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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Dec 11. 2016

잔인한 현실 [라라랜드]에 대한...

스포 감상 평입니다.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남녀를 표현하지만, 결국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이 서글프다.”    


데미엔 차젤레 감독의 신작, 더불어 엄청난 호평 세례와 함께 한국에 입성한 영화 라라랜드.

해외 여러 곳에서의 수상 소식이 아니더라도 감독과 배우의 조합만으로 기대감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평론가들, 수많은 리뷰어들에게도 이 영화는 거의 극찬의 대상인 모양이다.  


몇 년 전 [위플래시]라는 영화의 강력한 마력에 빠져 본 관객이라면 이 감독의 차기작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극한에 달하는 연주와 무섭도록 짜릿한 연기, 시종일관 전력질주를 해대며 그야말로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끝에는 모호한 엔딩으로 "여운"을 남긴 채 음악영화의 명작 반열에 올라 기록으로 남아있는 전작.    


어마어마한 천재 소리를 듣는 이 85년생 감독이 이번에는 관객에게 하여금 전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마법을 준비한 듯하다.      


뮤지컬 형식을 취한 영화이며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색상감이나 미장센, 편집 등을 일컬어 동화와 같은, 마법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한다.  


귓전을 멤도는  city of stars의 멜로디, 잔잔하게 흥얼거리게 하는 무수한 음악들과 연주, 퍼포먼스... 일단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 표면에 장치해 둔 형식미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 소재와 형식미를 공개하고 들어간다.


복잡한 고속도로에서 펼쳐지는, 인도 영화에서나 볼 법한 군무와 떼창을 원테이크로 촬영한 오프닝. 스코어와 극이 자연스럽게 변주되어가며 이야기는 여자의 시점과 남자의 시점을 오고 간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듯, 자꾸 마주치는 두 사람, 미아와 세바스찬. 각각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하는, 커다란 공감대와 함께 사랑에 빠져든다.   


이루고 싶은 자신의 꿈과 연인에게 충실 하고픈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며 방황하고 실수하는 그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위한다는 행동은 상처를 주고 오해를 낳아 결국 헤어짐에 이르는데...    



개인적으로는 형식미보다도 소재를 풀어가는 ‘내용’적인 면에 더 주목했고, 그러다 보니 화려한 표현 뒤에 감추어 놓잔인하리만치 철저한 감독의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화려한 색상에 여러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뮤직 넘버와 퍼포먼스 연출. 소재와 구성 상 이런 식의 영화는 아름다운 남녀의 사랑이 우여곡절 끝에 결실을 맺는 이야기가 어울려 보이지만, 영화절대로! 그렇지 않다.  

연애가 시작되고, 부풀어 오르고, 삐걱거리다 빠그라지고, 다시 기워지고...이 영화는 '연애'라는 단계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단상이라고 생각한다.    


풋사랑의 시작.

가진 것도, 철도 없는 학생과도 같은 시절,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에 빠져드는 두 남녀.     

두 사람은 각자 확고한 꿈이 있었고 조금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같이 이겨내고자 했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현실.

거듭되는 실패는 이제 본인도 본인이지만, 옆에 있는 연인을 더 힘들게 한다는 자기 원망으로 바뀐다. 오랜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연인과의 행복을 저울질하다 선택한 어떤 길들.

몇 번이고 강조되는'꿈'  

일반 샐러리맨에게는 '꿈과 열정'보다 '안정'이라는 가치가 중시되기 마련이기에,

'꿈, 노력, 좌절, 성공'이 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예술을 하는 젊은이들로 표현한 듯 하다.


캐릭터들은 사랑과 꿈 중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마치 전작인 위플래시에서 남자 주인공이 드럼에 집중해야 한다며 여자 친구를 내쳤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감독은 두 가지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로 고뇌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한 이야기에서 감독이 숨겨두고 있던 잔인한 메세지는     

"이루어야 할 꿈이 남아 있고 끝까지 이루고자 한다면 연애는 포기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너에겐 여유가 없으니까, 굳이 연애를 하고 싶다면 허황된 꿈은 버리고 그냥 적당히 밥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런 정도의 양보는 있어야지...!"


...로 보였다.     

           

두 주인공의 꿈인 배우와 재즈 피아니스트.

모두 예술 방면의 직업이다. 남녀 주인공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성 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그전에 정의되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예술에 있어서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예술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그만큼 불확실성  투성 인 분야이다. 혼자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내놓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들어줄 대중이 있어야 하고, 그렇다는 건, 그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해줄만한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

실력은 기본에, 좋은 작품, 좋은 연주가 가능해도 운과 타이밍에 따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변수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니 더 잔인하다.    


흔들리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되어 중후반부터의 몰입도는 대단했다.    


남자 주인공 세바스찬은 여자 주인공 미아에게 더 나은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꿈보다 현실을 택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여자는 과거에 같이 그려오던 꿈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그런 남자에게 실망한다.    


현실을 인식해 돈벌이에의 가치가 올라가는 순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미아는 그런 변해가는 세바스찬의 모습이 싫었던 것.

그러나, 세바스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선택은 미아를 위함이었다. 미아의 집에 소개하기조차 창피한 자신의 모습에 자책하며, 말로만 꿈! 꿈! 외쳐대지만 아무것도 진행되지 못 하는 현실에...


자신조차도 힘든 결정으로 불가피한 변화를 맞이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 그것에 길들여져 갔고, 당연히 바빠진 일상에 이전처럼 연애 상대에게 신경을 써 줄 수 없었기에 서로에게 양보와 이해를 구하는 일이 반복되어 졌다.     


결국 상충하는 두 사람의 가치는 다툼에서 헤어짐으로 이어졌다.


막연한 꿈을 안고 연애를 지속하는 건 잔인한 시한부일 뿐이었다.

결국 꿈과 연애 어느 한쪽에 올인을 하지 않으면 두 마리 토끼 다 놓치게 되어버린다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실현하려면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게 마련이니, 그 책임감을 모른체 하며 본능에만 충실하려 하는 건 결과가 정해진 게임과 같다고...


영화는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보이지 않는 꿈을 향해 손잡고 같이 할 동료.

당장 외로운 시기 그 친구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점점 앞이 명확해 지고,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이 발견되면 쭉 잡고 걸었던 동료의 손은 방해가 되어버린다.

결혼, 결합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연애란 결국 남녀 각자, 꿈이라는 목적지에 근접한 사람끼리의 채워지지 않았던 남은 한 부분이 되어 주었을 때에 성립하는 것이라 얘기 하는 느낌이다.        

경제적인 문제.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경제조건인 상대를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 실물로 가진 재산도 마찬가지이고 현재 자신이 지닌 사회적인 위치는 물론이다.

(물론 한쪽의 우월함에 기대려는 부류도 있지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되지...라고, 말은 쉽다.

그러나 인간의 인내심이란 그리 믿을 만 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는 열등감, 자책감, 괴리감으로 두드러지게 마련이고 결국엔 서로를 깎아 내리며 자기변호를 시작하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자 여자 주인공의 초중반 까지의 연애는

"학생의 풋 사랑"의 형태이다. 막연하게 잘 될 거란 미래를 낙관하며 마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처럼 본능에 의존한 관계를 가진다.     


어딜 가든, 무얼 먹든, 그저 같이만 있으면 꿈같은 시기. 그렇지만 문득 돌아서서 혼자가 되었을 때 현실은 더한 중압감으로 내리 누른다.

자기 꿈에 있어서 애인은 위안이 되어줄 뿐 현실적인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기에.        


사회적 지위의 성장.

서로 간에 경제력이나 능력 등으로 계급달라지기 시작하면 그 사랑은 더 이상 막연한 기대만으로 이어질 수 없어, 보다 구체적인 무언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주변에는 비교대상들이 늘어가기에 이전과 같은 풋풋함으로는 서로를 잡고 있을 수 없다.    

영화의 후반부.

헤어지고 난 후에도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마치 재결합을 암시하는 듯 했던 영화는 말한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따라 가보자"     


4계절의 변화를 이들 관계의 변화로 상징했던 영화는,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계절처럼, 자신들의 관계 역시도 억지스러운 제스처 없 그냥 흘러가는 데로 놓아두어 보자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선택한 길의 흐름에 뿐, 다른 반기를 들지 않고 순순히 따라가는 두 사람.    

그렇게 몇 년 후가 지나 두 사람은 달라진 모습으로 마주한다.   

 

치열했던 그들의 노력,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이룬다. 그렇게도 서로 응원하던 각자의 모습이 명확한 모습으로 보여진 셈.    

그러나 두 사람은 같이 있지 않다.

거듭되는 우연이 만들어낸 필연의 관계는 다시 우연히 마주 칠 수밖에 없는 사이로 전락해 버렸다.     

           

자신의 처음 소원대로 재즈바를 운영하게 된 세바스찬. 그리고 역시나 꿈을 이루어 유명 배우가 된 미아새로 구성된 그녀의 가족, 남편...과 함께 세바스찬의 재즈바에 우연히 들르게 된다.     


흐름에 역행하지 말자 얘기하면서도 과거의 기억은 소중하게 여겨두고 싶었음 인지, 미아가 연인이었을 때 지어주었던 가게 이름 그대로 바를 열어 아마도 돌아올 미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세바스찬.     

정말로 우연히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만감이 교차한 탓일까, 아니면 이미 가정을 이룬 미아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기 위함일까,


재즈바 공연 예정에 없이 처음으로 미아를 만나던 순간에 연주했던 곡을 연주하는 세바스찬.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타임리프라도 된 듯 영화가 만들어내는 마법이 펼쳐진다.

처음 만나던 그 시절의 순간. 그리고 내내 함께하던 장면들... 그러나 현재를 만든 결말과는 다른 흐름으로 나열되는 환상적인 플래시백.    


이 마지막 플래시백 장면이 가진 의미에 대한 의견 역시 분분하다.


세바스찬의 기억이냐, 미아의 기억이냐에 대한 것부터, 결말이 현실의 반대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궁금증 까지.    


가장 원하던 형태를 한 두 사람의 모습으로 재구성 되어지는 추억 장면. 어쩌면,

'서로 이렇게 했으면 아마 지금의 모습은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과 반성의 기억일 수도, 혹은 흔히 말하는 과거의 기억은 미화 된다는 착각 속의 기억 내용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동시에 추억을 떠올려 원하던 바의 교집합, 현실에까지는 이어질 수 없었던 꿈과 사랑을 모두 얻은 환상을 꿈꾸었다고 생각한다.   

  

'라라랜드'라는 단어는 그런 비현실적인 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끝끝내 만들고 싶었지만 만들지 못한 [라라랜드]는 서로가 아는 그 음악이 울려 퍼지는 시간동안만 서로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내어 미처 조립되지 못한 조각들을 맞추는 환상의 의미가 아닐 까 한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어 무수한 해석거리를 남겨둔 훌륭한 영화. 노래, 춤, 연주까지도 직접 소화했다는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촬영, 연출 등 완성도 면에선 나무랄 것이 없는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낸 명작.    


현실의 무거운 주제를 가장 영화스럽게 표현해, 이토록 진한 여운을 만들어 내는 감독의 재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일각에서는 미국 뮤지컬 황금시대의 오마쥬라 하여 현대 배경임에도 고전적인 느낌을 많이 살렸다고 하는데, 사실 그 부분에서 개인적으로는 초중반까지 조금 적응이 어려웠다.    


몽타주 방식처럼 툭툭 튀는 편집과 장면의 나열만으로 내용을 전개 시키는데, 고전 느낌을 살리면서 후반부를 위한 밑밥 측면에서 알아야 할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방식이 다소 낯선 탓에 적응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야 했다.    


간혹 지루하다는 혹평을 내는 관객들이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이 초반부의 낯섬 때문에 길을 잃어 끝까지 영화의 흐름에 타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제작자 만큼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괜찮으신 분들 방문 부탁드리겠습니다~!!^^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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