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33화>

[ 제33화 _ 꽐라된 애 데리고 어디가냐?! ]

by youtoo


‘뭐야, 신나게 떠드는 소리 들리길래 재밌게 놀고 있나 했더니...이 여자, 어디 갔어? 어라?
그 카와모토인지 뭔지 하는 놈도... 없잖아?’

세현은 살며시 화가들이 앉은 테이블 근처로 다가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빈자리의 주인들을 찾아보았다.

외투나 소지품이 남아있지 않은 걸 보면 분명히 어딘가로 자리를 뜬 것이 분명한데...



늦은 밤, 아를의 밤 거리는 이 곳처럼 늦게까지 영업하는 일부 가게들의 듬성 듬성한 불빛 이외에 대부분이 어둠에 잠긴 풍경이었다.

세현은 그다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가게 밖으로 나와 보았다.

가로등불의 반대편 어둠 속 멀찌감치로,
단 몇 초 동안 보인 움직이는 바닥의 그림자.
그마저도 금방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아저씨, 저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어디가!!? 또 땡땡이냐!!?"

뭔가 수상하고 불안했다.

세현은 아저씨에게 대충 둘러댄 후,
가게를 나와 멀어지는 그림자를 놓치지 않으려 계속 주시해가며 본격적으로 그림자를 따라나섰다.

‘뭐야, 기껏 찾으러 나왔는데 가게 화장실에 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세현은 그저 본능의 이끌림대로,
움직임이 보였던 앞 그림자를 쫓고 있었지만 명확히 보이지 않은 대상에 의심은 더 깊어갔다.

조심스럽게 속도를 더 높인 세현.
그림자가 향하는 방향은 분명 해인과 자신의 숙소 쪽 방향이었다.

‘술자리에서 여자가 꽐라 되어서 집까지 데려다 주려는... 뭐 그런 상황인가...? 아니지, 자기도 술이 떡이 된 주제에 퍽이나...!'


세현은 처음부터 겉으로는 친절한 척 매너 좋은 척 하지만 뭔가 감추고 있는 듯, 수상함을 보이는 카와모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늘 해인과 더 가까운 곳에서 있기에 느끼는 질투 따위의 감정이 아니었다. 남자는 남자가 안다고.

아저씨 말마따나 동네에서 '양아치' 집단이라 소문난 곳의 우두머리 격인 카와모토.

술자리가 완전히 파한 것도 아닌 상황, 먹은 술의 양으로 봤을 때, 본인도 제 정신이 아닐 것은 뻔했다.

정신이 나가있는 여자를 데려다 주겠다고 휘청대며 같이 자리를 떴다하면... 뻔하지 않나.


더군다나 세현 자신이 이제껏 알아왔던 해인이라면 누군가와의 그런 동행을 반길 리 없었다.

명백히 무언가 개인적으로 꾸미고 있는 일임에 분명했다.

계속해서 속도를 높여가며 조심조심...
그림자 주인들과 거리를 좁힌 세현.

일단, 자신이 따르고 있는 그림자의 주인이 해인인지부터 확인을 해야 했다.

점점 거리를 좁혀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그들의 움직임은 정상적인 성인남녀의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그중 누군가 하나는 제정신이 아니게 실려 가고 있는 듯이 분명한 형태의 그림자.

'이 쪽 방향이면...'

계속해서 세현과 해인의 숙소 쪽으로 향하고 있는
두 명의 그림자들.

그러나 조금 더 지나자, 세현은 품었던 처음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정말로 술에 취한 해인을 집에 데려다 줄 목적이었다면, 걷고 있는 큰 골목 따라 곧바로 직진을 하는 것이 맞는데,

이들은 길목 초입에서 파생된 한 작은 골목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

방향을 튼 그들이 진입한 골목은 훨씬 좁고 더 어두웠다. 그리고 세현은 가만히 뒤를 따르다 카와모토의 옆면 얼굴을 정확하게 확인했다.

그렇다면, 옆에서 휘청이면서 고개를 땅에 쳐 박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저 여자는 해인이 분명하겠지.

골목을 한참을 들어가 힘겹게 옆으로 부축하던 여자를 벽 쪽에 앉혀놓고 카와모토는 초록색 대문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대며 키를 꺼내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려는 듯 한데, 주머니에 든 키를 꺼내는 데에도 이리저리 헤매는 걸 보니, 그 역시도 제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 철컥 ]





[ 탁! ]




힘겹게 문을 열어 옆에 앉혔던 여인을 일으켜 같이 들어가려는 찰나, 그들의 뒤쪽 어딘가에서 나타나 열린 문을 다시 닫아버리는 손.

[ 철컹!! ]

카와모토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누...누구야!!!”

닫은 문 앞으로 막아서서 카와모토를 노려보는 세현.

“뭐...뭐냐 너...!!”

세현은 허리를 숙여 카와모토가 부축하고 있던, 고개를 푹 떨군 여인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옆으로 넘겨, 그 여인이 해인임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완전하게 풀린 눈으로 자신의 고개조차 가누지 못해 이쪽저쪽으로 떨구어 대는 해인.

“어이, 카와모토씨...? 지금 어디 가는 건가요?”

“여...여기 내 집이라고!! 내 집에 내가 들어간다는데 왜 길 막고 난리야! 어서 꺼져!!”

세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카와모토를 노려보았다.

“네놈 집에 네가 들어가는 건 상관없는데,
왜 이 여자까지 같이 데리고 들어가려는 건데?
이 여자한테 초대장은 제대로 보내고 집에 초대하는 거냐? 내가 볼 땐 아닌데...?”

“보...보면 몰라? 해인씨...는 지금 취해서 집에 갈 수가 없으니까... 우리 집에서 재울 수밖에 없는...거다!!”

“그러니까...”

세현은 더 바짝 카와모토에게 다가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카와모토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러니까 해인씨가... 그러겠다고 했느냐고!!?
지금 이 상태에서..."

카와모토는 세현의 살기어린 눈빛에 당황한 건지 변명을 해댔다.

“네...네가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야? 신경 끄라고!! 내가 뭘 어떻게 하든 너하곤 상관없잖아?
해, 해인씬 우리 작업실 직원이라고...!!”

“상관있으니까 이렇게 먼 길 따라왔지. 이 새끼야. 먼저 해인씨는 놓고 얘기해라.

그래, 너네 작업실 직원인데 수상한 남자 집에서 자게하면 안되지 않겠어?

그 소중한 너네 직원, 내가 본인 집으로 직접 모셔다 드릴 테니, 넌 그냥 들어가 자빠져 자라!!”

“뭐, 뭐...?! 네...네가 뭔데? 해인씨 보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해? 너...너는 뭐 다른 것처럼 얘기하는데...너랑 가면 뭐가 다르다는...”

"일단 난 정신이 멀쩡하기도 하고..."

세현은 해인의 가방에서 마침 쏟아져 튀어나와 있는 숙소의 열쇠와 자신의 품안에서 꺼낸 열쇠를 동시에 카와모토에게 보여주며 윽박질렀다.

“해인씨랑 같은 숙소, 맞은 편 앞집 사는 동네주민이다. 이 새끼야!! 내가 잘 알아 데려다 줄 테니까. 됐냐? 자기 집이 제일 편하지, 어디 다른 집에서 잠이나 오겠어?”

“뭐..?! 뭐...? 이게... 무...무슨 헛소리야... 해인씨는 오늘 우리 집에서...”

술 때문에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는지, 앞뒤가 맞지도 않는 논리로 횡설수설 대는 카와모토.

세현은 눈이 반은 풀려있는 듯한 카와모토의 얼굴을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네놈, 지금 꽤나 맛이 가 보이는데? 자기 욕정하나 컨트롤 못하는 새끼가 어디 다 큰 여자를 집에서 재우네 마네, 하고 앉았어?

아니면 해인씨 깨워서 너네 집에서 자겠느냐고 물어봐라! 직접 허락 맡던 가!!”

“이...이 자식, 넌 저 여자랑 무슨 관계인데...
이렇게 간섭 질이야!! 너라고 뭐, 다르냐!!”

세현은 길가에 널 부러진 해인을 일으켜 등에 업으며 카와모토에게 이야기 했다.

“너 일본 놈이랬지? 저 여자랑 무슨 관계냐고?
그래, 일본말로 해 줄 테니까 잘 들어라!
해인씨는 말이야... 俺の大好きな人だ...!!”

“뭐...뭣?”

“내가 적어도 네놈처럼 욕정 덩어리는 아니니까 정정당당하게 해인씨 인수인계 해가야 겠다!!
큰 일 치루기 전에 얼른 들어가 쳐 자라! 맞아 죽기 싫으면...

해인 씨한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관한 건 내일 얘기해 둘 테니까, 기대나 하고 있어라!”

“야... 야, 임마!!”

뒤에서 헛소리를 해대는 카와모토의 말은 무시한 채, 해인을 들쳐 업고 골목에서 나와 숙소로 향하는 세현.

숙소까지는 십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해인씨... 정신 좀 차려 봐요... 끙...
몸집도 쪼그만 게 엄청 무겁네...어이쿠야...”

해인을 등에 업고 천천히 걸으며 세현은 혼잣말을 해댔다.

“이 여자야... 술 잘 마시지도 못하면 좀 뺄 줄 알아야지... 평소에 어리바리해도 이럴 때는 좀 빠릿빠릿 좀 해봐라 좀!!

그림만 보면 완전 아티스트인데, 평소는 왜 이렇게 허당이야...참나...만날 때 부터 이렇게 손 많이 가는 여자 처음이다, 아주...”

“야...임마...놔라아...이 짜시...가...”

정신이 돌아온 건지, 업고 가는 세현의 등이 불편해 잠깐 깬 건지,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한 해인.

“에효... 뭐야... 얘기하면 더 무거워지니까 그냥 조용히 갑시다...”

“내...가 무어낀 머이 무어어... 이 자시아...에푸우...”

점점 다리는 풀려가지만 남은 힘을 다해 해인 운반에 힘쓴 세현. 겨우 해인의 숙소 앞까지 다다랐다.

“후우... 힘들었다. 이 여자 집이 반대쪽 건물이지?... 보자, 203호...!”

열쇠를 따고 해인의 집에 들어온 세현.
이것저것 볼 거 없이 우선 복도에 늘어져 있는 해인을 들어다 겉옷과 신발 만 벗긴 채로 침대로 옮겼다.

그제야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꿈틀대며 베개를 끌어안고 삐딱하게 옆으로 쪼그려 누운 해인. 아마도 이런 자세를 하고 자는 모양이었다.

세현은 개어있지도 않던 옆 이불을 끌어다 살포시 덮어주었다.


“후우우...!!”

큰일을 해낸 듯, 세현은 한 숨 놓으며 옆의 의자를 하나 가져다 앉아 침대에 누운 해인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옆 책상에는 그림을 그리던 도구들과 공책, 서류들이 널 부러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방 내부.

작업도구들과 함께 책상의 모서리의 한 쪽에는 아마도 비행기 안에서도 발견했었던 것일, 낡아빠진 [그들만의 세상] 책이 놓여 있었다.

온통 그림 관련 코멘트 낙서들로 가득했던 그 책을 들어 다시 한 번 훑어보며,

문득 세현은 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해인의 앞자리에 앉았을 때 몰래 보았던 해인의 자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고, 자고 있으니까 그래도 봐줄 만은... 해요. 아주...!! 풋!”

아직까지 깊은 잠이 들지 못한 건지 뒤척이며 뭐라 웅얼거리기 시작한 해인.

취중진담을 시험해 볼 절호의 찬스.
세현은 장난기가 발동해 잠결에 뭐라고 중얼대고 있는 해인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해인씨? 여기 어디에요?”

“어디인 어이야...지비지 지입...!”

“대체 술을 얼마나 먹은 거예요? 이 멍청아! 감당도 안 되게 시리...!”

“머..이인마... 머엉처이 아뉘야...머엉처이...”

“어렴풋이 뭐라 하는 지 다 들리는 데? 풋, 됐다, 뭐하는 거야 나도 참...”

세현은 의자를 제자리에 놓으며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이 스키...”

“뭐요??”

“다...이 스키...가 머야..어어.."

“!!!”

저 말은 또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일본말도 모른다는 여자가...

한창 카와모토와 실랑이를 할 때에도 정신이 어느 정도 있기는 했던 모양인데.


어차피 들어도 모르겠지만,
이 경황없는 와중에 카와모토에게 내뱉었던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세현은 해인의 겉옷과 신발, 가방 등을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메모를 남겨놓은 후 현관으로 나섰다.

“해인씨, 나 갈께요!! 맘대로 여자 방 들어와서 미안해요!! 잘 자요!!”

뭐라고 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세현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문단속을 한 뒤 밖으로 나왔다.




다행스럽게 해인을 숙소로 운반해 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정체를 알 수도 없는 외국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화가들의 작업실에 한국 여자 혼자 있다는 것에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건만, 결국은 이런 일이 터져버리다니...

해인이 이 날의 일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작업실 이라는 장소가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증명이 된 셈이었다.


[ 작업환경은 최고네요, 그림 관련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데라니... ]

안전을 이유로 해인에게 당장 작업실의 일을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던 세현은 언젠가 자신이 해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이제 막 그림 그리는 데 재미 붙인 사람... 성장하면서 일까지 할 수 있는 데는 여기 밖에 없지 않을까... 위험한 건 어디고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려던 세현은 혼자 고민하다가 반대편의 방향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 쾅쾅쾅!!! ]

“야! 나와 봐!!”

세현은 조금 전 실랑이를 벌였던 카와모토의 집 앞으로 다짜고짜 다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세현과의 해프닝에서 정신이 번쩍 들은걸 지, 아니면 시간이 흘러 취기가 완전히 가시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건지,

자다 깬 듯한 카와모토가 부스스하게 문을 열었다.

“이, 이시간에... 누구...엇!!”

“어쭈? 팔자 좋게 쳐 자고 자빠졌어?
내가 아까 쳐 자라고는 했지만, 지금 잠이 오냐?”

세현을 보자 오던 잠마저 싹 달아난 건지 경직된 몸으로 뻣뻣하게 서 있는 카와모토.

“왜...또 온 거냐!? 해인씨 들여보낸 거 확인하러 온 거냐?!”

“허? 아주 당당하다? 내가 아는 일본 사람들은 보통 안 이러던데, 너 일본인 맞기는 한 거냐?
뻔뻔하기가 아주 이를 데가 없군, 그래 뭐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잠깐 얘기 좀 하자. 이리 들어와 봐!!“

“뭐...뭐? 무슨 얘...기를...여기 우리 집인데 뭘 들어와...!!”

"시끄러...! 이 자식아...! 빨리 오기나 해...!!"










방문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매거진의 이전글우연히, 그곳에서...<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