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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Feb 29. 2016

[대니쉬 걸]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 입니다


1920년대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는 화가부부에게 닥친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변화의 시작.

풍경화가와 초상화가.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분야의 역할을 수행, 예술적인 시너지를 주어가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오던 부부에게 이 변화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이 이야기는 네러티브로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 명심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주어지고 그 상황에 받아들이는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감정 선을 느껴가며 공감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 스포일러는 애초부터 무의미하다.      

영화는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차츰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 남성이 목숨을 걸고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시도했던 실존인물 [에이나르 베게너]와 꿋꿋하게 그의 뒤를 지켜봐 주었던 그의 부인 [게르나 베게너]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존경, 응원하며 예술 혼을 공감대로 행복한 삶을 꾸려가던 화가부부. 남편인 에이나르는 풍경화가로, 아내인 게르나는 초상화가로 활동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게 아내 그림 여성 모델의 대역을 해 주다 에이나르는  성 정체성의 혼란을 감지한다. 자신조차 놀라며, 억지로 부정하려 애쓰지만 한번 눈 뜨기 시작한 혼란은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을 드러냈다. 여성의 실크소재 잠옷 감촉에 반응하며, 장난처럼 화장을 통해 점점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는 것이 마냥 즐겁다.

처음 아내의 그림 여성모델 대역으로 여장을 했을 때 장난스럽게 지어진 이름 [릴리]. 시간이 갈수록 에이나르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 안의 [릴리]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가정에 충실했던 한 여인의 남편 에이나르와 그의 안에서 꿈틀대던 다른 성의 자아 릴리. 두 개의 자아는 시시각각으로 충돌하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인 [에이나르]라는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그저 기분 탓이겠거니, 아직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을 무렵에 장난처럼 여장을 하고 참가했던 한 파티에서 영문도 모른 채 여성[릴리]에게 접근한 한 남성. 그의 감정을 여성으로서 느끼고 싶었던 탓일까, 그 시기부터 [에이나르]의 여성성은 극에 달한다.

여성의 옷을 걸쳐 입으며 여성의 신체 곡선과 몸짓, 손짓을 흉내 내고 환한 미소를 지어본다. 점점 그의 자아는 그녀가 되어갔다. 제발 돌아와 달라는 아내의 간청에도 이제는 숨길 수 없는 [릴리]의 존재감.


‘신은 나에게 잘못된 육체를 주신거야’ 라고 굳건히 믿게 된 그는 한 번도 시도 된 적이 없었던 성전환수술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건다. 몇 차례나 이어졌던 고통의 수술. 죽음을 담보로 한 수술에서 그는 그녀가 되지만, 그녀로서 맞이 할 수 있는 삶은 그리 길지 못했다. 모든 걸 이해한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그녀는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한 표정으로 조용히 눈을 감는다.     




다소 길게 이어졌던 스토리 설명이지만 ‘그녀가 되기를 희망했던 그의 처절한 성적자아 찾기’라는 한 줄로 줄거리 요약은 끝난다. 그렇다면 결국 주목할 것은 그와 그녀를 같이 연기해야했던 [에이나르]와 사랑하는 남편의 변해가는 모습을 애타게 지켜봐야만 했던 극진 한 아내 [게르나]의 연기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섬세한 미장센과 감정연기 디렉팅해 그 해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등 주요부문의 상을 휩쓸었던 톰 후퍼 감독은 당시 [마리우스]역을 맡았던 에디 레드메인에게 헤어 나오기 힘들 듯한 감정에의 부담을 한 번 더 안겨 주었다.     

그 어마어마한 연기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촬영과 미장센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이 영화는 전체가 [움직이는 명화]의 느낌이다. 극중 인물들의 직업도 화가이지만 마치 그윽한 분위기 가득한 ‘밀레’의 명화 속 인물들과 배경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필시 의도한 바이겠으나 이는 극 중 인물의 비극적인 최후를 암시하며 상황별 연기를 더 빛나게 해주었다. 벽지의 느낌, 가구, 도로의 풍경, 복장, 심지어 묘사되어 있는 날씨까지도 완벽하게 그 시대를 구현해 놓은 듯 전혀 이질감이 없다.      


한 인물의 일생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내용인 만큼 컷 구성 역시 긴 테이크로 인물의 감정 선을 살리도록 서포트 해주고 있다. 미장센, 촬영, 연기, 조명, 배경음악 등은 ‘모든 걸 갖추어 놓았으니 자유롭게 연기를 뽐내십시오!’ 하며 연기자들을 뒷받침 한다. 이제는 연기의 차례.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던가. 스티븐 호킹을 연기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이 전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해 아직까지 나에겐 레미제라블에 어벙벙한 표정의 마리우스로만 기억되는 배우 에디 레드메인.     


충실하게 남편을, 작업실에서는 화가로서의 자상한 남성의 역할을 연기하던 그는 ‘릴리의 발견’의 시초가 되었던 씬 에서부터 위태로운 표정 변화와 몸짓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 몸에 무슨 변화가 생긴 거야?’

 같은 쓰 잘 데기 없는 설명 성 대사를 치지 않는다. 그저 표정변화와 야위어가는 신체, 여성이 되고자 할 때에 만면 가득한 미소 연기로 관객에게 고스란히 감정을 전달한다.  


대부분이 경험해보지 못했을 감정. 그러나 어렴풋이나마 느껴질 수 있게 설득력을 갖춘 연기를 펼친다. 영화 초입부터 ‘성전환수술을 한 남성이 이야기’라는 색안경을 쓰고 들어간 이들조차도 조금만 참고 견디어 영화의 반 이상을 따라올 수 있다면 이해를 시킬 수 있을 법한 연기이다.


폭발하고, 오열하는, 소위 눈에 띄는 ‘확장성’ 연기를 하는 것이 잘하는 연기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실제로 그런 줄 알고 열심히 오버연기를 하는 여타의 배우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 역시 적지 않았다.

점차 변해가는, 그렇지만 남에게 알려지기는 창피해 조용히 자신 안에서 만족하고 다른 자아가 되어 느끼는 만족감. 자신을 감추는 ‘수축성’ 연기랄까. 미장센과 다른 환경들이 서포트를 해주고 있다 한들 결국 이런 류의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 선을 관객이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형태였다.   

   

나는 설득되고야 말았다. 왜 목숨을 담보로 한 수술에 그렇게 매달린 건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 행복한 현재의 자아를 포기해야 했는지. 단 하루만이라도 껍데기를 벗어난 진정한 자기의 모습으로 살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사실관계만 따지고 보면 에이나르는 이기적이기 그지없다. 자신안의 자아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자기 결정에 따른 목숨을 건 선택. 그렇지만 그것은 온전히 자신만 생각하고 행해진 것이었다. 참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 말하겠지만 그에게는 이미 책임져야 할 부인이 있었음에도.   

  

1인 2역을 하고 있는 에디 레드메인. 그의 어마어마한 내공 연기를 가볍게 받아주어 극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던 배우, 아내 게르다 역의 [알리시아 비칸데르].

그녀의 감정을 억누르는 절제연기는 혼란스러운 에이나르의 분열을 지지해 주는 큰 축이었다.     

너무 사랑했던 남편이 여성이 되기를 희망할 때의 당황함과 자신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듯한 남편의 무심함에서 오는 분노.


결국 남편의 간절한 꿈을 받아들였을 때의 처연함과 동시에, 남편을 잃은 상실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생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때의 슬픔. 표출할 수 있는 인간 감정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극에 치닫지만 그것을 모두 얼굴에 담아낸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전 명화 속 주인공같은  기을 지닌 이 배우는 에디 레드메인 못지않은 정말 무시무시한 연기 내공을 선보인다.  

(후에 알아본 바로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인이라 한다. 뭐야 이 커플은...)

다방면에서 놀라울만한 완성도를 지닌, 이 영화야 말로 종합예술이라 불리우는 [영화]장르의 강점을 극한으로 살린 명작반열에 오를  수 있을 듯하다.

    




(단 한 장면, 중간에 동네 양아치들이 레드메인을 트렌스젠더라고 놀리며 구타하는 장면에서는 좀 억지스러움이 없지 않았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씬으로 삽입한 것이겠지만 장면이 어떻다기 보다 양아치들 연기가 너무 어색했다. 옥의 티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명작이라 생각는 작품 안에서 가끔 거슬리는 장면을 발견할 때마다 참 안타깝다. )      









좋은 컨텐츠를 나름 해석하며,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고싶어 이야기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괜찮으신 분들 방문 부탁 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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