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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Jul 23. 2017

[덩케르크] 작정하고 보지않으면...

개인적인 감상평입니다.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배트맨 트릴로지, 인셉션, 인터 스텔라...
최고작 순이 아닌, 제작 순서대로 나열했을 뿐인데도 누군가에게는 각각 다른 인생작이라고 거론 할만한 작품 필모를 보유하고 있는, 명실공히 전 세계 인지도 넘버원 감독.

늘 새로운 이야기, 구성, 캐릭터 구조 배치 등으로 어떤 이야기에서건 인생의 깊은 고찰을 담아,
놀랄 만한 완성도를  만들어오던 감독은 이번에 무려 실화 원작의 전쟁영화를 제작했다.

얼마만큼 더 스펙트럼을 넓혀나갈 셈인지.
의외의 장르라는 선입견을 넘어 뭘 만들든, 실망을 시켜본 적이 없는 감독이라는 신뢰감은 또다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우애, 자기희생, 영웅 칭호, 국가의 위대한 승리, 그리고 불가피한 선악 구도 등의 내용적인 면과

보다 실제 같은 전투장면을 위한 무기, 코스튬, 선혈, 시체더미, 폭발 효과, 페허 된 배경, 장엄한 배경 음악 등의 표현적인 면.

일단 바로 떠오르는 "전쟁"의 이미지만을 떠올리더라도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스케일.



그렇기에 유독 실패하면 안 될, 이제까지의 성공 공식, 제작 공식을 알게 모르게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장르이기도 해 보인다.

전쟁영화에서는 보통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어, 보다 흥행에 가까이 가져 갈 수 있도록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 중동전쟁 등 실제의 현실에 그것을 모티브로 하거나 그 자체를 다루어 왔다.


특히 무수히도 많이 소재로 다루어졌던 세계대전.

크리스토퍼 놀란 역시 인류역사의 무수한 전쟁 중 세계대전의 한 단편을 가져다 영화에 차용했다.


일명 "다이나모 작전"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네룩스 3국을 점령한 독일군의 계속되는 진군에 밀려 퇴각하던 영프연합군이 프랑스 해안도시 "덩케르크" 지역에 고립되어 수많은 희생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민간어선의 협조 덕에 30여만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무사히 영국,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전설에 가깝지만 다른 유명한 전쟁담에 묻혀 다른 나라에 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던 사실.

영화는 그 실화를 바탕으로 그 고립된 공간에서 탈출하는 병사들의 고군분투기를 여러 시점에서 조명한다.


일단 영화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감동, 신파를 쏙 빼낸 리얼한 "전장체험"이다.

드니빌뇌브의 "시카리오"에서도 관객을 마치 전장에 초대한 듯한 체험 감을 선사한 바 있었지만,

놀란 감독의 '전장 체험판'은 그 결이 달랐다.

말하자면 '패잔병'으로 바다건너 눈앞에 보이는 조국에 어서 닿기만을 바라면서 언제 독일군의 공습이 쏟아질지 모르는 연합군의 조바심과 답답함, 불안...

독일군과 저항하며 연합군이라는 소속아래에
한 팀으로 묶여 왔었지만, 정작 적에 의해 바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는 우리 민족 먼저,

우리 그룹 먼저, 나 먼저 살고보자는 점점 좁혀 들어가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드러낸다.

엄밀히 이것은 이기주의라기보다 살아남고자 하는 생물로서의 원초적인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의 일반적인 문법과는 다르게 '적'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 초입에 짧게 다이나모 작전의 이야기와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언급해 주기에, 공습을 퍼붓고 있는 상대편이 독일군이라는 것을 살며시 흘려주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 후엔 설명적인 대사도, 해설도, 자막도 마련해 주지 않은 채, 다만 관객의 능력만으로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야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전쟁을 치루고 있는 세 파트
(육 / 해 / 공) 에서의 입장을 번갈아가며 보여준 후,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아군'만의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주일, 하루, 한 시간이라는 다른 시간 안에서 같은 공간 안의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세 파트의 병사들.

말하자면 구해지기를 기다리는 병사들, 구하러 가는 민간인들, 이들을 지켜주는 공군.
이렇게 세 파트로서 절묘한 편집을 통해 한 사건 속에 녹아낸다.

파트별로 이끌어가는 캐릭터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개인 어느 누구 한명에 이야기를 집중시키지 않는다.

일반 영화들처럼 선의에 의해 피 끓는 영웅심리로 개인이 수많은 군사를 구하는 희생적인 영웅 신화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 상황별로 다른 고민이나 고충을 겪다가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공유한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심지어는 저 멀리 눈에 보이기까지 한 섬으로 건너가기만 하면 되는, 말로는 어렵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작전,

그러나 하늘에서는 적군의 공습이, 해안에서는 파도와 굳은 날씨가, 거기에 한 때 연합군으로 서로를 아껴주던 병사들의 태로운 목숨 앞에 서로 먼저 살겠다는 이기주의가 더해져 더한 악조건을 형성한다.

파도, 기후, 어둠 등 전장 뿐 아니라 대자연 아래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장면 같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상황들의 연속이다.

승선인원의 제한이 있어 일부 병사들을 놓아두고 떠난 구축함, 서로 먼저 타려 다투는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일부 병사들은 해안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 남겨진 병사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그마한 희망을 안은 채, 뒤늦게나마 보트를 타고 구축함을 뒤쫓는다.

그러나 앞선 구축함이 얼마 가지 못해 공습으로 침몰 되어버리고 힘겹게 배에서 탈출하는 병사들을 뒤따르던 보트 병사들이 구해주는 장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갔던 병사들을 오히려 구해내는 그 장면 어쩌면 이기주의가 난무한 전장에서도 ‘인간성’이라는 한 가닥의 희망이 남아있음을 강조하는 것일지 모른다.

실제로 세 파트를 이끌어 가고있는 캐릭터들은 그것의 증명을 위해 배치하고 있다는 의도로 읽히기도 한다.

같은 사건을 둘러싼 다른 입장.
패색이 짙은 비참한 상 속에서, 우왕좌왕 분열할 수밖에 없던 전장의 리얼리즘을 담은 전쟁영화의 새로운 문법.

그러나 그 안에서 남아있는 인간성이라는 희망을 통해 성공으로 끝날 수 있었던 작전.

혹자는 영국인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국뽕(애국심자극) 영화라 부르기도 한다.






러나, 새로움을 시도한 놀란의 영화이더라도 좋은 점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영화는 명백하게 호불호가 갈릴만한 구성이다.

인터스텔라 때에도 그랬지만, 놀란 감독은 자신의 분석과 박식함, 그리고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 후, 그 당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 부어 영화를 만드는 느낌이다.

이 영화 역시 검증에 검증을 거쳐 심지어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어선, 전투기까지도 실제로 촬영에 사용했다고 한다.

관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정성스럽게 작품을 내놓는 느낌. 그것은 물론 창작자로서 바람직한 자세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어떤 깊은 고찰과 분석이라는 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이해의 과정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수준이 너무 높아 그저 방심하고 영화를 대하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자칫 불편함을 안겨줄 소지가 충분하다.

인터스텔라 때에도 관람 후에 관객들은 물리학 이론및 천체과학 등 이것저것을 마구 분석하여 자신들의 지식과 영화의 구현 여부를 비교해가며

이른 바 영화가 끝난 후 시작되는 논쟁을 즐기는
"지적 허영"을 누려가며 천만관객 넘어 서기에 이르렀는데,

다른 측면에서 관객의 해석을 요구하는 수준이 다소 높다는 것이 "상업영화"에서는 약점으로 불리울 수도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히어로 무비에서도, 우주 배경의 SF물에서도, 항상 '다름'을 결과로서 증명해 오던 감독이기에
그 새로움이 이제까지는 없던 개념으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일반 영화들처럼, 영화가 설정해 놓은 배경 속 몇몇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감정이입을 통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보여주기식 자랑이 되어버릴 확률이 높다.

시대 고증을 잘 해놓았다 한들 그저 잘 재현한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조차 의도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감정 이입을 시킬 캐릭터가 너무 분산되어 있다.

이름 한번 거론되지 않는, 거기에 군복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배우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어 누구의 시점에 맞추어 이야기를 따라가야 할 지 헤매다 포기하기 시작하면 이 영화는 그저 전쟁을 재현해 놓은 재현 드라마에 그칠 뿐이다.

설명은 없고, 대사는 극히 적다.
관객으로서는 그저 영화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이미지만으로 상황을 파악해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니 사전 정보 없이 처음 만나는 이 영화를 따라가 감독의 의도를 알아내기엔 힘에 부치는 관객들도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톰하디나 킬리언 머피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지만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는 배우의 인지도나 감정개입을 요하는 형태가 아니며 이들 역시 그저 수많은 병사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들,
상업영화로서 하나의 극으로 만들었다면, 캐릭터의 행동의 이유나 당위성이 만들어져야 만들어놓은 세계관으로 유입시킬 수 있을 것을.

그 세계관이 실화라 오롯이 그 재현에 천착했던 것인지,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나 행동의 이유 등에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다.

구하러 하는 파트의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 민간 어선의 선장도 아들이 군인으로 전사를 했다는 지나가는 대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넘치는 애국심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에 뛰어들려 하는 건지,

애써 구해준 병사의 전후 공포증의 영향으로 친구가 죽임을 당했는데도 괜찮다며 그저 한마디로 넘겨버리며 병사들을 구출하는 데에 다시 힘을 쏟는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

그저 이들은 아이덴티티를 가진 개별적인 캐릭터라기 보단 이 파트에의 상징으로서 배치해둔 요소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반 극영화처럼 캐릭터 설정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여기가 전장이니까 모두 가능하다"라는 변명을 붙이기엔, 상식적으로 익스큐즈된 부분이 많다.

상업 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떠나 어찌되었건 이야기로서 [극]으로 꾸며진 이상,

설정한 세계관과 그 세계관 안에서 구축되는 캐릭터,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와 결말 이라는 일반적인 영화감상 순서에서 너무 벗어나 낯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기기에 장중하게 들릴 듯 말듯 하면서도 초조하게 거의 한 씬도 끊어짐 없는 한스짐머의 음악.

개인적으로 이번만큼은 오디오가 너무 과한 느낌이었다. 히어로 영화 몇 편 감독하더니 습관이 됐는지...

시종일관 불안함이 느껴지는 전장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는 걸 느끼게 할 비주얼이 나오기도 전부터 뒤에 깔려지는 음악이 너무 과도한데다


내러티브 자체가 없어 보이는 구도에 비슷한 풍의 음악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느낌은 지루함을 가중시킨 느낌이다.



놀란의 영화답게 남겨진 떡밥이나 상징물들에 대한 해석하는 재미와 새롭게 시도된 부분에 대한 전문가들의 찬양은 충분히 이어질 수 있겠지만, 극장 안 러닝타임 중에는 조금 힘겨울 지도 모르는 영화.

그렇지만 초입에 밝혔듯, 이미 인지도 넘버원 감독. 사람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극장을 찾을 것이다.

영화는 놀란의 영화 중 적극 추천이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영화 보기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요즘 극장 프랜차이즈들이 가격 차등제 등으로 좀 성질 나게 하는 부분없지 않지만,

이 영화는 가능하면 아이맥스로, 가능하면 뒤쪽의 자리를 선점할 것을 추천한다.



(어떤 형태의 영화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신체 컨디션을 하고 가야 그나마 즐기기 수월하니 졸립거나 피곤한 상태라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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