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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추 Feb 25. 2021

룽지야, 산책 가자!

“산책 갈까?”라는 나의 말에 귀가 쫑긋 서고 눈이 반짝거리는 룽지가 보인다. 룽지는 올해로 6살이 되는 웰시코기계의 롱다리이자, 평생을 함께 할 나의 반려견이다. 6개월 때 우리 집에 왔으니 함께 한지도 벌써 5년쯤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카펫에 똥과 오줌을 싸 놓는 걸 시작으로 근 2년간 걸레받이와 의자, 벽지, 신발 등 물어뜯지 않는 게 없을 정도로 말썽쟁이였다. 장난감을 던져주면 그 흥을 자기가 주체하지 못해서 집안을 얼마나 전속력으로 빙빙 돌던지, 혼자 신난 룽지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잠만 자며 보낸다. 장난감을 던져줘도 반짝 신나서 놀다가 금세 질리는지 내 손에 자기 이마를 들이밀며 본인 머리나 쓰다듬으라 한다. 원하는 대로 열심히 쓰다듬어주고 있으면 어느새 또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렇게 자는데도 이렇게까지 졸릴 수 있나? 신기하면서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인 건가 싶어 마음 한쪽이 아려 온다.


이런 룽지를 단번에 활기차게 만드는 게 있다면 바로 산책이다. 단언컨대 룽지는 오리 목뼈보다, 소 간보다, 상어 연골보다 산책을 더 좋아한다. 내 생각에는 ‘산책 갈까?’라는 말은 해리포터의 아브라카다브라보다 룽지에게 더 강력한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이 주문에 걸린 룽지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 치고, 두 눈에서는 나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겠다는 듯 빨간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 이 마법은 룽지가 집을 벗어나야만 비로소 풀릴 수 있다. 만약 내가 이때 산책을 나가지 않는다면, 아마 룽지가 날 향해 아브라카다브라를 외칠 것이다.


룽지의 살인 저주를 피하기 위해 빠르게 하네스를 채우고 리드 줄을 걸어 집을 나온다. 산책의 시작은 역시 마킹이지라고 생각하는 듯 오늘도 어김없이 한쪽 다리를 들고 아주 시원하게 노란 오줌을 싸는 룽지이다. 빨간 레이저 빛이 나오던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별처럼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룽지에게 말한다.


“그럼,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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