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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Oct 01. 2022

편지(1)

1부 쓰기 전

편지     


저녁을 먹고 내무반으로 들어와서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1층 강당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휴전선 근처에서 시작된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사관후보생을 포함한 후방의 군인들도 전방으로 투입돼 전투에 참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부터 지시에 잘 따라 주기 바란다.”

각이 날카롭게 잡힌 전투복을 입고 나타난 훈육대장이 비장하게 얘기했다. 

순간 강당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훈육장교가 손바닥만한 비닐백을 나눠주면서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서 넣어서 제출하라고 했다. 뭐야 진짜야, 강당 안이 술렁였다. 또 다른 훈육 장교는 검정 모나미 볼펜과 편지지를 나눠주면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라고 했다. 강당에 모인 후보생들은 모두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다. 

“내일 새벽 다섯 시에 영천역에서 전방으로 가는 열차가 출발한다. 열차 번호를 불러줄 테니 모두 잘 기억해서 혼란 없이 일사불란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한참 동안 군번과 열차번호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훈육 대장은 열차번호를 모두 부르고 나서 잘게 찢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군사기밀이라고 했다. 

호종이 강당으로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장내 방송이 울려 퍼지는 내내 몰래 연병장에 묻어둔 핸드폰으로 여자 친구랑 통화를 하고 들어온 호종은 자초지종을 듣고 패닉에 빠졌다.

“너 뭐야!” 

“314번 사관후보생 나호종.”

“너, 뭔데 지금 들어와. 전쟁이 터졌는데 정신 못 차려!”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훈육 장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열차번호를 못 들었습니다. 제발 알려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제발!” 

호종이 절규하듯 외쳤다.  

“못 들었습니다. 제발 알려 주십시오..”

호종이 울먹이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동안 울먹이는 소리와 한숨 소리가 강당 안을 메웠다. 훈육 대장이 군기가 빠졌다며 호종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뒤 강당 밖으로 나갔다.

“너무 심각한데요. 언제 알려주실 겁니까?” 

“재밌는데 좀 더 두고 보죠. 이것도 훈련이잖습니까.” 

방송실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방송실에서 키득거리는 훈육 장교들의 대화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훈육 장교들이 꾸민 쇼였음을 알고 분노한 사관후보생들의 항의로 훈련은 종료됐다.   

푸하하하. 

호종의 얘기를 듣던 서준석이 믹스 커피를 거의 내뿜을 뻔했다.  

“옛다. 돗대. 유격 갈 때는 버스 번호 절대 까먹지 마라.” 

서준석이 담배를 건넨 뒤 호종의 등을 툭툭 손으로 쳤다. 그리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버스 번호를 못 들었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제발!” 준석이 호종의 말투를 흉내 내며 울먹이는 시늉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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