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8화>

[ 8화_잔인한 형벌 ]

by youtoo

"네가 임세현이니? 임형우 작가님 아들...?"

“뭐야 넌?”

중학 글쓰기 대회 수상대에서 선생님에게 전해들은 대로, 존경하는 작가의 아들이 있다는 반으로 다짜고짜 찾아들어온 기태.

어떤 방법을 써서건 위대한 작가에 가까이 가고픈 바람 뿐이던 기태에게 있어 이것은 큰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나 한기태라고 하는데... 너희 아버지 소설 열혈 팬이야. 그 분 아들이 우리 학교에 있다고 들었는데,
너...구나?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작가 선생님을 언제든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기도 하고...!”

“뭐? 작가 선생님? 뭐하는 놈인지 모르지만,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그렇게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뵈면 될 일 아냐...? 팬레터라도 보내던지, 왜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거야?

뭐, 나까지 ‘아이고, 아버지 소설 봐주셔서 감사 합니다’ 해야 되는 거냐?"

다른 반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저 임형우 작가의 아들 이라는 말에 세현에게 찾아가 용기 내어 말을 걸어왔던 기태.

나름 떨리는 마음으로 세현 아버지에의 팬심을 고백했건만, 세현은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학생 신분임에도 세현은 이런 식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들먹이며 접근해 오는 많은 이들을 아버지만큼이나 싫어했다.

“아, 그... 그래? 나는 7반에 있어. 내가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어서 준비 중이거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작가가 되고 싶으면 글이나 열심히 쓰면 되겠네!! 왜 처음 보는 놈한테 와서 꿈 얘기는 하고 난리야? 나한테 잘 보이면 뭐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거 같으냐?”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러버린 세현. 말을 건 기태는 더욱 당황했다.

일순간 싸해진 교실 분위기.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세현과 같은 반 교실 뒷편에 앉아있던 다른 껄렁 껄렁해 보이는 학생이었다.

“아, 거 더럽게 시끄럽네, 야, 임세현! 듣자듣자 하니까 이 새끼 말하는 게 아주 싸가지가 더럽게 없구만,

야! 넌 이 새끼야, 아버지 덕분에 잘 살고 있으면 감사한 줄 알고 살아야지. 이거 대체 몇 번째야? 맨날 지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그냥 못 잡아먹어 안달이...”

[ 퍼퍽!! ]

끼어든 반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날아 든 세현의 주먹.

[ 아버지 덕분에, 아버지 잘 만나... ] 세현이 가장 굴욕감을 느끼며 싫어하는 말이었다.

싸움은 본격적으로 난타전이 되어갔다.

“네깟 것들이 뭘 안다고 아버지를 잘 만났네, 어쩌네 개소리들이야? 니들이 우리 아버지 만나나 봤어?

뭐,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 밑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은 황송한 줄 알고 죽은 듯이 살아야 되는 거냐? 잘 살아? 뭐가 잘사는 거냐?
돈만 있음 장땡이냐? 이 한심한 새끼들아!”

“이 새끼가...!”

다시 세현에게 달려드는 반 친구.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기태는 그 친구를 말렸다.

“알았어. 미안, 미안, 내가 잘못한 거 같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아버지 얘기부터 꺼내면서 친한 척 한 건 가증스러워 보일만 해, 생각해보니까...”

기태가 세현에게 조용히 말했다.
격하게 흥분했다가 겨우 진정을 찾아가는 듯한 세현은 기태의 사과에 조금은 기분이 풀어진 듯 했지만,

세현과 싸움 중인 상대방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대며 세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태는 세현보다도 싸움의 상대였던 친구를 진정시키려 필사적으로 뜯어 말렸다.

“에이, 임세현 너 이 새끼. 야, 너 앞으로 조심해라!
작가고 나발이고... 더 소란 피우면 죽는다!”

“너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나 마라,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 오지랖 부리다가 다음 번엔 진짜 뒈지는 수가 있어!!"

얼굴에 영광의 상처들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진 후, 으르렁대던 두 남자의 대치가 종결될 무렵.

얼핏 세현은 중간에서 필사적으로 싸움을 말리려 하던 기태의 절실한 눈동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쳇, 그러고 지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질색하던 놈이, 이제는...”

기태는 서점에서의 깜찍한(?) 장난질 이 후 자신의 작업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었지만, 돌아가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할 일들.

개인적으로 집필 중인 소설과 함께 전 소설을 출간했던 출판사에도 짧게 소설 연재를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돈 되는 글쓰기는 모두 찾아가며 작업 중이다.

“아, 글 안 써질 때는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되는데, 시간도 돈도 없으니...”

산책이랍시고 겨우 동네 서점이나 다녀 온 기태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필에 집중하려 컴퓨터를 켰다.

순간 어딘가에서 걸려 온 전화.

“안녕하세요, 작가님. ㅇㅇ문예지 편집부입니다. 집필은 잘 진행하고 계신지요.”

“예, 뭐... 마감은 내일까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나요?”

“아,예, 저... 저희 쪽에서 전화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오라...”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나름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오던 기태.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를 다루어 왔기에, 현실 관계 속에서의 말투나 톤만으로도 그다지 좋지 않은 징조임을 단박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문학계... 요즘 많이 어려운 거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 쪽도 마찬가지로 영향이 오지 않는다고 못하겠고요...”

“...말씀 하세요.”

“음... 운영에 어려운 점도 있고 해서 이번에 저희 문예지 작가 분들의 원고료를... 피치 못하게 삭감하게 되었는데요...”

“... 사정은 이해하지만, 불과 몇 달 전에도 한번 삭감하지 않았습니까...”

“죄송합니다. 작가님... 문학계가 요새 워낙...좀...”

“...하나만 여쭤 볼께요, 연재하는 작가들 일괄적으로 삭감인 건가요, 아니면 일부 작가들만 삭감이 결정된 건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요즘 문학계가...”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그럼 내일까지는 원고마감 맞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잔인한 현실.
잘나가는 놈들은 밀어주면서 못나가는 놈들은 점점 내쳐질 수밖에 없구나...

몇 번이고 강조하던 ‘어렵다는 문학계’ 라는 곳은 결국 어정쩡한 작가가 서있을 곳 따위는 준비해 두지 않는 듯 했다.

어디든 마찬가지 이겠지만,
좋아서 시작한 직업이라도 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나라의 직업 구조.

'잘한다'의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더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고, 해온 게 도적질이면 결국 그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이 상황을 극복해 내는 것조차도 역시 글로서 더 인정받는 수밖에는 없다고... 인정해야만 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의자에 기대어 누운 기태.

“으...으...!!”




[ 부르르르르 ]

또 뭐냐...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지만, 어딘가에서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

조심스레 확인해보니...

여자 친구였다.
조금 전의 일로 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여자 친구에게만은 드러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 오빠... 우리 이제 헤어지자. ]

"!!!!????"

화들짝 놀란 기태는 바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한없이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여자친구.
기태는 숨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갔다.

“음... 희진아, 오빠가... 지금 좀 힘들어, 장난을... 받아 줄 수가 없거든? 장난이라면 좀 나중에 해줄래...?”

“장난...아니야, 오빠... 나 이제 좀 힘든 거 같아...”

“무슨... 일, 있어? 지금 만날까? 뭔데, 무슨 힘든 일 때문에...”

점점 다급해져 가는 기태.
그렇지만 억누르고 억눌러야만 했다.

“오빠는... 작가잖아. 근데 말야...계속 생각봐도... 내가 오빠 앞날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 희진아, 그렇게 말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잖아. 오빠 이제...”

“솔직히 많이 힘들어. 남들처럼 좋은 곳에서 데이트도 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가끔씩은 서프라이즈한 이벤트 같은 거 기대할 수도 있는 거잖아...연인이라면...근데...”

“......”

“그런 거 참아가면서도 자신감 가득한 오빠 모습이 좋았는데... 그렇게 생각 안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너무 날 힘들게 해...”

“희진아... 그래도...오빠가...”

“나도 이제... 서른인데... 그냥, 모르겠어. 그냥 싱숭생숭한데, 앞날도 너무 걱정되고...부모님도...”

“...부모님은... 물론 반대하시겠지. 이 나이 먹어 비전도 없고 벌어놓은 것도 딱히 없어 딸내미 고생만 시킬 것 같은 놈을 누가 원하시겠어...”

“...오빠, 그런 얘기 아니잖아... 그냥 개인적으로 힘든 거야, 내가...”

좋지 않은 상상이란 상상은 모두 머리에 마구 떠오르는 기태.

이것이 현실인지, 자신이 만들던 이야기 속의 한 장면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지경에 감정은 점점 격앙되기 시작했다.

“...감정이 식은 거야?, 현실이 두려운 거야?
못나가는 작가님이 남자친구라, 누구한테 내보이기 쪽 팔린 거니? 아님 누구 괜찮은 놈이라도 만나는 거야!!??”

“...또 이런 식이야. 누가 뭐라고 했어?!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사람이 요샌 왜 이렇게 기회만 있으면 열등감 폭발하고 그래!!??”

“열등감?! 열등감? 내가 선택한 길인데, 누가 열등감을 느낀다는 거야!? 니가 니 주변에 그 돈만 밝히는 기집애들 땜에 단단히 바람이 든 건 아니고!!?”

“그래!! 내 친구들 다 돈만 밝히는 나쁜 년들이고 나도 아주 그런 거 부러워 죽겠어서 못 참겠다!!

언제 뭐라도 해주고서 그런 말하면 또 몰라, 맨날 좋은 날 올 거야, 참자, 참자... 참다가 내 젊은 날 다 보내겠다고!!”

“......”

더 격해질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두 사람. 그렇지만 기약할 수 없는 성공을 그저 기다려달라고 하기엔,

이 사회에서 '평범한' 연애를 꿈꾸는 여자친구에게 너무도 커다란 빚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힘든 상황을 [ 버텨주고 ] 있는 것뿐.

한창 즐거워야 할 젊은 연인에게 즐거움보다 인내를 강요하는 모양새라니.

여자 친구의 마지막 말에 기태는 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격앙된 분위기 속, 훤히 드러나 버린 여자 친구의 본심...

아마도 가슴 속 깊은 곳의 진심, 인정하기 싫었던 현실이었기에 겉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항상 두려워하던 부분이었음이 분명했다.

“.....이렇게 까지... 얘기하게 될 줄은 몰랐어. 아무튼, 나 이제 너무 지쳐서 오빠 못 만날 것 같아.
이만 끊을게. 잘 지내.”



[ 툭 ]



이건... 이건 분명 서점에서의 장난에 대한 벌이 틀림없다.

“ 으아아아아아아아!!!!!! ”

기태는 책상위에 올려 진 집기들을 모두 뒤엎었다.

책이며 펜, 연필꽂이 등, 와장창 소리와 함께 모두 책상 밑으로 떨어져 산산이 흩어졌다.

작업실에 있을 땐 늘 혼자였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늘 자신을 지지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잔인한 현실을 실제로 마주할 때 마다 보이지 않던 지지자들은 하나 둘 씩 떠나가고 있는 기분.

“틀림없이 이건 벌을 받고 있는 거야, 괜히 쓸데없는 짓은 해가지고...”

기태는 안절부절 하다가 다시 서점으로 내달렸다.

괜히 주제도 모르고 그런 쓸 데 없는 짓을 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일 뿐이라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전력으로 달려 도착한 서점 안의 베스트셀러 가판대.

자신이 장난질을 했던 가판대에는 원래대로 세현 아버지의 소설 [ 그들만의 세상 ]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바뀌어 져 있었다.

장난이 바로 잡아졌으니 이제 현실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지 않을까.

기태는 휴대폰의 착신이력을 재차 확인해 보았다. 불과 몇 분 전 통화로 찍혀있는 출판사와 여자 친구.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나마 보이는 현실 지지자들 중 한명이라 생각했던 대상은 분명하게 떨어져 나간 것이 확실했다.

기태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멍하니, 초점 없이, 앞을 응시 하며 터덜터덜 서점 밖으로 향하던 그의 두 뺨에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뭐냐 이건...”

일말의 감정 소모조차 지쳐버린 듯, 기태는 표정도 없이 계속 흐르는 눈물만 훔쳐대고 있었다.

이건 혹시...
베스트셀러 작가를 멋대로 꿈꾸었던 것에 대한 형벌이 아닐까...

그렇다 해도 견디어야 할 현실은 잔인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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