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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Feb 18. 2022

코엔의 <맥베스>

The tragedy of Macbeth

코엔이 만드는 <맥베스>라, 매력적인 조합이다. 


생각해보니 여태껏 꽤 여러 종류의 <맥베스>를 보고 읽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은 인상적이었지만 구체적인 장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구로자와가 각색한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는 리어왕을 각색한 <란>이 가장 좋았다. 요네스 뵈의 소설<맥베스>는 인물의 내면이 아닌 배경에 너무 신경을 써서 앙꼬 없는 진빵 같은 느낌이었다. 마이클 파스빈더가 연기한 <맥베스>는 괜찮았지만 레이디 맥베스가 너무 마음이 여려서 조금 의아했다. (팜므파탈이 왜 이리 마음이 여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 연극은 귀족들이 우아하게 앉아서 감상하는 오페라 공연장 같은 곳이 아니라 노동을 마친 서민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시끌벅적한 극장에서 상연됐울 것이다. 톰 스토파드의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 보면 당대의 분위기가 잘 느껴진다. 참고로 당시에 입장료는 1실링 정도 였는데 네모난 박스를 객석에 돌려서 그 안에 넣었다고 한다(이것이 박스 오피스의 기원이라고 어딘가에서 주워 들음). 당시에는 조명이나 음향이 없었기 때문에 연극을 시작한다는 극적인 신호를 줄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캐플릿가와 몬태규가의 하인들이 싸우는 장면으로, <햄릿>은 엘시노어 성의 병사들이 유령을 기다리며 , <맥베스>는 세마녀의 예언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예전에 <맥베스>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는 도입부에 나오는 세 명의 '마녀'가 무슨 의미일까, 였다. 


<햄릿>의 '유령'이나 <맥베스>의 '마녀', 비록 마녀는 아니지만 <오델로>의 '이아고'는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준다. 어쩌면 셰익스피어는 '방백'이라는 연극적인 방식을 좀 더 색다르고 세련되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햄릿, 맥베스, 오델로가 겪는 비극은 내면의 목소리와 현실 속의 '나'의 욕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햄릿은 관망과 살해 사이에서, 오델로는 사랑과 의심 사이에서, 맥베스는 충성심과 권력욕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들 모두는 결국 욕망에 굴복하고 파멸해간다. 


그나저나, 애플 TV에서만 볼 수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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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is the question.


고민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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