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35화>

[ 제35화 _ 사랑, 변하는 게 당연하지만... ]

by youtoo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꽤나 오래간만인 해인으로부터 연락.
아영은 마침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반가움이 앞섰다.

"오, 해인이, 오래간만이네...!”

"음...잘 지내니? 아영아!! 나... 세현씨랑 같이 하기로 했어!!"

"엑?! 다짜고짜 전화해서 같이 하기로 했다니...
좀 당황스럽군...!! 야...! 좀 차근차근...!"

일본에서 머물고 있는 아영은, 자신보다도 더 멀리 나가 큰 도전 중에 연락을 주는 두 친구의 소식이 늘 궁금했다.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자신의 일상에, 이야기 상대가 절실했던건지, 해인은 전화기 넘어 아영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말하고 싶어 죽겠었다는 투로 외쳐댔다.

"아영아, 이건 비밀이야! 너한테만 말하는 거니까... 누구한테 얘기하면 안 돼!!“

"얘는...! 여기가 일본인데, 어디, 누구한테 말하니? 뭔데 그래?”

"세현씨가 이번에 공모전에 출품을 하거든,
그런데 내가 그린 그림을 삽화를 같이 넣어 제출하기로 했어!!"

소설? 삽화?
그 방면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게 없어 뭐가 그렇게 놀라운 일인지 크게 감이 오지 않던 아영은 그저 맞장구를 쳐주며 해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세현이가 소설 쓰고 네가 그림 그린다고?
벌써 그럴 정도로 너 실력이 늘은 거야?
역시 괜히 그림 그린다고 바다 건넌 게 아니었군 그래..!!"

"에이, 뭐 그 정도 아니야... 그냥 어쩌다 보니까..."

"야, 근데 너 술 마셨어? 왜 이렇게 혀 꼬인 목소리야?"




세현이 곱게 모셔다주어 자신의 방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해인.

정신을 잃고 신나게 뻗어 자다 깨어난 시각은 새벽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 몇 번인가 느낀 이 후로 처음인, 깨질 듯이 아픈 머리와 메슥거리는 속.

새벽에 정신이 깨어버려 무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비몽사몽인 상태로 그만 아영에게 전화를 해버렸던 것.

"음...술... 좀 마셨어...! 작업실 사람들 하고...
어제 회식이었거든...! 세현씨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마시기 시작했던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가 기억이 안나... 깨보니까 우리 집이네... 어떻게 된 거지...아...”

"어랍쇼? 이거 나 지금 술주정 받아주고 있는 상황...인거야? 프랑스 산 주정이라 그런지 살짝 와인 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다 깼으니까 주...주정은 아니야!! 와인... 마신 건 맞는 것 같지만... 암튼 아직 배워야 할 것 투성 인데, 어쩌다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얼마 전까지도 같이 레스토랑에서 일해오던 세현의 소식을 이제는 해인을 통해 듣게 될 줄이야...

아영은 신기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래. 너 거기 가자마자 어디 작업실에서 같이 일하면서 그림 그릴 수 있게 됐다고 했었지?
그 작업실은 어때? 같이 회식 같은 거 하고 있는 거 보면, 다닐 만 한가 봐?”

“아, 그림 작업실? 너무 너무 좋지!! 처음엔 다 외국 사람들이라 좀 어색하고 무섭긴 지금은 다들 너무 잘 해줘!! 특히 카와모토씨한텐 특히 더 고맙지!!”

“카와모토? 그 가자마자 만났다는 일본 사람 말이야?”

“응, 말했지만, 보면 볼수록 딱 예술가야,
하고 다니는 것도... 그림도 배울 것도 많고...!”



카와모토...라...
아영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자신이 지금 찾고 있는 일본남자의 안 좋은 이미지가 덧씌워졌음일까,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는 떠올려지지 않았다.

자신이 찾는 일본 남자 ‘크리스’ 역시 처음에는 아티스트 느낌의 멋들어진 외모에,

자신처럼 자유로운 영혼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었지만, 결국 사기꾼에 불과했던 셈...

아닌 게 아니라 아영은 해인이 "유럽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경계’를 강조했었다.

“해인아, 세현이는 내가 믿고 보장하는 남자니까 같이 뭐 해도 괜찮은데, 그 작업실에서는 네가 딱 얻을 것만 얻고 나와, 외국인 이런 거 떠나서 남자는 함부로 믿는 거 아니야!!”

“예술가들이라 좀 독특하기는 해도, 사람들 꽤 믿을 만 한걸 뭐...”

"오늘도 봐라, 얘!! 어떻게 집에 왔는 지도 모르게 들어와 있는 거라며...뭔 일이라도 났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 기집애야!! 순진해 빠져가지고... 그러니까 사람 너무 믿지 말라고...! 나도...엇!"

순간 아영의 핸드폰으로 외부연락이 걸려왔다.

"아, 해인아 나 지금 중요한 전화가 오는 것 같거든?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어? 어 그래..."








노예처럼 부리며 늘 아영 쪽에서 먼저 채근을 하기만 했었을 뿐, 좀처럼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던 야마다의 연락이었다.

아영은 뭔가 새로운 소식에 기대를 품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마다? 왜? 무슨 일인데?? 뭐 알아냈어?? 뭔데, 뭔데??“

아영은 핸드폰을 귀에 더 바짝 붙이며 추궁하듯 질문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아, 저... 호주워킹 할 때 같이 있었던 동호회 사람하고 연락이 됐는데, 얘기하다가 에릭슨이 고흐의 작품을 특히 좋아했었다고 하는 정보를 알아냈어.”

“고흐? 화가 고흐 말야? 잘 모르는데...
그게...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 정보란건가? 근데 넌 왜 몰랐어? 친했었다면서...”

예상보다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정보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아영. 그래도 야마다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았다.

“동호회에서는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추천하는 그런 형식이었어, 워낙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고 같이 공유하는 장르도 너무 다양하고 해서, 개인별로 구체적인 취향 같은 건 서로 얘기해 본적이 없었지.

그런데 이거 얘기 해준 친구는 에릭슨하고 같이 미술관에 즐겨 다니던 친구였다더라고.
여러 번 얘기하는 것 들었다고..."

아영에게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정보였지만, 늘 습관처럼 끄적거려 오던 크리스 수사 노트에 이 사실을 기재해 두었다.

늘 구박하면서도, 야마다 덕에 얻게 된 정보량은 상당해, 오랜 기간 동안 업데이트가 더뎠던 노트에는 몇 페이지가 더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산발적인 정보를 한 데 모아 추리를 시작한 아영.

"[크리스]와 [에릭슨]...
이 두 사기꾼 놈들은 우리말고도 다른 누군가한테도 돈을 갈취했을 거야. 뭘 할려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쓴 건 진 모르겠지만...

예술에 조예가 깊어 유학 간 거고, 동호회에, 미술관까지 자주 다니던 사람이라...

연락 된 김에 그 친구한테 더 물어봐서 알아낼 수 있는 거 좀 더 알아봐봐!!”

“아....알았어...!”


사람 좋은 척하지만, 설마 야마다 이 자식도 뭔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만 일단은 믿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삐쩍 말라 빌빌대며 오타쿠스러운 면모가 있긴 해도 처음 만난 순간 아영에게 저지른 실수로 인해

‘신고해 버린다’는 무기를 가지고 윽박지르면 꼼짝도 못하니, 일단 써먹기엔 좋은 녀석이었다.

그 에릭슨이라는 놈을 통해 소개를 받은 적이 있다고는 했지만, 야마다는 크리스와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서로 같은 인물을 쫓고있는 상황에
야마다가 나름 정보랍시고 이렇게 이 얘기 저 얘기를 제공해 주는 만큼,

자신도 크리스와의 기억에서 생각나는 힌트라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을...

최근 몇 년간, 전 남자친구를 너무 지워내려고만 해서 였는지, 연애시절 서로 나누었던 대화도 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직업적으론 그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만 했을 뿐, 무엇을 하는 지는 끝끝내 밝히지 않던 그.

서로 바쁘고, 해야 할 것이 넘치는 상황에서 만난 사이이니 만큼, 여느 연인들처럼 시시콜콜한 것까지 공유하지 못했던 것이 이제 와서는 후회가 될 줄이야.

아영은 다음 일터로 향하며 전차 안에서도 추리를 멈추지 않았다.



목적지에 가까워졌을 무렵,
가게에서 같이 일하던 한국인 동생이 왜인지 가게 문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오빠! 왜 그래? 요즘 연락도 뜸하고, 영 말투도 귀찮아 보이고, 왜 이렇게 변한 건데??!!"


드디어 시작인건가...
아영에게 늘 연애의 필요성을 설파해대던 이 동생에게, 반대로 아영이 누차 강조했던 연애의 '부질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순간 인 듯 했다.

"뭐? 아무리 공부할 게 많아도 그렇지,
손가락이 부러졌어? 일하고 밤늦게 돌아가는 여친이 걱정도 안돼? 매번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말하더라?"

점점 격앙되어 보이는 동생의 얼굴.
아영은 가까이로 가 눈을 가늘게 뜨고 너무나도 예상됨직한 진행 상황을 구경했다.

"됐어, 이럴 거면 헤어져! 무슨 의미가 있어?
우리 생각 좀 해 보자. 나 지금 일 들어가야 돼!
할 거 많다는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래!! 끊어!!"

씩씩 거리며 가게로 들어가려다 아영을 발견한 동생, 울상을 하고 아영에게 달려들었다.

"언니...!! 얘, 딴 여자 생겼나봐!! 나보고 왜 이렇게 피곤하게 하냐고...막 말해!!"

"기집애야!! 내가 신나게 얘기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일 터질 때 되니까 이제 하소연이네!!
3개월만 있어보랬지? 내가...! 근데 3개월이 뭐야, 지금 너네 한달은 됐냐?”

"몰라!! 남자들 왜 그래? 아무리 매일 못 보고 그래도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 거야?
진짜 딴 년이 생겼나? 어떤 썩을 년이...!"

"변한 게 아니라, 그런 애들은 처음부터 그런 거야. 내가 뭐랬어, 가볍게 말 걸어 만나고 쉽게 가까워지는 애들은 다른 애한테도 똑같이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아닌 말로, 일본 같이 가까운 나라에 한국 사람들이 좀 많이 와?”

"아이!!! 나쁜 새끼!!!"

아영은 초반부터 동생의 이 가벼워 보이는 멘트와 행동들이 걸렸었다.


아영 자신이 이른 나이부터 겪었던 경험과 주변인들의 늘 뻔하게 변해가던 상황을 보아가며,
남성 혐오 기질에 염세주의까지생기기 시작했던 아영.

남녀 연애 과정에서 나름의 통계로 평균치를 내어 왔던 그녀에게, 이 동생의 사랑싸움은 일찍부터 예견했던 과정이었다.



처음,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하며 시작하는 연애.

그러나 그녀가 만나왔던 남자들이 하나같이 이상했던 건지, 그다지 오랜 기간 연인관계를 지속하지 못했다.

물론 남자 쪽이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영이 내린 결론은, 자신역시도 그다지 평범한 여성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서로 맞추어 가며 평범한 연애를 하기에 그리 녹록치 않은 스타일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어느 새 방관자의 입장에서 '연애'가 남의 일이 되어버린 지금에 있어, 풋내 나는 어린 애들의 사랑싸움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속아오면서도, 결국은 또 끌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남녀관계였었는지,


알 것 다 아는 ‘어른스러운 연애’라 자칭하면서도 자신은 비교적 최근에 만났던 크리스와 정작 어떤 연애를 했었더라...


크리스와의 연애는 아영에게 남녀관계의 오해나, 실수 등의 차원을 넘어선, 인생의 오점으로 여길 정도의 수치스러운 개인사였다.

그 역사를 인정할 수 없기에,
바로잡거나 삭제해버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영은 이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준비는 잘 되어 가십니까? 천아영씨?”

두 번째 일터에서 일을 끝내고 난 후 짬을 내어 오래간만에 들른 일본 내의 창업지원센터.

아영이 일본에서 이렇게 불철주야 돈을 모으고 있는 목적은 이곳에 정착해, 본인 소유의 가게를 열어 운영해보고자 하는 바램에서였다.

워킹으로 일본 생활을 시작해 직장에서 눈에 띄어 취업비자로 바꾸고, 몇 년을 더 지낼 수 있게 되었던 아영이었지만,

모든 것은 최종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아영은 틈틈이 이 센터에 들러 조언을 들어가며 자신의 현재를 파악하곤 했었다.

“후... 힘드네요... 이럴 거 알고 시작한 거긴 하지만...!”

“힘들죠, 한국인이 일본에서 창업이라면...
일단은 합법적으로 거주해 계신 거니까, 투자금을 착실히 준비하셔서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영은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이곳을 일본 거주 초기시절부터 종종 들러가며 여러가지 조건과 기준 등을 맞추어 갔다.

‘에이 씨... 그 새끼한테 털린 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시간 허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유럽에 가 있는 세현에게도, 해인에게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힘든 생활의 한풀이를 할 곳은 이곳 밖에 없었던 건지,

이미 친숙해진 센터의 직원에게 넋두리를 해대곤 했다.






여러 일정을 소화한 후 집으로 향하는 길.
야마다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또 뭐야? 아까 같은 시덥잖은 정보면 바로...신고...”

“아..아니! 그 그런 게 아니라 부...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뭐? 부탁??”







방문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매거진의 이전글우연히, 그곳에서...<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