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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Jan 12. 2018

우연히, 그곳에서...<87화>

[ 제87화 _ 더...더 건드리면 나 못 참아...!! ]


병실 밖 웅성대는 소리에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 세현.


복도에는 카메라를 든 대여섯 명의 기자들 무리가 성큼 성큼 세현의 할머니 병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

 

"어이, 어이!!! 찾았다!  임세현이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눈앞의 대상이 세현 본인임을 확인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드는 언론사의 기자들...


정말 급하게 서둘러 귀국해, 아무도 알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늘, 기자들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인지...


"이러시면 안돼요! 환자분들 쉬실 시간에 뭐하시는 거예요!?"


병원의 간호사는 그 기자들 뒤를 쫓으며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 임세현씨 맞으시죠? xx일보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 부탁합니다!!"


소란을 피워대는 소리에 혹여나 조금 전 잠이 든 할머니가 깨실까 걱정한 세현은 조용히 복도 쪽으로 나와 병실 문을 닫았다.


[ 찰칵, 찰칵 ]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부산을 떠는 기자들을 저지하려 세현도 나지막이 말했다.


"밤 시간에 병원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환자분들 주무시는데 조용히들 좀 해 주세요.”


세현은 일부러 할머니의 병실에서 멀어지며 기자들을 병원 휴게실 방향으로 유도했다.


“무슨 인터뷰를 하신다는 거죠? 저는 방송에 나온 기자회견 때 입장 다 말씀드렸었는데...”


“말씀하신 거 외에도 여러 의혹들이 있습니다. 인터뷰 응해주시죠!!”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황.


아마도 이들은 병원으로 들이닥치려 한 순간부터 세현의 이런 무방비 상태를 급습해야 한다고 계획을 했었는지 모른다.


사면초가의 상황.

여기서 인터뷰를 무작정 피해버리면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켜 질 것이 뻔해보였다.


“임형우씨 타계 후에 임세현씨 가족과 출판사의 연계에 대해 말들이 많은 데요, 역시 출판사 입장에서는 돌아가신 후에도 임형우씨 덕을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그후로도 임세현씨를 비롯한 남은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어떤 교류가 이어졌다고 보는데요...!"


아직 확실하게 인터뷰에 응하겠다 얘기도 하지 않았건만,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는 질문들.


세현은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초기에 법적인 절차에 따라 고인의 저작권이라 던가, 수익 부분에서의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 후로는 어떤 교류도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학생 신분이기도 했습니다만...”


“임세현씨의 공모전 글이 지금 이 효과로 인해

2억 뷰를 달성했다고 하는데요, 이 또한 출판사 측의 기획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만.”


공식으로 기자회견을 했을 때보다도 훨씬 어이없는 억측이 난무하는 인터뷰.


세현은 답답함에 숨이 막혀버릴 지경이었다.

슬슬 단전으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꾹꾹 눌러 참는 중.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이런 의혹 때문에 출판사 인지도 자체가 떨어졌는데, 그걸 감수하고 저를 밀어주려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임형우 작가한테 받은 은혜를 보답하려고?!”


답답함에 다소 격앙된 표현으로 기자들에게 재 질문을 했지만 기자들은 대답 대신, 또다른 새로운 억측에서 오는 질문을 쏟아냈다.


“아까 출판사와 수익 분배 결정 얘기가 오갔을 때에 임세현씨는 학생이라고 하셨었죠? 그럼 그때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들으셨던 건 할머님 아닙니까? 할머님께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뭐가... 알고 싶으신 겁니까?”


아파서 입원해 계신 할머니를 의심하고, 그런 상황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세현의 분노게이지는 슬슬 한계점에 도달했다.


“임세현씨는 어리니까 모르셨을 수 있겠지만 할머님이라면 혹시 출판사에서 주려고 하는 혜택을 받으셨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뒤늦게 작가 지망하는 손자를 부탁했다던가...”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눈을 감아 보이는 시야의 것들을 일단 제지하고 어금니가 부서질 듯 눌러가며 참아보려 했건만...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손 안쪽으로 상처가 날 정도로 주먹은 단단해지고 있었다.


인터뷰고 뭐고, 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기자 놈들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자들은 분노에 찬 세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분주하게 떠들어댔고,


세현은 폭풍전야와도 같이 음침한 기운을 품은 채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 임씨, 참아!! 감정적으로 나가지 마! 진정해... 이래선 좋을 게 없어...! ]  


순간, 기자들의 소란을 단숨에 뚫고 머릿속 어딘 가로부터 들려온 목소리.


언젠가 흥분했을 때에 자신을 말려주던 해인의 목소리였다.


세현은 기자들에게 다가서려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던 찰나.


“이것 봐요, 기자님들!!”


뒤편의, 휴게실의 문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뒤쪽을 돌아본 기자들.


“하...할머니...!”


휴게실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은 링겔 거치대를 들고 걸어 나온 할머니였다.


“내가, 세현이 할미되는 사람이요!!”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은 우르르 몰려 한꺼번에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이 특종에 눈이 먼 기자들은 눈에 뵈는 것도 없는 지, 힘이 빠질대로 빠진 노인 환자의 모습인 할머니에게 거침없이 들이대려 하였다.


혹시나 할머니에게 해라도 끼칠 새랴, 세현은 기자들보다 먼저 할머니 가까이로 이동해 앞을 막고 보호했다.


“듣자하니 이 양반들 정말 소설들을 쓰고 앉았네. 내 손주가 모르는 거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나한테 물어봐요!!”


“할머니... 안 그러셔도...”


“아니다, 이럴 때는 당당하게 얘기를 해둬야 다른 얘기가 안 나오는 거야. 세현아.”


할머니는 침착하게 휴게실의 한 좌석으로 이동해 기자들의 질문에 대응했다.


세현으로서는 처음 보는 할머니의 노련한 모습.




이 정도면 됐다고 여긴 건지, 그로부터 한 시간여나 질문공세가 이어지고 나서야 끝을 맺은 그들의 작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남기긴 했지만, 세현으로서는 면상을 갈기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작자들이었다.


“후우...”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 생각지도 않은 일을 치러 무척이나 지쳐 보이는 할머니.


세현은 할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이야기 했다.


“죄송해요, 할머니... 저 때문에... 몇 년 만에 할머니 얼굴 보러 와서는 또 폐만 끼치고...”


“가족끼리 못하는 소리가 없네...! 인석아! 네 아버지 때 많이 겪어봐서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게 니 애비 싫어하더니만 어떻게 이런 거 까지 꼭 닮니, 그래...”


“아버지 때요? 아버지 때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지금처럼 기자들 몰려오고 그랬었어요?”


“그래...! 시달리다, 시달리다 못해 어디 피해있는 통에 내가 다 감당했잖니... 큰 유명세를 타게 되면 일거수일투족이 다 세상 사람들의 가벼운 관심사가 되는 거야... 그 때는 표절 시비인가가 붙어서 또 시끌시끌했었지... 아무 근거도 없는 낭설이었어.”


“후... 이해가 안돼요... 좋은 작품 만들어서 많은 사람 즐겁게 해주는 게 무슨 죄에요? 이런 후폭풍 감당할 수 없으면 어디 성공할 수도 없는 건가?!”


“지금은, 네 아버지 때보다 훨씬 더 하잖니... 노력으로 올라갔건, 운으로 올라갔건, 남들보다 좀 앞서 나간다 싶으면 그만큼 주변 눈치를 봐야하는 게 요즘 세상이야.”


기자들이 떠난 휴게실에서 예상치 못하게 더 많은 시간을 대화하게 된 세현과 할머니.


할머니는 가만히 세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세현아, 너 아직 해야 할 일 많이 남아있는 거 맞지? 프랑스에서...”


“네??”


“너 작가한다고 나갈 때부터 내가 아무 말도 안했던 거 기억나지? 한다면 하는 그 핏줄 어디 가나 싶어서... 그리고 이렇게 점점 커가는 거 보면 참 대견해... 할머니 괜찮으니까, 얼른 다시 가 봐...”


“할머니, 그래도 할머니가...”


“할미 괜찮다니까! 이제 수술도 마치고 회복되어가고 있잖아! 아까 너 깽깽댈 때 내가 기자들 물리치는 거 못 봤니? 쌩쌩하다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오긴 했지만,


오자마자부터 이렇게 기자들에게 둘러싸이는 스트레스나 안겨주었다고 생각하니 세현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언제까지가 되었건 자신이 여기에 남아있는 한, 한두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이 해프닝에


회복이 필요한 할머니에게는 더 폐만 끼치는 꼴이었다.


세현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풀이 죽은 얼굴을 한 채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


“너 돌아가거든 필립이 놈한테 다음 번에 보면

죽을 각오하라고 전해라!!”


“필립이요? 필립이가 누구에요?”


“누군 누구야! 너 프랑스에서 일한다는 가게 사장 놈이지!! 그 놈 내가 그렇게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건만 생긴 거 같잖게 입은 싸가지고... 하여튼 아줌마도 그렇고 입들 너무 싸...!!”


필립...! 아버지 친구이자 가게 사장 아저씨의 이름이 필립인 모양이었다.


가만히 가게 아저씨의 외모를 떠올려보던 세현은 전혀 매칭 되지 않는 이름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할머니와 다시 병실로 돌아오며 세현은 할머니의 말을 진지하게 다시 되새겨 보았다.


손자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배려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됐건 이곳에 있어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다시 한 번 책망했다.


[ 다행이다, 임씨 할머니 많이 편찮으신 거 아니라서... ]


일단 떠오르는 고민을 해인에게 연락했던 세현. 해인 역시도 세현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답장은 바로 도착했다.


[ 그것도 그러네... 임씨 거기 있으면 기자들이 또 몰려올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폐 끼치는 거 맞네... ]


[ 그렇지... 근데 또 아픈 할머니 놔두고 어떻게 또 싹 내 일보러 돌아가자니... 또 좀... 안그래도 늦게 알게 된 것도 죄송스런 마당에... ]


[ 그건 그렇고 참, 할머님도 보통 분 아니신 모양이다... 그래도 몇 년 만에 손자 보면 반가워서라도 더 있으라고 하고 싶으실 텐데...


역시 2대에 걸친 작가가 태어난 배경에는 저런 강인한 내조가 있었다는 건가... ]


[ 그렇지, 이제 해인이도 슬슬 작가 옆에서

내조의 여왕 자리를 물려 받으셔야지... ]


[ 뭐래! 쳇...! ]


그나마 정신을 좀 차릴 여유를 가지게 된 세현은 그제서야 혼자 남은 해인의 안부를 물었다.


[ 미안,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묻네... 별 일 없니? ]


[ 아, 참 나 이 오지랖 양반이...! 하루 만에 무슨 별 일이 생기니!! 얼른 할머니 옆에 가 병간호나 하세요!! 임세현씨! ]





시차를 따져보니 프랑스 아를은 지금 낮 시간.

해인은 작업실에 혼자 나와 그림을 준비 중이었다.


기자회견을 즈음해 카와모토의 작업실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화실을 옮기려던 해인의 계획은 기약 없이 늦춰져 가는 듯 했다.


화실에서야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 외적인 시간엔 이래저래 정신없는 일들로 다른 그림 단체를 찾아 볼 기회가 나지 않았던 것.


더 늦어지면 곤란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게 되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독립을 결심한 해인.


해인은 계획을 실행하고자 카와모토에게 말할 구실을 차츰 생각해야 했다.


'뭐라고 얘기하고 나오지... 공동 소속 화가로 들어간지 얼마 안 되긴 했어도... 아영이 일까지 알게 된 이상 나도 얼른 내 길 찾아 나와야지...'


실제로, 아영과 카와모토의 관계를 알게 된

이 후부터 작업실을 나올 생각으로 조금씩 자신의 소지품들을 정리 해왔던 해인.


출품했던 그림 이 외에 자잘한 스케치 그림이나 연습용 완성작들까지 거의 집으로 옮겨다 놓아 이제 작업실을 나오고자 한다면 거의 몸만 나오면 되는 상황이었다.


마침 작업실에 혼자있던 해인은 혹시 자신과 관련된 자료들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 지 확인하려 사무실 컴퓨터를 뒤져보았다.


처음에는 사무 일로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했던 해인.


정산이며 연락망이며 시스템마저도 모두 새롭게 정비했었던 기록이 있기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컴퓨터를 살펴볼 수 있었다.


컴퓨터 안의 자료도 살펴보고 화가들이 자주 들르던 싸이트 곳곳을 확인하며, 한동안 건드리지 않던 사무 일을 점검해보던 해인.


이곳에서 반년 가까이 일했었고 이곳 화가들의 컴퓨터 이용 빈도도 파악하고 있기에,


어지간해선 새롭게 추가되는 뭔가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무실 컴퓨터 인터넷 창에 처음 보는 사이트의 주소가 방문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응? 여긴 뭐야? 여기 사람들, 들어가서 참고하는 사이트 몇 개 뻔히 정해져 있었는데...?’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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