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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Dec 12. 2017

우연히, 그곳에서...<78화>

[ 제78화 _ 두고 봐,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

"아영아, 지금 혹시 통화 가능해?"

아영은 평소답지 않게 어딘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해인의 목소리에서 뭔가 수상함을 감지했다.

"어머, 얘가... 아무 때나 일방적으로 연락할 때는 별 말도 없더니만! 오늘은 갑자기 왜 이렇게 격식 차린데? 히힛, 뭔데, 무슨 일 있는 거지? 나 지금 공항이야."

"공항? 어디 가?"

"난 너희들처럼 어디 멀리 나갈 수 있는 팔자는 못되나 보다. 하핫, 잠깐 볼일 생겨서 한국 들어가."

"아, 그래? 음... 그럼... 지금 통화는 가능한 거지?"

"얼래? 진짜 이상하다. 뭔지, 뭔데? 궁금하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아영의 에너지 넘치는 말투에 해인은 비교적 안심하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음, 아영아 이건 분명 좋은 소식일거야...!"

" [ 좋은 소식 일 거야 ] 는 또 뭐야? 그럼 누구한텐 안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는 건가?"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음...잘 들어 봐...아영이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사람...이쪽에서 지금 찾은 것 같아..."

"뭐, 뭐...?!"

너무도 놀라, 공항 대기실에서 그만 큰 소리를 질러버린 아영.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아영에게 쏠렸다. 

아영은 당황한 듯 전화기를 양 손으로 감싸 쥐고, 탑승구의 구석 한켠으로 이동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너...그... 그...게 정말이야?! 정말... 찾은 거야?"

"사실 조사해서 밝혀낸 건 임...아니, 세현오빠야.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고 다닌 모양이더라고... 그러다 결정적인 거 발견하고는 확신을 하더라."

"결정적인 거라면...?"

아영은 해인의 얘기를 한 음절도 놓치지 않으려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여댔다.

"음...아영아, 잘 들어, 네 전 남자친구였다던 [ 크리스 ]는... 그 사람의 화가 명이었어. 처음부터 널 속이려고 그 이름을 쓴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는 지까지는 모르지만..."

"화...화가...!? 그럼 혹...시 해인이 너 있는 화실에 있다는 그 일본 사람...은 아니겠지...?"

"응...바로 그 사람...! 처음 나 여기 왔을 때, 이것저것 많이 도와 줬었다고 너한테도 많이 얘기했었지...? 그 사람이...네 전 남자친구...래... 사실 나도 너무 놀랐어...!"

해인은 차근차근 세현에게 전달 받았던 자초지종을 전달해 주었다.

"...그 사람 이름은... 카와모토. [ 카와모토 케이타 ] 라고 해...남프랑스 아를 지역에 XX스트리트 건물 2층 작업실에 있는데, 나 여기 오기 전에도 한 일 년은 넘게 있었다는 것 같고..."

"카와모토..."

침통한 목소리로 해인에게 들은 카와모토라는 이름을 되뇌여보는 아영. 

처음 불러보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전 남자친구의 본명. 동시에 그의 이미지가 같이 떠올랐음 인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던 아영은 조심스럽게 다시 해인에게 말을 꺼냈다.

"그럼... 지난 번 세현이가 찍어서 보내줬던 사진 속 외국인하고 같이...있는 게 맞는 거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거 확인을 안했었네...! 야마다라는 사람한테 보여줬었어? 뭐라고 해?"

세현이 작업실 잠입 취재 결과 얻어냈던 사진 한장.

그 사진은 이미 야마다로 부터 확인을 끝내, 그토록 찾고 있다던 에릭슨임이 분명해 진 상태였다.

어렴풋이, 자신이 찾는 크리스 역시도 에릭슨 이라는 사람의 근처에 있지 않을까 싶었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던 덕이었는 지, 생각했던 만큼 큰 쇼크까지는 받지 않았던 아영.

"그래, 너희는 어때? 요새 많이 힘들지...?"

"그렇지 뭐... 조만간 세현 오빠가 기자회견에서 정면으로 맞서본다고 해..."

"아니, 세현이 말고, 너 말이야...! 그 자식...하고 같은 화실에 다니는 셈인데... 혹시 뭐 다른 일 있었던 건 아니지? 나한테 했던 짓 생각하면 다른 사람한테도 충분히 뻘 짓 할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친구끼리의 수다라곤 해도 카와모토와 자신의 현재 트러블에 대해 이야기해도 될지...

한동안 고민을 하던 해인은 아영에게 더한 걱정을 끼칠까 염려되어 별 일 없는 듯 얘기했다.

“음... 뭐,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나한테는 크게 이상한 행동을 보인 적은 없는 것 같아. 걱정하지 마...! 아영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나저나 너... 거기에 계속 있어야 되는 거야? 얘기 듣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데, 얼른 너도 다른 데로 옮기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위험할 수도 있잖아...!”

“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생각 중이야... 오빠 기자회견 한다는 날까지 결정하려고 해.”

해인은 세현에게도, 아영에게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너무 큰 부담 준거라고 늘 미안했었는데... 이렇게 해결까지 해줄 줄은 몰랐어... 정말 고마워... 너희들...”

끊임없이 크리스, 아니, 카와모토를 찾기 위해 몇 년간의 추적을 불사하던 아영. 

같은 목적의 야마다 역시도, 우연히 같은 공간에 가 있던 두 사람 덕에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어쩌다 보니... 같은 나라였었던 걸 뭐... 그런 인사 할 거면 나중에 세현 오빠한테나 해줘...! 난 정말로 한 것 아무것도 없는 걸... 그리고 아직 위치만 알게 된 건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모든 정보를 교환한 뒤, 이제는 정말로 아영의 결단만이 남아있다고 여겼던 해인은 아영에게 물었다.

“야마다한테도 이야기는 했는데... 너도 그렇고 세현이도 그렇고 그 사람이랑 뭔가 복잡하게 관련이 되어 있댔잖아. 내가 당장이라도 달려가 때려잡고는 싶지만... 그러다 너희 입장이 난처해 질 수도 있는 거고...”

“응? 아...그런...”

아영의 뜻밖의 반응에 얼떨떨해진 해인은 그저 계속되는 아영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너희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지면 얘기해줘. 그때 가서 행동하는 걸로 할게. 그 놈들 어디 도망가지 않게 감시만 좀 더해주면 좋겠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런가...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근데 정말 괜찮아? 몇 년동안이나 그렇게 찾아 헤맸던 사람 이제야 찾은 건데...”

아영은 크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해인에게 말했다.

“그래. 이것아! 몇 년간을 쫓은 놈인데, 몇 달 더 늦어진다고 뭐 크게 달라지겠니? 더군다나 직접 찾아주기까지 한 너희들한테 어떻게 더 페를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런...가...?”

이런 상황에서 배려라니.
여전히 범인이 이해하기에는 대범한 아영의 생각에 해인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






"한국행 XX편 승객분들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해인과의 전화를 마친 아영. 
전화를 끊자마자 길게 늘어선 한국행 비행기의 탑승 줄 뒤로 가 섰다.

‘카와모토 케이타... 화가...였어?’

아영은 세현과 해인의 관련 일들이 마무리 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며 쿨한 척을 했지만, 

처음으로 알게 된 전 남친의 본명과 함께, 고생 뿐이었던 자신의 몇 년 간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고된 외국 생활 속, 최측근이 되었던 남자친구로서 2년여를 만났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자신을 철저하게 감추려했던 모습.

왜 인지 세상과는 동 떨어지는 행동을 하고,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듯한 모습에서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지기는 했었으나 아영은 일부러 그것을 서둘러 알려하지 않았었다. 

세상이 원하는 모습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려는 그 삐딱함이 자신과도 같은 스타일 이라며, 그저 잘 맞는 한 쌍이라고 여겼을 뿐.

이유야 어찌되었던 현재로선 자신을 배신하고 자기 할 일만을 찾아 떠났던 무책임한 자식...

멋들어진 아웃사이더 였던 지, 정신 빠진 사이코패스 였던 지, 어느 쪽이건 아영에게 이제 남은 것은 분노 뿐이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비행기 안, 아영은 카와모토를 잡을 때까지 혹시나 증거로 쓰일까 싶어 아직까지 바꾸지 않았던 낡은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오고가던 연락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쳇, 얼마만이냐...이게...’

한국으로 향하는 2시간여 동안, 오래간만에 아영의 머릿속에는 찜찜한 감정과 함께 전 남자친구와의 추억이 억지로 떠올려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 사업기록 증빙서류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한국에 도착한 아영은 야마다가 말했던 서류를 준비하려 바로 세무서로 향했다.

해인을 만났던 일년 전 이후 돌아온 한국이었지만 달리 신기할 것도, 반가울 것도 없었기에 다른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짐도 없는 가벼운 복장으로 귀국했던 아영에게 쏟아지는 남자들의 의뭉스러운 시선들만이 늘 비슷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세무서에서 서류가 나오길 기다리며 대기좌석 옆 잡지들과 신문기사가 눈에 들어온 아영.

세현과 출판사의 일은 한국의 이 매체 저 매체에서 여전한 큰 화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좌석에서 바로 보이는 TV에서도 여전히 그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임형우씨의 소설 [그들만의 세상]으로 전세계 수천만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출판사에서는, 연일 부정의 입장을 보이며 후속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주최국이라 그런 건지,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파장의 크기는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아영은 서류를 준비해 주는 세무서 직원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 사건 말이에요,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제가 외국에서 온 지가 얼마 안됐는데, 여긴 온통 저 얘기 뿐이네요." 

"아, 저거요... 뭐 아니라고 잡아 떼기는 하는데 출판사에서 손 써준거 아니겠어요? 누가 처음 제보를 했는 지는 몰라도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을 테고..."

"그럼... 누가 처음 제보했는 가는 혹시 밝혀 졌데요?"

"아뇨...근데 뭐, 그런 게 지금와서 뭐가 중요하겠어요? 자, 여기 요청하신 서류입니다."

직원의 '바쁜데 더 말 걸지말라'는 식의 태도에 아영은 더 이야기를 할 수 없었지만, 지금 한국인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대강 짐작이 갔다.

"응?!"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야마다의 [측근 시샘]설의 영향이었을 까,

직원과의 짧은 대화 중, 순간 쏠리게 된 집중력에 아영은 예전 세현이 말했던 자신의 친구이자 작가라던 자의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다.

'혹시...!'

예전 세현의 말로는 고등학교 친구로 대학까지 친하게 지내오던 사이라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세현의 작가 도전 이후 뜸해진 현직 작가 친구라... 야마다의 측근 시샘설을 적용해 보자면 가장 먼저 의심이 갈 사람임은 분명했다.

아영은 볼일도 마쳤겠다,  서점으로 가 직접 서적으로 검색을 해 보기로 했다.

'작가 한기태의 장편소설 [얼굴], [날개], 단편집 [이들이 사랑하는 그들]...현재 연재소설 단행본으로 두 권...'

혹시나 그의 작품 세계에서 무언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마음에 실제로 찾아 읽어보기로 한 아영.


소설 코너의 가장 아래켠, 아영은 책 윗면이 먼지가 뽀앟게 얹어진 기태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출간한 여러 책들 중 [날개] 라고 하는 책이었다.

아영은 여유롭게 서점의 한 지점에 털썩 주저앉아 본격적으로 기태의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의심을 시작해서 일까, 인터넷에 공개 되었던 세현의 글은 그다지 밝지 않은 내용에도 두근거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거늘,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평범한 독자 아영이 보기에도 한기태 작가의 책 내용은 꽤나 어두운 느낌이었다.

소설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아영이 느끼기에 다소 길게 이어지는 문장과, 과한 묘사들, 어려운 표현들까지도 뒤섞여 뭔가 술술 넘어가지지 않는 진도.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영은 꼼꼼히 읽어갔다. 서서히 기태가 구사하는 문장들에 익숙해져 간 것인지, 갈수록 어느 정도 속도가 붙어가는 듯 했다.

같은 자리에서만  두 시간 가량이 흘렀을 즈음, 한기태 작가의 책은 서서히 종반부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 벌써 시간이..."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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