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0화 _ 이런 데, 싫어한다고 했잖아... ]
“자, 내 인생 최고걸작, 이번에 탄생 시키겠어!!”
절실함에 들른 출판사에서 역대급 기밀정보를 획득한 기태.
아직 기획 단계라는 출판사 측에서 언제쯤 공모전 소식을 세상에 공개 할지는 모르지만,
미리 알수 있게 된 그로서는 더 철저한 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던 셈이었다.
기태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모전이 어떤 주제로 발표 될지, 어떤 형식을 취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소재를 미리 잡아 두어 기준에 맞추어 가면 되는 일.
"그래, 당장 오늘부터...!!"
어떤 얘기를 소재로 삼아 진행할까.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선 사람들의 안으로 들어가랬다.
글 집필을 핑계로 실제로는 나이에 비해 이제까지 그리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기태.
이제는 그게 습관처럼 되어버린 건지,
이것저것 맞추어가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영 귀찮아진 상태였다.
'이번에는...좀 양보하자...!! 코드를 좀 맞춰야지...'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이라면 보다 폭 넓게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해야겠지.
기태는 좀처럼 나서는 일 없던 출판사 근처의 번화가로 들어섰다.
늘 보아오고 생각해 오던 범위에서 벗어난,
조금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먼저 담아보고자 했다.
바로 보이는 주로 대학생 또래들이 모여드는 거리,
더 안쪽으로는 오피스 숲속의, 직장인들이 대부분 점거하고 있는 지역이 나타났다.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
전혀 다른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는 이 두 위치의 사람들을 지켜보면, 무수한 이야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아직 뭘 모르는 어린 학생친구들과 생활에 찌들기 시작하는 직장인들. 기태는 그 딱 중간 정도의 나이였다.
그들의 행태를 관찰하며, 보이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유추해 보려했지만, 문득 기태는 그들 중 어느 쪽의 감정도 제대로 경험해 본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풋풋한 대학생들이 과외로 즐기는 놀이 문화, 취업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고뇌, 그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희생...
기태에게는 책이나 TV같은 매체를 통해서나 접하던 '누군가'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 난 뭐하고 살았냐... 참...”
졸업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버렸던 기태의 대학시절.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우고자 선택한 문예창작 과에서 기태는 항상 소란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니까요!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바는 그런 게 아니라...!”
과제로서 각자 써온 글을 공유하고 그것에 관해 토론을 하는 이른 바 ‘합평’ 자리.
글을 발표하고 조언이나 첨언 등을 주고받기 위한 이 합평자리는 자주 싸움장이 되어갔다.
“내가 생각하기엔 기태 글엔 개연성이 좀 부족해. 주인공이 어떻게 이런 감정 선으로, 이런 사건 속에 연루 되어가는 지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거지.”
“아니죠, 이 주인공의 과거 시절에 이런 경험들 때문에 이런 성격으로 만들어진다는 거고요,
주인공 행동도 거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
“약해요. 그 정도 경험만으로 이런 성격이 된다고 하는 건, 보는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렵죠.”
본인들이 만든 세계, 만들어낸 인물들의 설정이 과연 타당한가 여부를 ‘물고 뜯는’ 자리.
충고를 받아들이든 무시하든 결국 선택은 작가의 몫인 것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 받고 싶은 욕심은 결국 격앙된 발표자들끼리의 욕지거리를 동반한 개싸움이 되기 십상이었다.
“넌 새끼야! 그렇게 잘 쓰냐? 어? 완벽해?
어떤 지 전체적으로 들어나 보고 좋은 지 안 좋은 지 판단 할 것이지, 이건 뭐 처음부터 깔 생각하고 앉아 있으니 안 까일 수가 있냐?”
“웃기고 있네,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면 보인다고 하는 거지, 쓰는 쪽에서 아무리 그런 거 아니라고 우겨봐야 헛 거지,
아니, 바른 말로 지가 쓰고 혼자 만족하고 말거면 발표를 왜 하는 건데? 칭찬만 받을 줄 알았냐?”
“어디서 삼류 영화 시나리오같이 써 대는 주제에 남들 까는 거만 배웠냐? 꼭 창작력 딸리는 것들이 남 만들어 놓은 거나 끌어내리기 바쁘지, 아주...!”
언쟁에 언쟁...
기태의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교수, 선후배들 모두 자신의 세계로 끌어 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어렸을 적부터 생겼던 작가 자부심은 쉽게 자신을 내려놓지 못했다.
학교생활이 이렇게 어둡기만 하다 보니 MT, 미팅, 소개팅...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놀이문화라는 게 모두 하찮게 느껴졌다.
또래는 멀어졌고 그저 명사들의 강의를 듣거나 강연을 찾아다니는 일 이외에 그다지 즐겁지 않은 20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성공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로 꿈을 키워간다는 것은 오히려 현실의 불만족을 더 가중시켰는 지 모른다.
그 나이 대의 즐거움이란 무언지, 엄밀히 그 감정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저러고 노는 게 재미있나...?’
계속해서 번화가의 다른 젊은이들을 관찰하던 기태는 납득은 어러워도 그들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해야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흉내를 내어볼 수는 없는 노릇.
그저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진지하게 패턴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먼저, 바로 눈에 띈 것은 거리 중앙으로 한껏 떠들어대며 걷는 남자들의 무리.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거리에 민폐를 끼치는 그들이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따라가 관찰해 보기로 했다.
“봤지? 내가 뭐랬어? 오늘 전적으로 질 거 같다고 했잖아!!”
“아, 그 장면에서 그런 수비 실책을 할 줄은 또 꿈에도 몰랐네... 감독한테 욕 좀 먹겠다.”
“야 걔는 그래도 홈런 한 방 쳤잖아!
전체적으로 딴 애들이 비리비리했지 뭐...”
“그래도 이기고 봐야 하는 거 아냐? 아, 씨... 회사에서 응원하는 팀 이길 거라고 장담을 했었는데...!”
“야, 근데 너 근처 사는 여자애 부른다며?
그거 때문에 여기 왔는데, 빨리 불러!!”
“미친놈아! 부르면 어쩌려고!”
아마도 야구를 같이 보고 온 친구들인 듯.
경기 관람 후 뒷풀이를 위해 번화가로 놀러나온 모양이었다.
“그래. 넌 요즘 잘 되어 가냐? 만난다는 여자애하고...?”
“아, 몰라 이게 짜증나게 자꾸 톡을 안보더라고. 독촉하기도 뭐하고...”
“가지고 놀고 있나 본데?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있다가 연락 오거든 답하고 그래. 찐따같이 먼저 막 몇 개씩 보내고 그러지 말고!”
“이건 뭐 얘길 할래도 툭툭 끊기니 이어질 수가 있나... 만날 때마다 리셋이야!!”
“대충 하다가 때려 쳐. 연락 장난치는 애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없는 거야!”
자연스럽게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는 그들 중 한 명이 만나는 여자에 관한 푸념과 상담으로 이어졌다.
기태는 몰래 옆에 앉아 대화의 내용 뿐 아니라 외모와 목소리, 이야기할 때의 제스처, 표정 등까지도 유심히 관찰했다.
“야, 그러지 말고, 우리 클럽이나 가자!!”
“에잇, 짜증나, 그래 가자!!”
“거기서나 건져야지! 가자, 가!”
무리들은 술집에 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정한 다음 스케줄에 모두 동의했다.
야구를 보고, 수다를 떨고, 술을 먹고, 클럽을 가고.
그 이후는 아직 모르지만 이들은 그야말로 집단으로 놀 수 있는 거의 모든 컨텐츠를 동원해
이 날 하루 제대로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아씨...어디까지 따라가야 되나...’
이 무리가 지금 향한다는 클럽.
그곳은 입구에서부터 무수한 남녀가 줄을 서 대기중 이었다.
멀찌감치 지켜보려다가 그만 인파에 밀려 같이 줄을 서게 되어버린 기태.
마침 클럽에서는 입장을 시작한 찰나였다.
“자!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인파가 꾸물꾸물 클럽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입구에서 멀끔하니 차려입고 호객행위를 하던 청년은 더 목청을 높였다.
기태는 이 대기열의 청년들을 유심히 살폈다.
무슨 기대를 갖고 클럽으로 들어가고 있는 건지,
한껏 차려입은 남자들과 짧디 짧은 스커트나 타이트한 청바지 차림이 대부분인 여자들은 뭔가 기대 가득한 표정을 하고 지하에 위치한 클럽으로 진입하고 있다.
가까워지면 질수록 점점 귀가 멍해질 정도의 울림이 전달되는 음악소리.
‘그래, 여기까지 하자, 쟤들은... 굳이 더 따라갈 필요 없잖아... 뭐 내가 지금 일행이 있는 것도 아니...’
미행을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기태의 앞에는 클럽 입장을 기다리는 익숙한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기태의 전 여자친구.
그녀의 옆에는 키도 크고 잘 생긴, 거기에 꽤나 있어 보이는 옷까지 걸친 남자가 함께 진입 대기 열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분이요! 들어 올 거예요, 말거예요?”
잠시 멍을 잡던 기태에게 입장을 관리하는 직원이 공격적으로 말했다.
“들어... 갈게요.”
“자, 손님! 입장료 2만원!!”
‘젠장...!’
엉겁결에 눈에 비친 전 여자 친구 때문에 주저하다 클럽 안까지 떠밀려 들어오게 된 기태.
이미 기태가 관찰하던 남자 무리들은 멀찌감치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불과 몇 주 전이었다.
기태에게 매정하게 이별통보를 하고 연락두절이었던 전 여자친구.
마음이 떠난 상대에게는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 마지막 통보전화는 그저 이제까지 만났던 상대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을 뿐.
단둘이 클럽에 같이 올 정도의 사이라면 이 둘의 관계는 뻔했다.
'그 사이에...? 아니면 겹쳤었나...'
귀가 멍해질 정도의 큰 음악 소리, 번쩍번쩍대는 조명으로 눈앞의 사람 정도나 겨우 분간 할 수 있을 정도의 어둠.
귀가 아프고 눈이 아팠다. 공기까지 탁해졌다.
그러나 쎄 하니 울려오는 가슴 속 울분에 비하면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쿵쿵쿵...!"
좌우 앞뒤 모두 흔들어 대고 있는 사람들 틈에 혼자 우두커니 서서, 기태의 시선은 그저 전 여자 친구의 동선만을 쫓고 있었다.
여자는 전 남자친구가 앞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바로 코앞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선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남자는 이내 전 여자친구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 안은 듯 했다.
밀려드는 인파에 좁아진 공간 탓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밀착해 이보다 더 가까워 질 수 없는 거리.
무슨 음악이 들리고 있는지, 주변인들이 어떤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지.
알고는 있는 걸까, 알 필요가 없는 걸까.
생각해보니 전 여자친구는 자신과는 이런 곳에 온 적이 없었다.
"나 원래 그런 데 싫어해...!"
라고 했었다.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 순수한 열정을 사랑한 얌전한 보통 여성.
적어도 기태가 인식하던 전 여자 친구의 모습은 그러했다.
'하기가 싫었던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참고 있었구나...'
변심한 여자 친구가 밉다기보다 만나오면서도 그런 모습을 파악하지 못했던 자신이 더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이 남녀의 행각을 지켜보던 기태는, 조용히 클럽의 구석에 있는 바에 앉아 춤추고 있는 다른 청년들을 살펴보았다.
언뜻 언뜻 처음에 관찰하던 남자들의 무리도 보였다.
클럽 안에서 춤추고 흔들고 몸을 비벼대는 주변인들은 모두 기태의 또래들.
그리고 엉키고 엉키는 지금 이들의 사이에서,
전 여자 친구와 그의 현재 남자친구의 행동은 전혀 어색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서서 그걸 이상하게 보고 있는 자신이 가장 이상했다.
자청해서 이곳에 들어와 놓고는, 뻗대고 꼰대질 하는 놈은 오히려 병신취급 받을 만했다.
호기심에, 분노에, 따라 들어오긴 했지만 기태가
이 장소에서 전 여자 친구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내 기태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출구로 향했다.
분위기에만 심취해 무아지경에 빠져있던 기태의 전 여자 친구는 슬쩍 지나치는 기태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무섭게 노려보았지만 기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발자국.
클럽 출구를 통해 한 발자국을 나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에 있다 나온 듯한 고요가 느껴지는 바깥 풍경. 기태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빠!”
방문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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