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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문 단상

100년 후 인구 전망

중앙일보(211001)

by 생각의 변화

몇 년전 교회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연극을 지도해 준 적이 있었다. 목사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내가 돕기로 했던 것이다. 준비 기간이 빠듯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연극을 만들 수 없었다. 다음에 할 때는 잘 해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일 년 후를 기약했지만 그 이후로 연극은 없어졌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모으기가 어려워서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없어서 할 수 없다.

예닐곱 명 정도 있던 아이들은 모두 커버렸고 이후에 들어온 아이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 예배도 없어졌고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교회 유아원도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이유는 다른 자영업자들과 비슷할 것이다.


요즘 교회 행사(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때 누군가 아기를 데리고 나타나면 교회 사람들은 신비로운 걸 발견한 것 같은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곤 한다. 영화<칠드런 어브 맨>의 원작소설인 P.D. 제임스의 <사람의 아이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테오의 일기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인간이 25년 2개월 12일을 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2021년 1월 1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영화 속에서는 팔순의 P.D. 제임스가 실제로 등장한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인류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인류는 멸종되는 것이다. 이 영화 후반부에 테오가 임신한 '키'와 함께 총격전이 벌어지는 건물을 빠져 나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키가 안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는 난민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정부군의 공격으로 공포에 질린 이들이지만 아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담겨 있다. 이들의 눈빛에서 교회 어른들을 봤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공교롭게도 P.D. 제임스는 2021년을, 그러니까 올해를 마지막 인류가 사망한 해로 잡았다. 출산율이 줄어들고 인구가 줄고 있다는 기사를 굳이 읽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신문에 나온 기사대로라면 한국은 핵무기나 환경의 파괴에 의해서가 아니라 출산율 감소로 사라질 수도 있는 나라가 돼버렸다.

난임 시술 지원도 좋고 1.5억 신혼 대출도 좋지만 그게 출산율 감소에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대야 하고, 아이들은 벼랑 끝에서 치열한 생존경쟁과도 같은 입시와 취업 경쟁을 치러야 하고, 그렇게 해서 직장을 갖게 되도 여전히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나라 사정이계속 된다고 하면 누군들 아기를 키우고 싶을까.


참, 하나 빼 먹었는데 소설 속에서 2021년은 마지막 인류가 죽은 해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비록 희망은 막 태어난 아기(영화속에서는 '딜런')처럼 약하고 갸냘프지만 우리는 이 아기를 주인공 테오처럼 온 힘을 다해서 내일(영화 속 배이름이 '투모로우'이다)에 태워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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