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_ 선택받은 그녀 ]
"해인씨 그러면 말이죠...
사실 여기서 같이 작업 하는 친구들하고 같이 고민 하던 중이었는데요."
무슨 제안이라도 하려는 듯한 말투에, 해인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카와모토를 바라보았다.
"예? 고민이요? 무슨..."
"저희가 작업하는 인원이 저 까지 5명 인데요, 갤러리 전시나 희망 구매자 연락망, 홍보, 전시 관련 어시스트를 해 줄 사람을 한 명 구하고 있긴 했어요."
"아..."
"뭐 저희도 생활이 그다지 넉넉치 않은 만큼, 보수를 많이 챙겨 줄 수가 없는 입장이라 고민하고 있었죠. 사람 구하기가 쉽지도 않고..."
"아... 아직 뽑고 있다는 건가요? 그 인원을??!"
"예 뭐, 이제까지는 저희가 각자 다 알아서 해왔어서 조금 버겁긴 했죠.
워낙 저흰 소규모라 사람 들이기가 애매하기도 했고요... 사실 어떻게 할 지 잘 모르던 차 였어요."
"호... 혹시 아직 유효하다면... 제가... 일해도 될까요!!?"
"아, 그 얘기 드릴려고 했는데, 말씀드렸다시피 보수를 그렇게 넉넉히 책정해 드릴 수가 없어서..."
해인은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눈을 빛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뽑아만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 생각이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죠!!"
"아, 진짜 괜찮으신 거예요? 그럼 내일 다른 친구들 하고 얘기 해 볼께요."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곁에서 잔심부름이라도 하며 이것저것 곁눈질로 배워갈 수 있는 자리.
설마 설마 했었지만, 어쩌면 가장 원하고 있던 위치의 일터였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느라 몸이 힘들어져 버리기라도 하면, 그림에의 열정이 떨어지지 않을까도 걱정했었다.
무엇보다 이 건은 그림을 배우려 만사를 다 팽개치고 온 해인에게라면, 돈주고도 얻기 힘든 기회 임은 분명했다.
낮은 보수라긴 하지만 그녀가 보고 배워 갈
[ 화가들의 모습 ] 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센티브가 준비되어 있는 셈.
"그래요, 아마 다른 친구들도 다 좋아할 거예요. 그럼 해인씨가 해야 될 일들 알려드릴께요.
이쪽으로..."
해인은 카와모토를 따라 작업실 한켠에 파티션으로만 따로 구분되어 있는 데스크로 이동했다.
계약서 서류들과 전화 컴퓨터 등으로 그다지 정돈 되지 않은 책상 위.
"하...이렇게 될 거 모르고 있었어서 정리가 하나도 안되어 있네요. 일단 저희 작업실 번호가 이거고 갤러리 홈페이지는 여기에요. 여기는 이렇게 해주셔야 되고 서류는 이렇게..."
실패만을 거듭해오다, 예상치도 못했던 구직에 성심성의껏 업무를 파악하는 해인.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가득했다.
"그림 그리신댔는데, 작업실 아직 따로 없으신거죠? 여기서 일 시작하시면 틈틈히 작업 같이 하셔도 되요. 부족한 실력이나마 혹시 조언같은 거라도 해드릴 수 있으면 해드릴께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음, 일이야 뭐 내일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고 소개하고 나서 시작하는 거고... 괜찮으시면 지금 그림 한번 그려보실래요? 어떤 그림 그리시나 궁금하기도 하고..."
"지금요? 아...! 넷!!"
카와모토는 책상을 대충 치워 스케치북과 연필, 콘테 등을 준비해 주었다.
"음 간단하게 크로키해볼까요? 연필, 콘테, 목탄 정도 있고요, 그리고 싶은 거 아무거나 한번 그려보세요. 아, 그리고 저희들은 작업할 때에..."
카와모토는 소속 화가들이 이곳 작업실에서 작업할 때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창문을 살짝 열고, 오디오로 가 버튼을 눌러 잔잔한 클래식을 배경 음악으로서 깔아 두었다.
"저도 사실 작업이 좀 남아 있거든요,
이거 하러 온 거라...하핫! 그럼 한 한시간 정도? 뒤에 구경할 수 있을까요?"
"예!! 크로키...! 한 시간이요, 알겠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작업을 위해 자리로 흩어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럽에 온 해인에게 있어 처음 주어진 그림의 기회. 해인은 무얼 그릴 지 고민에 빠졌다.
집에서 나와 일본을 거쳐 이곳 프로방스로.
어쩌면 해인의 인생 중 가장 스펙터클한 한 주 였다.
일단 해인은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당일 아비뇽에서의 해프닝을 그림에 담아보기로 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한 눈에 들어온 성벽 모양의 건물. 그 앞에서 혼자 신기해 하며 두리번 거리는 여인 한명.
그리고 그 어리버리한 여성에게 수작을 부리는 어린 남자의 무리들.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그림 속 스토리는 명료했다.
[슥, 스슥 스슥... ]
그리 크지않은 볼륨으로 깔아 놓은 클래식 배경음 위로 들리는 거친 그림 도구들 소리.
더 희미하게 들리는 듯한 벽시계의 초침 바늘 소리만이 이 공간 안으로 지속될 뿐이었다.
숨소리조차도 아끼 듯, 두 사람은 각자 본인의 작품에 몰두했다.
한 시간여가 지났을 무렵.
카와모토 역시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가 잠깐 잊기라도 했었던 양,
"아, 해인씨 잘 진행 되어가요?"
"예, 뭐... 일단 생각했던 대로는 다 된거 같아요."
"오, 보통 생각했던 데로 잘 안풀릴 때가 대부분인데, 엄청난 자신감? 하핫."
"아, 아뇨, 그...그런 건 아니구요!!"
카와모토는 해인의 자리로 다가와 그림을 보았다.
[오랜 성벽으로 상징되는 아비뇽 역 앞에서 벌어지는 젊은 남녀의 스토리.]
흔하지 않은 그림 스타일에 카와모토는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안에도 기본기는 착실하게 갖추어진 듯한 드로잉.
"재미있는데요? 그림체가 참 독특해요.
진짜 어디서 배운 적 없어요? 천잰데??"
"아니예요... 천재는 무슨... 맨날 따라만 그려보고 그런 걸요, 열심히 그려본적은 많은데 딱히 완성이라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네요...!"
"아까 해인씨가 말했던 거 기억나죠? 그게 정답이예요. [ 느낌 ]이요, 느낌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림에..."
프로 작가라는 사람에게 처음 들어본 칭찬.
해인은 자꾸 새어나오는 미소를 감추려 일부러 어정쩡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이건... 해인씨 첫 작품이니까, 작품해설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네!! 아비뇽에서 있었던 제 경험을 토대로 한 그림인데요.
처음 여행와서 혼자 주변의 모든 것들을 신기해 하며 돌아다니는 여성에게 동행을 요구하는 남자 여행객들을 내치는...일종의 상황표현이랄까요..."
"관찰력이 있네요. 처음 보셨을 텐데, 아비뇽의 성벽을 흡사하게 묘사하신 것도...
일단, 그림체가 저로서는 본적이 없는 신선함이 있어 좋은 것 같아요. 건물의 원근이라던가 인체의 비율 같은 부분도 초보자 같지 않아요.
정식으로 처음 그리신 게 이정도라고 하면 천재 소리 들을 만 한데요? 어디서 배운 적도 없으시다면서..."
"아... 무슨 말씀을...!!"
"어떤 그림이든 주제란 게 있기 마련이죠.
이 그림에서 나타내려는 주제는 어떤 건가요?"
"음...주제라... 글쎄요, 따로 주제를 정해놓지 않고 그렸던 것 같아요, 감정으로 치면...낯선이들에 대한 당황스러움? 무서움?"
"그렇다면... 그 점은 조금 안보이긴 한 것 같아요. 주제가 중요하죠. 사진도 마찬가지지만 그림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작가의 주장이 강조되기 마련이니까.
상황묘사 그림에도 의도적으로 강조해야 될 부분이란게 생기거든요."
"아, 아... 명심할께요, 스토리있는 얘기의 삽화나 이런 것으로만 생각해 와서 그림 자체에 주제를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감사해요!!"
"근데 이건 진짜 빈말아니고, 정말 잘했어요! 해인씨."
처음 들어본 평가.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해인에게는 너무 황송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누군가에게 꼭 이야기하고 팠다.
"그럼 하시게 될 일 말인데...
내일 저녁 정도에 일단 나와줄래요? 친구들하곤 그 전에 얘기 해둘께요."
"예, 정말 고맙습니다. 카와모토씨. 이 은혜를 진짜 어떻게 갚아야 할 지..."
"아니에요, 저희도 일 도와주실 직원 생긴 게 고마운 걸요 뭘,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전 작업이 좀 남아서... 아, 가시는 길은 아시나요? 제가 바래다..."
"아뇨! 아뇨! 일 구하느라 하도 여기 많이 돌아다녔어서 인제 여기 거의 길 외웠어요. 가볼께요. 그럼...!"
해인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급하게 자신의 숙소로 뛰어왔다.
카와모토가 치료해 준 응급처치 덕분일까,
다리의 통증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숙소로 들어 선 해인.
무심결에 바라본 맞은 켠 세현의 숙소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아, 저 남자도 여기 좀 오래 있는다 했었지?
나처럼 어디서 일이라도 구하려고 하나...'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해인은 일본의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차례의 통화 실패 후, 두번째 시도만에 전화를 받아 든 아영.
"의도했을 거라곤 생각안하는데, 넌 꼭 나 아르바이트 하러 가는 길에 전화하더라, 풋."
"아, 그래? 그럼 지금 통화 가능하니? 다행이다!!"
"며칠 만에 또 무슨 일이 생기셔서 이렇게 전화를 주셨어요? 하긴, 며칠이 뭐야, 매 시간마다 새로운 일이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을테지."
"나, 나 일자리 구했어!!! 그것도 그림 관련된 쪽으로!!!"
"어? 진짜? 구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유럽에서... 이렇게 빨리 구한거야?"
"응, 사실 다른 일자리 알아보느라 엄청 돌아다녔거든, 요 며칠... 근데 잠깐 어디 갔다오는 길에 그 왜 저번에 지갑찾아주는 거 도와준 일본 사람 만났다 했잖아?
그 사람을 다시 만난거야!! 근데 알고보니 그 사람 자기가 화가라지 뭐야? 맞지? 내가 그때 약간 예술가 필 난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잘생겼다는 일본 사람... 그럼, 그 사람이 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한거야?"
"응! 보수가 적다고 계속 강하게는 얘기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얘기하는 거 보니 좀 걸리긴 하네, 보수가 얼마길래, 그래도 명색이 일인데 챙겨줄 만큼은 챙겨줘야하는 거 아니야?"
"뭐, 돈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단 게 더 크지!! 아, 그리고 오늘 나 거기서 그림도 그렸다!!"
새로운 장소에서의 충격과 변화에 기쁨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이로 해인이 선택한 친구 아영.
아영은 내내 맞장구를 쳐주며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해인의 경험담을 들어주었다.
"그래, 잘됐네, 훗 그래도 타지에서 만난 아시아인 경계하는 건 잊지말고, 너무 믿지 마!
넌 보니까 얘가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사람을 너무 잘 믿어! 그러다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고,
특히 외국에선!! 아, 나 도착했다. 이제 들어갈께."
"그래, 조심할께!!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열심히 해!!"
통화 할 때마다 자나깨나 외국인에의 경계심을 강조하던 아영. 그녀의 뼈져린 충고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 인지.
통화를 마치고 일터로 들어가던 아영은 조금 전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떠들던 해인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이것아, 그래도 외국에 나갔으면 기본적으론
다 적인거야...!"
아영은 예정되어 있던 또다른 아르바이트 일을 하기 위해 가게에 들어섰다.
세현이 일본에 있을 때 같이 일 하던 레스토랑 이외에도 야간, 주간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던 아영.
이번 근무 장소 역시 어느 식당에서의 서빙 일이었다.
"콘니치와!!"
가볍게 매장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유니폼으로 갈아 입은 후 바로 업무에 투입된 아영.
어느 곳에서도 그녀는 모자람 없는 완벽한 업무능력으로 윗선으로부터 사랑 받는 직원이었다.
"여기 이 메뉴는 기간 한정 메뉴로 이번 달 중순까지만 서비스 되는 메뉴입니다. 저희 가게의 추천메뉴로서... 이것 , 이것 등이 있으며..."
특히 메이크업이나 겉치레를 많이 하는 일본 젊은이들과 비교할 때 그야말로 수수한 모습 그대로 일을 하는 아영.
그러나 숨길 수 없이 두드러지는 외모의 아우라는 항상 그녀 주변에 남자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저, 잠깐만요!!"
이 날 역시도 처음보는 남자들은 그녀를 처음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불러대기 시작했다.
방문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