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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Dec 26. 2017

우연히, 그곳에서...<82화>

[ 제82화 _ 의외로 꿍짝이 맞는 콤비 ]


세현의 눈을 마주보며 날카로운 시선을 쏘기 시작한 해인.

“그래서, 나 그 작가한테 갔으면 좋겠어? 유명한 작가가 전속 삽화가로 찾는다니까?"

밀고 들어오는 해인의 질문 공세에 세현은 움찔하며 그제서야 자신의 말이 해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음을 깨달았다.

“아니! 넌...! 나랑 같이 작업하기로 했잖아!! 약속했으니까...!! 너 아무 데도 못 보내!! 안돼!!!"

늦게나마 세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걱정보다 앞섰던 본심을 털어놓았다.

진작에 이렇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쓸데없이 걱정한답시고 약해 빠진 소리를 먼저 해버리다니...

세현의 외침을 들은 해인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빤히 올려다보며 얘기했다.

"근데, 왜 그런 말을 해?"

순간, 해인을 믿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고마운 감정에 그만 턱밑까지 올라온 울컥함을 감지한 세현.

표정으로 지어지는 그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일까, 세현은 해인의 손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강하게 끌어 안고는 자그마한 해인의 얼굴과 가녀린 어깨 사이로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이거 안 놔? 어디 남자친구라는 게 여자친구가 바라는 것 하나 모르고 있고 말야...!"

"미안...나는 당연히 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지...근데 해인이 입장에선 고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대단한 작가한테 실력을 인정받은 거니까..."

그제야 안긴 품안에서 세현의 양 옆구리 쪽으로 살며시 손을 올리는 해인, 같이 안아주는 가 싶더니 손가락을 세워 세현의 등살을 있는 힘껏 꼬집어 비틀었다.

 "아야얏!!"

"흥, 아프냐? 그 정도 가지고... 내가 그림 그리고 싶댔지, 언제 유명인 옆에 있고 싶댔냐!?"

"아악...미, 미안...!! 잘못했어...!!"

꼬집혀진 등의 고통만큼, 반성하는 마음이 강해져서 였을까, 해인을 끌어안은 세현의 팔에는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아앗, 아파...! 꼬집은 거 복수하는 거야?"

 "아, 아니... 미안..."

근심만 가득하던 세현의 얼굴에는 그제서야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여전히 품안에 갇혀 그런 세현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한 해인은 나지막히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그 유명하다는 작가가 어떻게 이런 제안을 해줬는진 몰라도, 난 아직 배워야 될 게 너무 많아... 그리고 솔직히 임씨 작품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세상 밖에 나와보기라도 했겠어? 아마추어끼리 같이 커가자고 해놓곤... 그리고 그런 프로 밑에서 전속이 된다는 거... 솔직히 한국에서 지겹게 다니던 회사 생활하고 다를 게 없을 거야... 인간적으론 어떤 사람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도 없잖아..."


작가의 제안 이 후부터 꽤나 심사숙고한 듯한 해인의 사정.

세현은 아무 말 없이 해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임씨 알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그래서 일부러 얘기 안하려던 건데, 출판사에서 먼저 고자질을 해버렸네... 쳇, 나하고 얘기 끝났으면 된거지 뭐 임씨한테 까지 이르고 난리야..."

"미안...내가 빨리 소설 완성해서 작업 시작하자고 해야 했는데... 같이 하자 해놓고 뭔가 붕 떠있는 기간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했고..."

해인은 품안에서 살짝 벗어나 세현을 올려보며 가슴팍을 가격했다.

"멍청아, 기다리는 사람 있다고 몇년이나 준비했다던 글 대충 마무리할 생각이야? 그렇게 공들였다면서, 이 글로 정식 데뷔 준비하려는 거잖아? 시간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해! 나는 나대로 그림 공부하고 있는 거지, 놀고 있는 거 아니니까!"

그저 지켜주고 싶은 연약한 여성으로만 여기던 자신의 여자친구 해인.

한국에서 가족을 책임져 오다 그것마저도 자기 열정만으로 극복해내고 이 자리까지 온 해인은,

이미 자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인한 '어른'일지 모른다.

이제는 오히려 기대어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듬직해 보이는 해인의 존재, 함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했다.

"하이고...어디서 이런 걸 만났누...!!"

이제는 세현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듯한 여자친구 볼 꼬집기. 이번 만큼은 해인도 지지 않았다.

"하이고... 생각하는 거 보면 아직도 애야,  애...!!"

서로의 볼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 찐한 스킨십(?)을 주고받은 그들.

얼마나 격렬했던 건지 두 사람 볼에 남겨진, 사이좋게 나누어 생긴 흔적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






"어디? 어디 출판사라고?"

"음... 출판사는... '책속의 사람' 이라는 데... 장소가 음...신사동...xx번지, 회사 규모는..."

"야, 됐어! 무슨 면접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 규모가 여기서 왜 필요해!?"

한국에 와 기태의 책을 정독했던 아영. 일본의 정보통 야마다와 공조 수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책의 내용과 이전에 세현이 해주었던 옛 친구의 이야기, 거기에 믿음직한 정보통 야마다가 알아봐주는 정보를 조합하다보니 슬슬 행동으로 옮겨봐도 될 정도의 확신이 생겼다.

"음...근데 어떻게 연락처를 알아내지...? 무작정 출판사 찾아가서 이 사람 연락처 좀 알려달라 할 수는 없고..."

"뭐야, 출판사만 알아봐 달라더니 딱히 다른 방도가 있는 게 아니었어? 아영씨도 참... 좀 기다려봐...!"

전화 너머로 열심히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혼잣말로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야마다는 다시 아영에게 말했다.

"음, 보니까 이 기태라는 사람, 이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소설 연재하다가 중간에 그만 둔 이력이 있어. 왜 그만 뒀는지 까진 알 수 없지만..."

"뭐야, 그런 건 또 어떻게 찾았데? 근데 그게 왜?"

아영도 고민 중이었거늘, 뭔가 생각이라도 있던 건지, 야마다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이게 먹힐 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

순식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조심스럽게 어떤 한가지 안을 제시한 야마다.

조금은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달리 떠오르는 다른 방도가 없던 아영으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음...잘못되면... 완전 이상한 사람 되어 버릴 수도 있긴 하겠지만...!"

짧은 시간, 거침없는 사기극을 기획한 야마다. 멍청하고 순진한 줄만 알았던 야마다에게 이런 잔꾀가 있을 줄이야,

아영은 나름 대견해하며 말했다.

"이건 또 어떤 만화에서 본 사기질이냐? 그냥 추리소설, 만화 좋아한다 했던 건 뻥 같고... 이렇게 순식간에 뭐 기획해 내는 거 보면, 너 완전 프로 사기단 아니냐?"

"별거 아냐, 이 정도의 깜찍한 사기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오는 걸 뭐...! 그나저나 이건 아영씨 연기에 달려있다고 봐야돼...!"

"흥, 걱정할 걸 해라. 알았어 그럼."

야마다에게서 전수받은 사기를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멘트를 되뇌어보는 아영.

사회경력 10여년, 서비스 정신 투철한 아영에게 고객응대 톤으로의 목소리 전환은 식은 죽 먹기였다.

"예, 안녕하세요. 수고많으십니다. '책속의 사람' 출판사죠? 여기는 '독서광장' 출판사 입니다."

"예, 그런데요?"

퉁명스럽고 바빠 죽겠다는 투로 아영의 전화를 받은 '책속의 사람' 출판사의 관계자.

혹여나 소속이며, 다른 확인 절차 등을 코치코치 자세하게 물어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성공적인  사기를 치기 위한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예...! 저희 쪽에서 연재하시다가 중단하신 한기태 작가님이라는 분이 계신데요, 지금은 그 쪽에서 연재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누구...아, 한기태 작가님이요? 맞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시죠?"

소속 작가의 거론에 약간은 날카로워 진 듯한 저쪽 직원의 말투. 아영은 더 여유로운 척 야마다가 시킨 사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예, 사실 저희 쪽에서 연재하실 때 마무리 지어 주시기로 한 부분이 남았었는데 연재 중단하시고 나서는 통 연락이 안되네요. 연락처도 바뀐 것 같아요."

 "후우, 그 작가님 전에도 그러셨었구나... 쯧, 그 기분 이해합니다. 맨날 원고 마감도 안되서 다른 좋은 아이디어 생겼다면서, 쓰던 소설 마무리도 흐지부지하게 끝내고 그랬는데..."

예상치 못한 출판사 측의 푸념에, 아영은 한기태라는 남자의 캐릭터를 더 알 수 있었다.

'욕심이 많은 건 사실 이네... 시작은 해놓고 끝이 흐지부지하다는 건 끈기가 부족하다는 걸 테고...'

"예...뭐...! 저희도 애 많이 먹었었죠. 그래서 말인데, 혹시 기태 작가님 연락처 좀 알려 주실 수 있을 까요? 바뀐 건 지 연락이 통 안되네요..."

전혀 초조하지 않은 척 여유를 부려보는 아영에게 저쪽 직원은 이미 홀딱 속아 넘어간 듯,

 "음...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사정 이해하니까 알려 드리죠 뭐... 원고 마무리로 부탁드릴 일 있다고 하시지만, 저희 쪽에도 연재 중이시니 너무 부담은 주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본의 아니게 서로 공감어린 험담을 주고 받으며 본적도 없는 '한기태'라는 작가를 바보로 만들어  종료된 1차 사기극.

'무책임한 작가 씹기'에 무한 공감대를 나눈 덕이었는지, 기태가 연재 중인 출판사 측에서는 별다른 의심없이 기태의 연락처를 넘겨 주었다.

아영은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자신의 원수 같은 녀석을 찾아준 은인이자 친구, 세현에 대한 답례랄까. 세현으로선 가장 즐거워야 할 시기인데, 이토록 큰 시련을 맞게 한 괘씸한 존재 같으니...

없어도 될 고통, 그 고통이 시작되게 처음부터 씨를 뿌린 녀석이 있다면, 비교적 쉽게 한국에 오갈 수 있는 자신이 찾아보고 싶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야마다의 추리를 듣자마자 떠오른 세현의 오랜 친구이자 선배같은 존재라던 한기태라는 남자.

여러가지로 의혹이 생기던 차, 반드시 가장 먼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는 인물이었다.

[ 야마다, 미션 성공이다, 굿잡...! ]

[ 아영씨 연기가 통했나 보다. 잘됐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거야? 뭘로 꼬셔서 만날건데? ]

[ 기왕 출판사 사람으로 사기 친 김에 그 쪽으로 나가보려고...!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할테니 나중에 연락할께, 수고했어...! 야마다 ]

스파이 작전으로 연락처를 빼내는 데 까지는 성공한 아영.

어디서 나오는 지 모를 의무감으로 한시라도 빨리 진상을 밝혀내고 싶은 아영에게 지체할 여유따윈 없었다.

바로 기태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여보세요?"

 "예, 저...혹시 한기태 작가님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아직 확신하게 제보자란 것이 밝혀지지는 않은 상황이었지만, 뭔가 당당한 목소리.

순간 아영은 복잡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든 뭔가 큰 일을 저지른 후, 생각보다 그 일이 커지고 있다면,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초조함을 느낄만도 한데 기태에게 그런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완전 엉뚱하게 잘못 짚은 걸지도...

"아, 예 저는 노을 출판사 대리 송아연이라고 합니다."

"예? 노을 출판사요?! 거기서 저는...왜...!!?"

거짓 연기를 위해 아영이 진작부터 준비해둔 잘나가는 출판사 정보와 가명.

야마다에게 들은 한기태라는 작가의 정보를 토대로, 아마도 이 사람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법한 국내 출판사를 몇개 추려보았었다.

역시, 출판사 하나 밝힌 단계이거늘, 벌써부터 슬슬 낚여 올라오는 듯한 기태라는 남자.

"예, 저희가 우연한 기회에 한기태 작가님 작품을 접했는 데 말이죠... 느낌이 왠지 괜찮아 같이 한번 뵙고 말씀을 나눠봤으면 하는데요."

이대로만 진행시키면 되겠단 생각에 단도직입적으로 미팅을 제안한 아영.

"네?! 정말입니까?? 그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두 손으로 공손히 모아 받던 기태.

순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의아한 표정을 한 채, 되물었다.

"잠깐만요...제 작품을 보셨다고요? 제 어떤 작품을 어디서 보셨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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