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껄떡이 스토커]
세현이 1년여 동안 지내온 일본이라는 나라.
공항을 향해 쌩하니 달리는 차창 밖은 아무도 세현의 출국을 아쉬워하지 않는 듯 평온하기만 했다.
" 아, 그렇지..."
버스 안에서 이것저것 소지품을 점검하던 세현은 따로 소지하고 있던 작은 가방 속에서 자신의 여권과 함께 넣어 둔 [ 이해인 ]이란 여자의 여권을 발견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여권을 다시 꺼내 열어보자 그리 좋지 않던 이미지의 그녀가 떠올라 자연스레 인상이 구겨졌다.
"이 여자, 벌써 돌아 갔으려나...? 띨 해가지고...
나나 되니까 이런 호의라도 베풀어 주는 거야,
멍청한 여자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한 일본 국제공항.
별 특별한 일이 없는 평일이었는 지 공항 내부의 인파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세현은 우선 귀찮은 일을 먼저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에 공항 안내데스크에 먼저 들러, 주운 여권의 신고부터 하려 했다.
그 와중에도 무의식 중에 기억 속 그녀의 큰 보라색 캐리어가 떠올라 여기저기 주변을 살펴보며 데스크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분실물 습득..."
"... I’ve lost my passport!! help me, help me...!!!"
순간, 세현과 질문을 받던 데스크 직원 모두 동시에, 누군가 징징대는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내 데스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보이는 익숙한 보라색... 캐리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얼핏 자그마한 동양 여성이 공항 직원에게 무언가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설마...이 여권 주인??
"아...뭐라고 하셨었죠?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눈앞의 데스크 직원은 다시 정면의 세현을 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데스크를 벗어나 혹시나 하면서도 징징대는 그 여자 가까이로 다가가 본 세현.
울상을 하고 있어 정확치는 않지만 기억 속의 인상착의와 비슷하다.
이제봐도 여전히 여권 속 사진과는 다른 얼굴...
분주하게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며 여자를 인도하는 공항 직원들. 여자는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며 그들을 따를 뿐이었다.
“이해인씨?”
해인은 걱정을 한 아름 떠안은 표정으로 직원을 쫓아가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 남자, 누구더라? 분명히 본적이 있는 얼굴인데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였었는지...
일본에 와서 이런 잘생긴 남자한테 도움을 받았던 적은 있었는데... 그게...
“아! 온 첫날 봤던 그 수상한 남자!!”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한 마디. 해인은 말해놓고 깜짝 놀라 본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여자가... 근데...
친절하게 가방 들어줬던 남자로 기억을 해야지,
왜 수상한 남자로 기억을 하는 거야.
세현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해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해인 역시도 가뜩이나 여권도 분실해 정신없는 상황인데, 귀찮게 뭐야...싶어 더 수상한 눈빛을 쏘아대며 말했다.
“아, 이..며칠 전에 제 가방 들어주셨던 한국 분...이시죠? 그런데 어떻게 또 여기에...”
어쭈? 이번엔 스토커라 그래라 또.
“이것 봐요. 내가 뭘 했다고 각종 범죄를 패키지로 떠다 안기려는 거예요?
공항에 비행기 타러 오지 뭐 다른 볼일 있어서 왔을 까 봐요? 무슨 피해 의식 있어요?”
빈정 상한 세현의 곱상한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친 언어들. 사실 해인의 억측에는 아무 근거가 없긴 했다.
“아니... 뭐...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의심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 그러고 보니, 어머...!! 이거 봐!!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세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해인을 노려보며 한심하다는 투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데스크 직원에게 넘기려던 여권을 해인에게 던졌다.
자신에게 던진 듯한 무엇을 잡으려 반사적으로 허우적대다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해인.
“가져가요. 댁 거 맞죠? 이젠 도둑으로 몰지 그래요? 수상한 껄떡이에 스토커, 도둑인데 고 뒤에 경찰한테 나 좀 잡아가라고 해 보던가요!!”
해인은 바닥에 떨어진 것이 자신의 여권임을 확인하고는 기쁨에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기쁨의 뒤편으로, 뭔가 눈앞의 이 남자에게는 큰 실수를 한 느낌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되짚어 보면,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고, 집을 안내해주려 했고, 심지어 잃어버린 여권마저 찾아준 친절하기 그지없는 남자인데...
더군다나 이렇게나 잘 생긴...
“여권...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오해한 거 죄송해요... 사과 드릴께요. 근데 이거 어디에서...?”
“딱 한번 마주쳤어요! 댁하고 나하고...
당신이 나 수상한 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급하게 돌아설 때 길바닥에 흘리고 갔습디다!!
여행자가 여권은 항상 소지해야지.
그런 것도 몰라요? 설마 가는 날이라고 짐 뒤지다 오늘 알게 된 거 아냐?”
“아...아니예요! 나도 없어 진 거 알고 있었어요!!”
“암튼, 나는 수상하게 댁한테 껄덕대다 쫓아와서 도둑질 한 물건마저 다시 돌려줬습니다? 됐죠? 어디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다시 보는 일 없도록 합시다.”
여전히 상한 자존심에 차가운 말을 내뱉고 팽 돌아서 버린 세현.
그 앞에서 해인이 뭐라고 얘기를 더 해야 할 지 몰라 어버버 대는 사이에 세현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뭐라고 인사라도 더 했어야 되는 건가... 가뜩이나 뭐가 뭔지도 모를 여행시작인데, 왜 이렇게 처음부터 꼬이는 거야...’
그래도 다행히 여권을 찾아 당초의 계획대로 멀리 바다 건너 나갈 수 있게 된 해인.
무엇보다 큰소리 떵떵 치며 집에서 뛰쳐나온 마당에, 실수로 다시 들어가야 할지도 몰라 조마조마 했던 순간이었다. (모양 빠지게...)
한 시간여 뒤.
해인은 무사히 출발 게이트로 진입해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안절부절하던 해프닝 끝에 조금은 안정되어 이제 출발 만을 남겨둔 상황이라서 인지,
여유있게 손가방 속에서 책을 꺼내어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헉, 뭐야 저 여자!!!'
다시는 보지 말자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 멋진 모습으로 돌아섰던 세현 이었는데,
게이트를 통과해 비행기에 들어와 자신의 좌석을 찾고 있던 중, 자리보다 먼저 눈에 띄고만 이 여자의 얼굴.
‘저... 저 여자, 왜 또 여기 들어와 앉아 있는 거야? 혹시 같은 비행기?!! 한국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은근슬쩍 얼굴을 가리며,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 해인을 지나치는 세현.
그러나 좌석 표를 확인해 찾은 자신의 자리는 공교롭게도 그녀의 바로 앞자리였다.
‘게다가 앞뒤 자리?! 이거... 나랑 목적지도 같다는 거 아냐... 아, 씨... 불편해... 신경 쓰이게 시리...’
다행스럽게도(?) 해인은 읽고 있던 책에 푹 빠져있었는지, 바로 눈앞으로 스쳐가는 세현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른 의미로 뒤통수가 저릿저릿 한 가시방석 같은 자리였지만,
자신의 큰 뜻을 위해 출발 하는 두 번째 출국 현장, 세현은 다시 감정을 다잡았다.
'에잇, 이 중요한 순간에 이딴 감정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야...!!'
세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세를 바로잡고 손가방에서 역시 책을 꺼내들었다.
일본에서 구입했던 무수한 책들을 물리치고 그가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연 책은 바로 너덜너덜해진 아버지의 소설책,
「그들만의 세상 」
***
아버지에게 불만만 가득했던 학창시절.
세현은 세계가 열광했던 아버지의 소설을 결코 보려 하지 않았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맞바꾸며, 결국엔 일찍이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 크기를 알 수없는 복수심으로...
“와, 너네 집 진짜 크다. 역시 스타 작가의 집은 다른 건가...!!”
“쳇, 크면 뭐 하냐. 집 주인이라고 하는 양반은 코빼기도 안 비치는 데.”
“어, 아버지 지금 안 계셔? 아씨...계실 줄 알고,
나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가...”
“지금 안 계신 게 아니라 쭉 안 계셨다! 연중행사야 연중행사. 집 들어오는 게...
니 언제오든 장날 일거다 아마...”
[ 그들만의 세상 ]의 출간 후 세간의 인기가 치솟아 세현의 아버지가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있을 즈음.
고등학생이었던 기태는 세현의 집에 자주 놀러왔었다.
크나큰 서재, 신이 나서 이쪽저쪽에 꽂혀있던 책을 뒤져보던 기태는 항상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넌 좋겠다. 아버지가 천재작가라서... 옆에서 얼마나 배우는 게 많겠어?”
“흥, 귀 먹었냐? 좀 전에 내가 뭐라 그랬어? 집에서 보는 게 연중행사라고!! 뭐, 배워? 웃기고 있네...!!
너처럼 작가 지망생한테나 위대해 보이겠지. 아버지로선 낙제야. 자기 밖에 모른다고!!”
“얌마, 그래도 아버지를 그렇게 말하는 게 어딨어. 그래도 쓰신 글들 보면 배워갈 게 얼마나 많은데...”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좋은 말, 위대한 세계관을 가졌다는 사람이 자기 최측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내팽개치고 있는 꼴 아냐? 위선적인 거지.
작가란 작자들은 다 그런가...?!
혹시 몰라 하는 말인데 나중에라도 너는 그렇게 되지 마라!”
“뭐야, 쓰신 책들 안 본거야? 최측근이란 놈이 이렇게 작가의 고충을 몰라주네. 임마, 창작의 세계라는 건 원래 외로운 거야!”
“몰라, 그딴 거 알고 싶지도 않아, 야, 너 그딴 소리 계속 할 거면 가라!!”
“덕분에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으면서 불만은... 있는 놈들이 더해요, 암튼... 알았다, 간다, 가...!!
야, 너 담에 아버지 오시면 꼭 나한테 먼저 연락해 주기다!!”
세현의 아버지야말로 작가로서 성공의 정점에 있어 보여서 였을까.
기태는 세현의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마치 꿈속으로 놀러 온 어린아이 마냥 신이 나서 들떠있었다.
그렇지만 세현은 더 어린 시절 돌아가셔서 기억도 남아 있지 않은 어머니에의 그리움을 가질 새도 없이, 온통 아버지에 대한 미움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버지의 탓이 분명하다 여겼다.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켜켜히 쌓여만 가던 어느 날,
갑작스레 날아든 아버지의 부고.
끝내 아버지는 아들에게 용서받지 못한 채, 그나마 남은 가족들과도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분노...
이는 오로지 세현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
비행기는 전속력으로 내달려 드디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창밖으로 비치는, 점점 멀어져 가는 일본.
세현은 어느덧 뒷자리의 해인에게 느껴지는 불편함 따위는 잊은 채, 섬을 벗어나 구름을 뚫고 올라간 창밖의 모습을 보며 감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꿀꺽...!"
창문으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이 드는 건 뒷자리의 해인도 마찬가지 였다.
「멀리 한국 떠나서 공부해 보고 싶은 게 있어」
...라며, 힘든 결심으로 일본을 거쳐 여기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해인.
억지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려 하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앞날의 불안감을 감추기는 쉽지 않았다.
"나가서 뭘 하고 싶은데?"
"그림...!! 옛날부터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어. 가족 챙기느라 어쩔 수 없이 꿈은 접었었지만..."
"일러스트레이터라... 그럼 직업 화가로 먹고 살고 싶다는 건가? 잘 몰라서..."
"그게 꿈이긴 하지만... 일단 자유롭게 그림 그리면서 사는 생활을 해보고 싶달까...!"
일본의 까페에서 아영에게 상담을 받던 해인.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아영이라면 지지해 주리라 기대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들려 올 부정이 두려워, 한 번도 남에게 말해 본 적이 없던 자신의 느지막한 꿈 이야기.
"멋있네...!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면 하면 되지 뭐!!
뭐가 문제니? 내가 그랬지? 처음엔 주변에서 뭐라 하다가도 시간 지나면 그러려니 해요들.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남 사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 그냥 자기네 사는 거랑 다르면 그걸 가지고 꼬투리 잡는 거지...!!"
처음으로 내비친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도 속 시원한 지지를 해주는 아영의 반응에 해인은 눈물이라도 왈칵 쏟을 지경이었다.
이제 누가 뭐래도 자신의 편이라 여기게 된 아영과의 상담을 떠올리며 해인은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해인의 손에 들려 출발 전부터 유심히 살펴보던 낡아있는 책.
그것은 해인이 이전부터 가졌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꿈을 더 부추겨, 늦은 도전을 시도할 수 있게 한 계기와도 같은 삽화들이 실린 책이었다.
보고 또 보고... 이제는 늘 지켜만 보던 그 책의 일러스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기대로 가득한,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음인지 해인은 이내 몸을 뒤로 기대어 잠을 청했다.
“툭!”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발치에 무언가 걸린 듯한 느낌에 세현은 좌석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아마도 뒷좌석에서 떨어뜨렸음직한 책은 세현의 좌석으로까지 넘어와 있었다.
“뭐야? 이건 또...”
세현은 책을 주워들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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