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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Dec 13. 2021

장례식에 부쳐

임정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임정수가 죽은 후로 세 번 정도 어머니를 뵌 것 같습니다. 만날 때마다 애써 환하게 웃으셨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웃음 끝에는 항상 그늘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저는 당신의 웃음보다 그늘이 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신에게 95년 이후는 끔찍했을 것 같습니다. 남편을 잃고 몇 년 후에 또 막내 아들을 잃었으니 벗을 잃은 제 슬픔 따위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 기억 속에 그 시기는 오랫동안 방치된 지하창고처럼 캄캄하고 삭막하기만 합니다.

남편께서는  95년에 돌아가셨고 막내 아들인 정수는 99년에 사망했습니다. 임정수는 우리에겐 거칠고 막무가내였지만 집안에서는 귀여운 막내아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전에 형님과 같이 신촌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정수도 형님 앞에서는 그냥 귀여운 막둥이였습니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당연히 그랬겠죠.


5년 전에 내과학 교실에서 마련한 임정수 상 기념식 때 어머님을 만났습니다. 못 알아 보실 줄 알았는데 제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잘 지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씩씩하게' 잘 사신다고. 저는 당신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어느 부모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진짜'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올해 여름이었습니다. 오후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임정수 어머니'라고 화면에 떠서 조금 놀랐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다짜고짜 누군가 당신을 아무 이유없이 병원에 가두었으니 제발 꺼내 달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모습답지 않게 어머님의 말씀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겨우 설득해서 담당 간호사와 연결이 됐습니다.  

어머님은 올 봄에 혈액암을 진단받으셨고 항암 치료후에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입원했습니다. 격리 병동에 입원해 계신 중에 섬망이 생겼습니다. 당신께 설명을 드렸지만 이해하지 못하셨고 저는 어머님을 병원이라는 감옥에서 꺼내 드릴 수 없었습니다.


삶이 당신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오래 전에 사고로 죽은 벗과 살아 계시지만 암투병 중인 벗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엉엉 울었습니다.


임정수는 저의 절친이자 제가 보낸 이십대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대학을 다녔고, 연극을 했고, 힘든 병원 생활을 견뎠으니까요.  

임정수는 99년 2월 10일 이후로 이십 년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희미한 과거가 됐습니다. 제 기억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어머니를 만나면 그 희미한 기억이 잠시 선명해지곤 했습니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해졌네요.


벗도 벗의 어머니도 되살릴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남아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질없는 후회와 때늦은 소망 뿐.

이제 와서 제 늦은 소망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어머님이 편안하게 돌아가셨기를 빕니다.

삶은 유한하지만 죽음은 무한하니,  부디 그 곳에서 막내 아들을 만나 진짜 씩씩하게 지내시길.


202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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