마다에게 대답을 하던 아영은 문득 뭔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 다시 답을 정정했다.

“아... 그래, 그래...! 유리하다는 건 준비해두는 게 좋겠지...!! 조만간 한국 한번 다녀올게...!”

다시 떠올려보니 해인을 다시 만났던 동창회 참석 이후로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던 한국.

딱히 돌아가고 싶지도, 일을 핑계로 일부러 찾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사업 관련된 일과 문득 떠오른 호기심을 해소하려 아영은 바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




“여러분들 저번에 이야기했던 것들 기억하시죠?”

프랑스 아를의 화가 작업실. 
카와모토는 화가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아 큰 스크린에 컴퓨터 화면을 띄웠다.

“갤리리 말고 다른 방향으로도 수익 생각해보자고 했던 그거 말이야?”

“뭐야, 그거 그냥 그대로 진행한다는 거였어? 천천히 생각해보자더니 벌써...?"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게 뱉어놓은 홍보계획. 카와모토는 언제 만들어 놓았던 건지 화가들의 작품이 게시되어 있는 블로그를 스크린에 띄우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블로그에는 갤러리 납품한 그림들과 겹치는 작품은 물론 소소하게 그려두었던 화가들의 낙서와도 같은 스케치들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저건 또 언제 다 찍어서 올려놓은 거야?”

“갤러리에 내는 것들이랑 겹치는 것들 많은데 이거 정말... 괜찮을까...들키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도 오랜기간 갤러리의 혜택을 누려온 만큼 화가들은 혹시 모를 마찰을 걱정했다.

"괜찮아...! 온라인으로 활동할 그룹 이름도 새로 지을 거고, 도움을 받긴 했지만 언제까지 이 갤러리에서만 활동할 수 없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화가들, 이렇게 개인 홈페이지로 포토폴리오 만들어놓고 활동하는게 원래 정상인거야...!! 
걱정들 말아!"

화가들은 우물쭈물하면서도 카와모토의 주장에 쉽사리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룹 명은 뭐라 할거야?"

"온라인으로 하자는 건 해인씨가 일단 메인이 되어야 해!! 이제 슬슬 반응들이 올 때가 됐거든...!"

가만히 지켜보던 해인은 메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깜짝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제...제가요? 무슨 말도 안되는...!"

"그래서...가능하면 해인씨가 전면에 드러나는 이름으로 짓고 싶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 들어올 수 있게...!"

해인은 당황하며 옆자리에 앉은 화가들의 반응을 살폈다. 예정보다 빨라진 블로그 제작에 당황했을 뿐, 다른 화가들은 카와모토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했다.

뭔가 겁이 덜컥 난 해인. 

“저는...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것도 오랫동안 계셨던 여러분들 그림들도 다 있는 마당에 저를 메인처럼 진행 하신다는 게...”

화가들은 해인의 반응을 예상이라고 하고 있었다는 듯 서로 눈치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헛기침만 해댔다.

“일단 알아야 사람들이 좀 방문을 하지 않겠어요? 공모전에서 상을 타기도 했고, 그러면 해인씨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 올 텐데...”

아무리 눈치 없는 둔한 해인이라도, 여기까지 온 이상 카와모토의 계획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다. 

결국엔 자신을 미끼로 방문객 수에 판매를 늘려보자는 속셈이 너무 보이는 듯한...

남자친구를 위해, 대신 TV에 나가는 수상식에서 상을 받아주는 것은 본인의 의지였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국 이 화가들은 자신을 이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해인.

“음... 저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매체들 접해서 아시겠지만 당장은 한국인 수상자인 제 남자친구가 여러 가지로 곤혹을 치르고 있어서요. 수습 중이긴 하지만 많이 힘들어 하는데, 저만 뒤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일단 수습될 때 까지만이라도 보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카와모토는 갑자기 굳어진 표정으로 해인을 내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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