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간
시화호를 건넌다
햇살이 길섶에 핀 샛노란 금계국과 하얀 개망초 위로 쏟아진다
남은 거리 십 킬로미터, 소요 시간 사십 분
방조제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다닥다닥 줄지어 저 멀리 끝까지 이어져 있다
한 달 전 전화를 받았다
엠티를 간단다 삼십 년 만에
시도 때도 없이 엠티를 떠나던
내 이십 대는 컴플렉스에 쩔어 있었고
그 시기에 연극은 유일한 구원이자 탈출구였다
하지만 연극을 하는 동안 치유된 줄 알았던 열등감은 현실로 돌아오면 늘 그대로였다
비루했지만 반짝였던 오래된 나의 스무 살
엠티를 갈 수 없던 시간 동안
우리는 기쁘고 축복받고 소중했지만
동시에 상처 입고 무관심하고 잊힌 존재였다
밤이 깊었고
잔이 빙글빙글 돌았다
쏟아져 나온 단어들이 소문처럼 술잔 속으로 번지고
물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사람들이 한 가닥씩 풀어지며 흐릿해졌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기억처럼 피어올랐다가 사그라졌다
유령처럼 방으로 들어간다
구겨진 셔츠처럼 침대에 눕는다
구멍 난 양말처럼 죽은 듯이 잠든다
꿈을 꾸었다
졸다가 마주 오는 차를 가까스로 피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대편에 차를 세운 상대방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박살 난 사이드미러를 내게 건넸다
그리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뱃불을 붙였다
그의 오른쪽 손등에 흉터가 보였다, 내 것과 똑같은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갑자기 그가 불타올랐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아침에 거실에 모여 북엇국을 먹으면서
공보의 시절에 겪었던 위험천만하고 황당무계한 무용담과
방언처럼 터져 나오는 끝나지 않는 수다의 은혜로움 속에서
우린 다시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손주를 볼 나이가 됐어도
그 세월은 다른 차원에서 비밀스럽게 흘러가 버렸고
우리들의 시간은 그날로부터 출발해서
여태껏 원점을 향해서 시끌벅적 달리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애초부터 원점이었으니까
다시,
시화호를 건넌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멀리서 거대한 두 대의 풍력 발전기 날개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날개를 통과한 바람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은 돌아온다, 원점으로
어제처럼
삼십 년만의 연극반 엠티에 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