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 <26화>

[ 제26화 놀려먹는 재미가 참 쏠쏠해...!! ]

by youtoo


"고칠 부분...? 어디를 말해달라는 거야..."

해인은 그저 호기심만으로 소설을 읽어갔던 첫번째와는 달리,

떠오르는 이미지에, 현재 자신의 작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현의 소설을 다시 정성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프린트 된 종이의 여백에는, 읽으면서 떠오른 무수한 이미지를 적어둔 메모들이 같이 보였다.

자신이 작성한 메모에 더 신경이 쓰여서 였을까,

자기도 모르게 세현이 부탁했던, '글'의 수정보다 '그림'에 적용한 이미지의 수정만을 다시 점검하고 있던 해인.

'글...에서 어색한 부분을 이야기 하라는 건가...
음... 전체적으로 느낌 좋은데... 괜찮은데 안좋다고 꼬투리 잡는 건 또 좀 그렇잖아...'





*





해인에게 점검도 부탁했던,
완성 단계에 가까이 다가간 소설이 신경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였을 까,

평소보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퇴근한 세현 역시도 밤이 늦도록 글의 퇴고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단편소설이었지만,

재차 확인할 때마다 그 전에는 미처 떠오르지 않던 더 나은 단어, 문장들이 생각 나, 벌써 수십 번의 퇴고가 이어지는 중이다.

시간은 벌써 새벽 한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음? 아니, 근데 이 여잔 한 번 더 보는 데 뭐 그리 시간이 걸린다고 계속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거야...”

몇 시간 동안 고정된 자세로 모니터 속 글만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세현은 뒤로 기지개를 쭉 펴며 중얼댔다.

창가 너머를 슬쩍 보니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은 해인의 방 불빛.

“뭐야, 아직 안자는 거...겠지? 피곤해서 그냥 불 켜놓은 채로 딥슬립에 빠진건...”

[ 해인씨, 소설 다시 봤어요? 어때요, 어디 고칠 데는... 얘기 해주기로 해놓고선... ]

이제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의 퇴고 작업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 세현.

이제야 말로 외부로부터의 피드백이 절실한 시점이라 여긴 탓인지, 세현은 바로 해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10분 정도가 지나고 해인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 아, 계속 보느라고... 내가 보고 느낀 게 세현 씨가 처음부터 의도한 이야기가 맞다면, 내용은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내가 뭐 전문가처럼 '어디 고쳐라', '여기 좋다' 하면서 얘기 해 줄 정도는 아니지만... ]

[ 정말요? 다행이다...! '내용은'...이라면, 다른 부분은 혹시 고칠 데 있어요? ]

[ 음, 워낙에 문장들이 간결하고 깔끔해서 잘 읽혀지기도 하고, 특별히 고칠 부분 난 잘 모르겠어요. 다음은 작가 몫이지, 뭐 더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문장이나, 단어로 대체를 한다던가... ]

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가 호평에 가까운 해인의 반응에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 평가... 고마워요. 너무 보챘나?
안 그래도 지금, 문장 보고 고치면서 지금 몇 시간 째 그거 하고 있었는데...

근데 정말 이거 때문에 지금 이 시간까지 안자고 있는... 거죠? 급 미안해지네... ]

[ 소설 때문만은...아니에요. 하던 개인 작업도 좀 있어서... 암튼 정말 소설 재미있게 잘 봤어요...! ]


첫번째로 내놓은 세상을 향한 발돋음.
그리고 단 한 명에게 받은 그리 나쁘지 않은 평가.

이 하나만으로도 세현은 마음이 놓이는 듯 했다.



반대편 창가 안쪽 방.
역시 처음 볼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떠오른 이미지에 대한 그림 수정을 하고 있던 해인.

대부분의 도구들은 작업실에 두어 대대적인 수정까지는 어려웠지만,

간단한 작업 정도는 언제든 할 수 있도록,
방 안에도 따로 간단한 그림 도구를 준비해 둔 것이 다행이었다.

계속되던 해인의 작업이 새벽 3시를 넘어가던 시각. 해인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잠깐의 문자 대화 후, 몇 시간 동안 뜸했지만,
당연히 세현 이겠거니 하면서 무심결에 열어본 휴대폰.

메세지를 보낸 건 의외로 카와모토였다.

“음? 카와모토씨? 이 시간에...?”

[ 해인씨, 늦게 미안해요, 일어나고 봐야 할 텐데... 오늘은 작업실에서 화가들끼리 얘기도 좀 있고 저희들끼리 처리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

해인 씨는 오늘 하루 휴무로 해 줄래요?
늦게 미안해요, 얘기들이 좀 길어져서... ]


“역시... 아직까지도 다투고 있다는 건가...”


이야기 도중 끊기긴 했지만, 해인은 문득 스웨덴인이라던 안톤이 카와모토에 대해 이야기하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의 말 대로라면 건물주인과 카와모토 중 누군가 뒷돈을 챙기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그러나 해인이 지금까지 인식하던 카와모토는 예술가다운 외모와 함께 자신에게 더 없이 친절함을 베풀던, 그저 좋은 남자의 이미지였다.

지갑도 찾아주고, 친절한 그림 설명, 거기에 일자리까지...

너무 받기만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마운 부분 투성인 것이 사실.

그 좋은 이미지가 지배적이었기에, 해인으로선 안톤이 말한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이 화가들끼리의 분쟁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자신이 낄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 알겠습니다. 늦게까지 작업 중이신가보네요.
얘기 잘 마무리 되시길 바래요, 그럼 저는 내일은 나가지 않겠습니다. ]

해인은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다가 뒤늦게 카와모토에게 답장 메세지를 보냈다.


[띵동]


메세지를 보낸 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 온 답변.

굳이 대답이 필요한 내용이 아니었는데 무슨 다른 할 말이 있을지.


[ 뭐야, 내일 일 안 나가요? 그래서 이렇게 늦게까지 안 자는 군!! ]


"엥???"


[ 이건 약간... '나 오늘 한가해요'라고 어필 하는 건가? 훗, 알았어요, 참고 할께요~! ]

예상치 못하게 도착한 것은 세현의 메세지.

그제서야 해인은 카와모토에게 보낼 메세지를 세현에게 잘못 보냈음을 깨달았다.

[ 끙... 잘못 보냈어요...! 연락처 맨 위 사람으로 그냥 생각 없이 보냈더니... 세현씨야 말로 안자고 뭐해요? 내일 출근 안 해요? ]

[ 어, 이거 자는 사람 깨워놓고 이러기에요? ]

자고 있는 걸 깨웠다고?! 해인은 화들짝 놀라 후다닥 답장을 보냈다.

[ 아아앗!! 진짜 자는 거 깨운 거에요? 미안해요, 미안해요!!!정말!! ]

이 어리바리한 여자, 참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현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메세지로 소통했다.

[ 그럼 내일 밥 한번 사시던가!? 안 나간댔죠?
됐네, 그럼...! 점심이나 같이 먹읍시다! ]

[ 끙...! 알...았어요. 에잇! 그럼 내일 봐요!! ]

자기 할 건 똑 부러지게 참 잘 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 참 어리숙하다. 이 여자.

얼떨결에 생긴 기회이긴 했지만, 세현은 자신이 세상에 공개한 처음 작품을 감상해준 것이 고마워 언제 해인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음 날.

채 4시간도 자지 못하고 알람 소리에 깨어 출근길에 오른 세현.

사실 아침 기상을 우려해 알람시계를 여기저기 더 장치해 둔 덕분이었다.

"아저씨!!! 오늘 하루 만요!! 쓰고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그리고 오늘 연차 쓴 거 나중에 땜빵 할게요."

"응? 수상한데? 대낮부터 그 아가씨와 함께하는 데이트냐?"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음... 덕분에 매상도 오르고 이래저래 도움 받은 점도 많으니, 하루 휴가 정도야 문제없지.

조심해서 잘 갔다 와! 근데 보니까 아직 마음도 그렇게 많이 안 넘어온 거 같던데 너무 들이대지 말고!”

“아이, 참!! 아저씨 아...아니라니까요!!”

세현은 가게 아저씨로부터 차를 빌려 자신과 해인의 숙소 근처로 가져왔다.

‘음...한 새벽 4시 가까이 되어 잤을 테니...
한 11시 정도면 그래도 일어나겠지?’

다행히 프로방스 지방의 이 날 날씨는 순조로웠다.

아버지와의 기억 속에서 느껴오던 파랗디 파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딱 그 모습이었다.

세현은 해인에게 전화했다.

“일어났어요? 설마, 아예 잠을 안 잔건 아니죠?”

“일어...났어요. 세현 씨가 지금 깨워서...아 흠... 벌써 11시네...”

“천천히 준비하고, 집 앞 골목 지나 빵집 앞으로 나와요, 어디 좀 갑시다.”

“음? 어딜 가요? 밥 사달라 더니...
그나저나 지금 일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밥 사달라고요!! 밥 얻어먹을 거 기대하면서 쫄쫄 굶고, 오늘 일도 땡땡이 쳤단 말이에요!!”

“뭐예요!? 이 남자, 지금 일하는 가게 주인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근무태만 인 거 아냐!?
그런 거 때문에 왜 근무를...”

“참, 별 걱정 다하네... 얼른 준비 안할래요?
나 기다리고 있다고요!”

“알았어요! 갑자기 전화해 놓곤, 기다려요!!”

해인이 준비하는 동안 이것저것 먹거리를 장만하러 가게로 향한 세현.



세현은 전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고민 끝에 해인과 함께 프로방스 내 다른 지역으로 소풍을 계획했다.

“어??!!”

빵집 앞으로 나온 해인은 못 보던 차 앞에 서있는 세현을 발견하였다.

“어, 해인씨, 여기요, 여기!”

“뭐예요? 이 차는?”

“내 차지, 뭐예요! 자동차 처음 봐요?”

“응? 원래 차 있었나...더군다나 이거... 외제 찬데...”

“여기가 프랑슨데 프랑스 차면 국산차지,
무슨 외제 차예요!? 빨리 타기나 해요!”

의심의 눈초리로 세현을 훑어보며 궁시렁 대는 해인, 이내 옆자리에 올라탔다.

차안에 구비된 커피며 각종 먹 거리들.
단 하루 만에 준비성에 나름 감탄하며 해인이 말했다.

“아니, 내가 오늘 쉰다고 얘기한 게 몇 시간이 채 안됐는데, 언제 이런 건 또 다 준비한 거예요?
참 부지런도 하다. 일은 땡땡이 쳤다면서...

아주 제대로 놀려고 작정을 했어! 작정을...!!
내가 그 가게 아저씨한테 다 이를 거예요, 아주!! 제대로 하나 걸렸다!”

세현은 올라오는 웃음을 참으며 해인에게 말했다.

“헹, 맘대로 해요. 나름 애써서 소풍 준비한 사람 맥일 생각이나 하고 참...!”

“근데, 어딜 간다는 거예요? 뭐 아는 데라도 있어요? 지금 밥 먹으러 가는 거예요, 뭐예요...?”

슬슬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키며 세현은 해인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프로방스 지방, 아는 데 또 어디 있어요?
아비뇽엔 저번에 가 봤댔고...”

“뭐 유명한 데 몇 군데 있다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네요. 뭐라더라...액상프로방스 던가...”

“음, 알고는 있네, 거기 갈 거예요.”

"네??!!"

액상프로방스.
아를, 아비뇽, 마르세유 등과 함께 남부 프랑스 여행자들에게 대표 여행지로 꼽는 곳.

유럽 여행의 필수 코스로 들어가는 프랑스.

그중에서도 어렵사리 [남부]지역을 선택했다면 빼놓지 않고 선택되어지는 장소였다.

프로방스 지방 내에서 '이곳도, 저곳도' 봐야하는 제한을 가진 여행자들이라면 반드시 꼽는 명소가 군데군데 위치해 있긴 하지만,

이 곳은 그저, 며칠 머무는 관광객들 보라고 딱 기다리고 있는 듯한 관광 랜드 마크로서의 볼거리가 메인은 아니었다.

이곳의 주된 즐길 거리는 이 어마어마한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임에 분명했다.

계획에도 없던 '데이트'였지만, 장소는 어떤 각도로 보아도 그림이 되는 남프랑스요,

승용차로 편히 모셔주는 기사...아니,
세현이 옆이 있기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즐기자’

해인은 창문을 열고 숨을 한껏 들이 마시며, 액상 프로방스로 향하는 배경을 만끽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눈 안에 담아두려.

가는 동안 이 얘기 저 얘기를 꺼내 볼 생각이었던 세현도 의외로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해인의 그 모습을 보고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까.
아를에서 그리 멀지 않아 비교적 금새 도착한 액상프로방스.

이미 아를에서 한 달을 넘게 살아온, 유럽의 주민이 되어서였을까, 대표적인 [유럽풍]의 뷰를 자랑하는 이 곳이 그렇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비뇽에서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를보다는 조금 큰 듯한 도시의 모습.

빈번하게 눈에 띄는 분수대와 대저택들, 그리고 어디에나 그랬듯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을 맞아주는 듯 했다.

해인과 세현은 액상프로방스 시내로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신기한 듯 도시 전경을 이곳저곳 훑던 해인.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어!!??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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