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변화 Sep 23. 2022

문학 속의 의학

1부 쓰기 전 

문학 속의 의학     


독후감을 위해서 읽은 첫번째 책은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이치의 죽음>. 길지 않은 작품이어서 금방 읽었지만 글을 쓰자니 막막했다. 집중해서 소설을 읽고 메모도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다브다, 다브다(DABDA.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 Denial Anger Bargaining Depression Acceptance의 앞 글자를 따서 줄인 말). 막상 빈 종이를 마주하니 다브다 라는 단어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서클룸과 도서관에서 낑낑거리며 붙잡고 있었지만 반도 못 썼다. 최소 원고지 열두 장 정도의 분량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워드 프로세서를 다룰 줄 몰라서 키보드가 아닌 리포트 용지에 볼펜으로 썼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분량인지 감이 안 잡혔다. 대략 빽빽하게 두 쪽 정도, 갈 길이 멀었다. 


마감 날까지도 글을 완성하지 못했던 나는 신문사 사무실을 직접 찾아갔다. 학교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였다. 원고 마감 날이었고 되도록 빨리 원고를 넘겨야 편집자가 작업을 해서 인쇄소로 넘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직접 전달해야 했다.

저녁 열 시가 넘어서 사무실에 들렀다. 철제문을 여니 안은 뿌연 담배 연기로 매캐했다.   

사무실 중앙 큰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누구?’라고 묻는 듯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레지던트였고, 학생은 한수를 포함해서 두 명뿐이었다. 

안쪽 방에서 한수가 나왔다. 

“다 썼냐?”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으니 한수가 씨익 웃었다. 

“아티스트 근성을 버려. 저널리스트는 마감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감 시간에 물건이 있어야 돼. 쓸 만큼 쓰고 넘겨라. 내가 마무리할게”

“어쭈구리, 저널리스트 다 되셨네. 전에는 자기 글에 손댔다고 엄청 승질 내더니”

독수리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편집국장이 등을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마감을 맞추라고 했지. 글에 손대도 된다고 한 건 아닙니다.”

“어이쿠, 쏴리. 작가님.”

편집국장이 짐짓 미안하다는 듯 손을 뻗어서 휘휘 내저었다.    

한수는 전 해에 소설로 교내 문학상을 받았다. 편집부에서 원고를 하도 많이 손을 대서 자기가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근처 맥주집에서 당선 축하주를 사던 날, 앞으로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문제작을 하나 쓰겠다고 선언했다. 

사무실을 방문했던 그날은 내가 신문사 사무실을 처음 방문했던 날이면서 동시에 글쓰기에 발을 살짝 담그게 된 날이었다. 결국 막차 시간이 될 때까지도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다. 

미완성의 원고를 한수에게 넘기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시는 글 따위는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이곳에 들를 일은 없으리라.  

(계속)



작가의 이전글 독후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