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문 단상

호모 루덴스

중앙일보(211007)

by 생각의 변화

올해 6월에 C 의전원에서 강의를 했다. 글쓰기 관련 강의였다. 봄 학회 때 학회에서 했던 발표에 내용을 조금 더 추가했다. 나 자신이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발표를 준비하다보니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는 늘 '글'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문 칼럼, 독후감, 한글논문, 학위논문, 그리고 소설까지.


많은 작가들처럼 나 또한 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내가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일 잘 쓰고 싶었던 글이 희곡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생 시절 내게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멋진 연극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렇기 위해서는 좋은 희곡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고전을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했으니 당시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직접 쓰는 거였다(과연, 이게 더 쉬운 일이었까?). 대학생이었던 내게 연극은 가장 즐거운 '놀이'였고 그걸 잘 하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아무도 내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혹시 누군가 의과대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위해서는 어떤 '강의'가 또는 어떤 '책'이 좋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난 그런 건 없다고 대답할 것 같다. 책과 강의실 밖의 세상을 알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우는 건데 그걸 또 배우기 위해서 책과 강의를 또 듣는다고? 이상한 이야기다.

그보다는 충분한 방학 기간을 보장하고 다양한 동아리활동을 지원하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이다. 잘 놀고 재밌게 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또한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유능한 매니저 보다는 애정어린 관찰자가 항상 어려운 법이어서 세상은 점점 반대로 가는 중이다. 방학은 짧아지고 동아리 활동은 점점 더 제한을 받는 것 같다. 참고로 많은 의과대학 연극반들은 사라지고 있는 중이고, 코로나 팬데믹은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니 '놀이'를 보는 사람들만 남았다. 놀이를 하던 시절은 즐거웠지만 보기 위해 소환된 '놀이'가 보여주는 세계는 왠지 살벌하고 위태롭다. 입시지옥, 취직경쟁, 생존 경쟁. 과연 세상만 그럴까. 학교도 가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문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