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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Jan 11. 2016

[더 랍스터]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 ~ 다수의 스포일러 포함~

환타지나 무협과 같은 장르는 가상으로 만들어 놓은 어떠한 세계관에 근거한다.


이러저러한 것이 가능한 세상. 혹은 이렇게 해야만 살 수 있는 세상 등, 극중의 인물들이 모두 인지하고 납득하는 가치관을 정해놓은 후에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때문에 이 영화는 로맨스라는 외피를 쓴 환타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환타지 로맨스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미리 숙지시키고 있는 설정은 이러하다.

자연의 섭리, 소위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 져야 하는 세상. 영화의 배경은 그 ‘완벽한 세상’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즉, 일정한 나이를 넘긴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짝을 이루어 같이 살아가야 함이 법처럼 엄격하게 국가 차원에서 통제되어지고 있다는 것. ‘도시’의 번화가 어디를 가더라도 불시 검문을 실시한다.


당사자가 “파트너”와 같이 있지 않거나 현재 자신이 외톨이가 아니라는 증명서가 없으면 잡혀가게 되는 세상. 심지어 이별,혹은 사별을 한 이들 역시도 다시 유예기간을 두고 새로운 짝을 만들어야만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 그리고 새 짝을 찾아 하는 현재의 ‘외톨이’ 들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호텔 형태의 기관 안으로 격리되어져 새로운 짝을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야기는 아내를 잃고 국가의 통제의 의해 그 “유예기간” 안에 다른 짝을 찾아야만 하는 남자 주인공이 이 국가시설로 강제 소환되며 시작된다.

이 시설 내에는 엄격한 법칙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반드시 숙지하고 지켜져야만 한다.


얼핏 시설들이 잘 갖추어진 고급 호텔의 모습을 한 이 기관. 이곳에는 다양한 사유로 현재 ‘외톨이’상태인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주인공처럼 소환되어져 머물고 있다. 하루하루 정해진 시간표에 맞게 생활하며 같이 모인 사람들 중 새로이 짝을 정한 뒤, 적응기간을 거쳐 최종까지 통과한 커플들만이 다시 ‘도시’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유예기간은 45일. 단, 그 기간 안에 짝을 만들지 못할 경우,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정한 동물로 변해 버리는 벌칙이 주어진다.     

 기상시간, 식사시간, ‘커플이 되어야만 함’을 가르치는 정신 교육시간, 낯선 이들과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의무적인 여가 시간 등, 정해진 시간표 중 특이한 점은 이 기관의 통제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 숲에서 기거하는 ‘외톨이’들을 사냥하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국가기관의 외부 숲.

이곳에는 이 정책에 반대하는, 즉, 연애를 금하고 ‘외톨이‘를 고집하고자 하는 집단이 존재했다. 이들 역시도 나름 정해진 룰대로 행동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데, 국가기관에서 행하는 정확하게 반대 노선의 입장으로, 혁명을 꾀하는 반국가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국가기관에서 자신의 짝을 찾으려 했던 주인공은 진정성 없는 짝짓기에 불과한 어떤 여성과의 만남을 계기로 도주해 반국가집단에 가입, 반대 노선에 서서 국가에 대항한다.

그러던 중 '연애금지'라는 룰을 가진 이 반국가집단에서 도움을 주고 받던 한 여인과 자연스레 사랑에 빠지기 시작해 이 곳 역시도 도주하는 과정이 그려지며 결말을 맞이한다.   




비유와 상징이 만들어낸 현실 판타지로맨스.

그렇지만 영화는 배우들의 호연과 꼼꼼한 설정으로 현실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숲을 헤매고 사냥총으로 어떤 대상을 사냥하는, 얼핏 헝거 게임이나 다이버전트 식의 활극으로 비추어 질 수 도 있겠지만, 그런 장면에서 조차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슬로우 기법이나 불안감을 지닌 느린 템포의 BGM에서 나타내듯 영화는 정적이다. 심지어 배우들조차도 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적’을 연기하고 있는 느낌이다.     


기이하고 기괴하다.

정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임에도 이 영화는 확실한 몰입력이 있다. 고정관념과 답습되는 과거의 관행들을 극대화한 비유와 상징으로 나타낸 이 환타지의 세계는 비현실적임에도 충분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남과 여, 두 사람이 만나서 이루는 하나의 가정, 그리고 만들어지는 최소 단위의 커뮤니티.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선택의 한 가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동서고금을 떠난 생태계에서는 하나의 ‘의무’로 받아들여져 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와 현실의 가치관의 충돌을 이미지화 시켜놓은 블랙코미디 같은 측면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집단 유지를 위해 서로 최소한의 도움은 주고받지만 그 이상 서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반국가 외톨이 집단과, 어떻게든 남녀가 같이 있어 안정감을 갖추어야 한다는 국가 정책이 당연시 된 세상. 이 집단이 서로를 ‘사냥’해 굴복시킨다는 설정은 진지함 속에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다.

(적어도 명절에 친척들의 결혼 잔소리에 시달려본 한국의 성인이라면)


모든 환타지 영화의 단계가 그러하듯 설정을 납득하고 들어가면 디테일한 부분 역시도 꼼꼼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정말 꼼꼼한 배치와 유머러스한 풍자로 완성도를 채워놓은 느낌이다.      

커플을 장려하는 국가기관에서는 다양한 취미활동과 기회를 제공하며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 사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또 다른 투쟁을 부르는 법. 기관 내에서는 온갖 거짓 술수와 계획으로 구애가 행해진다.  


결혼이란 제도를 전제 한 만남에서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 그 가운데 과연 진정성이란 게 보여 질 수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내가 살아 온 삶과, 만날 사람의 보이는 일면만을 맞추어 보고 선택을 한다.


그러한 측면을 영화에서는 ‘동질성’을 조건한 만남이라는 면으로 부각시켰다. 취미가 같고, 비슷한 신체 결함이 있거나 한, 자신과 닮은 점을 찾는다. (공감대로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같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임에도.)   


 

주인공 역시 유예기간이 지나면 동물로 변해버리는 저주와도 같은 룰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시설에 있는 이들 중 한 여자를 택한다. ‘자신과 잘 맞을 것 같다’는 변명 같은 이유를 붙이며.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그 여인과의 합방을 견디지 못하고 도주하게 되는 장면은 이와 같은 모순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애초부터 ‘커플이 아니라면 인간으로 있을 자격도 없으니 동물이나 되어버려라’라고 하는 극단적인 룰을 들이대는 환경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이 시설에 남아있는 설정으로, 초조함과 불안함은 영화 전편에 깔려있다. 심지어 국가기관을 관리하는 이들조차 어느 하나 편하게 사는 이들은 없어 보인다.      


연애를 금하는 집단에 소속되게 된 주인공이 한 여인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며 서로에게 호감이 쌓여 사랑에 까지 이르게 되는 상황. 왜 연애를 장려하는 국가기관에서는 이 같은 만남이 이어지지 못했을까. 국가 집단의 룰을 견디지 못해 반대의 위치에 섰던 그는 결국 자연스럽게 이끌린 감정에 휘둘려 그 반대 집단의 룰마저 어기고 도주하게 된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위대한 사랑의 힘’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만히 앉아 자신에게 딱 맞는 사람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운명적 상대를 찾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돌려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좋은 영화로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요건들 중 대표적인 것이 기발한 시나리오를 그대로 영상으로 구현해내는 경우와 평이한 시나리오를 배우들의 호연으로 살려내는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개인적인 관점으로 이 영화는 전자에 해당하는 듯하다.


콜린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이 세 명의 주역들은 이미 연기력으로도 인정받은 명배우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저 맞추어진 배역에 꼭 맞게 잘 연기 했을 뿐, 튀거나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일부러 연기로 무언가 압도 하려 하지 않으려는 노력까지 보인다.  


다소 긴 테이크로 촬영된 기법이나 찝찝한 기분마저 들게하는 BGM과 장면의 싱크로율, 시종일관 어두컴컴한 짙은 농도의 색감, 그리고 배우들의 과하지 않은 호연은 이 낯선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대중들에겐 조금 낯설게 다가 올 수 있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이 작품.

영화이기에 가능한 현실 비유 환타지, 나에게는 취향저격인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더불어 올해의 명작 포스터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이 영화의 포스터.

남자와 여자가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안고 있다. 누군가를 ‘끌어안는 행위’, 이것은 위로나 격려, 혹은 사랑의 감정을 품은 상대방에게 행하는 동작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필시 진정성의 부재. 즉, 진심을 담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상대를 의미할 것이다.

‘당신이 선택해서 지금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잘 알고 있는 상대입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들로부터의 압박감에 못이긴 흉내일 뿐입니까?’ 라는 메시지가 보이는 듯하다. 영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나타내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컨텐츠를 나름 해석하며,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고싶어 이야기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괜찮으신 분들 방문 부탁 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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