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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Jan 09. 2018

우연히, 그곳에서...<86화>

[ 제86화 _ 연기도 구린 게, 애드립 치지마, 멍청아!! ]

“일본 프로젝트에 담당자 분께서 여기로 같이 오시기로 하셨는데요. 조금 늦으시네요.”

“아, 누구... 현지인...이 여기 오십니까?”

“예, 일본분이십니다. 올 때가 됐는데... 아, 저기 오시네요...! 스즈키상!! 여기예요!"

“아, 아름상!”

아영과 기태의 테이블로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야마다.

일본인 가운데에서도 더 일본인 같은, 한국에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외모가 이럴 때에는 빛을 발한 건지, 

기태는 야마다의 등장과 동시에 일본 현지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출판사의 일본 진출 프로젝트라 그럴듯한 사기를 기획한 아영과 야마다. 

혹시 모를 의심에 대비해 콩트까지 준비해 둔  두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스즈키 신이치라고 하무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작가 한기태라고 합니다.”

세현의 이야기를 캐묻는 과정에서는 조금 의심쩍기도 했지만, 당당한 커리어 우먼 외모의 아영의 등장부터, 거침없는 그녀의 진행솜씨.

프로젝트의 소개와 더불어 나타난 일본 현지의 스탭이라는 자. 

빈 틈 없이 구성된 그들의 사기행각에 기태로서는 더 의심할 여지가 없어지는 듯 했다.

“기태 작가님 혹시 일본말 좀 하십니까?”

“예? 일본말이요? 아니오. 전혀 모릅니다. 그럼 소통이...어려운 상황인가요?”

“아, 전혀 아닙니다. 제가 통역을 해드리면 되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기태의 일본어 실력을 일단 확인 후, 아영은 겉으로는 비즈니스 상대를 대하는 표정으로 야마다와 일본어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야, 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시간 끄느라 혼났네!!”

“처음 오는 한국인데, 길을 잘 좀 알려주지... 한참 헤맸다고...!!"

“나도 처음 오는 동네인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아무튼, 이 놈 대충 파악됐어.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될 것 같아.”

“어 진짜? 얘기 많이 했나보네...”

‘이 사람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하며 멍한 표정으로 대화 중인 아영과 야마다를 번갈아 쳐다보던 기태.

아영은 뭔가 통역(?)연기가 필요한 타이밍 같아 기태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스즈키씨한테 지금까지 저희가 얘기했던 내용 전달 중이었어요. 미리 말씀드려놓아 기태 작가님 작품 이 분도 알고 계신 상태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저 분은 그럼 일본 쪽의 어디 다른 출판사에 계신 분인가요?”

“예, 이제까지는 그랬죠... 이제는 저희 출판사 소속으로 일본 진출의 현지 코디네이터를 해주실 분입니다.”

“한기태 작가상. 자...작품 자...잘 보아씁니다...”

어설픈 한국말로 아영과 기태의 대화에 끼어들어 한 마디를 한 야마다.

아영은 살짝 기태의 눈치를 보며 일본말로 야마다를 나무랐다.

“애드립 치지 마! 멍청아! 내가 이 사람 소설을 그냥 너한테 얘기해 줬다고만 했는데 직접 본 것처럼 말하면 어떻게 해, 또라이야!”

“아, 그...그래? 으...”

내용과는 상관없이 야마다의 어설픈 한국말이 재미있었는지 기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야마다에게 말했다.

“아...하하, 한국말 잘 하시네요. 제 작품 괜찮았나요? 감사합니다...!!”

“예... 하하, 저희 출판사에서 기태 작가님 작품을 번역까지 해서 이 분께 보여준 건 아니지만, 꽤 상세하게 전달해, 잘 알고 계신 건 사실입니다.”

“감사한 일이네요, 제 작품을 일본분이 다 아신다고 생각하니까...!”

“예, 일단 앞으로 계속 연락드리면서 프로젝트는 진행시켜 나갈 생각이고요. 오늘은 저도 그렇고 스즈키씨도 그렇고 그저 소개 차 인사드리는 자리 정도로 했으면 합니다.”

기태가 자기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는 지금 단계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을 인지한 아영은 정확하게 선을 긋기 시작했다.

“아, 예...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달리 뭐 준비할 건 따로 있을까요?”

“음... 일단 조만간 작가님 기존 작품의 원고 원본파일에 대한 요청을 드릴 예정이니, 기존 작품을 조금 손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해마다 트렌드라는 게 있게 마련이니, 문체라던가 표현방식이라던가...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제의 설정까지 완벽한 마무리로 미팅을 마친 아영과 야마다. 

신이 나서 그 자리의 차 값까지 모두 계산하려는 기태를 향해 아영이 말했다.

“한 작가님,  저희는 여기 남아 저희끼리 회의를 좀 더 하고자 하니 먼저 들어가십시오. 오늘 만나 뵈어 반가웠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흥행 작가 대우에 머리를 조아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기태. 

너무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 어린아이 같이 구는 그 모습에 한편으론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당연히도 아영에겐 세현이 먼저였다.

기태가 나가고 난 후, 아영과 야마다는 그 자리에서 본격적인 작전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현이 이야기가 나올 때 분명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분노를 못 삭이는 모양이었어. 나야 뻔히 알고서 물어봤던 건데, 관계를 물었더니 예민하게 그런 거 왜 묻냐고 쏘아 붙이는 거 하며...”

“그래도...혹시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아니라면...”

“이제 와서 왜 뒷걸음질이야? 작전 기획자는 야마다 너잖아! 후속 조치도 한번 생각해봐!”

“음...정말로 이렇게 할 줄은 나도 몰랐지... 앞으로도 뭐, 아영씨 하기에 달린 거지 뭐...”

“하기에 달렸다니?”

야마다는 자세를 고쳐 잡은 후, 다시 냉정한 표정으로 아영에게 이야기 했다.

“저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세울 작정인건지,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끝을 알아야 작전을 세우지... 

한 번은 속였지만 또 너무 길게 이어지면 금방 눈치 채 버릴지 몰라. 내 생각엔 두 번 이상은 힘들어. 이런 식으론...”

“그래? 두 번이 힘들면... 다음 번엔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소린데...”

이런 저런 가능성을 열어두며 작전회의를 계속하는 두 사람. 회의는 꽤나 길게 이어져 갔다.




***




한국을 떠나 온지 어언 3년여. 

그 기간 안에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는 한국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세현은 여러 가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에 시달렸다.

편찮으시다는 할머니를 찾아 무작정 한국행을 결정했지만, 중요한 시기에 홀로 남아있을 해인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앙숙으로 시작된 인연이었을 지언 정, 동양인의 방문이 그다지 많지 않은 프랑스 아를 지역을 선택해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두 사람은 함께해 왔었기에,
 

갑작스레 홀로 남는 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지도 못할 외로움일지 모른다.

더군다나 아직 작업실 거취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해인의 곁에는 늑대 같은 카와모토 무리들이 득시글대고 있을 텐데...

세현은 한국으로 향하는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내내, 아무리 생각해도 풀려지지 않을 문제들과 씨름하며 눈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 welcome to korea ] 

공항의 전광판과 함께 드디어 도착한 한국.
계획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귀국이었기에 아무런 예고도 되지 않았건만 혹시 누구라도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방송 인터뷰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이 시기 만큼은 유명인사가 되어있음이 명백할 것.

연예인이나 누구 다른 유명인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지만, 

귀국 플랫폼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을 신경 쓰며 세현은 외투를 코밑까지 올려 몰래 빠져나오다 시피 공항을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 중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무심코 말을 걸어 대기도 했다.

귀에는 헤드폰을 낀 채, 알아보는 시선을 피해 무리를 거슬러 나가 서둘러 택시를 잡아 탄 세현.

“한세 병원 가주세요.”

택시는 한 시간여를 하염없이 달려 한 종합병원에 다다랐다.

세현은 아저씨에게 들은 병동의 병실을 찾아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 두근 두근... ]

할머니가 입원해 계시다는 병실에 가까워 올수록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한 심장소리.

무심하게, 내 일만을 위해 나가 있었건만, 할머니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 끼이이익... ]

하필이면 긴 복도의 끝에 자리한 병실. 
문에 붙은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하고 세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환자의 침대에는 얇은 이불만이 흐트러져 있고 환자가 보이지 않았다. 작은 병실 안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

“세...현이...??!!”

“아주머니...”

어린 나이부터 양쪽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아오던 세현. 

집에는 세현과 할머니 외에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적부터 집안에서 일을 해주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20년이 넘어가는 세월동안 같은 집에서 살아왔던, 세현에게는 거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

지금은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아이구... 우리 세현이 왔구나...!! 아버지 친구 분한테 엊그제 얘기했는데 얘기 듣자마자 달려 온 거야?”

“당연히 와야죠, 아주머니... 잘 계셨어요? 너무 오랜만이네요...”

아주머니는 마치 전쟁에서 돌아온 아들을 만난 듯 세현의 손을 꼭 부여잡고는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자기 길 찾아 떠난 세현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에 따라 전하지 못했던 일 등... 그 간의 일들을 차근차근 이야기 해 주었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응, 검사 받으러 잠깐 내려가셨어. 수술 받은 지 이제 좀 지나서 혼자서 걸어 다녀도 된다고 해서 혼자 다녀 오시겠데서...”

[ 끼이이익... ]

링겔주사를 꽂은 거치대를 지지삼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병실로 들어오는... 세현의 할머니. 

생각해보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4년여의 세월 동안, 너무도 마르고 노쇠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너무 작은 체구라 맞는 사이즈의 병원복도 없었는지 남아도는 병원 복을 꽁꽁 싸매 입고 힘없이 걸어 들어오는 할머니의 모습에 세현은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할머니...”

“음?? 세현이?? 세현이야??!!”

세현은 할머니에게 달려가 부둥켜안고는 원망스러운 듯 울부짖었다.

“이렇게 아프면 연락을 하지!! 왜 숨기고 있었어요!!? 이러다 큰일이라도 났으면 어떻게 하려고!!??”

할머니는 몇 년 만에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듯 울어대는 손자의 모습에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인석아! 할미 뭐 죽을 병 걸렸다디? 뭐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불러 제끼면 너 어디 멀리 나가 있을 수나 있겠니? 

어려운 결정하고 공부하러 나간 손주 뭐한다고 불러들여!?  아, 그 놈 참... 얘기하지 말랬더니..."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기력을 찾은 듯한 할머니의 음성에 세현은 일단 마음을 놓았다.

“좀 전에 아주머니한테...얘기는 들었어요... 위 수술.. 하셨다면서요... 왜 이렇게 말랐어...할머니...”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골골하는 거지 뭐, 이렇게 직접 만나 얼굴 보며 축하를 해주고 싶긴 했는데, 일단 우리 손자 축하한다. 

썩을 놈의 네 애비랑 같은 방향으로 나간 데서 그 땐 걱정이 되긴 했었는데... 네가 어렸을 땐 네 아비 참 싫어했잖니...” 

“에이...대단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할머니도 알겠지만 지금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난리도 아닌 걸 뭐...”

공모전 발표 이후 방송에 오르내리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손자의 모습에 걱정이 많았다던 할머니. 

할머니는 좋은 일임에도 이래저래 마음고생 많았을 손자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세현은 생각보다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은 할머니의 상태를 다행으로 여기며, 간병을 자처했다. 

긴 세월을 어린 손자와 같이 살아왔던 만큼, 젊은 감각인 할머니와 4년의 공백 안에서 자신이 겪어왔던 무수한 사건들에 대해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의 친구인 레스토랑 사장 아저씨와의 인연, 전혀 모르고 있던 부모님들의 이야기 등, 

간만에 재회한 할머니와 손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제 소설 봤어요?”

“그럼 봤지...!! 당당하게 세계 공모전에서 수상한 자랑스런 손주놈 작품인데 당연히 봐야지!! 아주머니가 보는 방법 알려줘서 봤지...!! 글도 좋고 그림도 좋더구나...!! 근데 그 그림은 누가 그린거야?”

“아, 하하.. 그거요, 뭐 순서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제 여자 친구랑 같이 해서 냈었던 작품이에요. 지금 저 있는 데에서 만난 친구인데, 그림 그리는 친구거든요.”

“그래? 이 놈, 연락할 때는 그런 얘기 통 안하더니...”

“헤헤...”

반가움에 잠을 청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는 세현과 할머니. 

분명 늦은 밤이거늘, 병실의 바깥쪽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계신 병실은 복도의 끝에 있는 장소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리조차 크게 들리지 않는 곳인데, 점점 더 가깝게 들려오는 병실 밖의 소음.

“피곤하시겠다. 할머니. 저 여기 있을 테니까 주무세요.”

세현은 병실의 불을 끄고 할머니에게 잠을 청한 뒤 호기심에 복도로 바로 이어지는 병실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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