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15화>

[ 15화 _ 까칠한 미녀 ]

by youtoo


"저기 잠깐만요, 혹시 괜찮으시면 연락처 물어봐도 될까요?"

"네, 고객님. 저희 가게 연락처는 메뉴판에 표기 되어 있사오니,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려요."

" 아뇨, 훗, 재미있는 분이네, 일하시는 분, 개인 연락처요!"

"저요? 저는 아마 알아내기 힘드실 겁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아영의 일터에서 빈번하게 있어 온 해프닝.

꾸미지 않은 청순한 모습, 새하얀 피부, 가끔 일에 빠져 묶은 머리가 헝클어져 쓸어 올리는 모습마저 매력적인 아영.

동작이나 말투로 예쁜 척을 하지 않아도 똑 부러진 표정에 도도한 표정을 한 채 손님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또래의 남성이라면 호감, 아니면 호기심이라도 갖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죄송하지만 드릴 수 없습니다."

"알아내기 힘드실 겁니다."

"애인 있습니다."

정해진 멘트로 관심을 표명해오는 남정네들을 막아보려 했지만,

주로 하게되는 일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로부터의 껄떡임은 피할 수 없었다.

유학생으로 와 있다는 한 한국인 청년은 끈질기게 아영이 일하는 가게에 드나들며 그녀의 환심을 사보려 애쓴 적도 있었지만 아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니도 참 어지간해...! 기왕 외로운 타지 생활에 누구 의지될 만한 사람 있으면 좋잖아!

언니 따라다니는 애들 중에 괜찮아 보이는 남자들 꽤 많아 보이더만!! 틈을 안 주네, 틈을...!"

다른 일터에서 같이 일하는, 나이가 한참이 어린 동생은 간혹 냉정한 아영에게 얘기하곤 했다.

"의지는 무슨 얼어 죽을...! 넌 누구 의지하지 않으면 못 사니? 남자 놈들은 다 똑같은 거야!!
특히 이렇게 피상적으로 접근하려는 애들 뭘 믿고 관심주니?"

"그래도 서로 끌리면 만나보고 좋으면 계속 사귀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너무 부정적이야, 언닌 진짜...!"

"이것아, 뽀송뽀송 솜털 안 빠진 소리 하고 있네...! 결국 돌고 돌아 남는 건 후회뿐이니라...
당장만 좋아 죽지...!

저렇게 말 거는 애들은 시들해지면 또 다른 애들한테 말 건다? 그때가서 또 변했네 어쩌네 하면서 싸워라? 사실은 변한게 아니라 원래 그런 애들인데...”

"에이, 남자가 뭐 다 똑같은가?!"

"수컷들 습성은 다 같은 거야!!"

남녀 관계에 있어 필요 이상으로 확고한 노선을 유지하려는 아영.

어느 누가 청춘 연애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해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태세였다.

"여보세요? 어, 자기야? 나, 일하고 있지, 오늘?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이따가 보는 거 맞지? 응, 나도...! 있다가 다시 연락 할께~~!!"

동료 어린 직원은 남자친구 일 것으로 짐작되는 이의 전화를 받은 후, 바로 옆에서 쏟아지는 가소로움 가득한 눈초리를 느꼈다.

"놀고 있네, 이래서 이런 딸내미들은 외국 보내면 불안 한 거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연애질에 빠져갖고...! 남정네들 뻐꾸기에 홀까닥 넘어가서는...쯧, 쯧...!”

"왜요... 언니, 뭐 서로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나쁜가요?! 그리고 제 남친은 언니가 말하는 그런 사람 아니예요!! 뭐...!"

"그러시겠지, 그런 게 벌써부터 보일 리가 있나!
한 3개월만 지나도 같은 소리하나 내, 두고보겠어...!"


수 년 전, 일본으로 건너왔던 아영.
그때나 지금이나 자립심 넘치는 도전정신은 여전했다.

사정상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해야만 했고, 그렇게 시작된 생계 전선에서의 투쟁은 어린 아영을 일찍부터 어른으로 만들어 놓았다.

당연히 별 생각 없이 현재 만을 즐기려는 또래 아이들과는 잘 융화되지 못했다.

친구들과 [다를] 뿐이었지만,

그 다름에서 나오는 행동이나 말투로 인해 어렸을 적부터 ‘천아영’보다 ‘또라영’이라고 불리우는게 익숙할 만큼.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되어버린 것이 문제였을까.

아영에겐 보통의 여자들처럼 가끔 환상을 꿈꾸는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듯 했다.

그리고 극 현실주의자로서 살아가길 자청한 그녀에게 한국은 그다지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예부터 이어져 내려온 듯한 [ 여자의 인생 ]을, 전형적인 형태로 정해 버려,

다른 것=이상한 것 으로 여겨버리는 패턴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이럴 바엔 차라리 생존자체가 모험인, 외국에 나가 살아 보리라 결심했다.



한국을 떠남에 있어 달리 아쉬울 것이 없던 그녀에게 이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영은 가까운 일본이라는 나라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

치안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먼저 선택하게 된 외국이었지만, 우연히 고른 이 나라는 아영의 마음에 쏙 들었다.

외국인이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어떻게 살든 주변에서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번 만큼, 내가 뭘 하던, 아무런 눈치도 받지 않을 수 있는 곳.

게다가 의견이나 가치관이 달라 어줍지 않게 신경 써야 하는 친구들도 이곳에는 없다.

어렸을 적부터 자기 뜻대로 혼자 지내온 그녀에게, 목표가 확실하다면 고독은 그리 큰 장애가 아니었기에.

일본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는 일본에서의 정착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왔던 어느 일본인 청년.
그는 마치 아영 자신을 들여다보듯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 였다.





3년 전 어느 날.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던 중, 휴대폰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갈 길을 재촉하던 아영.

뒤에서 어떤 청년이 휴대폰을 주워 그녀를 불렀지만, 귀가 찢어질 듯 이어폰을 낀 채, 듣고 있던 음악 때문에 뒤에서 무어라 하는 지 들리지 않았다.

뒤쪽의 인기척을 느끼긴 했지만, 그녀는 또 누가 귀찮게 하나 싶어 홱 뿌리치고, 서둘러 전철에 올라탔다.

아영은 세 정거장이나 지나서야 핸드폰 분실을 눈치 챘다.

"아이 씨, 내 정신 봐라...! 어떻게 하지..."

결국 다음 역에서 바로 내려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여포...세요."

뜻밖에 들려 온 한국 말.
아영은 순간 놀라면서도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여보세요? 아, 혹시 한국 분이세요?
제가 휴대폰 주인인데요...혹시..."

"저... 한쿡 말 초큼...압니다. 기...기르면 모릅니다."

뭐야, 한국인 아니었잖아, 근데 이쪽이 한국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지?

아영은 일본말로 전화기 너머의 남자에게 응대하기 시작했다.

"스미마셍, 제가 핸드폰 주인인데 죄송합니다.
떨어뜨린 것 같아요. 혹시 어디에 계신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아까 제가 주워서 불렀는데 그냥 가버리시더니... 저는 지금 [이케부쿠로]근처에 있습니다."

'옷, 가는 방향인데 잘됐다!'

"아, 이케부쿠로에 계시군요, 저 인제 한 두 정거장만 가면 도착인데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사례 하겠습니다."

"예...뭐 알겠습니다, 그럼 서쪽 문으로 나와 주세요."

이케부쿠로 역에 도착해 서쪽 문으로 급히 내달려온 아영.

평소와 달리 의외로 한산했던 서쪽 출구 쪽 개찰구에는 까끌까끌한 수염을 기른, 스타일리쉬하고 핸섬한 외모의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전화기 주우신 분이세요??"

" 아, 예! 전화기 주인이세요? 여기 있습니다."

그저 무심하게 전화기를 건네주는 이 청년.

"잃어버렸으면 큰일 날 뻔 했는데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례할께요...!"

" 아니에요, 뭐 길 가다 주운 걸 가지고 사례씩이나...! 앞으로 조심하세요."

손사래를 치며 슬쩍 인사한 채, 자신을 지나쳐 지나가려는 남자.

다급함에 사례품이랄 게 없어 돈이라도 쥐어 주려던 아영은 긴 다리로 휘청대듯 자신을 가로질러 가려는 청년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바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청년.

그에게서 자신과 같은 아웃사이더의 기운이 느껴졌던 건 지.

휴대폰을 다시 찾은 사실에 안심은 되었지만, 찾아준 고마운 이 사람을 그냥 보내기엔 미안했다.

"저기, 마침 식사 때인데 혹시 제가 식사 대접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아영의 외침에 뒤를 돌아 본 남자.

"음... 저요? 정 그러시면 밥이나 한 끼 얻어먹죠 뭐. 가까운 데 갑시다. 까짓 거...! 여기가요. "

바로 보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가게로 들어 온 두 사람.

마주보고 않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자리.

핸드폰을 찾아주어 고마운 마음에 먼저 제안하긴 했지만, 왜 같이 밥을 먹자고 했을 까...

그러나 의외로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아영이었다.

"아까 보니까 한국말 좀 하시던데, 배우신 거예요? 근데 아까 이 휴대폰 잃어버린 사람이 한국 사람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한국 좋아해요, 문화적으로도 관심 많고...친구도 있어요. 스타일만 보면 한국인은 딱 알아봐요. 일본 여자랑은 차이가 있거든요."

해인은 흥미를 가지며 남자에게 물었다.

"어떤 차이인데요?"

"強い!쎄 보여요. 물론 화장법 같은 데에서도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 여자들은 뭔가 표정도 차갑고, 좀 강한 이미지랄까."

"제가 세 보인다고요?"

"한국인이니까 자신은 모르겠죠, 일본사람 눈엔 그렇게 보여요. 물론 그게 일본 여자들하고 달라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자신도 모르게 처음 보는 사람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대화.

일터에서의 업무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 이런 인간적인 대화는 일본에 온 이래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잘생긴,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청년 이라니.

이 남자 역시도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외모만 보고 무작정 다가와 들이대던 많은 한국의 남자들에 비해,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아영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단 몇 분간의 대화였지만 서서히 어색함이 사라지며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에 아영은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막혔던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자 한국 얘기, 자신들의 근황 등 예상 외로 많은 것에 대해 정담을 나누게 된 두 사람.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는 게 아마도 이런 상황인건지.

아영과 자신을 크리스라 소개했던 일본 청년은 이 후에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사귈래?"

"OK~!"

한 달여 만.
갑작스런 고백과, 기다렸다는 듯한 받아들임에 급속도로 발전해버린 두 사람의 관계.

진정한 영혼의 짝이란게 있는 건지, 시작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았지만,

틈틈이 만나 서로 어루만지고 진심어린 위로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갔다.

누군가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한다는 의미,
이 때만 해도 아영은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게 살고자 했던 아영 역시 현실 연애의 뻔한 모습에서는 크게 벗어날 수 없었던 듯.

늘 곁에 있는 이 사람이 없어진다면 큰 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겨나기도 했다.

능력과는 상관없이 단지 이 사람이 좋으니까,
같이 있고 싶고, 기대고 싶은 것. 그러다 보면 소유하고 싶어 지는 것.

다만 많은 이들이 그 다음으로 가게 되는 집착이라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이들은 각자 이루고자 하는 지점이 있었던 만큼 사생활에 있어서는 서로 크게 간섭하지 말자는 식의 암묵적 합의가 되어있었다.


행복했다.
매일 얼굴을 보고 쓰다듬지는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누군가 자신의 꿈으로 가는 길을 항상 응원해 주고 있다는,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기분이었다.

대단한 데이트나 선물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인 본인들에게 위로처가 필요할 뿐 이었다.

그렇게 2년여가 지난 어느 날.
늘 변하지 않은 한결 같은 모습으로 이어져 온 듯한 두 사람.

“아영, 사실 나 얘기할 게 있는데...”

“응? 뭔데?”

“나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있다고 했었잖아,
그거 준비하느라 지금까지 많이 바쁘기도 했었고...”

“그랬지, 뭔지는 죽어도 안 알려준다 길래 궁금증 접었더니만, 왜? 뭔지 얘기해 주려고? 불편하면 얘기 안 해도 돼. 굳이 내가 알아야 할 거 아니면...”

“아, 그게 아니라...”

평소답지 않게 말을 흐리는 크리스. 아영은 자주 보아오지 못하던 그의 자신감 없는 모습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방문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매거진의 이전글우연히, 그곳에서...<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