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24화>

[ 제 24화 _ 뭐야? 이 수상한 찌질이는 또... ]

by youtoo

“너 누구야!! 왜 따라오는 거야!!!”

무서운 얼굴을 한 채, 역에서 부터 따라 온 듯한 남자를 추궁하기 시작한 아영. 남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아니...저기...”

“옳지, 저기 마침 자전거 탄 경찰들 다시 이쪽으로 오는 군! 어디 감히 날 미행해!?! 경찰서 가자!!
이 자식, 대체 어디서부터 따라온 거야!!”

아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의 옷 덜미를 붙잡고 윽박질렀다. 남자는 반대로 겁에 질려 아영의 눈을 겨우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 크...크리스 여자 친구...지!!!?”

“???”

크리스란 이름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 놀란 마음에 아영은 잡고 있던 손에 잔뜩 더 힘을 주며 남자의 얼굴을 자세하게 확인하였다.

“크리스? 너, 뭐야!!? 크리스랑 무슨 관계야!!!
그래,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어!!??”

“내...내가 확인하려던 참이다!!
그... 그 자식 지금 어디 있는지...!”

“너 뭐하는 놈이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리고 나랑 크리스 관계는 또 어떻게 알았어!!?”

“내 돈 떼어먹고 도망가서!! 지금까지도 찾고 있다고!! 조사하다 하다 당신이 여자 친구인 것도 알아냈고!!”

“자꾸 여자친구, 여자친구 하지 마!!
그딴 놈이랑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뭐야, 네놈도 돈 떼여서 찾아다니고 있다는 거야? 크리스, 이거 완전 쓰레기 자식이네...!”

남자는 크리스에게 온갖 욕을 퍼붓는 아영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며 물었다.

“당신 알아내는 데도 내가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혹시 남자친구 도주하는 걸 도와줬다거나 숨겨줬다거나...뭐, 그런 거 아냐? 지금도 억지로 쇼하는...”

[퍽 퍽 퍽!!]

“에라 이 미친놈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요즘 세상에 자기 돈까지 떼이면서 숨겨주고 도피시켜주는 미친 년 봤냐?? 에라이!! 더 맞아라!!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아영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으로 발로 걷어 차대며 소리를 질렀다.

“에이 씨!! 그만!!”

실컷 맞던 남자는 아영을 밀쳐내며 얘기했다.

“뭐야, 당신도 남자친구란 놈한테 돈을 뜯겼다는 거야? 저... 정말 몰라? 지금 막... 같이 살고 그런 거 아냐? 근데 당신...왜 일하는 데랑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사는 거야? 혹시 숨기기 좋게 하려고 그랬다거나..."

[ 퍽! ]

거침없이 한 발짝 다가가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아영이 질색을 했다.

“이런 또라이를 봤나!! 소설을 써라, 소설을...!!
뭐? 왜 일하는 데랑 이렇게 멀리 사냐고?
나 일하는 데부터 다 알아보고, 여기까지 따라 왔다는 거야?

크리스를 안다더니, 이 자식은 더 악덕아냐...?! 나 참... 유유상종이라더니... 시끄럽고, 빨리 경찰서나 같이 가자! 안되겠다!”

아영은 더욱 흥분해 남자의 옷 덜미를 다시 잡아끌기 시작했다.

“이거 놔!! 그게 아니면 왜 이렇게 멀리 떨어진 데서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일하는 데도 한두 군데가 아니던데!!”

“야!! 보아하니 넌 일본인 같은데...
혼자 자취 안 해봤냐? 자국민이라 감이 없나본데...번화가 쪽 방값이 얼만 지 알고는 있냐?

나라고 뭐 좋아서 이러고 맨날 먼 길 오고가는 줄 알아? 날 졸졸 쫓아 다녔다면, 내가 얼마나 빡세게
사는 지는 봤을 거 아니냐!!

교통비 아깝고 어쩌고 해도, 이러고 살 수밖에 없으니까 이러고 사는 거다!! 이런 이유까지 처음 보는 네놈한테 설명해야 되냐?!!“

아영의 탄식을 듣고 나서야 남자는 아영에 대한 의심이 조금은 가신 듯, 조용하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럼... 뭐야, 당신도 크리스한테 속아서 돈 뜯기고 그러고 산다는 거야? 차...찾고 있다는 건가?”

“그래!! 임마! 그나저나, 착각이든 뭐든...
너 나 미행하고 집까지 침입하려고 했다?
이거 명백한 범죄야!! 얼른 따라와!!”

“자...잠깐!!! 그렇다면 미안해!! 크리스한테 같이 당한 처지라면 얼마나 안달이 난 상태인지 알거 아냐!! 한번만 봐줘!! 지금 경찰에 불려 가면 크리스 영영 못 찾을 지도 모르잖아!!”

“뭐야? 짐작만으로 집요하게 쫓아와 놓곤,
[ 아니면 말고 ] 식이냐? 이런 무책임한 놈을 봤나!?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강력범죄들이 끊임이 없는 거야!!”

“자...잘 못했어!!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거 아니라고... 그 놈 찾아 얼마나 내가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 그럼 너도 지금 크리스 찾고 있기는 한 거지? 아, 그럼 우린 목적이 같은 거잖아?!
알게 된 거 다 공유해 줄게!!”

직접 찾아다니거나 알게 된 정보를 쫓아 각종 기관에 연락하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던 아영.

조금 전까진 감방에 쳐 넣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공포감 가득했던, 이 수상한 이 남자의 공조수사 제안에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까지는 사방으로 도움을 구해보았었지만,

자신들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성의라도 보여준 조력자는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같은 피해자라며 비슷한 분노의 표정을 드러낸 이와의 동행이라면,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도.

“음... 구체적으로 이름 거론하면서 변명을 해대는 거 보니 아예 만들어낸 말은 아닌 것 같고...
그럼 일단, 네놈 얘기나 좀 더 해봐. 뻥인지 아닌 지는 들어보고 판단하겠어!"

아영과 남자는 어둠 속에 유일한 불빛을 내던
한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리스...정말 지긋지긋한 악연이군...
어쩌다 이렇게 수상한 놈까지 꼬이게 된 건지, 원...”

“나도 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잖아!! 나는 지금 더 절실하단 말이야!!”

아영은 눈앞의 이 남자를 차근차근 관찰하였다.

나이는 크리스와 비슷한 또래에 볼품없게 비쩍 마른, 거기에 머리는 덥수룩하니 패션센스는 전혀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오타쿠상 이었다.

언제 적인 지 모를, 다 지난 유행의 큰 안경테가 코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연신 올려대는, 초라한 행색을 한 남자.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뭐야, 너... 크리스 친구야?”

막상 이렇게 말할 기회를 마련해 주니 쑥스러운 건지, 쭈뼛대며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이 남자에게 아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치...친구는 아니야, 아는 사람 소개로 그냥 알게 된 사람인데...”

“아는 사람? 그냥 아는 사이 정도 밖에 안된다면서 무슨 돈을 얼마나 빌려줬다는 건데?”

“직접 전달한 건 아니고... 그 친구 통해 빌려줬지...
사실... 나 아마 당신하고 진짜 처지가 비슷할지도 몰라...

당신 한국인이지? 당신 기준으로 보면 외국인한테 사기 맞은 거잖아? 나도... 크리스를 소개해 줬다는 사람이 외국인이었거든.”

“외국인? 크리스를 소개해 줬던 사람이? 외국 어디? 한국인이야?”

“아니... 서양 사람이야.
호주 워킹홀리데이 하다가 만났던 친구인데...
많이 친했어.

후에 일본에 한 몇 개월 머문다기에 잘해줬지...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하면서...”

아영은 시작된 남자의 이야기에 퍼즐하나 놓치지 않으려 꼬치꼬치 캐물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크리스를 소개해 줬었다면, 그 친구한테 직접 연락 해보면 찾을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지금 그 친구도 연락 두절이야...
아마도 둘이 짜고 날 속인 것 같아...”

듣다보니 딱해 보이는 이 남자의 사정.

그러나 경찰서에 보내지 않는 조건으로,
크리스의 정보를 얻어내기로 했던 원래의 방향으로 다시 바로잡아, 아영은 다시 강하게 쏘아붙였다.

“이것 봐! 사정은 알겠지만, 내가 지금 네 하소연이나 들어줄 입장이 아니야!! 그래서, 신나게 쫓아다녔다더니, 뭐 알아낸 거 있어?”

“당신을 이러고 쫓아다니는 거 보면 알겠지만 솔직히 알아낸 바는 별로 없어. 다만, 짐작컨대
일본을 떠나있을 가능성이 커.”

“떠난다면 외국이라도? 음...
그 서양인 친구하고 짠 거라면 외국으로 튀었을 수도 있겠네... 그거 말고는? 뭐 없어?”

“......”

“해외로 갔다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고 갔을 수도 있다는 거 아냐? ...안되겠다, 경찰서 가자!!”

“아니, !!! 스톱, 스톱!! 알았어! 앞으로도 같이 정보 공유할게!! 여기서 끝낼 거 아니잖아!”

뭔가 수상쩍었지만 아영은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는 이 남자와 수사망을 더 좁혀 가기로 했다.

괜히 쎈 여자 건드렀다가 대화라기 보단 추궁에 가까운 호통만을 듣고, 연락처 마저 강제로 빼앗긴 후, 자기 갈길을 향하는 이 일본 남자.

남자는 처음 따라왔던, 아영이 머무는 집의 반대쪽 역 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무언가 처연한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힘 빠진 뒷모습이었다.

‘크리스 너 이 자식... 참 사람 여럿 울리는 구나...진짜 잡히기만 해봐라...!!’




***





[ 따르르르릉!! ]

2시간 정도나 잤을까...
그것도 작업 중에 책상에 엎드려서 졸다가 맞이한 아침 자명종 소리.

밤새도록 세현의 소설 속 이미지를 그렸다 지웠다 반복하던 해인의 그림은 그저 연필 스케치로 형태만 잡는 정도의 완성도 밖에 내지 못했다.

아직까지 떠오른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내기에는 연습양이 부족했던 모양.

수없이 수정을 반복했다.

어찌되었건 출근 준비를 하고 작업실로 서둘러 출근한 해인.

웬일인지 아침부터 작업실에는 카와모토를 비롯한 화가들이 모두 있었다.

“아 해인씨, 왔어요? 어제... 두고 갔던 음료수 잘 마셨어요.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왜 그냥 갔어요?”

“아, 안녕하세요... 어젠, 그냥 잠깐 들르려다가 안에서 중요한 얘기들 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아무튼... 미안해요. 저희끼리도 가끔씩 의견 충돌 같은 게 있긴 해요. 해인씨도 들어왔고 좀 조심했었어야 하는데... ”

화가들은 밤샘 작업이 지금 시간까지도 이어져 온 모양이었다.

전 날의 험악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그새 이야기들이 잘 풀렸는지 해인을 반갑게 맞이해 주어 안심이 되었다.

“해인씨, 저희, 완성된 그림 몇 점 있는데 갤러리에다 연락 좀 해줄래요? 블로그에다가도 올려야 하고요.”

“예, 예!”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된 작업실의 업무.

다시 생활 패턴을 오피스 우먼 모드로 바꾸어 맞추고 척척 일 처리를 진행해 갔다.

계약서나 매매 양식을 깔끔하게 다듬어 제작하고, 그림에 필요한 비품 목록, 구매 내역의 기록을 폴더로 나누어 정리하는 등,

해인은 능숙한 정리 작업으로 작업실 사무 업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전의 업무가 끝나갈 즈음, 화가들은 전 날 작업의 피로 때문인지 일찍 귀가했다.



오후 3시경, 작업실에 혼자 남아 잔업 중 이던 해인.

손과 눈으로는 사무작업을 바쁘게 해나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아직도 전날 세현이 쓴 소설의 잔상이 내내 머물러 있었다.

빨리 그림 작업으로 들어가기만을 종일 학수고대 하며.

이곳에서의 일은 다른 감시나 규율이 정해져 있지 않은 만큼, 해인은 하루의 업무량을 정해놓은 후 그것을 시간 내에 채워가는 식의 업무방식을 택해왔다.

그림에 대한 욕심이었을까. 정해진 시간보다도 이르게 끝내버린 하루업무.

바깥은 옅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각,
그리고 드디어 해인은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해인이 작업을 하던 이젤에는 이전에 완성의 경험을 위해 진행하고 있던 아비뇽 배경의 그림이 놓여 져 있었다.

이래서 완성의 경험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했던 건지,

머릿속에 새롭게 자리 잡은 세현 소설의 이미지화 작업만을 떠올리고 있던 해인에게 이미 완성에 가깝게 진행되어 온 아비뇽 그림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에잇, 나중에 하지 뭐, 이건...!”

해인은 아비뇽 배경 그림을 옆으로 치우고 전날 고민 고민하며 스케치 단계까지 완성되었던 그림을 이젤에 올려놓았다.

수정을 거듭하다 결국 연필 스케치로 형태만 잡힌 그림. 많은 시간을 공들인 형태인 만큼 조심스럽게 채색을 시작했다.

고요한,
아무도 없는 밤의 작업실에는 오로지 해인의 그림을 그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화가들이 작업 할 때에 틀어놓은 음악도 켜져 있지 않았건만,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한 해인은 야밤에 작업실로 진입하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인지하지 못했다.

[뚜벅 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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