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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Sep 29. 2022

로미오와 줄리엣(1-3)

1부 쓰기 전

로미오와 줄리엣


이듬해에 나는 연출을 맡기로 결심했다. 왜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연을 준비하던 극회장과 기획을 만났다. 30회이기 때문에 공연을 성대하게 해야 한다는 데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재학생 중에 연출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졸업생인 내가 끼어들 여지는 충분했다. 내가 연출을 맡겠다고 하니 반색을 했다(지금 생각해보니 완전히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어, 괜찮을까요?”

극회장이 내가 건넨 대본을 보더니 옆에 있던 기획을 힐끗 쳐다보았다.

“왜?”

“너무 유명해서요. 무대랑 의상도 직접 만들면 제작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녹색 표지의 문고판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고심 끝에 고른 작품이다.

쉐프가 만든 근사한 정찬을 기대했는데 뜬금없이 내온 사발면을 보는 것 같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냥 만만해서 정한 건 절대 아니다. 여러 작품이 물망에 올랐다가 사라졌다. 못 믿겠지만 사실이다. 아서 밀러의 <시련>과 <세일즈맨의 죽음>,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도 좋고, 굳이 셰익스피어를 할 거면 <햄릿>이나 <맥베스>같은 작품도 있는데, 왜 하필 <로미오와 줄리엣>을!

우린 올리비아 핫세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그리고 기네스 펠트로도 없다구요, 아마도 둘은 그 말이 너무나도 하고 싶었으리라.


“30회는 축제야. 축제면 축제다운 작품을 해야지.”

내가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목소리를 높혔다.

둘은 건성으로 영혼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극회장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얼음만 남은 빈 컵에 빨대로 요란한 소리만 내고 있었다.

“나만 믿어. 축제로 만들어 줄게.”

“예.”

둘이 기운 없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사상 초유의 의사 파업 시국이었고 공연을 한다고 선배를 찾아가서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제정신이야? 선배들은 파업한다고 병원 문 닫고 거리로 나섰는데. 연극? 미친 놈들.

선배들의 응원을 엄청나게 받으면서 연극을 해도 힘든 게 극회장과 기획 자리인데 그마저 기대할 수 없으니 기운이 쭉 빠질만 했다. 축제라는 단어가 이만큼 안 어울릴 때가 있을까.

당시에 나는 미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정신도 아니었던 것 같다. 제정신이 박힌 레지던트라면 연극 연출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나만 제정신이 아니었으면 됐는데 애꿎은 극회장과 기획도 거기 합류시켰다.


나는 연극을 준비하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어서 연습을 하기 서너 달 전부터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시간 날 때마다 예술의 전당 자료실에 들러 공연과 관련된 문헌을 읽고 영상자료를 보았다. 상영됐던 영화들과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의 공연 영상을 이것저것 찾아서 봤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화나 연극으로 본 사람은 많지만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그들 중에서 공연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BBC에서 제작한 셰익스피어 시리즈를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냥 영국에서 만드는 평범한 시리즈였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러닝타임이 자그마치 여섯 시간이 넘었다. 참고로 나는 이틀에 걸쳐서 겨우 다 봤다. 대본에 나온 대사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공연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방송이 아니라 공연을 하는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마도 우리가 보는 연극은,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절반 이상을 편집한 걸 보는 것이다. 대체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관객들은 이 끔찍하게 긴 연극을 어떻게 봤을까? 요즘 사람들이 주말이나 휴가 때 찜한 드라마를 며칠에 걸쳐서 정주행하듯 그런 식으로 봤던 걸까.


내 기준에서 연극을 재밌게 볼 수 있는 러닝타임 최대치는 두 시간이다. 다른 연출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이상은 자신이 없었다. 결국 대본의 대부분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할 일이 갑자기 많아졌다. 연습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삼 주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했다가는 축제는커녕 끔찍하게 지루한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 뻔했고, 무작정 줄인다면 아무 특색 없는 학예회 수준의 재롱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여섯 시간짜리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후 한 사흘 정도 고민을 했다. 새로운 연극을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했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 도서관에 처박혀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해 보기로 했다.

각색은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지만 마감에 쫓기면서 쓰는 독후감과는 전혀 달랐다. 엄청나게 새로운 걸 써내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걸 창작한다는 순수한 기쁨이 있었다. <문학 속의 의학>을 쓰는 동안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존과 로렌스 신부를 이야기의 중심부로 끌어오고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현재와 과거를 연결했다.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임무와 갈등이 있어야 했다. 존은 로렌스의 편지를 로미오에게 전달하는 임무 때문에 로렌스와 충돌한다. 존은 연인의 죽음을 통한 가문의 화해가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로렌스는 두 가문의 화해를 위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득한다.      


로렌스 신부 존경하는  신부님.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로미오와 줄리엣 등장하는 로렌스 신붑니다. 지내고 계신지요. 저에게 한없이 많은 시간이 있다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적겠지만 그렇지가 못하군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쓰여졌습니다. 원수지간인 두 가문 캐퓰렛가와 몬태규가는 실제로 존재했고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실존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과거의 시간 속에서 오류가 생겨 두 젊은이의 희생이 두 가문의 화해를 낳기는커녕 오히려 극단적인 반목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반대의 결과가 생긴 것은 존 신부가 편지를 로미오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받은 로미오와 가사 상태에서 깨어난 쥴리엣은 도망갔지만 금방 잡히게 됩니다. 로미오는 캐퓰렛가의 사람들에게 죽게 되고 쥴리엣은 몬태규가의 사람들에게 죽게 됩니다. 그리고 두 가문은 영원히 철천지 원수로 지내게 됩니다.

이 비극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입니다. 두 개의 시곗바늘이 합쳐지는 순간.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빛이 당신을 저의 암자로 데려갈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각색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니 밖은 컴컴했다. 하지 무렵이었으니 아마도 여덟 시 이후였던 것 같다. 그날 탈고를 자축하기 위해서 맥주집 ‘섬’에 들렀다. 만날 사람이 있었다. 경기도에서 공보의로 일하고 있던 후배 신영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감독에게는 자신의 페르소나와 같은 배우가 있다고 한다. 만약 내게도 그런 게 있었다면 그건 영기였다. 중저음의 발성이 풍부한 목소리, 귀에 팍팍 꽂히는딕션, 고집스런 인상. 내가 재창조해낸 로렌스 신부 역을 맡기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형, 일반 관객들은 원작의 세세한 부분을 모르는데 그게 사랑이든 화해든 상관이 있을까요?”

까칠한 놈, 찬물을 끼얹기는. 이미 탈고의 기쁨과 맥주에 취해서 반박할 논리를 생각해내기 어려운 상태였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미간만 찌푸리고 있는 사이에 영기가 방언이 터진 집사님처럼 속사포랩 속도로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든지 아니면 사귀었다가 헤어진다든지 그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는 않잖아요.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바뀐 게 아니라 약간의 변화만 준 거여서 관객은 각색의 효과를 전혀 못 느낄 거예요. 어차피 전 상관없어요. 무조건 할 거니까.”


한 달 반 정도가 지나고 첫 런쓰루를 돌렸다.

러닝타임 세 시간. 첫 번째 런쓰루를 마치고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어떡하지? 였다. 너무 길고 지루했다. 영기의 말처럼 각색의 흔적은 너무 미미해서 바닷물에 넣은 맛소금 수준이었다. 대체 2주 동안 도서관에서 뭘 한 걸까?

“어, 어떻게 알고 왔냐?”

그날 극회장과 기획이 ‘섬’에서 술마시고 있던 날 찾아왔다.

“척하면 척이죠. 배우들이 아직 멀었죠?”

대답 대신 맥주를 따라 줬다.

배우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란다. 내가 쓴 대본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차마 뱉지는 못했다.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고 두 달 동안 파업 때문에 신경 날카로워진 선배들한테 욕먹으면서 공연 준비한 후배들에게 미안해서이기도 했다.

“오빠, 앞으로 2주 남았으니까 희망을 가져요. 원래 우리가 뒷심이 강하잖아요.”

뒷심 할애비가 있어도 넘을 수 없는 게 있단다. 다시 대답 없이 맥주를 따라 주었다, 이번에는 기획에게.  

“지금도 재밌던데. 조금 길긴 하지.” 극회장이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으이구, 센스 없는 놈. 그래도 재밌게 봐주니 고맙구나.

“길면 짜르면 되지.” 기획이 맥주를 단숨에 마셨다.


머릿속에 뭔가 번뜩 떠올랐다. 그렇다. 짜르면 된다. 여섯 시간이 지루하면 세 시간으로 만들고 세 시간이 지루하면 한 시간 반으로 만들면 된다. 그날 이후 매일 대사를 지우고 런쓰루를 하고, 지우고 런쓰루를 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외하고 모두 매일 대사가 줄어들었다. 주연 배우 둘은 본인들 대사가 많은 게 미안했던지 자신들의 대사를 알아서 줄여 왔다.

일주일이 지나서 리허설을 돌리니 두 시간이 안 걸렸다. 처음에는 대사가 줄어서 의기소침하던 배우들도 점점 적응하면서 좋아졌다. 진짜 기획이 말한 뒷심이 발휘된 걸까. 공연은 어땠냐고? 나는 재밌었지만 그건 너무 주관적이어서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 시간 보다는 두 시간이 백배 천배 나았다.      


존 신부  줄리엣의 방문이 있던 다음 날, 암자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엷은 여름 햇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두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밖에는 베로나의 여름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는 문을 활짝 열고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그날이 엄청난 비극이 시작될 전날이라는 것도 잊은 채.

로렌스 신부는 이미 언덕이 하늘과 맞닿은 곳, 막 떠오른 태양의 중심부를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었습니다. 마치 태양 속으로 사라지려고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손에 편지가 있음을 의식한다.) 참,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편지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줄리엣의 용기가 절 감동시켰던 것일까요. 아니면 로렌스의 말처럼 역사가 요구하는 필연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글쎄요. 굳이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베로나의 태양 속을 걸어가고 있는 로렌스의 뒷모습 때문이었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평생을 모르는 척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뒷모습, 그것이 그가 건넨 편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등장하여 무도회 장면을 재현한다.)


(계속)

30회 정기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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