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_ 소주와 와인 ]
“야, 기태 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옛날부터 작가 한다고 그랬었잖아? 결국 전공도 그 쪽으로 간 거지?"
“어, 문예장착 쪽으로 갔지... 근데 뭐 학교 공부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중간에 때려 쳤어.”
“그래? 아예 진학도 그쪽으로 했었구나, 고등학교 이후로 영 소식이 안 들려서... 그래도 졸업이라도 하지 왜...”
“뭐 애초에 대학 졸업해서 회사 들어갈 것도 아니고, 어차피 글쟁이로 살 생각이었는데 좀 스트레스 받더라고... 지금은 뭐 어째저째 출판사 계약해서 책 내고 있어.”
“그래...! 뭐 직장인이래도 뭐, 맨날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실적 안나오면 까이고 맨날 그 놈의 돈 돈 돈... 그냥 왜 사는 지도 모르고 사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긴 해.”
“야, 그래도 이 새끼, 이번에 과장 됐다더라?
연봉이 무려... 아, 그리고 차 뽑았데.”
“뭐, 과장? 무슨 차? 무슨 차? 오늘 니가 쏴라!
비싼 거 먹어야 겠다!!”
분명 고등학교 때의 모습이 남아있는 친구들의 외모. 그러나 지금은 떡하니 양복을 차려입은 직장인들이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알코올의 힘과 함께 이야기 나눌 상대를 찾았지만 이들의 대화는 기태에게 점점 아무 의미 없는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야, 제일건설 주식 이번에 대박 났다더라? 그거 알아?”
“아, 씨, 소문 듣고 사 뒀다가 시원찮아 팔았는데, 짜증나네, 좀 더 기다릴걸...!”
“아, 너네 그건 들었냐? H모 그룹 회사 아들내미 이번에 뒷돈 받다가 덜미 잡혔단다!!”
“어이구, 있는 놈들이 더해요. 걔 연예인 누구한테 집적대다가 퇴짜 맞았던 애지? 진짜...가지가지해."
꿔다놓은 보릿자루.
‘나 왜 여기에 앉아있는 거지? 이런 거 싫어서 친구들 피했던 거면서...’
기태는 ‘혹시나’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에 ‘역시나’를 절감,
그저 술잔만 조용히 들이키며 어정쩡한 표정을 한 채, 말하는 친구의 얼굴만 이쪽저쪽 바라보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인이 동창회에서 느꼈던 회의감과 다를 바 없는 상대적 박탈감이었는 지도 모른다.
작가의 길을 운운하며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생활을 선택하면서부터, 친구들이 자신을 떠났다기 보다, 본인이 친구들과의 어울림을 먼저 피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 것.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친구들은 즐거워 보이는 대화 안에서 조금의 공감대도 느껴지지 않아 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왜 이런 얘기에 이렇게 열을 올리고 있는 지 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러나 이 자리에서 자신의 그런 주장을 펴기에
사방은 너무 많은 적들 뿐.
어떤 소재가 되었건 가볍기 그지없었다.
오래간만에 만났다고 하면서, 각자의 인생 얘기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 맞다! 너네들, 세현이 소식 들었어?”
“걔도 참 특이했지. 스타작가 아버지 밑에서 그렇게 신나게 아버지 부정하면서 이를 득득 갈더니 결국 열라 좋은 금융기업 입사했잖아."
"지독한 놈은 지독한 놈이야.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되잖아? 그렇게 집이 잘 사는데...”
“아, 몇 년 전에 거기도 때려치웠다는 거 같던데?”
“뭐? 뭐야 걔...? 미친 거 아냐? 거기 연봉이 얼만데,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이구만.”
“왜 때려쳤데?”
“지 아버지 영향인가? 작가 비슷한 거 하겠다고 나간 거 아니겠어? 그렇게 싫다고 난리를 치더니만... "
"근데 작가 할 거면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좋은 델 나오고 난리야, 빠진 자리 내가 어떻게 안 되나...”
“미친 놈아, 꿈 깨라. 그나저나 참 난 놈은 난 놈이다. 그거 결심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을 텐데.
이러다 지 아버지처럼 스타작가 막 되고 그러는 거 아냐? 깡 있네, 그 연봉을 포기하고...”
“아, 기태는 예전부터 세현이랑 좀 어울렸었으니까 잘 알지 않아?”
세현의 이야기가 나오고, 무슨 소리가 들리든 그저 묵묵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던 기태.
이미 이 전의 다른 개인적인 일로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는 시점.
들어간 술과 들려오는 친구들의 자극적인 표현들에 이미 취기가 올라온 상태이기도 했던 기태는 슬슬 참지 못하고 입을 떼기 시작했다.
“야, 너네들.”
친구들은 묵묵하던 기태가 입을 열자 기태에게 주목했다.
“니들 입으로 맨날 돈돈하며 살게 된 게 짜증난다고, 말하면서 지금 말끝마다 돈, 돈 하는 거 알고 있냐?
아직 30대 중반도 안 된 놈들이 그렇게 돈돈하면서 속물처럼 살아야겠냐? 그 돈으로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냐?"
일 순간에 싸늘해진 술자리의 분위기.
친구들은 기태를 빤히 쳐다보았다.
‘야, 저 새끼 저거 왜 저래...’
‘몰라...왜 저래 폭발직전이야...!’
“작가할거면 일을 하면서 하지 왜 그만두느냐고? 니들 눈엔 작가가 무슨 백수처럼 놀고먹는 직업으로 보이냐?
드라마니 영화니, 콘서트니... 니들 돈 벌어 여자 만나 선물하고 같이 해대는 ‘문화생활’ 컨텐츠들이 다 어디 하늘에서 그냥 떨어져서 아무데나 가져다 놓으면 완성이 되는 줄 알아? 돈이면 다 살수 있는 거고?”
“야, 야 왜 흥분하고 그래? 알았어, 알았어.,,!”
“죽으라고 머리 짜내면서 그 안에도 경쟁하고, 경쟁하고... 들어가기 어렵네 어쩌네 해도 네놈들은 회사 위하는 척 빈둥대면서도 꼬박 꼬박 월급 받아 챙기지?
근데 작가는 어떤 지 아냐? 돈이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를 작품 활동 하면서 아슬 아슬하게 산다!
매일 매일 고민하고, 그래도 좋아하는 일 하고 있다는 것에 억지로 만족하면서...!!
그리고 그게 지금,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는 친구 눈 앞에 두고 할 소리냐?!”
“아니, 그러게 누가 그런 힘든 일 선택하래...?”
“......”
기태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의 앞에서 더 이상 꺼낼 말이 없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을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간만에 좀 안 좋은 일 때문에 회포 좀 풀어볼까 하고 참석은 했는데, 내가 미친놈이었다.
그리고 임세현이? 그 새끼 잘 살고, 좋은 회사 들어갔던 거 알아! 근데 작가... 그거 아무나 되는 거 아니다.
뒤늦게 되고 싶다고 이 세계 들어와 막 시작하려고 하는 놈한테 뭐 스타작가가 되느니 어쩌느니...
그런 거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마라!!
여기, 내가 먹은 술값은 내고 간다.”
그대로 일어서서 술집을 나가려는 기태.
친구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그리고 너네! 벌써부터 그렇게 돈돈하는 습관 들이다 늙으면 답 없다? 지금 네놈들 회사를 평생 다닐 거 같으냐?
그러다 나중에 짤리고 빌빌대면서 돈 돈... 잔소리 하는 꼰대 밖에 더 되냐? 생산적으로 살아라 생산적으로 좀...!”
마지막으로 저주와도 같은 말을 퍼부은 채, 기태는 술집을 박차고 나갔다.
친구들의 몇 마디가 마치 자신을 보는 세상의 시선인 양 불편함을 느끼며.
“임세현이가 스타작가? 풋, 웃기고 있네...”
기태는 편의점에서 샀던 소주를 꺼내 한 입에 들이부었다.
***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15년...만이네요?.”
프랑스 아를의 골목 진입로에 위치한 레스토랑 겸 까페. 세현은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이 곳에서 누군가를 찾았다.
“음? 아...네가 그 요만하던 세현이?
어이구, 이거 뭐 완전 연예인이 되어서 나타났네.
너 아주 여자들 꽤나 울리게 잘 컸다 아주..허허!!”
“많이 울렸죠! 감당이 안될 정도로? 하핫, 여전하시네요. 아버지 장례식 이후로 처음 뵙네요.”
“그렇지, 잘 있었니? 안 그래도 생전에 니 애비가 네 얘기 참 많이 했었는데, 어떻게 할머님은 잘 계시고?”
아버지의 친구 분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세현이 이곳에서 2년 정도를 지냈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같이 어울렸던 분이었다.
지금은 노인이 다 되어버린 아저씨는 그 이후로도 이곳 아를에 쭉 머물며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결정한 이 후, 연락을 취해 놓아 아저씨는 이미 세현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상태였다.
“그래, 작가가 되겠다고? 그 좋다는 회사도 나왔다며? 참,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닐 텐데,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가 보다."
“예, 부족하지만, 늦게나마 시작해보려고요.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해야죠.”
“그래, 나도 그랬지만 뭐 새롭게 시작하려면 깡따구가 있어야지! 잘 왔어!!
흐음, 보자...그리고...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시켜 달라, 이거지? 그럼 어디 보자...
여기 직원 선발 기준 좀 까다로워, 여기 이래뵈도 이 근방에서도 아주 인기 넘버원 가게라고!”
“옛,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있습니다!"
“그래... 가만, 일본에도 다녀왔다면서?
그럼 일본말도 되겠고...일본에선 무슨 일 했었니?”
“별거 다했었죠, 서빙에, 주방보조, 요리에 배달까지도 한 적 있어요.”
“이 비주얼에, 서빙에, 주방보조에, 요리 경력까지 있어? 이거야 원, 투뿔 등급 알바 생이로군,
합격이다 하핫!!”
“감사합니다. 아저씨!!”
20여 년 전 글을 쓰러 온 아버지와 유럽 전역으로 일을 하러 다니던 아저씨는 이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이였다.
호탕한 성격의 아저씨는 세심하면서도 은근히 재미난 세현의 아버지를 알게 되어 티격태격 대며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고.
이 후로도 여러 방면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가며 절친이 되었다 했다.
아저씨의 엄격한(?)기준으로 직원으로 선발 된 세현. 바로 당일부터 서빙조로 일하게 되었다.
깔끔한 직원 유니폼이 마련된 레스토랑까지는 아니었지만 정갈한 복장에 흰 앞치마를 둘러 통일 감을 주는,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근방에선 꽤나 알려진 가게였다.
헤어스타일을 가지런하게 하고, 하늘색 셔츠, 허리춤에는 앞치마를 동여맨 채 바로 현장으로 투입된 세현.
일본 레스토랑에서도 넘버원 인기의 스마일 맨 직원으로 지냈던 1년여의 기간의 경험 덕분일지,
어디에 있건 원래부터 있던 직원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기존의 직원들에게 메뉴에 대해 설명을 들어 대부분의 숙지가 끝났을 무렵,
세현은 다시 기분 좋은 미소와 여유로운 몸동작을 탑재한 완벽한 꽃미남 스마일 맨으로 돌아왔다.
“Bonjour!”
완벽한 프랑스어에 여유까지 갖춘 새로운 동양인 알바생의 등장에, 레스토랑에 출입하는 손님들은 호기심을 갖기 충분했다.
세현의 바지 뒷주머니에 늘 소지하던 메모장.
생계를 이유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고자 했던 그 였지만,
이 곳에서의 업무 역시도 소설을 위한 에피소드 경험의 일부였다.
한국과도, 일본과도 달랐다.
처음으로 서양에서 맞이하는 손님들의 행태, 표정 등을 관찰하며 일을 하는 중간에도 메모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말싸움을 하는 부부, 정다운 노년 부부의 일상,
혼자 분위기 있게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이,
가족 단위로 놀러와 식사를 하는 사람들.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모습이지만 그 모습에 이야기를 덧대어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내곤 했다.
특히 프랑스 여성들은 이 낯설지만 살갑게 다가오는 새 아르바이트생에게 미소를 보이며 호감을 표시하곤 했다.
골목의 진입로에 있어 시간대에 관계없이 꽤 많은 이들이 출입하는 편이었지만,
이 날 레스토랑은 세현이 들어와 밝아진 기분 탓인지 더욱 북적 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음, 아버지랑은 다르게 살가운 게 아주 적응력이 빠르군 그래. 그 친군 외골수라 참 친해지는데 오래 걸렸는데 말야...”
카운터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아저씨 역시도 세현의 노련한 업무 능력에 꽤나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
반면, 인맥 없이 그저 맨땅에 헤딩이라서 였을까,
몇 차례의 시도 중에도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던 해인.
"아, 며칠 일 구하러 다니느라 동네를 샅샅이 뒤졌더니 동네 지리 벌써 다 외워버리겠네...!!"
피곤한 다리를 주물러가며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문득 때가 되면 취업을 강요하던 한국의 패턴에 길들여져 있어서였는지,
신기한 외국 땅에 나와 있음에도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러지 말자고 집 나왔던 거 아니었어? 참, 나도...”
고개를 들어 천천히 동네의 모습을 살피던 해인은 지난 번 세현이 말해 주었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풍경들이 넘쳐난다던’
프로방스의 다른 지역이 궁금해졌다.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속으로 되뇌이고 있던 사이.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던 해인의 눈 앞에는 [아비뇽행]이라고 적힌 버스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아비뇽...이라...!"
방문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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