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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Jan 23. 2018

우연히, 그곳에서...<90화>

[ 제90화 _ 애타게 찾았어요, 당신을...!! ]


“근데 물론 세현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도 죄다 남정네들 밖에 없는데 괜찮겠어? 예쁘고 능력 좋은 여직원 들어온다는데, 우리야 뭐 나쁠 거 있겠냐만은...!”

“괜찮고 말고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작업실에 일자리까지 주시고... 아! 일하고 싶다는 건 작업실 사용하게 해주신 거 감사해서 도와드리고 싶은 거예요, 급여 이런 거 바라지 않습니다...!!”

"음? 일하면 보수는 있어야지, 무슨 소리야..!"

해인은 아저씨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렇게 멋진 작업실 사용하게 해주시잖아요...! 따로 직원 구인하시던 것도 아닐 텐데..."

아저씨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해인을 바라보았다.

"허, 나 참...! 해인양 이런 사정 알았으면 진작에 도와줬을 걸 그랬네...! 세현이도 자세하게 얘기는 안하니 몰랐지..."

"아니에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저...괜찮으면 지금 바로 제가 여기 청소해도 될까요?! 얼른 정리된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아직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곧 깨끗하게 정리되어 작업실로 쓰일 이 공간이 해인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서두르는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발 앞에 놓인 청소 도구를 바로 집어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청소를 시작한 해인.

"푸우...! 콜록! 콜록!!"

몇 십년 된 먼지라더니 역시 한번 쓸어 담자 먼지 입자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저씨 역시도 손 부채질을 해대며 먼지를 의식했다.

"어이쿠...! 해인양, 천천히 해, 천천히...! 여기 먼지 우습게보지 말라고...!! 말했잖아, 거의 해인양 나이 정도 된 애들이라고...!"

"예, 헤헤...! 아, 괜찮습니다...!! 먼지 나니까 나가 계세요. 제가 다 할게요...!!"

"이걸 어떻게 혼자 다 해...!? 내가 좀..."

"아니에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레스토랑 한창 바쁠 때인데 장사 하셔야죠!! 저 때문에 시간도 많이 뺏기셨는데...!!"

청소를 도와주겠다는 아저씨를 등떠밀듯 내보낸 후 해인은 들뜬 마음으로 이 장소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림 작업실로 사용했었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 오래도록 방치되어, 그야말로 털어져 나오는 먼지만으로도 쓰레받이가 가득 찰 정도로 낡디 낡은 창고.

설마 세현이 일하는 레스토랑 안에 이런 공간이 있었는 지도, 이렇게 사용할 수 있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묘하게 끌리는 기분이었다.

당장 이곳을 혼자 사용하게 된다면 카와모토의 작업실을 사용할 때처럼 다른 화가들의 조언이나 커뮤니케이션은 포기해야 되는 부분이었지만,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그 작업실에서의 대화는 줄어들 대로 줄어든 상태이기도 했다.

혼자서, 뭔가 사색에 잠기며 그림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늘 꿈꾸어 오던 차에 이런 공간이라니...

그저 '그림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기뻐 별 생각 없이 청소를 이어가던 해인은 문득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자신의 질문 내용이 떠올랐다.

'작업실 사용하시던 분하고 잘 아세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상황에, 만일 이 작업실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사용 허락을 맡는 연락이라도 오고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오래도록 비워두었다니 뭔가 얘기 못할 만한 사정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우와!! 여기 사용하던 분이 그린 그림인가 보다...!!"

구석구석 창고 청소를 하던 해인은 그림이 들어갈 만한 큰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림들을 발견했다.

"응!!!??"

무수히 쌓인 그림들을 한장 한장 살펴보며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진 해인.

"이...이건..."

해인은 정신이 빠져버린 모습으로 그림 몇장을 들고는 레스토랑 홀에 나가있는 아저씨에게 터덜터덜 걸어갔다.

“저... 아저씨... !!”

“음? 어 해인양, 왜 뭣 좀 도와줄까?? 역시 혼자 하긴 힘들지?"

“저...이거...말인데요...”

레스토랑 직원들을 진두지휘하며 다시 일에 복귀해 있던 아저씨에게 해인은 자신이 들고 온 그림 두 점을 보여 주었다. 

아저씨는 해인이 내민 그림을 가볍게 훑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 했다.

“아, 이거 뭐야...! 이게 거기 있었나?! 다 정리 한 줄 알았는데...!!”

“여기서 그림 그리시던 분이... 혹시 그림 카피하신 건가요? 제가...이 그림 너무 좋아해서 맨날 보고 자랐어서 엄청 잘 아는데요...이거 너무 똑같이 잘 그렸네요...”

아저씨는 반쯤 감긴 눈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창고 안의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뽀얀 먼지가 얹어진 그림들. 어떤 사연이 있기라도 한 건지, 아저씨는 한숨을 푹 내리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원본인데.”

“......??”

해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림의 이쪽저쪽을 다시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해인이 청소 중 발견한, 구석쯤에 방치되어 있던 그림들.  

그것은 해인이 그토록 동경하며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던 ‘그들만의 세상’의 삽화로 들어갔던 그림들이었다. 

원본을 따라 카피해 보는 작업쯤이야 본인 역시도 많이 해왔었는데...

“워...원본이라뇨...지...지금 이게 그들만의 세상 삽화의 원본이라는 말씀이세요!? 그...그럼 저 작업실 쓰시던 분이....???”

아저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가에는 미세한 경련까지도 일어가며 해인이 재차 물었다.

“여기... 아를에서 계셨던... 일러스트레이터 이필립씨... 라는 말인가...요?!!”

“응? 해인양 어떻게 잘 알고 있네? 분명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할 때는 가명 썼었는데... 본명을 어떻게 알고 있지??”

“저, 그 분 어마어마한 팬이예요!! 전에 말씀 드렸었던 것 같은데, 제가 그림 그리겠다고 결심하게 된게 다 이필립씨 때문이었거든요!! ‘그들만의 세상’ 삽화 이후론 잘 안보이시지만...그럼, 혹시 그 분하고 아시는 사이세요??!!"




***




“네?!! 아저씨가요??”

“응, 그래...! 너 1년이나 거기에 같이 있었으면서 그 놈이 그런 얘기 너한테 안 해주디??”
 
세현이 돌아와 있는 한국,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

기자들과의 한 차례 실랑이를 마친 후 병실의 어둠 속에서 할머니와 세현은 도란도란 대화가 오고가던 중이었다. 

“아니요... 전혀 말씀 안하시던걸요...!! 왜... 그러셨을까요...”

“흠, 그 녀석, 참 생긴 건 도적 같이 생겼어도 참 의리는 있는 녀석이었어. 네 아버지랑도 맨날 티격대고 그러긴 했었지만 말야. 결국 같이 작업을 한 셈이니...!”

할머니와 세현은 아를의 레스토랑 사장 아저씨의 얘기에 한창이었다. 

“전혀 다른 일 하고 계셔서 저로선 상상도 못했죠... 아저씨가 아버지 소설의 삽화를 그리신 분이었다니요...!!”

“흥 그러게 말야...! 멍청한 놈이, 하던 거 계속 했으면 더 유명해 져 있을 수도 있었는데, 네 아버지 그렇게 되고 난 후론 완전 붓을 놔버렸다고 하더라... 내가 가끔 전화해서 잔소리를 그렇게 해도 말을 들어 쳐 먹어야 말이지!!”

충격적인 사실.
같이 지낸 시간 동안 전혀 아무것도 몰랐건만,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보니 공모전 수상작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나왔던 아저씨의 반응이 떠올랐다.

'이 바닥에서 20년인데 나도 그림 취향이 있다고!!'

라며 장난 같이 얘기했을 때는 그저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였었는데, 

취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누군가의 취향을 만들어준 사람 이었다니...

그곳의 생활 전반으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던 아저씨는 아무래도 그 사실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럼 아저씨가 그림 관두신 게 아버지 때문이라는 건가요?"

"음... 둘이서 무슨 얘기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충격 때문에 그런 건진 몰라도... 에휴... 간 놈은 간 놈이고 남은 사람은 살 길 찾아야지, 참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유쾌한 기운까지도 전달받았었던 가게 아저씨에게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아버지의 소설과 함께 온 세상을 들썩였을 일러스트. 아직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현재 자신과 해인의 관계와도 같았다.

"아...! 해인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가족과 주변상황 때문에 전념할 수 없었다던 그림, 그리고 이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던 동기를 누차 밝혀 왔던 해인.

그들만의 세상 소설 속 삽화.

해인이 동경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바로 가게 아저씨였다는 사실은 세현에게 어마어마한 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자신보다도 해인이 알면 얼마나 놀랄 지가 더 알고 싶었다.

해인에게 바로 이 사실을 전달할 지 고민하던 세현에게 할머니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세현아, 그건 그렇고... 할미 말 듣고, 얼른 돌아가...! 너 아직 거기서 할 일이 남아 있댔잖니.... 가서 필립이 놈한테 확실히 전하고...!"

"예? 아..."

해인에게까지 사정을 이야기하며 고민했던 당장 자신의 거취 문제.
 
실은 병원을 떠들썩하게 왔다 간 기자들 이후로도 이 사람 저 사람 알아보는 통에 곤혹을 치르던 차였다. 

"너 거기 있다던 여자친구도 얼른 보고 싶을 거 아니야?  내일 정도해서 얼른 돌아 가! 어떤 아가씨인지 소개는 나중에 받을 테니까..."

사실 세현은 해인이 걱정 되기도 했다. 시차를 고려해도 몇 시간 전에 보냈었던 메세지를 아직까지도 확인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

그 와중에 지금의 이 충격적인 사실을 해인이 알게 되기라도 한다면...!

세현은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아를로 돌아가는 것을 결정했다. 

"할머니...몇년 만이라고 와서 도움되는 것 없이 부담만 드리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해요..."

"인석아!! 너 언제까지 할미한테 사과만 할래?! 내가 김비서 시켜서 너 내일 돌아가는 비행기편 잡아 줄 테니까...! 걱정말고 돌아가!"

"알았어요...! 정말로 일 다 마치고 나서 제대로 할머니 모실께요...!!"



다음날.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인사를 한 후.

단 하루 동안 머물렀지만 다른 부분에서 오는 피로감만 잔뜩 쌓인 채 세현은 다시 아를행 비행기에 올랐다.

뭘 하고 있는 건지 그제까지도 메세지를 보지 않는 해인 탓에 비행기에서도 내내 걱정이었다.

'얘는 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카와모토랑 또 무슨 일 있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초조하게 남는 시간을 때워 보내보려던 세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조금은 잦아든 건가..."

이 전에 비해 빈도수가 줄어든 자신을 향한 음해 기사들. 

사이트에 공개된 자신의 작품을 본듯한 이들의 댓글에서는 옹호의 메세지가 보여지기도 했다.

계속해서 세현은 일러스트에 관한 코멘트는 없는 지, 해인의 소식 역시 같이 찾아 보았다.

이것저것 검색어를 달리해서 알아보던 세현은 해인의 그림이 게시 되어 있는 카와모토의 블로그형 사이트를 찾아냈다.

"어라??! 이건..."

해인에게는 들어본 적이 없는 사이트. 세현은 사이트의 톱화면에 표시된 메세지가 몹시 거슬렸다.

해인 역시도 처음 접하고는 질색을 했었던 

[ 그들만의 세상 공모전 본상 수상작. 일러스트레이터 이해인의 그림 그룹 ]

이라는 문구.

세현은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직 정리 되지도 않은 이 건을 홍보삼아 자신들의 그림 판매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그룹이라니.

더군다나 해인을 무려 메인 타이틀에 세우려 하다니, 이런 식은 해인이 같이 동참했을리는 없을 텐데...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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