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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Dec 06. 2016

현실 평행이론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조금은 다른 감상평입니다.


어김없이 찾아왔다. 홍상수의 영화.
대한민국 영화계를 들썩인 스캔들을 뒤로하고 ‘그래도 나는 영화 감독이다’
라고 밝히고 싶었던 건지, 그리 긴 공백없이 이래저래 해석이 가능한 수수께끼 같은 영화를 내놓았다.

홍상수 감독은 세계적으로 알려동시에 이런 저런 소문들도 워낙에 많은 감독이었다.


영화계에게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고 그 유파의 수장으로서 자리매김한 이상 들려오는 뒷이야기 정돈 피할 수 없겠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던가.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통용되지 못하는 표현 같다. 오래전 영화 넘버3에서의 극중 최민식이 이런 대사를 내 뱉은 적이 있다.

[ 내가 세상에서 제일 X 같이 생각하는 말이 뭔지 알아?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거야,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X 같은 인간들이 문제지 ]

나라별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를 문제이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에는 가능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명망가, 셀럽 등 일반인들의 입에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 잣대의 무게는 어마어마해 보인다.

유명인으로서의 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일지도 모른다.

일부 대중들은 유명인이 어떤 죄라도 저지르게 되면 그 사람의 원래 직업은 물론이요, 인간적으로도 재기 불능을 시켜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맹렬하게 비판을 해대곤 한다.

‘옳거니, 기다렸다, 너 잘 걸렸다’라는 듯이 각종 루머며 과장된 소설을 만들어 내는 그 일부 키보드 워리어 들의 횡포에 나가자빠지지 않으려면 깡은 필수요소이다.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셀럽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런 거친 세력들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만일 그 셀럽이 대중들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아티스트라면, 비록 평생 시달려야만 하는 꼬리표가 달릴 지언 정, 만회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유명한 예가 배우 ‘이병헌.’
이병헌 역시도 비슷한 여성 스캔들 문제로 연예계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지만, 후에 굴하지 않는 연기로 [ 다른 건 몰라도 연기로는 못 깐다 ]는 반응으로, 돌아섰던 대중들을 다시 끌어 모아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 많은 소문들과 함께 거친 길을 헤쳐 왔던 홍상수 감독으로서는 숱한 소문의 대처방법에 익숙하기라도 한 것인지, 이번에도 자신의 얼굴대신 컨텐츠를 들이밀었다.

“그래도 나는 인정받는 감독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건 변함없다.는 암묵적인 메시지와 함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 하하하, 우리 선희, 자유의 언덕... 무수한 이전의 홍상수 영화가 있었지만, 바로 이전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기점으로 뭔가 제목에서도 대비를 시켜놓는 데에 흥미를 붙인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러했듯 홍상수 영화의 주된 소재는 남자와 여자이다.

늘 남과 여의 풀리지 않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묘사해 오던 감독은 이번에도 애매모호한 해석 가능성을 남겨두며 관객을 농락했다.

깊이 있게 해석을 하고 들어가자면 한도 끝도 없이 풀이 될 수 있고, 그저 가볍게만 보자면 해석이고 뭐고 한눈에 판가름 지어질 수 있는,


역시나 다각도로 분석이 가능하기에 이번 작품도 평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아마도 조금 깊이 있게 해석을 해보고자 하는 사람은 역시 홍상수가 던져놓은 떡밥을 수학문제 풀 듯 이것저것에 적용시켜 보며 정해져 있지 않은 정답을 도출해 내려고 하는 부류일 것이다.


화가인 영수와 의상실에서 일하는 듯한 (그러나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겠는) 민정은 연인이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았었는 듯, 이웃 모두가 친한 지인들로 보이는 작은 동네에서 연인임이 공개 된 두 사람.

그런데 영수의 지인인 동네 친구들은 모두 민정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좋지 않은 말을 해댄다. 이유는 민정이 영수가 아닌 다른 남자들과 같이 어울리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 이곳저곳에서 포착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영수는 자신이 직접 확인을 한 사실은 아니기에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애써 외면해 보려하지만 삼인성호(三人成虎)는 결국 진실로 인식되어 연인 민정을 의심하게 된다.

의심에 추궁... 아니라고 잡아떼어보지만 믿어주지 않는 영수에게 결국 민정은 이별을 고한다.
이후로 마지막 직 전까지 두 사람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떠도는 소문의 실상대로 매일 술자리에서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비추어 진다.
민정의 외모에 호감을 느껴 말을 걸어오는 남자들을 막지 않으며 서서히 가까워져 대화까지 이어지는 모습. 몇 차례 같은 패턴이 반복되어진다.

영수는 주변의 말만으로 의심을 시작해 이별까지 맞이하게 된 상황을 후회하며 계속해서 민정과 접촉을 시도한다. 집으로, 민정이 일하는 가게로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하고 통한의 나날을 보낸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마치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과도 같은 모양으로 다시 시작함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구조자체는 단순하다.
그렇지만 홍상수 영화에 스토리에 있어서의 스포일러는 무의미하다.

영상의 형태를 한 논술문제가 제시된 느낌이다.
써내야하는 과제는 3000자, 4000자가 되겠지만 문제는 딱 한 줄인 것처럼.

[ 여기 이런 남자, 이런 여자가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관객에게 문제를 내며 홍상수는 늘 비유와 상징이라는 힌트를 제시해 둔다.
극 중의 남녀는 어느 한 부류의 집단을 상징하는 남자와 여자를 대변한다.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에서 어딘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 누군가 역시도 그 부류 중 한 부분에 속해있기 때문이라 예상한다.

먼저, 영수의 캐릭터.
전통적인 연인으로서의 모습을 지향하며 구속을 강요하는 듯한 부류의 남자를 대표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연인이라면 꼭 지켜야 할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놓은 후, 그 이미지 안에 연인을 가두어 두려 하는, 소유욕이 강한 느낌이다.

겉으로 표현되는 민정의 캐릭터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며 연인이더라도 서로를 구속하면 절대로 된다는 주의를 다소 과장한 캐릭터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남녀의 상황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이 남녀의 고민은 현대 연애의 형태가 갖는 가장 큰 딜레마 그 자체를 대변한다.

밸런스 있게 양 쪽 모두 조절되어야 할 뿐,
어느 한쪽도 정답이라 할 수 없는 두 가지의 가치.

감독은 애매모호 장치를 주로 여성의 이야기 쪽에 장착해 두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민정의 모습은 아마도 영수 갖게 된 편견 속의 이미지와 닮아있지 않나 싶다.

영수와 이별 후 민정은 늘 술집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 이야기하고, 친해지고 멀어지는 단계별 행위를 반복한다. 거짓말일지 사실일지 모를 대응을 하며...


내용대로라면 아마도 민정의 이 패턴은 영수와 이별한 후부터가 아니라, 만나고 있었을 때부터 였다고 보여진다.

공인된 연인이 있고, 술을 먹지 않기로 약속을 했음에도 매일 몰래 술자리를 갖고 심지어 다른 남자들을 매일 만난다면 연인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물론 극중 ‘술’이라 하는 것은 여자의 프라이버시를 단속한다는 어떤 상징일 테지만.

프라이버시에도 정도가 있다.
어찌되었건 연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엮이면 어느 정도의 구속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상식적인 ‘연애의 법칙’이기에.

몸이 됐건 마음이 됐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대 한명을 결정하고 다른 요소들은 자제를 요하는 암묵적인 룰.  

이 과정에서 정도가 심해지면 구속이네, 집착이네라는 말이 나오며 싸우게 되기도 하지만...


영화 속 민정의 마인드라면 영수는 ‘연인’이 아니라 그저 매일 달라지는 잠자리 파트너 중 조금은 더 가까운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자의 입장에서 민정 캐릭터라면 

‘순수한 악’의 모습으로 억울함을 표명할 수 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남자들이 먼저 말 걸었단 말이야!’

‘어쩌다 말 좀 하게 되어 얘기 잘 통해서 좀 같이 있게 된 게 내 잘못이야?’

극 중 ‘낯선’ 남자들의 뻔하디 뻔한 수법으로 미모의 여성 민정에게 접근한다.

그러면 민정은 마치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가 모르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듯한 순수함을 보이면서도 남자들의 머리꼭대기에 서서 남자들을 조리하듯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는다.

‘당신이 누군지 정말 몰라요, 하지만 흥미 있네요.’


이 남자는 나를 틀에 가두지 않는, 좋은 사람 같다는 호기심만을 나타냈을 뿐인데 그 때부

남자들은 착각에 빠지며 서두르기 시작한다.

두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틀을 만들려.

‘이 예쁘고 순수해 보이는 여자가 나한테 호감을 보이는 구나. 이 여자를 어서 나만의 여자로 만들어야겠다. 나만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야지.’

낯선 남자 A, B.
속도의 차이가 있고 애원이나, 간청이나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다.

자신들의 사이를 연인이라 믿고 있는 영수는 이 낯선 남자 A, B보다 운 좋게도 먼저 민정과 가까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조금은 ‘익숙한 남자’일 뿐.


영수가 생각하는 ‘연애’는 답답해 보일 수는 있어도 전통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원형의 모습에 가깝고, 민정이 생각하는 연애는 소위 ‘아메리칸 스타일’로 포장되는 쿨한 관계를 지향하는 쪽에 가깝다.

‘저 민정이 아니에요. 근데 당신은 마음에 들어요.’

극의 결말에서 마치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 처럼 남자친구를 알아보지 못하는 민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시 연인이 되는 두 사람.

이 의미는 아마도

‘나는 당신이 틀에 가두려 했던 민정이는 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태도를 바꾼다면 당신한테 갈 수도 있어요.' 

정도로 풀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서로의 안 좋은 기억을 지워버리고 다시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삭제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서로 본래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로도 볼 수 있지나로서는 결코 해피엔딩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틀에 매이고 싶지 않은 여자니 틀을 만들기만 하면 나는 바로 떠나 갈 거야...’


를 외치는 여성에게

‘알았어, 내가 잘할게. 떠나지만 마!!

라며 당장 지금 떠나려는 여자를 잡기위해 애걸복걸하는 남자의 모습.

남자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분명 집착을 시작할 것이고, 여자는 똑같이 어제를 잊고 오늘 새로운 남자를 만나려 할 것이다.

틀에 갖히고 싶지 않은 여성과 틀에 가두고 싶어하는 남자의 끊임없는 실랑이.

현실 연애의 패턴을 살펴보면 이들의 미래는 다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 뻔하다.

영화를 떠나 현실에서의 연애 패턴을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

관심을 보이는 여자가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그 자그마한 가능성을 들은 파고들어갈 빌미라고 여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 여자한테 잘 보이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구나하고...
남자들의 흔한 착각 중 하나이다.

반대로 여러 남자에게 러브콜을 받고 행복한 선택의 순간을 누릴 수 있는 치에 있는 여성은,

누구 한 명에게 소속되는 것이 아쉽다고 여길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는 남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입장 표명을 하지 못하다 보니 관리하는 어장은 확장 이전을 생각해야 할 만큼 큰 규모로 발전한다.


그리고 혹여나 추궁을 해대는 물고기가 하나 튀어 오르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식으로 내빼버리기 일쑤이다.

‘누가 나한테 빠지래?’

‘내가 언제 뭐라고 했어? 니들이 좋아서 나한테 잘해준 거잖아?’

라는 식으로 응수 해오면 버려진 어장 속 물고기 남자들은 이를 득득 갈겠지만 할 말이 없다.

본인들 역시도 순수치 못한 의도로 접근한 경우가 많았을 테니.

자신을 버린 그 여자에게 욕을 하며 천하의 나쁜 년으로 소문을 내버리고 자신은 다른 여자의 어장으로 이전 계획을 세울 것이다.

연애라는 게임의 무한 루프.

영화는 뜨끔한 이 연애의 무한 루프를 상징하는 연극처럼 보여졌다.

감독과 연관짓지 않고 이야기만으로 보자면 이래저래 흥미있는 우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번 작품부터는 홍상수 자신의 인생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홍상수 본인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일종의 변명일 수도 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여자캐릭터를 홍상수 본인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사회적인 룰을 따라, 이미 법적으로 가정이 있어 아내와 자식들을 구성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또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우리를 방해하지 마라.’

그러면 가족구성원들이나 그를 아는 주변인들은 이렇게 말린다.

‘제발 제 자리로 돌아와라. 우리 사회에서 이미 가정을 만든 사람은 그래선 안된다!'

영화는 결국
[서로 편견없는 본모습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라는, 아름다운 결말로 마무리 짓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여성 쪽의 주장, 고집에 따라주는 남성의 모습일 뿐이었다.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빌어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음은 아니었닐까.












좋은 컨텐츠를 나름 해석하며,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려 이야기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괜찮으신 분들 방문 부탁 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ttps://brunch.co.kr/magazine/accidentally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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