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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Oct 03. 2022

편지(2)

1부 쓰기 전

편지


당시에 우리는 군의관이 되기 위해서 훈련 중인 후보생 신분이었고 예배가 시작하기 전 막간을 이용해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훈련을 받는 기간 동안 일요일마다 예배를 보았다. 설교강단 왼쪽에는 플랭카드가 길게 세로로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여호수아서가 적혀 있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하지만 강하고 담대하기는커녕 초코파이와 커피를 받은 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를 들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종이컵 속에 눈물이 퐁, 퐁퐁, 퐁퐁퐁퐁 떨어지고 있는 동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를 울먹울먹 따라 부르는 동안 신혼집 거실의 유리창으로 비스듬하게 들어오던 햇살과 느긋하게 누워서 야구 중계를 보던 베이지색 소파와 임신 5개월의 아내를 떠올렸다. 이 노래가 원래 이렇게 슬픈 노래였나?


교회에서 복귀하면 나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틈틈이 썼다. 훈육 장교가 나눠 준, 푸르스름하게 훈련소 정문이 인쇄된 편지지가 모자라서 다른 이들에게 빌려서 매주 쓰고 또 썼다.

점호 때마다 관물대 물건의 각을 맞춰주던 영상의학과와, 요로결석으로 고생했던 내과와, 아침 구보를 힘들어했던 정신과와, 여자친구와 헤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흉부외과 후보생에 대해서 썼다.

아침 저녁으로 연병장을 뛰어다니고, 영하의 날씨 속에 산비탈을 기어오르고, 방독면을 쓴 채 눈물 콧물을 흘리며 ‘가스! 가스!’를 외치고, 사격 훈련을 마치고 별을 보며 내무반으로 복귀하던 일에 대해서 썼다.

삼월이 됐어도 칼날 같았던 교정을 떠돌던 겨울바람과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퍼지던 애국가에 대해서 썼다. 하늘로 쭉 뻗은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 숲과 나무 줄기를 타고 수직으로 잽싸게 내려오던 청솔모와, 이들과 함께 서서히 내려앉던 어둠에 대해서도 썼다. 어둠과 정적을 뚫고 울려 퍼지던 국기 하강 나팔소리와 간간히 지저귀던 새소리에 대해서 썼다.


어떤 소설가의 말처럼 훈련소 시절은 읽을 수 있는 책이 성서밖에 없는 중세였다. 밤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성경책을 펴 가끔 아가서를 읽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아내가 쓴 편지 속에 붙여준 뱃속에 있는 큰아이의 초음파 영상을 떠올렸다. 첫 휴가를 나갈 때까지 매일 밤마다 시간이 빨리 달려 노루와 사슴을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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