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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Jul 04. 2023

병원을 거닐다

병원을 거닐다 


아버님이 저만치 앉아 있다

팔에는 수액줄을,

가슴에는 흉관을 꽂은 채

움직일 때마다 코에 연결된 산소줄이 가볍게 찰랑거렸다

가끔씩 웃으시면 움푹 파인 양 볼의 주름이 더 자글자글해졌다


39킬로그램


늘 소식(小食)을 하던 아버님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단식에 가까워졌다

가족 모임 때마다

식탁 앞에 앉아 계신 아버님은 졸업식 날 받은 꽃다발처럼 조금씩 말라갔다

수분이 다 빠져버린 꽃잎처럼

속이 훤히 비치는 종이처럼

오래된 나무 껍질처럼 앉아 계셨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어서...... 맨밥을 소금에 찍어서 드셨대"


아버님의 유년은 전쟁과 가난과 배고픔의 시절이었고

소식은 어린 시절에 터득한 생존의 방법이었다

폐렴으로 사그라져가는 아버지의 몸 때문이었는지

가난한 시절에 겪은 고생담 때문이었는지

그 얘기를 전하며 아내가 울었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중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이면

아버님은 마당으로 나가

푸르스름한 수국과 야트막한 라일락 나무 사이에

상추와 고추가 훌쩍 자란 텃밭에

벽돌색 고무 대야를 놓고 빗물을 받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 


마당 한 가운데 꼿꼿이 서서

거세게 쏟아지는 여름비를 맞으며

풀빛으로 무성해지는 아버님을 상상했다

파릇파릇한 새싹이 주름 사이에서 조금씩 돋아났다




작년 여름 병문안 후에 쓰다.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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