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19화>

[ 19화 _ 설레이는 예감...! ]

by youtoo

"따르르릉"


다음날.
왜인지 알람시간보다도 1시간 정도나 일찍 깬 해인.
덕분에 느긋한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간만에 편안한 기분으로 만끽한 아를의 아침.

해인은 시간 날 때마다 그려오던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곧장 화가들의 작업실로 향했다.


카와모토에게 미리 전해들었다 시피 아침 시간에 비어있던 작업실.

화가들은 밤늦게까지 작업을 했던 건지, 그들의 그림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듯한 유화 물감의 촉촉함이 여전히 윤기를 빛내주고 있었다.

“휴... 예술인이란 사람들이 정리, 청소 이런 거엔 또 서툴지...”

책상 위에 흐트러져 있는 무수한 미술잡지들과 서류들과, 슬쩍슬쩍 눈이 가는 미술 참고 도서의 유혹을 이겨내고 해인은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전날 카와모토에게 전달받은 업무 사항들을 데스크 한 편에 붙여두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해인.

그림에만 집중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 였을텐데, 이 곳의 화가들은 판매며, 전시며 각종 잡다한 사무들까지 모두 각자 신경을 써 온 듯 했다.

작업실의 임대료, 전기세등의 관리도 일괄적으로 돌아가면서 관리를 해왔던 모양.

해야 할 업무의 양을 확인하고 나서야, 카와모토가 오롯이 배려만으로 자신에게 일을 맡긴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물론 일반 직장인들처럼 9-6 타임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낮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는 화가들.

서류의 정리와 함께 화가들이 작업 중이던 영역에 방해되지 않도록 작업실 내의 청소까지 마친 해인은,

화가들과 같이 일 해왔다는 전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메모를 남겨두고 작업실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XX작업실에 새롭게 일하게 된 이해인 이라고 합니다.

소속 화가들 그림 전시 관련 업무 앞으로 담당해서 도와드리게 될 것 같아요.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아, XX 작업실...! 따로 사무 보실 분을 뽑았나 봐요? 다행이네요. 그림 쪽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겠죠? 그림도 따로 그리거나 그러시나요?”

“아, 작업실 분들처럼 전문적으로 그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선 그냥 사무보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전시장 시찰도 바로바로 하시고 아주 꼼꼼하신 분 같은데요?

저희는 작업실 분들하고 꽤 오랫동안 인연 맺어오고 있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해인은 주로 같이 일한다는 전시장 이외에도 두 세군 데의 갤러리를 더 들러 담당자와 안면을 터 두고, 갤러리의 내부 구조 및 조명, 전시 스타일 등의 세부 정보까지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다.

습관이 무서운 건지, 다시 '업무'가 시작되자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의 악바리 근성이 다시 살아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사뭇 다른 기분.

"아, 해인씨 왔어요? 청소도 싹 다하고...
벌써 갤러리 조사하러 다니시는 거예요?
너무 열정적이다...!"

갤러리 출장을 다녀와 작업실로 들어서자 그 사이 들어와 있던 카와모토가 해인을 맞이했다.

"일하기로 했는데, 얼른 파악 끝나야 도움이 되죠!"

"하핫, 사람하나 제대로 잘 뽑았네!!"

카와모토는 몹시 만족한 표정으로 사 가지고 온 커피를 해인에게 건넸다.

"모닝커피...라 하긴 좀 늦었네... 식사는 했어요?"

"고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이네요.“

"챙겨 먹고 다녀야죠...! 어? 이거 해인 씨 거예요? 좀 봐도 돼요?"

해인이 아침부터 깔끔하게 정돈했던 데스크 위에 놓인 낯선 스케치북을 보고 카와모토가 물었다.

"예? 아, 혹시 몰라서... 가져와 봤어요. 예, 뭐... 보잘 것 없는 실력이겠지만...“

절반을 넘게 채워져 있는 빼곡한 스케치의 흔적.
어딘가에서 영감을 얻어, 혹은 경험 후에 느낀 감정을 옮긴 듯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림의 아래에는 날짜와 함께 짧은 코멘트들을 함께 달려 있었다.

"해인씨는 뭐랄 까, 그림마다 어떤 긴 이야기의 한 장면 같은... 스토리가 느껴져요. 뭔가 시리즈가 있을 것 같다고나... [그들만의 세상] 삽화 영향 많이 받았었댔죠? 재미있어요...!"

"고...고맙습니다...!"

스케치북 한장 한장을 꼼꼼히 살펴보던 카와모토는 스케치북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혹시, 완성까지 쭉 가져가 본 그림은 있어요?"

"완성이요? 음... 그러고 보니 완성이라고까지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림이 없...네요."

"그렇구나... 그게 사실 중요한데요.
자기 그림이잖아요? 어디까지 손을 데서 어디까지가 완성이 된 상태인지 본인이 판단할 수 있어야 돼요."

카와모토의 충고에 해인은 온 정신을 집중하며 경청했다.

"제가 뭐 도와 드릴 수 있다기보다... "

카와모토는 해인이 처음 그려 벽에 붙여두었던 아비뇽 배경 크로키를 가르키며 말을 이어갔다

"음... 그러면 나중에 시간 날 때, 이 그림을 완성까지 가보는 것도 좋겠네요.

아니면... 처음부터 완성을 염두해두고 하나 새롭게 시작해봐도 좋을 것 같고요...
완성의 경험이라는 게 또 중요하거든요.
성공이든 실패든...!"

"예, 예...!!"

"해인씨는 감각이 있으니까, 그 경험만 계속 쌓으면 실력이 월등하게 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꼭 이 그림 완성 시켜 볼게요!!"

"사무 쪽 일은 벌써부터 다 알아서 해주시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아마도 해인이 기대했던 것은 프로 화가들의 이런 어마어마한 팁, 아무데에서나 들을 수 없는 작업에서의 충고였다.

해인은 자신의 노트에 큼지막한 메모를 남겨 두었다.

「완성의 경험!!」




***




[ 안타깝게도 작가님과의 인연이 닿지 않는 것으로... 다음 기회에... ]

처음 시작을 너무 서둘렀는지 모른다.

기태는 [작가] 라는 직함에 다소 집착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가 어마어마한 우리나라에서 [차이] 라고 하는 것은 비단 일반 직장인들만이 느끼는 문제는 아니었다.

‘작가’타이틀을 얻고 싶은 마음에 작가등단을 시켜주겠다고 하는 영세 출판사들과 잦은 접촉을 했었던 기태.

본인의 입으로 작가가 되겠노라 부르짖었기에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선 어찌되었건 타이틀이 필요했다.

그것도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 여기 작가가 되었다 ] 라고 하는.

“아이...또 떨어졌네...! 도대체 얼마나 손을 더 봐야 되는 거야...!!”

기태는 정식으로 연재를 하는 소설 이외에도 틈틈이 공모전에 출품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려운 공모전 당선을 바라보며, 더 [잘나가는 작가]에의 도전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중.

몇 번이고 다시 수정되어졌던 그의 전 작품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 작품들 역시도 출판사 이곳저곳에서 까이고 까이다 선택 해 주는 곳이 나타났다고 하지 않던가.

기태의 작가인생에서 시작과도 같았던
[그들만의 세상].

그리고 그의 작가인생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곳 역시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와 계약이었다.

쓴 글에 무한 정성을 들이고 수백 번의 퇴고를 거듭해 출판사에 연락했었다.

“저는 작가 한기태라고 합니다. [얼굴], [날개]등의 장편소설과 단편집 [이들이 사랑한 그들] 외에 다수의 책을 출간했고, 현재는 [책속의 사람] 출판사 oo매거진에서 연재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예, 한기태 작가님이요, 원고 투고하실 생각이신가요?”

“예!!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꼭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장편소설의 경우, 퇴고에만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체력이 소모된다. 한번 놓치고 넘어 간 오탈자나 잘못된 문장은 치명적.

이어진 결과가 또 꽝인 거 보니...

'어딘가에 또... 수정하지 못한 잘못된 문장이 있었을거야, 더 꼼꼼하게 봤었어야 됐는데...'

...라며 이번에는 다른 소설을 도전하기로 했다.

"이제 완벽하군! 가만..."

기태는 조금이라도 더 정성을 보이면 더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직접 인쇄를 해 방문제출을 해보기로 했다.

[그들만의 세상]를 출판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던 이 곳. 실제로 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와!! 진짜 크다...! 건물도 엄청 예쁘네!!"

어렵지 않게 내부로 진입해 편집부를 찾은 기태.
뭐가 그리 바쁜 지 직원들은 낯선 이가 들어온 것을 신경도 쓰지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전화가 걸려오고, 종이들이 날아다니고...
소란스런 분위기는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저, 실례합니다."

그나마 자리에 앉은 채 조금 여유가 있어보이는 여성에게 말을 걸어 본 기태.

"누구시죠?"

"아, 예 소설 원고 투고 하러 온 한기태 입니다.
오기 전에 연락은 드렸었는데..."

"음, 예... 근데 방문 제출 하시는 겁니까?
신인 공모전 기간은 아닌데요."

"아, 전 지금 작가인데요.
기성 작가 원고투고... 하러 왔습니다."

의자에 앉은 여자는 기분 나쁜 투로 위아래를 훑으며 딱딱하게 이야기 했다.

"작가 원고 투고요? 그건 온라인으로 신청하는건데..."

여자는 사납게 기태를 쳐다보다 이내 더 이야기하기도 귀찮다는 듯 마지막으로 쏘아붙였다.

"예, 거기 놔두세요. 신청서도 뽑아 오신거 맞죠?"

"예, 여기 있습니다!"

"신청 됐습니다. 추후에 개인적으로 연락가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잘 부탁 드려요!"

퉁명스러운 안내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직접 편집부를 방문해 종이 원고로 투고를 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기다려라...! 이제 곧 정식으로...!!"

혼잣말을 하며 건물 출구를 찾던 기태는 넓은 건물 안에서 길을 잘못들어 헤매고 있었다.

새장과도 같이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늘어선 문과 부서명이 적힌 판넬들.

여전히 나갈 길을 찾던 기태는 "전략 기획실"이라 쓰인 문 앞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 단편 소설 공모전 말입니다. 이번엔 규모가 장난이 아닌 만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지나치다 우연히 듣게 된 전략 기획실의 회의내용.

공모전이라는 말에 혹해 기태는 눈치를 보며 기획실 문 앞에 서서 엿들었다.

"이런 규모는 없었어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데 어떻게 외국인이 심사를 한다는 말입니까?"

'심사를 외국인이 한다고?'

더욱 흥미로워 지는 회의실 엿듣기.
기태는 아예 문 틈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니까 우리 출판사와 관련이 되어있는 25개국, 각국에서 심사자격을 갖춘 유명 작가들을 선별합니다. 그리고 솜씨좋은 번역가들도 뽑아야 겠죠."

"아니, 그럼 한국인이 쓴 글이 복불복으로 그 25개국 중 아무 나라로 보내 진다는 말입니까? 그 나라에서 번역된 글로써 심사가 이루어지고...?"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죠. 미국인 글이 번역을 거쳐 일본인 작가에게 심사를 받게 될 수도 있는거고..."

"번역이 잘못되면 어떻게 합니까? 문화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던가 하는 일이 생기면?"

"그것 역시 하나의 변수죠.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들만의 세상 같은 월드 와이드 베스트 셀러를 배출했던 우리 출판사 라면,

이런 세계적인 규모의 공모전을 실시할 만 하죠! 노벨 문학상을 넘어설 만한...!"

"비용도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프로젝트 입니다. 작가지망생이라면 이런 프로젝트 끌리지 않을 수가 없겠죠."

"일단, 준비해야 할 것도, 선별해야 할 사항도 많으니 일단 이 사항은 극비로..."

... 그러나 문 밖에서 주요 내용을 다 들어버린 기태.

세계적으로 초거대 규모가 되어버린 출판사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니.

'찾았다! 내 작가인생을 걸만한 프로젝트...!'

기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건물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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