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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Sep 27. 2022

로미오와 줄리엣(1)

1부 쓰기 전

로미오와 줄리엣


 이듬해에 나는 연출을 맡기로 결심했다. 왜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연을 준비하던 극회장과 기획을 만났다. 30회이기 때문에 공연을 성대하게 해야 한다는 데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재학생 중에 연출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졸업생인 내가 끼어들 여지는 충분했다. 내가 연출을 맡겠다고 하니 반색을 했다(지금 생각해보니 완전히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어, 괜찮을까요?”

극회장이 내가 건넨 대본을 보더니 옆에 있던 기획을 힐끗 쳐다보았다.

“왜?”

“너무 유명해서요. 무대랑 의상도 직접 만들면 제작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녹색 표지의 문고판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고심 끝에 고른 작품이다.

쉐프가 만든 근사한 정찬을 기대했는데 뜬금없이 내온 사발면을 보는  같은 표정이었다. 그냥 만만해서 정한  절대 아니다. 여러 작품이 물망에 올랐다가 사라졌다.  믿겠지만 사실이다. 아서 밀러의 <시련> <세일즈맨의 죽음>,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 좋고, 굳이 셰익스피어를  거면 <햄릿>이나 <맥베스>같은 작품도 있는데,  하필 <로미오와 줄리엣>!

우린 올리비아 핫세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기네스 펠트로도 없다구요, 아마도 둘은 그 말이 너무나도 하고 싶었으리라.

“30회는 축제야. 축제면 축제다운 작품을 해야지.”

내가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목소리를 높혔다.

둘은 건성으로 영혼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극회장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얼음만 남은 빈 컵에 빨대로 요란한 소리만 내고 있었다.

“나만 믿어. 축제로 만들어 줄게.”

“예.”

둘이 기운 없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사상 초유의 의사 파업 시국이었고 공연을 한다고 선배를 찾아가서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니들이 제정신이야? 선배들은 파업한다고 병원 문 닫고 거리로 나섰는데 연극? 넋빠진 놈들.

선배들의 응원을 엄청나게 받으면서 연극을 해도 힘든 게 극회장과 기획 자리인데 그마저 기대할 수 없으니 기운이 쭉 빠질만 했다. 축제라는 단어가 이만큼 안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당시에 나는 미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정신도 아니었던 것 같다. 제정신이 박힌 레지던트라면 연극 연출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나만 그랬으면 됐는데 애꿎은 극회장과 기획도 거기 합류시켰다.


(계속)

   

30회 정기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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