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too Jan 04. 2018

[1987] 묘한 평행이론 속... 명작

역사가 스포

[이게 나라냐] 며...
전 국민들을 광장으로 운집해 사상초유의 비폭력 집회로서 정권교체까지 이끌어냈던 2017년도의 대한민국 국민들.


영화는 명백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질 만한 그 2017년 촛불집회와 이미지가 겹쳐지는 과거 1987년의 민주화 항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자발적인 국민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스스로 쟁취한 민주주의.


면면을 돌이켜 보면 아픈 장면들뿐이라는 한국의 근대사를 견디어 비교적 평화로운 현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청년들은


단지 고대사, 근현대사 등으로 나누는 역사의 카테고리 안에서, 그 절실했던 민주화에의 열망을 책으로만 보고 배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디테일한 영상시각 기술이 가능한 지금에 와서야 생생하게 재연수 있던 이 무지막지한 시기들.


평화나 인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금이건만, 이렇듯, 소위 영화에나 나올 법한 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시기는 실존했었다.




1987년 전두환 군사독재시절 1월, 민주화 운동 중 잡혀 들어와 경찰조사를 받던 스물 두 살의 서울대학생 박종철의 사망과 은폐를 둘러싼 대공수사처 처장, 검사, 교도관, 기자 간의 대응과 뻗어가는 의혹 수사. 그리고 87년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항쟁의 시발점으로 거론되는 그 사건 후 대통령 직선제 변환의 발판이 되었던 이 민주항쟁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을 따라간다.

즉, 정권유지를 위해 억울한 고문치사로 죽어간 젊은이의 사망마저 은폐 당하던 민주열사 [박종철]의 시대에서, 온 국민의 애도로 국민장에 가까운 추모로 이어졌던 민주열사 [이한열]의 시대로 변화해 가는 그 엄혹의 시기 사회상의 변화를 다룬 이야기. 




택시운전사, 26년, 화려한 휴가, 박하사탕, 남영동1985 등 민주 항쟁, 민주화 운동을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두고 극 중 한 인물, 또는 그가 속한 그룹에 감정이입을 시키는 영화는 꽤 많이 존재해왔다.
(물론 당시 집권하고 있는 정권의 영향 등으로 해당 영화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차이가 있었지만...)

그렇지만, 군부정권이라는 넘어서기 힘든 적을 두고, 이렇게 평범한 인물들이 각자 다른 입장에서 자신들이 해 낼 수 있는 능력치 안에서 하나하나 력해 나가는 구조는 흔치않았다.

이것은 혹시 마블 영화와의 평행이론? 

비교 대상이 되기엔 톤 자체가 완전히 달라 이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필자의 눈에 이 영화는 어떤 의미로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마블의 히어로물의 구조와 닮아있는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예고편만 공개되었을 뿐임에도, 순식간에 수 억 뷰를 기록할 만큼 큰 기대치를 안고 있는 영화 [인피니티 워]의 구조가 특히 그러하다.


아직 영화 본편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영화는


마블 스튜디오가 10여년을 그려온 빅픽처를 통해 준비 해 온 [인지도가 쌓인 각 히어로들]이 주거니 받거니 힘을 합쳐 최강 빌런 타노스에 맞서 분투한다는 골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영화 1987.

실사 기반 역사물인 1987은 히어로들의 개별 시리즈를 거쳐 각자의 매력이 합쳐져 만들어질 완성체같은 [인피니티 워]와 정확하게 일맥상통하는 구도를 갖는다.

다만, 마블의 경우 각 히어로들의 매력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관객들이 너도나도 아는 히어로들이 뭉치게 됐을 때의 시너지를 꾀하였다면, 본 영화는 영화 바깥의 배우 인지도를 활용해 그것을 하나로 모은 느낌이랄까.


즉, 배우들의 기존 아우라를 차용해 극중에 다양한 역할로 포진해 놓은 듯 하다.

 

어마어마한 배우들의 대거 기용,  극에서 정말 짧은 순간 카메오로 출연하는 이들 조차 각기 한편의 영화를 짊어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배우들이지만, 이 영화는 단지 그 배우 인지도에 기대어 시나리오에 덩그러니  해놓는 가벼운 선택은 하지 않았다.

마블 영 히어로들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남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지게 된 이들이 우여곡절 끝, [각성]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려 서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1987에서는 그것의 현실판으로 극 중 종사하는 직종과 처해있는 입장이 달라 능력치에 차이를 보이는 인물들이 단 한가지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자신의 위치에서 낼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 메인 빌런 퇴치에 힘을 보탠다.  


인물들이 처음부터 그런 의지를 가졌다기보다 부당한 현실에 차츰 저항을 시작하다가 각성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면에서 전개 또한 비슷하게 느껴진다.

학생은 학생대로, 기자는 기자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검사는 검사대로...


워낙에 유명한 배우들이라 그들이 가진 아우라 때문에 극중에서 맡은 역 보다 더 큰 활약을 기대할 테지만,


영화는 당당하게 관객의 그런 기대를 비틀어, 누가 되었건 딱 주어진 역할까지만 역할하게 할 뿐이다.

혼자서는 어림 없을 것 같은 일들이 합쳐졌을 때에, 큰 힘으로 뭉쳐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실제로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해 역사의 흐름을 바꾼 대한민국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온 정신,


이는 명백히 2017년에도 국민의 손으로 이루어낸 정권교체라는, 결코 달라지지 않은 국민들의 열망을 대변한다.



초입에 언급했듯, 영화 1987은 단지 민주화 항쟁의 시기라는 상황을 배경으로 두고 몇몇의 인물의 눈에서 바라본 시점이 아닌,


그 상황 자체를 주인공으로 둔 듯한 느낌으로, 5공 당시의 권력을 상징하는 절대 악 대공수사처의 박처장(김윤석). 즉, 빌런을 메인으로 둔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중반 이후까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영화에는 악역인 박 처장 이외에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 없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마치 릴레이를 이어가듯,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 그 결과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역량을 채워가고...


그렇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바뀌어도 라고 있는 목표는 하나라는 점에서 전체의 일관성과 몰입도를 유지한다.



이렇게 캐릭터 분배가 잘 된 영화, 있었던가?
[지구를 지켜라] [화이], 단 두 편의 장편영화 연출이지만, 이미 첫 작부터 천재 감독으로 인식되어 한국 영화계의 다크호스로 지목되어 오던 장준환 감독.

이렇게까지 다수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도 그 분배나 흐름이 매끄러울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분명 감독의 역량임에 틀림없다.


재기발랄하며 컬트적 분위기로 흥행과는 무관하게 어마어마한 호평을 받았던 첫 번째 작품을 거쳐 나름 대중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해 절반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화이_괴물을 삼킨 아이].


원래부터 감독이 가지고 있던 스타일인지,

1987은 어찌 보면 감독의 바로 전작 [화이]에서 인물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관계도와 비슷한 구도를 취한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아들처럼, 제자처럼 자신들과 같은 [악인]으로 길러지는 어린 화이를 대하는 각 아버지들의 다른 입장들.


그 가운데에서 각성을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화이.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그렇고 이 감독은  인물들 각 개인의 [입장]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태도는 인물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셈이니, 전체 완성도에 있어 개연성 부분을 특히 신경쓴다는 의미는 아닐까.


결국 1987 역시도 그 환경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입장과 선택이라는 점에서, 각기 다른 입장들이 부딪혔을 때에 일어나는 예측불허의 사건들이 메인테마가 된다.      

  

악역은 악역대로, 선역은 선역대로 자신들의 처한 입장에서 나온, 결코 과하지 않은 선택으로 납득할만한 결정을 내려, 그것들이  가며 이야기는 차츰 축조되어 간다.    



연기, 미장센, 톤... 이것이 영화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김의성, 문성근, 강동원, 여진구, 조우진...



결국 관객이 처음 보고 느끼는 것은 배우요, 그 배우들이 전달하는 연기이다.


메인부터 특별출연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출연진들이 등장하지만, 두시간이 넘도록 누구하나 튀면서 이질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전혀 없다.    

 

영화 안에서 극히 짧은 분으로 주연을 압도할 만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들, 우리는 이들을 씬스틸러라 칭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배우들은 그야말로 극소 분량으로 화 내에서 을 스틸해 대지만, 누가 최고라고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영화에는 연기에 구멍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경제적인 대사와 절제된 감정, 그리고 인물의 감정에 집중시키되 느리지 않은 전개를 우선한 듯한 세밀한 컷 구성 등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극중 상황으로 몰입 간접적으로나마 그 때의 상황을 체험 할 수 있게 해준다.    


감독이 중시하는 개연성의 연장선에서 표현되는 연기때문이라서 일까, 내가 배우다! 하면서 쏟아내는 연기를 뽐내려는 자도, 과한 캐릭터 연기로 눈살을 찌푸릴 만한 캐릭터도 없다.


어느덧 배우들은 그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누군가로 자연스레 녹아있다. 그리고 배우 하나하나의 넘치지 않는 감정선을 컨트롤 하고 있다는 것, 이는 작품 전체를 크게 볼 줄 아는 감독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반증이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오열하는 어머니와 시신을 보내지 못해 끝내 터지고 마는 아버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며 얼굴 가득 울분을 토해내는 삼촌,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정의를 구현해 보려하지만 상부의 압박에 시달리며 고민하는 검사, 세상을 바꾸어 보려 위험을 무릅쓴 대학생, 그래봤자 변하는 것 없다며 뒷 선에 물러서있는 학생...    


[암울한 시기 1987]이라는 주인공을 둘러싸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여러가지 단상.


그리고 그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이들은 억울함과 부당함에 변화를 외치며 하나둘 씩 뭉치기 시작해 결국 자신들이 살고있는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의상, 미장센과 톤, 비쥬얼 묘사 등 연기 외적인 면면을 살펴보아도 꼼꼼하기가 이를  없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만큼, 솟구치는 관객의 감동 역시 자연스러울 수밖에.

만들어진 극보다 실제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속 슬픈 사연들을 보면 더 자연스레 감정이 반응을 일으켜 눈물이 나지 않던가?


그와 비슷하게 그 시대의 실제 단편을 현실감 넘치게 보여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 따를 수 있게 하는 작품.    


극장 안에서 느껴지는 놀라움과 만족감, 그리고 극장 밖에서 시작되는 여운. 이런 작품을 명작이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상황을 겪었던 인물들이 생존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의 과거 사건이었던 만큼,


영화는 감동 이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무언가 말해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심한듯, 묵직한 메세지를 던져주는 영화1987.

부디 많은 관객들이 필자가 느꼈던 감정들에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과 함께] 고퀄리티로 기획된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