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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추 Mar 12. 2021

시간의 흔적을 모두 간직한 집


눈을 좋아하는 룽지를 위해 눈 내리는 날엔 꼭 산책을 나가는 편이다. 평소에도 짧은 다리 때문에 본의 아니게 흙먼지를 배로 받아내며 걸어서 산책 후엔 배가 꼬질꼬질해진다. 그런데 눈 오는 날엔 더 심하다. 배 밑의 털들이 모래, 눈과 함께 뭉치면서 얼어버린다. 이런 날의 산책은 목욕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골목엔 부지런한 주민들 덕분에 눈이 쓸려 있는 곳을 걸으며 배를 조금은 보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골목길 산책이 룽지의 배를 아주 깨끗하게 유지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가끔 눈이 녹아 골목길이 구정물투성이이면 차라리 공원이 낫다)


이런 날 산책을 하다 보면 유독 더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집이 한 채 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단층 건물로 기와지붕과 굴뚝을 갖고 있는 아주 작은 집이다. 다른 집들은 시간이 흐르며 흔하디 흔한 다가구 주택의 모습을 갖춰갔는데, 이 집만 시간이 멈춘 듯 기와지붕과 굴뚝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방수를 위해 바른 것처럼 보이는 액체가 기와의 날렵한 모습을 뭉뚱그리고는 있지만, 그 위에 쌓이는 눈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요즘 건물들은 경사진 지붕이 딱히 필요 없기도 하고 층수가 많은 건물들이 많아서 지붕에 쌓이는 눈을 볼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아담한 건물은 앞에 가만히 서있어도 지붕 꼭대기까지 눈이 쌓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사진 마루와 기와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을 볼 수도 있고 처마 끝에 달리는 뾰족한 고드름도 볼 수 있다. 앞에 놓인 화분과 손수레 위로 쌓이는 눈은 이 집의 예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더해준다. 그래서 이 집을 보고 있으면 과거로 타임슬립 한 느낌이 든다. 낡고 오래된 것을 빈티지라고 하지 않는가. 이 건물이 바로 빈티지 그 자체이다.


시간의 흔적을 모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 집을 보니 이 집의 출생 연도가 궁금해졌다. 건축을 업으로 삼아왔던 잔재주를 십분 발휘하여 건축물대장을 찾아봤다. (사실 건축이 업인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민원 24에서 누구나 열람 가능하다) 1972년 9월 25일에 사용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1990년에 사용승인을 받았는데, 이것과 비교해봐도 정말 오래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0년 가까이 된 집이라니... 50살 생일을 목전에 두고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 집에게는 명예로운 죽음일까?


나는 왠지 좀 씁쓸하다. 오래되고 불편해서 한꺼번에 다 부숴버리고 새로 짓겠다는, 철저하게 돈의 논리에 기반하여 이 동네의 추억을 다 밟아버리는 재개발의 행태가 너무 슬프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재개발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이 동네도 예외는 아닐 뿐이다. 그럼에도 방법이 정말 이것뿐 인지, 상호 보완하는 방식의 재개발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든다.


대학생 때 다가구 주택가의 소규모 공동개발이라는 주제로 졸업작품을 진행했었다.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차 있는 다가구 주택가의 가장 큰 단점은 아마 빽빽한 집 때문에 골목의 체감 길이가 더 길게 느껴지고, 밤에는 그런 골목을 걸어가면서 두려움을 느끼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가장 먼저 빼곡한 집들을 부분적 비워내 공지를 계획해주고, 몇몇 필지를 합필해 재건축을 할 수 있는 대지의 조건을 만들어 준다. (산성동은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건폐율이 50% 이하인 땅이다. 대지의 면적 자체가 매우 작기 때문에 각 대지를 따로 생각한다면 거의 건축을 할 수 없는 땅이다. 법적으로 재개발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 후 각 공지를 연결하는 시선 네트워크를 만들어주고 그 부분의 대지는 건축을 제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체감하는 골목의 길이를 감소시키고 주변의 골목을 연결할 수 있다. 그리고 건축이 제한된 땅의 용적률 상향시키고, 도로 사선 제한을 완화해주는 식으로 보완해준다. 이런 식으로 기존에 있는 골목을 살리면서 작은 대지들을 모아 하나의 대지로 계획을 새로 하고, 각 대지의 순서를 정해 순차적으로 개발을 진행해 나간다면, 지금의 흔적을 이어가면서도 재개발이라는 명목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다채로운 골목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을 지구 단위 계획 때부터 지정해준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편리하면서도 아파트의 획일화된 모습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현재 지어지는 아파트들도 3층짜리 테라스하우스를 단지 내에 배치하는 식으로 획일화된 모습을 벗어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높은 아파트 숲 한가운데에 위치한 테라스 하우스에서 사는 것은 파놉티콘에서 사는 듯한 느낌이지 않을까? 현재의 방식으로 재개발이 계속 진행되다 보면 몇십 년 후에 우리나라의 집은 대형 아파트 단지 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 휴먼 스케일의 작은 골목을 거닐며 다양하고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하는 기쁨을 더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개발은 돈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내가 학생 때 생각했던 ‘다가구 주택가의 소규모 공동개발’에 대한 꿈은 결국 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진행할 수 없는 일이다. 한정된 대지 안에 최대한 많은 세대를 넣어야 돈이 되고, 그러려면 아파트만 한 것이 없다.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은 이 땅의 가치가 지금보다는 훨씬 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재개발이 결정된 몇십 년 전부터 야금야금 동네의 주인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산성동에 살던 집주인들은 조합원이 되어서 일반 분양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어도 그 돈을 감당할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 기와집만 해도 올해 5월에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지만, 결국엔 이곳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땅을 내주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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