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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May 07. 2017

예술로 푼 변명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영화 마지막 리뷰

[ 공인(公人) : 국가나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 ]


매 해, 혹은 더 짧은 기간마다 새로운 개념이나 매체의 등장으로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원래부터 존재했던 개념들 중 일부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뜻이  변형되기도 한다.


[공인] 이라는 단어는 후자의 경우로, 국가나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만이 아닌, 이제

[ 대중에게 알려진 유명인사 ] 에게 두루 쓰이게 된 듯하다.


그리고 그 공인이라는 범주에 들어가게 된 인물들.


우리나라 대중들은 필요 이상으로 그들에게 사회적인 도덕성, 혹은 완전무결함을 요구해 오곤 했다.


소위, TV나 각종 매체들에 노출되어져,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신분]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라면,


‘동방예의지국’에 어울릴 만한 대중에의 예의, ‘법치국가’에 합당한 철저한 준법시민의 잣대를 더욱더 철저하게 들이밀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기대에 충족되지 않았을 때에 그 대상에게 쏟아지는, 법보다 무서운 대중의 평가. 그것은 평가를 넘어서서 어느덧 ‘폭력’이 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 발달의 양면라고도 할 수 있는 ‘즉시성’ 및 ‘확장성’은 어떤 순간에서나 죄 짓고는 절대로 그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공식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그 위반의 경중에 따라 다시 복귀여부나 복귀 시기가 결정되어지기도 하지만,


그들은 결국 다시 대중에게 노출되어야 하는 업(業)인 만큼. 영원한 꼬리표를 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 자리에 올라 가 그 돈을 받고 있는 자라면, 응당 대중에게 이런 것들은 지켜줘야지...!"


...라며, 현대의 대중들은 그런 공인이라고 하는 존재를 높게 보고 있는지, 아니면 업신여기고 있는 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 판단의 잣대는 일반인의 범주라 불리우는,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그것이 국가에서 공인(公認)한 법의 위반이 되었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범위만을 벗어난 사항이 되었건, 평가는 늘 냉혹하다.


이야기를 영화의 감독에게 적용 해보기로 한다면...


명백히 자신만의 류를 형성해오며 호불호가 극명한 감독으로 십 여 년 간 큰 위치를 담당해오던 영화감독 홍상수는 한동안 그 평가의 단골손님이었다.


배우의 힘, 효과의 힘 등, 여러 가지 항목들이 어시스트 해줄지 언 정, 어차피 [영화는 감독 놀음] 이라는 바를 거의 매년 직접 실현해내고 있는 그는,


늘 해외 수상이라는 결과물로서 성공하는 예술인임을 입증해 왔다.


유독 해외에서의 인정받았다고 하는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는 대한민국의 국민들로선 좋든 싫든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인물.


주연급 배우들의 노개런티 출연, 감독 특유의 엉성해 보이는 촬영과 미장센들...


비주얼과 영상미가 큰 미덕이 되어있는 현재의 영화의 잣대에서 보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 스타일을 앞세워 하고 싶은 얘기를 가감 없이 쏟아내는 대사와 연출은 배우들로서도 큰 경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찍었다 하면 배를린, 칸 등에서 초청을 해대니 배우로서 욕심이 가지 않는다면 이상할 일.



자신은 이미,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영화계에서의 ‘위인’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어떤 작품을 만들던, 늘 호불호는 있어왔었으니, 자신의 행동조차도 납득해줄 사람들만 보고 간다는 무대포 정신이었을까.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 중이라는 명감독과 명배우와의 스캔들은 그의 정신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해 보인다.


잘 아는 사람들은 흔히 얘기한다.

그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왔었다고.


현재 감독이며 교수이기도 한 그 이기에,

그를 따르는 배우나 학생, 영화 관계자들은 여전히 무수하다.


항상 그의 영화 속에는 찌질해 보이는 남자와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들이 등장하며


그 아이러니의 중복으로서 늘 남들과는 다름을 강조해왔다.


“나는 달라, 나는 달라...

너희들도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잖아?

나는 그런 거 위선적으로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다 얘기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인정하는 도덕적 범위를 넘어선 것이건, 아니건...


그것은 영화로서, 작품으로서 존재했기에 인정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자유롭게 표현 가능한 작품으로서...


그리고 그 다름의 결과물은 늘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아왔다. 그 때문에 그는


[ 나는 다름으로 인정을 받은 예술인 ]

이라는, 본인만의 성공기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자신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공인의 도덕적 범위를 초월하는 위대한 예술인라고 생각하는 자일 수도,  


현실과 예술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심취한 예술인일 수도,


애초부터 그런 것 따위는 염두해 두지 않고 마음껏 살아가는 금수저 감독의 마인드 일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이 사회의 공인의 행동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고 난 후, 논란의 작품을 내놓았다.

[ 밤의 해변에서 혼자 ]


스토리는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는, 자신의 현재에 대한 미러링이다.

부정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시점에 그걸 누가 믿어줄 수 있을까.


자신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배우를 내세웠을 뿐, 심지어 여배우는 스캔들의 장본인.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심각한 뻔뻔스러움이 아닐 수 없다.


중년의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을 겪은 후 고민하며 해외에 나가서도, 활동 지역에는 벗어난 지방지만 국내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정당성을 찾아가려는 여자의 극복 몸부림 이야기.


현실과 떨어뜨려 놓고 볼 수 없는 이야기인 만큼 다른 의미에서 호기심을 가지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여우주연상으로까지 수상했던 이 작품에서의 김민희의 연기.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일 테니, 감정이 살아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늘 극본의 캐릭터에 빙의해 가짜를 진짜처럼 연기해야 하는 연기자들.


그렇지 않아도 또래의 여배우들 중 탑에 가까운 연기력을 자랑하던 그녀에게, 현실이라는 무기까지 탑재되니 과연 그 누가 따라올 수 있었을까.



극중 대화가 이어지는 여러 집단 안에서,

그녀는 웃고 있을 때에도, 좋은 분위기 속 서로 칭찬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불안감이 느껴진다.


대체적으로 상대방의 대사가 끝나기 전에 “그랬구나” 라면서 다시 반복해 주며 받아주는 식의 소위 ‘영혼없는’ 리액션 안에서는


‘상대방에게 관심은 없지만, 핀치에 몰린 자신에게 어떻게든 편을 만들고 싶어하는’ 절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소문을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대하는 이들 역시,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시선을 인지하면서도 태연한 척하는 그녀의 대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까...

극중 대화에는 늘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늘 대화의 후반에 터지고 마는 것은

그 팽팽한 긴장감이 풀어졌을 때부터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대화가 격앙되기 시작하다 이내 폭발해 버리고야 마는 김민희 배우의 감정기복 연기는 정말이지 인정하지 않을  없다.


최고다. 정말 본인 성격도 그럴 것처럼 보일 정도.  



영화 속 날카롭게 들린 직설적인 대사.

작품을 작품만으로 인정해 버리기엔 본인의 연기를 빌어 내뱉어지는 이 대사들이 너무 리얼하다.


사랑의 자격을 운운하며 자신을 책망하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데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는 극 중 ‘잘 모르는’ 여성에게 외친다.


 [ 뭣도 모르면 입 좀 닥치라고... ]


주인공이 잠깐 모임에서 자릴 비운 사이,

주변인물들이 주인공의 뒷담화가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 넌지시 얘기한다.


[ 본인들 좋다는데, 왜 그리 난리들이래?

할 일 들이 없는 거지...! 지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 해대면서 좋아하는 남녀한테는 불륜이래? 우리라도 잘해주자. ]


과연 이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



[ 이제는 법적으로 잘못한 것도 없이, 우리는 그저 나이차 신분차를 떠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뭘 그렇게 가타부타 말들이 많아? 사정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우리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란 게 그렇게 큰 죄야?


그렇게 얼굴 공개도 안하고 몰래 몰래 악플 달아대며 공인들한테 잔인한 짓들이나 해대는 네티즌 새끼들아. 네깟 놈들 무서워서 우리가 감정 숨길 것 같으냐?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


라고... 예술이라는 이름의 결과에 빌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현실이

영화의 이야기대로 유부남 감독과 잠깐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진 후, 그 여파로 인해 일이든 자신의 생활이든, 모든 것이 공허해진 여배우의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조금은 동정어린 시선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렇지만 언급한 바 있다시피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공식석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밝히며, 자신에게 주어진, 이제까지 살아온, 만들어 왔던 책임은 애써 외면하려 하는 태도를 보인다.


관계자들은 고통 받고 있다고 하며, 당사자들은 모르쇠로 일관중이다.

왜 굳이 이 얘기를 작품으로 만들었을까?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어 오던 감독이라면, 이 작품을 제작하고 난 후의 여파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대중들로부터 쏟아지는 날카로운 비난들을 받아들이는 반성의 의지를 보여주려고?


필자가 느끼기에는 늘 자신이 선보이던 ‘인정받은’ 예술이라는 힘을 빌어 자신들의 처지를 변명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어보였다.


자신보다는 많이 어리고 경험이 없을 테니, 고통 받고 있을 현재의 연인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 일 수도 있다.


‘괜찮아, 우리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이렇게 만드니까 바로 이슈 되는 것 봐. 나 아직 건재하니까,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


만약 그렇다면 감독은 대중을 호구로 보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영화계 금수저로서, 만들기만 하면 너네들은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 라는 일방적인 자세를 취하는...


그래도 예술인이니 작품은 작품으로 이해하자고 말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필자로서는 동의할 수 없다.


결국 제작자란 대중을 향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거늘, 자신의 불륜이야기를 작품으로 포장해, 그것도 "어차피 너넨 내가 만들면 보잖아" 식으로

관객을 우습게 보는 태도...


결국 소재에 낚여, 이렇게 감상하고 글까지 쓰게 되었지만 다른 의미에서 관객을 가지고 놀려 하는 이 감독의 영화에 이제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방문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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