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변화 Oct 18. 2023

논문(1)

의사는 국문학수업이 필요없나요?

논문 


조인승은 군면제였기 때문에 학교는 후배였지만 나보다 일 년 먼저 펠로우(전임의)를 시작했다. 며칠 전 인승이 내게 한글 파일을 보냈다. 전공의가 쓴 논문의 초고였다. 환영회 때 그가 내게 올해 교실 최대의 과제는 전공의 졸업 논문 아홉 편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유능한 조인승이라 하더라도 한두 편이라면 모를까 아홉 편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도 평생 한 편 써봤는데 그 실력으로 남들 논문을 봐줄 수 있을까. 하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자리에서 대뜸 해결해 주겠다고 겁도 없이 공수표를 날렸다. 술기운 탓이었을 것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필기시험도 통과해야 하지만 학회에서 정해준 논문 수를 채워야 한다. 아무 논문이나 이름을 넣으면 되지 않겠냐 싶겠지만 그런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서 ‘제1저자 또는 교신저자’라는 단서를 달아 두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시험을 보기 전에 자기가 주도해서 완성한 논문 한 편을 학회지에 실어야 했다. 


늦게나마 어렵겠다고 한 발 빼도 됐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읽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파일을 열었다. 깜짝 놀랐다. 아무리 초고라 하더라도, 또 처음 쓰는 논문이라 해도 문제가 심각했다. 논문이라기보다는 한국어와 영어가 섞여 있는 아포리즘, 그게 아니면 중간중간에 표와 이상한 기호가 들어간 그래프도 있으니 일종의 해체시에 가까웠다. 제대로 된 문장이 드물었고(문법 파괴), 논리 전개가 없었고(형식 파괴), 참고문헌 여기저기서 갖다 붙인 영어 문장들로부터 유추해야 저자의 의도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다양한 해석). 대체 한국어로 쓰는 장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엉망인 한국어라면 차라리 영어로 쓰고 교정을 받는 게 낫지 싶었다(신기하게도 대부분 한국어 교정을 받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학회지에 실린 논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충격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의학적인 가치와는 별개로 학회지 논문의 문장 수준이 너무 형편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써도 논문이 실리는 걸 보면 한국어 문장 완성도에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기뻤다. 

그날 저녁 집에서 논문의 서론과 고찰을 완성해서 인승에게 메일로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인승이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앞에서 환자명단을 확인하고 있던 나를 덥석 안았다. 

“왜 이러셔.”

“완전 맘에 들어. 결과랑 참고문헌 정리해서 완성할게.”     

응급의학과가 꼭 필요할까, 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차피 없을 때도 병원은 어떤 식으로든 굴러갔기 때문이다. 수련을 받을 때도 대체 응급의학과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교수들도 많았고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그런 말을 들으면 같은 과 사람들끼리 분을 삭였지만 군대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군의관 중에도 간혹 응급의학과는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신경외과였는데 그날 내겐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마취과 군의관을 불러 응급실에서 자신의 환자를 기도삽관을 하고 나서 내게 물었다. 이 쌩또라이는 뭐지? 한판 붙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 진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은 느낌이 꼭 응급의학과 의사로서만 그랬던 건 아니다. 대전에서 삼 년의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펠로우로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처음 몇 주 동안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전공의들은 지들끼리 알아서 잘하는 것 같았고 전공의 시절의 나보다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훨씬 많은 것 같았다. 끼어들 틈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그들을 가르친다는 건 왠지 어불성설 같았다. 심지어 나는 마이크 울렁증 같은 게 있어서 강의는 완전 젬병이었다. 한동안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의국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퇴근하기 일쑤였다. 

꼴랑 한 번 논문을 써봤던 내가 아홉 명의 논문을 해결해 주겠다고 선뜻 나선 마음속에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또는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아마도 연극을 열심히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의과대학에 들어와 보니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너무 많았고 그들에 비하면 나는 너무 초라했다. 내가 느끼는 초라함의 본질은 낮은 학점이 아니라 평범함이었고 거기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었지만 내가 가진 재능은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까지도 나는 친구를 따라서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의지’는 없었고 그냥 ‘우연’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은 다르다. 친구는 단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타오르고 있던 ‘의지’를 촉발한 계기였을 뿐이었다, 마치 조인승처럼.


(계속)

작가의 이전글 한국어사전(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