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대중문화 상식 테스트 시간...!
영화 내에 산재한 엄청난 정보량에, 영화를 제대로 리뷰하기 위해서라면 주변 지식이나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우선 영화를 보고나온 첫인상부터 이야기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충격이다.
두말 할 필요 없는 거장으로, 레전드 중 레전드로 꼽히는 스필버그 감독은 도저히 끝을 알 수 없는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이번에도 걸작을 내놓았다.
기존의 영화 문법만으로 판단하기에 버거운, 너무도 거대한 이 작품.
무려 두 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왜 좋은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지 확실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이야기는 유려하게 흘러간다.
원작소설의 인기부터, 영화화가 결정되었을 때에 어마어마한 감독들이 물망에 올랐었다는 엄청난 영화라는 소문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문득 들게 되었던 편견은 그 [지나치게 많다는 정보량] 때문에 오히려 영화 본질적인 집중력을 저해할 수 있는 것 아닌 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실제로 아는 사람만 보이는 숨겨진 깨알 재미들 때문에 일부 매니아들 만의 파티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냐 라는 우려 역시도 다분했다.
영화에서는 대략 80년대부터 시작된 대중문화 컨텐츠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 온 게임이나 영화, 소설, 그리고 본 영화의 주요 골자가 된 VR기술로 이를 표현함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기술과 문화의 발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편의 서사시와도 같은 느낌을 전달받는다.
거기에 서브 컬쳐라 불리우는 다양한 소재들이 스토리를 뒷받쳐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초기 게임 회사로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었던 [아타리]의 수많은 게임들, 아이언 자이언트, 메카 고질라, 건담, 처키, 스트리트파이터의 춘리, 오버워치, 킹콩, 백투더퓨쳐, 아키라 등의 캐릭터...
그리고 [이스터에그]라는 개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기는 하지만, 특히 최근 마블의 영화들에서 각 영화마다 흩뿌려진 수수께끼를 조합해 뒤에 이어지는 시리즈의 힌트를 남겨놓으며 그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으로 꽤나 대중화되었다.
그 뜻은 개발자, 혹은 그 컨텐츠의 창작자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거나 단순한 재미로서 컨텐츠 안에 남겨놓는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은 의미이다.
본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영화 속 주요 배경이 되는 가상현실의 창시자가 사망과 함께 남겨놓은 그 이스터에그를 찾아 경쟁하고 협력하며 적대세력에 맞서 싸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구조를 갖고 출발한다.
2045년,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맞이한 세계에는 [오아시스]라고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VR을 통한 가상세계 속에서 ‘대리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세계'라는 장치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비록 실재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원하는 모든 것들이 될 수 있고, 그 안에서의 경쟁을 통해 우위에 올라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이 가상현실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 이미 온 세상을 장악해 삶의 낙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VR을 사용하는 장비나 도구의 차별화를 둔 상태에서 같은 가상세계로 뛰어든다.
그렇게 그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며 가상세계의 쾌락에만 골몰해 가던 사람들.
그러던 중 이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에 최초로 이 세계를 창시했다고 하는 제임스 할리데이의 사망과 그가 남겨놓은 수수께끼 메시지가 남겨진다.
바로 어떤 방법으로든 가상 현실 내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아내어 소유할 수 있는 자에게 [오아시스]의 모든 소유권과 유산을 남기겠노라는 유언.
이제 단순히 쾌락만을 위한 삶의 낙 수준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통채로 바꿀 수 있는 목표가 되어버려 경쟁의 장이 되어버린 가상현실 [오아시스].
창시자 제임스 할리데이를 꽤나 존경하고 선망했던 주인공 웨이드역시 그 대전에 참가하며 특출난 이해력과 해결 능력으로 승승장구하며 할리데이가 남긴 유언의 주인공에 가까워 간다.
반대편에는 초기부터 창시자 할리데이에게 열등감을 가졌던 거대 기업 IOI의 수장인 [소렌토]는 이를 저지하며 [오아시스]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인력과 기술력, 그리고 재력을 총 동원해 잘나가고 있는 웨이드를 저지하려 한다.
수수께끼 미션을 해결해가며 협력하게 된 동료들과 함께 차근차근 할리데이의 인생을 연구, 그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웨이드일행.
무수한 대중문화 안에 흩뿌려진 진실을 파악해 가며 그들은 수차례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제는 영화, 게임에서 산업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
언젠가는 모든 분야를 선도하게 될 지 모를 그 과학기술사의 시작과 발전을 찬양하듯, 스필버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이 소재로서 영화를 만들어 냈다.
2015년 어니스트 클라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둔 이 이야기. ‘성공한 오타쿠’라 불리울 만큼 영화에도 언급되는 ‘저급한 대중문화’ 곳곳에 깊은 애정을 갖던 작가는 비교적 저작권에 자유로운 [글]이란 매체를 통해 이 사랑스런 컨텐츠들을 한 데에 버무렸다.
소설은 당시에도 80년대 세대가 거침없이 써 내려간 가공되지 않은 원석과 같은 창작물 이라며 호평을 받은 바 있었다.
이미 무수히 쏟아지는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이 ‘가상세계’를 소재로 했던 영화는 꽤나 많이 존재해왔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은 많지 않았다.
[ 현실의 불만족을 느끼던 주인공 일행이 가상현실, 혹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와 영웅으로서 성장해 무리를 선도하게 된다는 스토리 ]
사실 스토리만으로는 이미 꽤나 흔한 구조이다.
맨 먼저 떠올려질만한 매트릭스를 시작으로 인셉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아바타, 소재를 넓게 확장해보자면 소스코드나 엣지 오브 투머로우 정도까지도 같은 범주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재를 들었을 때에 결말까지도 바로 떠오를 정도로 흔해진 소재들.
문제는 연출이고, 완성도는 풀어가는 방식에 달렸다.
그러나 든든하게도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은 영화 초기 SF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각인시켰던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거기에 원작 소설 속에서도 등장한다는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소설, 게임, 에니메이션 캐릭터들이 관객에게 눈 호강을 시켜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화를 생각 없이 보다보면 ‘아는 것’들이 많이 등장하니 반가움과 추억을 떠올려주는 즐거움까지도 느낄 수 있지만,
제작에 있어서의 고충을 한번만 깊게 생각해 본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대작업이 아닐 수 없다.
국적을 불문하고 각 캐릭터들이 점하고 있는 저작권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이렇게 한 영화에 모두 출연을 시킬 수 있었을까...
(무수한 마블 캐릭터들조차 저작권 문제를 이기지는 못했는데...)
실제로 행정팀에서 수년 간 이 캐릭터들의 저작권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하지만, 스필버그의 명성 덕이었는지 무수한 캐릭터들의 저작권료를 모두 지불하고 관객들에게 어벤저스는 비교도 하지 못할 캐릭터들의 집합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극 초반부터 전개되는 엄청난 레이싱 장면, 그리고 창조자의 과거로부터 힌트를 얻어가며 실마리를 찾아가는 추리게임, 동료들과의 아슬아슬한 협동을 통해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며 미션을 수행해가는 모습...
다양한 매체들의 개입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게임] 그 자체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CG로 표현되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의 기술이 들어가 있음에도 이질감 하나 없는 고퀄리티로 세밀하게 구현된 요소요소...
여기서 쓰인 CG는 혹성탈출처럼 실제촬영이 위험해 실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CG 작업이 아닌, 그저 대놓고 게임화면으로 보여지기 위한 티 나는 CG이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캐릭터가 동시에 등장하니 그것에 차별화를 두기 위함도 있겠지만, 주인공이 가상현실로 들어가면서 보여지는 모든 화면은 마치 [파이널 환타지 어드벤트 칠드런] / [ 레지던트 이블] 게임 애니메이션 과도 같은 그저 [게임]처럼 보이는 화면이다. (물론 훨씬 진일보된...)
정해진 스토리 또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팀이 협력하고 성장하고 대적하는 세력에 맞서 위기를 맞지만 극복하고 엔딩을 맞이하는 롤플레잉 게임 과정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VR이라는 장치를 통해 암울한 현실과 화려한 가상현실의 두 세계를 오고간다.
즉, 제작자 역시도 관객으로 하여금 두시간 반가량 관객의 현실에 VR기계를 장착시켜 영화라는 가상현실 속으로 초대해 정신을 빼놓고 싶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필자는 의도대로 촘촘하게 구성된 그 영화라는 가상현실에 제대로 취했기에 영화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까메오라 할만큼 잠깐씩만 보여지지만 추억을 건드리는 캐릭터들과 영화 [샤이닝]의 극중 무대를 그대로 사용해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장치 등, 순간을 놓치면 아까울 정도로 매 씬마다 정성을 들였다.
외적인 부분에 시선을 사로잡히기 쉽지만, 이 영화가 내제하고 있는 메세지 또한 가볍지 않다.
현재 사회에 한창 대두되고 있는 개인의 고독 문제가 그것이다.
극으로 관련짓자면, 현실사회에서 적응이 어려워 홀로 집에서 게임이나 즐기던 한 히키코모리 소년이 가상현실을 창조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가짜의 모습으로, 가짜의 공간 안에서 가벼운 인간관계만을 맺는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현실이 어렵건, 인간관계가 힘들 건 세상의 많은 이들이 그가 만든 가상세계의 시민이 되길 자처했다는 점.
이는 점점 삭막해지는 불신의 시대에 대한 단상이요, 겉모습은 화려해지되 얕아져만 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우려가 섞인 비유일 수도 있다.
씬 스틸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은 너무 많아서 그것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길어진 듯 하지만,
하이라이트 군중 전투씬에서의 메가 고질라와 건담의 출연, 예상치도 못한 처키 사용법
등...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 찬 이 영화.
알면 알수록 더 보인다고, 8-90년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는 컨텐츠에 대한 자신의 상식을 시험해 볼만큼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컨텐츠 파티.
감히,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