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6화>

[ 6화_아는 사이 ]

by youtoo

" 잠깐요, 이해인씨!"

비행기를 벗어나 밖이 훤히 비추어보이는 투명한 통로를 거쳐 공항에 진입 할 때 즈음, 세현은 해인을 불러 세웠다.

"네?"

"저... 아까 그 책..."

문득, 삽화 주변의 메모로 가득했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볼까 했던 세현은 순간 아차 싶었다.

'맞다, 그 책... 내가 주워서 몰래 본 거 모르잖아, 괜히 또 난리 치면 귀찮아 질...’

"책...? 무슨 책이요??"

"아, 아니에요. 차...착각했다. 가던 길 가요, 그럼."

"뭐야, 불러놓곤... 안 그래도 지금 갈 거예요! 댁이나 갈 길가요!!"

비행기를 나와 무심하게 각자의 길을 향하게 된 두 사람.



하늘 위의 좁은 공간 안에서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겪어가며 드디어 도착한 이 곳, 프랑스.

세현은 어릴 적 잠시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머물었던 기억이 있었다.

희미한 옛 일이었지만 무의식 중 남아있는 이미지 덕분일지, 성인이 되어 처음 찾는 이 곳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세현이 향하는 곳은 프랑스 남부의 자그마한 도시
[ 아를 Arles ]. 파리 공항에서도 고속열차로 몇 시간은 더 가야 하는 장소였다.

아버지의 소설 [ 그들만의 세상 ]이 쓰여 졌고,
실제로 소설 내의 배경이기도 했던 곳.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모두 담겨있는 장소, 이 곳은 세현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된 지금.
이곳에서 무언가 힌트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고속철도는 빠르게 이동했다.
차창 너머로 비친 남부 프랑스의 풍경, 그러나 왜인지 일본에서 공항으로 향할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바다 건너 찾아온 이방인을 그리 반기지 않는 느낌마저 그 때와 닮아 있는 느낌.

'훗, 그래,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세현은 괜스레 툴툴대는 혼잣말로 슬쩍 다짐을 굳혔다.




*




파리 공항 내부로 진입한 해인은 일본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긴장으로 온몸을 떨었다.

마중을 나와 줄 이도, 애초부터 별다른 연고지도 없는 여정이었기에 그야말로 정글에 처음 들어온 도시인 마냥 혼자서 모든 상황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막연하게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꾸준히 공부를 계속 해 와,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까진 구사할 수 있다는 점.

어마어마한 무게의 보라색 트렁크를 끌고 낑낑대며 공항에서 이동을 서두르던 해인.

낯선 장소와 불안한 상황 속에서 더 떨리는 건, 공항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타지 남자들의 눈빛이었다.

"아, 안돼, 여기서 어리바리한 표정 짓고 있으면 동양 여자라고 우습게 볼 거야!"

그나마 공항이라는 공간에서는 북적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공항에서 멀어질수록 얘기는 달라졌다.

'아, 그... 놈한테 좀 도움을 받을 걸 그랬나... 아니, 아니! 나 지금 무슨 생각하니!!'

호시탐탐 이 자그마한 동양 여성을 노리는 듯한 시선을 피해 공항에서 나오는 열차에 올라 탄 해인.

‘후우...유럽에서 동양 여자가 인기 많다더니, 이렇게 신기하게 쳐다볼 줄은 몰랐는데...

나라서 쳐다보는 거야, 동양 여자 혼자라서 쳐다보는 거야... 이런 상황도 익숙해 져야 하는 건가...’

쏟아지는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해인은 되려 자신을 둘러싼 서양인들을 신기하게 관찰해댔다.

이쪽저쪽 사람들 구경에 눈이 마주쳐 버려 요상한 눈빛을 보내는 무리들도 적지 않았다.

'후우... 됐어, 됐어!! 그래도 온다온다 해서 결국 여기까지 왔잖아, 쫄지 말자, 이해인!!'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을 하는 사이, 드디어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었던 단편적인 프랑스의 이미지는 그저 일부에 불과할 뿐,

그녀가 지금 도착한 곳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아기자기한 시골이미지에 가까운 역이었다.

해인은 역 앞으로 나와 신기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작은 역이라 원래부터 이런 분위기인지, 적막감까지 감도는 출구 밖 풍경.

역에는 지금 열차에서 같이 내린 인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잠시 동안 귀에 맴돌 뿐이었다.

"가만 있자, 여기서 또 버스를 타고..."


"퍼억!!"


충격과 함께 얼얼한 손목의 아림이 느껴지는 순간, 버스표를 꺼내기 위해 들고 있었던 지갑과 핸드폰이 사라졌음을 눈치 챘다.

누군가에 의해 강하게 밀쳐져 해인의 가벼운 몸은 뒤쪽으로 밀려 날 정도였지만, 잽싸게 고개를 돌려 그녀의 앞으로 전력을 다해 내달리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저...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짐마저 내팽개친 채 그를 쫓기 시작한 해인.

"야!!! 이... 도둑 새끼야!! 거기 안 설래!!??"

뒷모습으로 보기에 그리 큰 체형은 아니었으나 남성과의 뜀박질 대결에는 승산이 없었던 지,

도둑은 전력으로 더 속력을 내기 시작해 해인과의 거리를 점점 더 벌리고 있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도주 경로까지 거침이 없다.

반사적으로 도둑을 잡으려 따라붙고 있는 해인이었지만, 만일 잡는다 해도 남자와 대치해 어떻게 지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깜깜한 일이었다.

"야!!! 이 새끼야!!! 내 지갑 가져와!! 저 놈 좀 잡아줘요!!!"

벌어지는 간격, 다급함에 한국말로 냅다 질러대는 해인, 목청이 터질 정도로 멀어지는 도둑의 등 뒤로 소리 쳐댔다.

"야!!!! 거기 서라고 이...개 새끼야!!!"

다 쉬어버린 목으로 마지막 절규를 해댄 해인.
그렇지만 이 빌어먹을 도둑놈은 이제 닿을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져만 갔다.

"엣?"

희미하게 해인의 절규를 들은 역 주변의 한 동양 남성.

그가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해인의 지갑을 갈취한 도둑이 이 남성을 스치고 달려 나아갔다.

멀리 뒤쪽으로 한 여인이 방금 스친 도둑을 힘겹게 쫓아오고 있음을 감지한 이 동양 남성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흐음...!”

잠시 생각한 후, 도둑을 뒤따라 달리기 시작한 이 동양 남성. 마침, 도둑은 해인과의 한바탕 질주에 지쳐 속도가 점점 떨어져 가는 듯 했다.

동양 남성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따라붙었다.

도둑은 해인을 따돌렸다는 생각에 방심하다, 갑작스레 뒤에서 누군가 무섭게 쫓아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다시 속도를 올려 달아나더니,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휘이~~!!”

동료를 부르는 암호였는지, 도둑이 내는 소리에 역의 다른 출입구에 있었던 한 남자가

도둑의 곁으로 뛰어 들어가 지갑을 넘겨받고는 다른 방향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것도 한 패구나!!!”

숨이 찰 정도로 헐떡이며 따라와 멀리서 모든 상황을 목격한 해인은 반 포기상태에 다다라 탄식 섞인 한마디를 내 뱉었다.

도둑을 쫓던 동양 남성 역시도 눈앞에서 팀플레이 하는 두 도둑의 흩어짐에 갈팡질팡 하는 사이.

“퍼어억!!!”

“어이쿠야!!”

지갑을 넘겨받아 도망치던 도둑2는 진행방향에서 나타난 누군가를 피하지 못하고 그만 부딪히고 말았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던 터라 꽤나 충격이 있던 듯, 쓰러지며 손에 쥐었던 핸드폰과 지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뭐야!!?”

도둑2는 몹시 험한 인상으로 자신과 부딪힌 상대를 노려보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데 없습니까?”

사과를 먼저 하며 접근하는 상대의 태도에
도둑2는 급하게 옆에 떨어진 지갑만을 주워 집어 건물의 좁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하, 여기는 소문대로구나...! 아주”

도둑2와 부딪힌 젊은 남성.
그는 바로 세현이었다.

뒤늦게 계속해서 도둑을 뒤쫓던 동양남성은 도둑이 도망쳐 들어간 골목으로 계속 따라 들어가려 하였다.

“어이, 스톱, 스톱!!!”

세현은 도둑을 쫓던 동양 남성을 가로 막았다.

“뭡니까? 당신도 한패입니까?”

“풋, 참, 나 더럽게 억울하네. 여기서도 좋은 일 해주고 오해받는 거야? 당신이 지갑 주인이요?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프랑스에 도착해 누군가를 만나 처음 하는 대화가 아이러니하게도 또 오해를 받는 순간의 변명이라니.

동양 남성과 세현은 서로를 노려보며 서서 대치하였다.

“아...저...저기..헉...헉...제...지.지..지...”

사색이 된 얼굴에 땀투성이가 된 해인이 대치하고 있는 두 남성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옷이며 신발 끈이며 다 풀어진 모습으로.

세현은 사색이 된 해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엥? 뭐야, 또 당신이야?? 공항에서 갈 길 가나 했더니 또 같은 방향인거야!? 댁이 스토커지? 아주!!”

해인 역시 세현을 알아보았지만 숨이 차서 이야기를 더 이어가지 못했다.

“한국 분이세요? 제가 도둑 쫓다가 이 사람 발견했는데, 아무래도 한패 인 것 같아요.
일행 도망치도록 저를 잡는 것 같더라고요.”

동양 남성은 세현을 가르키며 유창한 한국말로 해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뭐야, 당신 일본 사람처럼 생겨가지고 한국 말 하네? 한국 사람이었어?

근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진짜 일진 더럽네...
이거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억울함을 호소하며 들어 올린 세현의 양손에는 해인의 핸드폰과 지갑이 들려 있었다.

동양 남성은 흠짓 놀라며 손에 들린 물품들을 확인하며 물었다.

“엇, 이거 아까 그 도둑놈이 떨어뜨렸다가 주워갔었는데 이게 어떻게...??”

“도둑질엔 도둑질로 대항해야지. 바꿔치기 했다, 어쩔래!! 당신 신나게 계속 쫓아가려 하던데,
저 도둑놈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거 못 봤어?

뒤로 가면 패거리들한테 다구리 당하는 수가 있다고, 어차피 이것만 찾으면 되는 상황 이었잖아!!"

“패거리...? 다...구리는 뭐죠? 저 한쿡 사람 아닙니다. 일본 사람이무니다.”

"뭐야, 일본 사람 이었어? 근데 왜 서툰 한국말 하는 서양사람 흉내를 내고 앉았어?"

두 남자가 계속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 겨우 숨을 돌린 해인이 입을 떼었다.

“하아, 하아... 제 지갑...찾은 거예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해인은 슬쩍 세현의 눈치를 보며 추격전에 동참한 일본인이라 밝힌 남성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했다.

“뭐야, 이거 또 당신 거 였어?... 뭘 이렇게 맨 날 흘리고 다니는 거야...참 나 진짜 손 많이 가는 여자네, 진짜...”

“이거 봐요. 어쩌다가 여기까지도 같이 오게 된 줄은 모르겠지만, 이번엔 이 분이 도와주신 거잖아요! 왜 그 쪽에서 생색이야!!?”

“이 여자가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도둑이 훔쳐간 지갑 핸드폰 다시 훔쳐다 준 게 나라고, 이 일본 남자는 그냥 도둑 따라 마라톤 한 거야!”

“그건 이쪽 말 들어봐야 알겠고,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진짜 뭐하는 사람이에요? 여기 나타났다가, 저기 나타났다가... 대체 정체가 뭐야!!?”

“우와, 이 여자가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여권, 지갑 찾아준 은인을 백수 취급하네...

확 도둑한테 지갑 돌려주러 갈까보다!! 도둑한테 잃어버린 물건이라고 갖다 줘도 이것보다는 좋은 소리 듣겠네!!”

타지에서 몇 번을 마주친 사이라 친한 척이라도 하려는 건지, 다소 격하게 이어지는 대화.

가운데 끼어 눈동자만 이리저리 돌리며 가만히 듣고 있던 일본 남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두 분 아는 사이세요? 일행이십니까?”

“아니에요!! / 아니요!!”

해인과 세현은 서로를 잡아먹기라고 할 듯 한 눈으로 노려보며 동시에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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