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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Dec 19. 2017

우연히, 그곳에서...<80화>

[ 제80화 _ 뭐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 ]


"처음 뵙겠습니다. 작가 지망생 임세현입니다."

세현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이크 앞에 섰다.

무대 위 단상에서 내려다보니 기자들은 빼곡히 강당 전체를 점거하고 있는 듯 했다.

끊임없이 터져대는 플래시와 기자들의 웅성거림에 자칫 정신을 놓을 수도 있는 상황.

세현은 정신을 바짝 차리려 단상에 가려진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여기 모인 분들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그들만의 세상의 저자 임형우씨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버진 제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죠..."

결국 솔직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겠다 다짐한 세현은 꺼내기 민감했던 자신의 과거사부터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문예 창작이나 글쓰기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저 평범한 직장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큰 대회에서 문학적으로 아무런 전적도 찾아볼 수 없는 초보자인 제가 수상을 하게 되었다는 것... 저 역시도 과분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아마, 아버지의 영향이라면 영향이었겠지요...! 성장하면서 이런저런 문학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무언가를 느껴왔는 지 모릅니다. 언제부터인가 창작에 목 마르기 시작했기에,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글쓰기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경험을 쌓아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여러 작가들의 좋은 글들을 접하고 흉내 내어가며 문장력을 단련했습니다.

한국, 일본, 그리고 이곳 아를에서 까지도... 근 몇 년간의 사회가 바라보는 저의 공백은 모두 글을 쓰기 위한 수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담담하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세현.

나름 조리있게 잘 정돈 된 문장이라 생각했거늘 기자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준비해 온 질문에 답변만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열심히 수련했고 갈고 닦았습니다. 꾸준히 작품을 집필하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던 본 공모전에 제출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입니다."

또박또박 이어지던 세현의 연설이 끝나가는 기미가 보이자 기자들은 앞 다투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한국에서 온 기자들의 질문이었다.

"임세현씨...! 취재한 바로는 xx금융 회사에 몇년간 다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만 두신 게 글을 쓰기 위함이었습니까? 상식적으론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회사 였을 텐데요...!"

"예...3년 전 쯤 입니다. 전부터 늘 꿈만 꾸어오다 제 길 찾아 방향을 틀기 시작한 때가 그 때부터 였습니다."

"그 때부터 뭔가 출판사와 이야기가 되어 있던 건 아닙니까? 아무런 대책 없이 나온 거라면 당연히 두렵겠지만, 보장이 되어있는 필드행이라면 나올 만 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세현은 카페 주인 아저씨의 말이 점점 실감이 가기 시작했다.

[ 기자들이 공격적으로 질문을 해댈테니  기죽지 말라 ] 고 했던...

세현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힘겹게 억누르며 기자에게 대답했다.

"그런 것... 전혀 없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대책 없이 나온 거니까요... 회사 그만두면서 어디 즐겁기만 했겠습니까, 많이 두려웠습니다."

한 쪽에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이겨냈다 생각했더니 이곳저곳에서 갖가지 예상치도 못했던 질문들이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출판사에서 브리핑 해주었던 정보대로라면 작품을 선별해준 일본 심사위원도 같이 뭔가 한통 속이 아니냐는 설이 제기 되었는데요. 하필 왜 글 훈련으로 정한 나라가 일본이었습니까?"

"일본의 뛰어난 문학 작품들에 평소 관심이 많기도 했었고, 아르바이트 비를 벌면서 생활이 가능한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고 말리라]는 듯한 살벌한 눈빛의 기자들, 

오히려 자신들이 말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질문의 강도는 점차 높아져 갔다.

"꼭 생활비를 벌어가며 외국에서 글을 써야 했습니까? 꼭 외국을 나가야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시각에 따라선 뭔가 있는 사람의 허세로 느끼는 부류도 많습니다만."

크게 심기를 건드리는 기자의 질문. 말도 안 되는 인신공격임에 분명했다. 


"뭐 저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 지가 뭐 돈 한 푼이라도 보태줬어? 글 쓰고 싶은 사람이 어딜 가서 쓰건 제깟 놈이 무슨 상관이야, 기레기 같은 새끼가!!!"


...라고 가게에서 TV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아저씨가 소리 질렀다. 

아저씨는 TV 너머로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세현의 분노에 공감하며 입으로 혼잣말을 해댔다.

"세현아, 그래도 참아야 된다. 참아라...참아...! 이런 데에서 자칫 말 잘못하면 아무 잘못한 거 없이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수가 있어...!!”

아저씨의 혼잣말이 멀리 아비뇽으로 전달이 되기나 한 듯 세현은 침을 한번 크게 들어 삼키고는 기자의 어이없는 질문에 답변을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제대로 글도 배운 적 없는 놈이 유명한 작가 아들입네 하면서 어디 허세나 부리면서 글을 쓰려고 하는 모양새가... 옛날부터 끝도 없이 들어오던 말입니다. 아버지 잘 만나 호위호식을 한다는...
그리고 아는 사람 천지인 한국에서 글 쓴다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면 그 주변인들의 시선을 우선 감당해 내야 했습니다. 

일단은 내 힘으로 올라올 수 있을 때까지 피해있자...고 생각한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시피 일본의 문학작품들을 현지에서 접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습니다. 들어오지 않는 작품들이 훨씬 많을 테니까요.”

“그럼, 임세현씨의 작품을 심사했다는 작가 요시다씨와는 일면식도 없었습니까? 그 분의 작품을 본 적은 있으시겠죠?”

“출판사 공모전 규정을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응모자의 작품이 어느 나라로 갔는지, 누구한테 심사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결과가 나온 후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이제야 알게 된 그 분의 작품은 본 적도 없고 성함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완곡하게 돌려 분노를 잘 숨긴 세현. 
더 이상 일본 체류건에 대해 나올 게 없다고 여겼는지 기자들은 또 다른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럼, 좋아하신다는 일본 문학을 등지고 왜 다시 프랑스행을 선택하신 겁니까? 그거야 말로 작가 임형우의 영향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되는데요. 공모전에 응모하신 곳도 이곳이고 수상하신 것도 이곳입니다. 왜 이곳입니까?”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한 가지 바램은... 여기에 와서 글을 쓰자 였습니다. 그건 아버지와의 무언의 약속 같은... 거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약속이라뇨? 아버님이 임세현씨를 작가로 키우려 하셨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출판사와의 연결고리가 더 의혹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인데요.”

“문제 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만의 세상]이 씌여질 당시 저는 아버지와 이곳에 같이 있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제 어머니 또한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부모님의 고향 같은 조용한 이곳에 와서 글을 쓰고 싶다는 게 어떤 문제가 되는 건지 오히려 여쭙고 싶습니다.”

“그들만의 세상 집필 당시에 임형우 작가님하고 같이 계셨다고요? 그런...”

전혀 조사가 되어있지 않은 사실에 기자들은 집단으로 웅성대며 오히려 세현에게 밀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갔다. 

세현 역시 그 분위기를 감지해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기자님들, 이번 공모전에 출품한 제 작품은 보셨습니까?”

“그...그럼요, 봤죠..!!”

우물쭈물하며 거짓말을 내뱉는 듯한 기자들. 

“온전하게 제 힘만으로 공모전에 당선된 것 같지 않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잘 타는 흐름에 갑작스런 세현의 돌발 발언. 
부족한 정보 때문에 당황하던 기자들은 물었구나 싶어 세현에게 다시 질문을 퍼부어댔다.

“그...그게 무슨 말입니까, 출판사와의 뭔가 거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시는...?”

“제 작품을 보신 분이면 알겠죠. 제 작품에는 삽화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제 문장력만으론 힘들었고 그 삽화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시너지가 있었다고 본다는 겁니다.”

세현의 얘기를 듣고 일부 기자들은 부랴부랴 사이트에 들어가 세현의 작품 속 해인의 일러스트를 다시 확인하였다.

“뭐야... 저 바보... 그 장면에서 왜 그림 얘기는 꺼내고 그러냐!!”

세현의 만류로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뒤늦게 세현이 일하는 가게로 들어와 아저씨와 함께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해인이 화끈거리기라도 하는 듯 얼굴을 감싸 쥐고는 혼잣말을 했다.

“틀린 말 아닌걸 뭐...! 해인 양 그 뒤로도 꾸준히 그렸으니 저때보다도 훨씬 늘었을 거 아닌가?”

같이 TV를 보다 해인의 혼잣말을 들은 가게 아저씨는 해인에게 말했다.

“아, 아니에요... 아직 멀었죠 뭐...!!”

“언제. 해인 양 다른 그림 나도 보여줄래? 내가 이래봬도 예술의 도시 아를인생 30년인데...!”

“아이쿠... 창피해서 못 보여드리는 거죠... 저도... 괜찮으시면 보여드릴게요...”

[부르르르]

이제는 거의 전세를 뒤집은 듯 당당하게 기자를 대하는 세현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해인의 전화로 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음? 여...여보세요?”

“아, 이해인씨 연락처 맞습니까? 여기...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 프랑스 지부입니다.”

“예? 지금... 임세현 작가 인터뷰하고 있는... 아비뇽에 있는 출판사 말씀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이전에 한번 얼굴 뵌 적 있는데 기억하시나 모르겠네요.”

“아...그 분...”

지난 번 세현과 함께 이 건의 대책회의를 위해 아비뇽 출판사에 동행했던 해인. 

출판사의 늙은 간부와 함께 한창 실랑이를 벌인 후 돌아가는 길에 해인을 따로 잠시 불렀었던 이 여직원의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예... 기억납니다. 근데 무슨 일이시죠?”

“예, 이해인...화백님이라 부를게요. 화백님 지난 번 말씀드렸던 부분 말입니다. 그분이 지금 TV에 거론됐었던 이해인 화백님 그림 얘기에 더 재촉을 하시는 통에...”

“예? 무슨 말씀이세요? 그분이라면...?”

당시 해인을 몰래 따로 불렀던 여직원은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가 전속 삽화가를 찾고 있는데 해인의 신선한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어 했다'는 얘기를 슬쩍 흘렸었다.

유명한 사람한테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긴 했지만 세현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 분이... 해인 화백님하고 직접 연락을 하고 싶어 하시는데요. 마음대로 알려드릴 수는 없는 거니까 이렇게 연락 드렸습니다.”

“직접... 연락을 하고 싶어하세요? 왜요?”

“말씀드렸다시피...그분이 전속 삽화가를 찾으시잖아요. 그거 부탁하려고 하시는 거 아닐까요...”  

“전속...삽화가...”

“예... 어떻게 할까요? 연락처 전달해 드릴까요?”

“아, 아니요...! 일단 바로는 좀 힘들 것 같아요.”

늘 귀가를 같이하며 빨리 보여 달라고 보챘던 세현의 장편소설.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공동작업의 의뢰는 세현이 먼저였다. 

화가로서는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인간적으로, 임세현의 여자 친구이자 동료인 해인으로서는 깊은 상념에 빠져야만 했다.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던 해인은 혼자 깊은 고민 끝에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그래... 이런 거 가지고 고민거리도 아냐... 당연히 임씨가 먼저지...”

해인은 가게로 돌아와 이제 막바지로 치달은 세현의 남은 인터뷰 실황을 마저 지켜보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출판사도, 또 저 역시도 이 말도 안 되는 논란에 피해자입니다. 

저는 작가라는 삶을 택하려 하지만 절대로 아버지의 후광을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써 갈 생각이며, 봐주시는 분들 역시 글로만 저를 판단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자들과의 줄다리기 끝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세현의 우세로 마무리 지어진 듯한 기자회견.

아직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큰일을 치뤄냈다는 안도감에 세현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임세현 작가님. 고생하셨습니다. 바로는 아니더라도 말씀 잘해주신 덕분에 이제 여론은 조금씩 사그라 들겁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출판사의 늙은 간부 역시도 세현의 활약이 만족스러웠는지 연신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세현의 손을 꼭 잡아댔다. 

최근 몇 번의 방문 동안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출판사 복도의 아버지 사진도 그제서야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책망어린 눈빛으로 그 사진을 응시하던 세현.

‘아버지, 그만 좀 괴롭히세요, 이제...!!’

뒷수습과 처리해야 될 들에 대한 상의를 마친 후 돌아서려는 세현.

“아, 임세현 작가님, 지금 바로 가셔야 되나요? 잠깐 얘기 가능할까요?”

조금 전 해인과 통화를 했었던 여직원은 문득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 세현을 불러 세웠다.

“예? 무슨 얘기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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