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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Dec 15. 2017

우연히, 그곳에서... <79화>

[ 제79화 _ 너 갈수록 좀 달라 보인다...?]


호기심에 세현의 작가 친구 기태가 쓴 책을 찾아, 앉은 그 자리에서 한 권을 거의 완독한 아영.

"여보세요? 엄마, 나 한국왔는데 한 3일 정도만 신세 집시다."

"하이고...썩을 놈의 기집애가 맨날 싸돌아 다니면서 코빼기도 안비추더니 잘 한다...! 언제 올 건데? 숙박비 청구할거야!!"

"에헤...! 이거 왜 이래...!!"

원래는 야마다가 요청했던 서류처리 후 바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려 했던 아영.

그러나 뭔가 께름칙해 지기 시작한 호기심의 실체를 파헤치고 싶은 마음에, 돌연 일본 귀국을 연기했다.

"여보세요...! 야마다, 난데, 나 여기서 한 일주일 정도 있다 갈 거 같으니까 서류 당장 필요한 거면 우편으로 보낼께."

"어, 아영씨 뭐야, 무슨 일 생겼어? 바로 온다 그러더니... 서류는 그렇게 급한 거 아니니까 올 때 가지고 와도 되긴 한데...!"

"그럴 일이 있어...아무튼 그런 줄 알고...! 알았어."

늘 그러했듯 야마다에게 일방적인 전화 통보를 한 후, 읽던 책을 마저 보기 시작한 아영.

며칠을 더 머무르게 된 여유가 생긴 탓인지, 한 권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기태의 다른 서적들까지도 찾아 읽어 볼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참 나, 팔자에도 없던 독서를 하고 있네... 더군다나 생전 처음 보는 작가 글을..."

아영은 혼잣말로 툴툴 댔지만, 불만보다 더한 호기심은 아영의 발을 이미 서점의 소설 칸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한기태라는 작가 글의 내용, 문장, 전개, 인물 묘사...

비록 만들어낸 픽션 속 이야기라도 결국 작품 속 등장인물은 작가의 투영이라 하지 않았나...

의심을 품은 상태에서 하나하나 꼼꼼이 살펴보고 있어서인지, 두 작품 안에는 무언가 공통된 연결고리가 보이는 듯 했다. 

아영은 보다 더 큰 확신을 위해 야마다가 얘기했던 측근 시샘이라는 개념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어졌다.

전문가는 아니라지만, 추리소설, 만화의 매니아라 자처하던 야마다의 그 추리는 계속해서 아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에.

"여보세요...! 야, 야마다,  나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

"어? 뭐...뭔데...?"

"뭐야, 왜 말도 안 꺼냈는데 쫄고 그래? 이 쫄보야!!"

"아니, 아영씨 이렇게 공격적일 땐 항상 뭔가 큰 일이 터지거든, 그래서..."

"그래, 어디 목소리 만으로 맞춰대는 그 무당같은 통찰력으로 대답해봐...! 너 지난 번에 말했던 그 측근 시샘이라는 게... 어디까지 갈 수 있는거지?"

아영은 다짜고짜 야마다에게 연락해 알고 싶은 것을 당장 내놓으라는 투로 다그쳤다.

"어디까지 가냐니, 그거... 뭐 한국에도 비슷한 속담있지 않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였던가... 결과적으론 그거 비슷한 말인거지 뭐..."

"그거야 알지...근데, 이게 가까운 사람한테까지도 해코지로 막 이어지고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오래 알고 지내왔던 사이끼리도...?" 

"내가 볼땐 가까운 사이일 수록 더 위험해 질 수도 있어보여. 일 터졌을 때 조금만 좁혀 들어가다 보면 적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잖아...! 

시기하고 질투하고... 아무래도 비슷한 방면에서 먼저 잘되거나 하는 걸 보면 시샘이 생기지 않겠어? 사람이니까..."

"그래? 뭐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아영씨... 혹시... 지금 그 친구 도와주고 있는거야? 우리 도와주고 있는  프랑스에 있다는 친구...?"

"쳇, 이거 뭐... 네놈은 뭐하는 놈이길래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그런 걸 다 맞추고 있냐?! 

그래!! 어떤 괘씸한 놈인지 찾아다 박살 좀 내줄려고 한다!! 이렇게 까지 시끄럽게 일 벌이는 놈이...!"

"음...급하게 한국 간다 할 때부터 어째 그럴 거 같더라니...그럼 내가...뭐 좀 도와줘?"

"돕긴 네가 어떻게 도와!? 의심가는 놈 뒤져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한글도 모르... 아, 좀 공부했댔나..."

야마다는 애초부터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전혀 당황하지 않은 투로 아영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한글을 공부 중이라더니 현재 어느 정도의 실력에,  어디까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지는 모르지만 늘 믿음직한 정보통이었던 야마다.

이제는 믿고 맡겨도 될 정도의 신뢰도가 쌓여있었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야마다의 말은 제법 구미가 당길 법한 제안이었다.

"그래, 뭐 우리가 세현이한테 큰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 너도 원한다면 뭐... 그럼 너... 혹시 한국 작가 조사 가능하냐?"

"벌써 누구 짐작가는 사람이 있었던 거구나...! 아무래도 여긴 외국이니까 아주 무명에, 알아볼 수도 없는 사람이라면 좀 힘들어도 출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정보야 구할 수 있지...!"

같이 하면 할수록 참 쓸만한 재능을 지닌 듯한 이 오타쿠 녀석 때문에 아영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이름 한기태, 나이 33, 장편소설 '얼굴', '날개' 지은 작가고...뭐 지금까지 알게 된 정보는 이 정도...? 그럼 네가 더 좀 알아볼 수 있겠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야마다의 검색엔진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듯. 전화기 너머로 분주하게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알았어, 그 정도면 된 거 같네... 알아보고 연락 줄께..."

다른 쪽 조사를 맡긴 덕분에 더 깊이 기태의 작품에 빠져 분석을 할 수 있게 된 아영. 이미 보았던 책과 비교 또 대조해가며 몇 시간을 더 할애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기태의 두 권의 책에 대한 분석이 끝나갈 무렵, 예상대로 바로 알아본듯, 야마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근데 아영씨는 이 사람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바로 떠올라서 조사 시작한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한 건 몰라, 그저 예전에 세현이가 글 쓰는 친구 얘기했던게 생각이 나서..."

"세현씨? ...는 원래 글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면서 어떻게 그런 친구가 있었데?"

"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사람이랬어. 그 사람은 예전부터 작가 지망생이었고...!"

의도치 않게 세현과 관련된 이 일까지도 공조 수사를 하게 된 아영과 야마다는 서로 알게 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근데 왜? 뭐 좀 알아냈어?"

"음...한기태라는 작가, 아영씨가 말해 줬던 소설 이외에도 출판사 잡지에서 연재 소설을 쓰고 있다나봐. 그렇게 인지도가 있는 큰 출판사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 어디 출판사인데?" 

"잠깐만, 내가 알아낸 정보 정리해서 보내줄께."

꼼꼼한 조사내용을 문서로 정리해 아영에게 보냈다. 역시 리서치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야마다. 

한기태라는 작가의 학력부터 출간된 책의 판매부수까지 꼼꼼히 정리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 중퇴라...관련 학과인데 학교까지 관두고 본격적으로 이 길만 걸었단 거야? 자부심 가질 만은 하겠네...'

자신 역시 두가지 책의 비교 분석을 마치고 일어서려는 순간,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아영은 이미 분석을 끝낸 기태의 책 두 권을 구입했다.





***





프랑스 아를,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에서 정한 기자회견 날.

'어차피 시작된 일, 가볍게 생각하자'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던 세현은 막상 기자회견 당일이 되자 온 몸에 퍼져가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무슨 말 할지 정리 좀 해 뒀니?"

문을 아직 열지 않은 가게 안에서,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레스토랑 내부를 서성거리는 세현에게 주인 아저씨가 물었다.

"예...뭐...정리 하긴 했는데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전 세계로 나가는 회견일 텐데 뭔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네요..."

"뭐 글 쓰는 녀석이니까 오죽 정리를 잘 했겠냐만은, 구구절절 이야기를 다 꺼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무슨 죄 지은 것도 아니고...!"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좀 길긴 하네요. 얼른 고쳐야 겠다..."

세현은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내용을 꼼꼼이 정리해 두었지만, 봐도 봐도 뭔가 썩 내키지 않았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 정정 표시 투성인 연습장을 노려보며 혼잣말로 낭독해 보는 세현.

"얘기 퍼졌으니까 아마 한국에서도 기자들이 많이 왔을테지... 아마 공격적으로 질문들 해댈 텐데 기죽지마...!"

아저씨는 옆으로 다가와 두툼한 손으로 세현의 어깨를 꽉 꽉 주무르며 이야기 했다.

세현은 말없이 아저씨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임씨, 혼자 괜찮겠어? ]

해인으로부터 도착한 문자.

떨리는 마음에 계속 해인의 손이라도 붙잡고 같이 있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에 기자회견장에는 혼자 다녀오겠다 말해둔 차였다.

[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아! 갔다 와서 연락 할 테니 그림에 열중하세요! ]

사실, 무수하게 자기 암시를 걸고 있는 중이었지만, 혹시나 자신도 모르게 드러날 듯한 약한 모습을 해인에게 보이기 싫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저씨...!!”

“그래... ! 있는 그대로 절 전달하고 와...! 쫄지 말고...!!”

이번에도 기꺼이 빌려 준 아저씨의 차를 타고 세현은 홀로 아비뇽으로 향했다.

늘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아비뇽의 입구는 왜인지 모를 적막감으로 세현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세현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감 너머에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출판사 앞의 인파들만이 주의를 끌고 있을 뿐이었다.

[ 임세현씨. 회견 전에 일단 사무실로 오셔서 저희랑 회의를 하시죠. ]

막 도착했을 무렵에 출판사의 사무실로부터 받은 통보. 세현은 한눈에 보아도 기자들로 보이는 인파들을 스쳐지나가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아마도 전 직원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의 많은 인원들이 세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어려운 결정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그간 각종 의혹들이 붉어졌던 부분에 대해 해명을 할 자료들을 준비했습니다. 

작가님이 이 전에 일본에 계셨던 사실 때문에 붉어졌던 일본 심사위원에의 의혹이나 아버님과의 연 때문에 이어졌다던 특혜 의혹들 말이죠.”

“저도... 나름 좀 준비해 봤습니다만...”

“예, 당연히 준비하셨겠죠. 회견장에선 무슨 말씀을 하시든 문제없습니다. 저희로선 논란에 최선의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으니까요. 이쪽에서 저희가 준비한 자료 한번 검토하시죠.”

출판사에서는 미리부터 요구했던 세현의 일본 체류 경로, 일본 심사위원과의 접촉에 전혀 없었다는 기록, 그리고 공모전 응모 시 응모자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어진 시스템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기자회견 한 시간 전, 세현은 출판사에서 제공해 준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런 자료들을 준비했지만 본인을 직접 모시고자 했던 건 아무래도...”

“??”

“국민들 정서...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관계를 아무리 증명해도 본인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라면, 뒤에서 또 뭔가 꾸민 거라는 새로운 의혹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죠...아무래도...”

“그저... 솔직하게 말씀해주면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임세현 작가님.” 

몇 번이고 이어진 출판사 측의 당부.
이제 세현은 서서히 기자회견장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전에 수상식을 했었던 출판사 내의 그리 크지 않은 강당. 

해인과 함께 상을 받았던 그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세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세현과 ‘덩치 큰 깐깐한 늙은 이’라 지칭되던 출판사의 간부는 같이 단상위에 올랐다.

[ 찰칵, 찰칵 ]

무수히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끊임없이 들려오는 셔터의 경쾌한 소리들. 세현은 갑작스런 플래시 빛에 눈살이 찡그려 졌다.

“아, 아...!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님들. 이렇게 어려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상의 마이크 앞에 먼저 선 것은 출판사 간부였다.

“먼저... 이번 공모전 관계로 빚어졌던 의혹들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저희 출판사를 사랑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은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출판사 간부는 노련하면서도 단호한 말솜씨로 그간에 있던 의혹들과 소문들이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히며, 

조금 전 세현에게 보였던 자료들을 프로젝터로 띄워 기자들 앞에 공개했다.

기자들은 공개되는 자료에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면서도 날카로운 눈초리로 단상에 같이 올라있는 세현을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에 증명할 자료를 정리하느라 기자회견까지 시간이 다소 걸린 점 양해 부탁드리며... 

오늘은 말씀드렸다시피 임형우 작가님의 아드님이자, 이번 공모전의 한국인 가작 수상자 임세현씨, 작가명 해세님이 직접 해명을 위해 와주셨습니다.”

간부의 소개에 이어 단상에 가운데에 선 세현.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처음보다도 더 맹렬하게 퍼부어지는 듯 했지만, 

처음보다는 조금 적응된 모습으로 세현은 고개를 들어 기자들을 바라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처음...뵙겠습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 임세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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