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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Oct 24. 2023

국문학과(2)

의사는 국문학 수업이 필요없나요?

국문학과


네 학기의 석사 과정 중 두 번째 학기가 끝나가던 겨울이었다. 

석사과정 입학 동기들끼리 저녁을 먹는 자리였는데, 우연히 박사과정 중인 조교가 합석하게 됐다. 일부는 집으로 가고 세 명이 남아서 2차를 갔다. 전직 시인이면서 현직 학원 원장님, 박사 6학기 조교, 그리고 나. 

“왜 국문학과에 들어왔다고 했죠?” 조교가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좋겠네. 궁금하면 아무 데나 갈 수 있어서.” 조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전작이 꽤 있어서 알딸딸해진 나는 조교의 말투가 조금 거슬렸다. 

“어때? 잘 온 것 같아?” 시인이 물었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번뜩이는 분석, 그리고 열정적이고 지적인 토론, 이 모든 걸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 속의 국문학과는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수십 명이 같이 들었던 예전의 수업들과는 달리 매일 소그룹으로 국어 수업만 듣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예나 지금이나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조용하고 질문이 없다는 것. 거의 모든 수업이 한 학기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발제문을 써서 발표하고 토론을 했다. 어떻게 같은 작품을 읽고 저런 놀라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학생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범했다.


“글 좀 써보겠다고 왔는데 너무 구닥다리만 파고 있으니까 한심하겠지.”

조교가 말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거슬렸지만 그의 말 속에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의학 수업이 현재에 귀 기울여 미래에 적용하는 걸 배우는 시간이라면, 국문학 수업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현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국문학과는 ‘국문학’을 연구하는 곳이지 ‘글쓰기’를 교육하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새로운 능력을 갈고 닦아서 경쟁력을 만들어 가야 하는 상황인데 이광수와 염상섭의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답답했다. 

“예전에 미얀마의 절에서 일 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어. 딴에는 어떤 깨달음 같은 걸 얻기 위해서 갔지. 근데 막상 거기 갔더니 아무 것도 가르쳐주는 게 없는 거야. 거기 주지 스님은 날 만나면 매일 질문만 하더라구. 문을 오른손으로 열었냐 왼손으로 열었냐, 방에 오른발을 먼저 디뎠냐 왼발을 먼저 디뎠냐. 뭘 가르쳐 주는 것도 없이 계속 질문만 하는 거야. 일 년 동안 내내 그런 시답잖은 것만 묻더라.”

시인이 술잔을 비우고 젓가락으로 두부김치를 집어 먹었다. 


“미얀마 말도 할 줄 알아요?” 조교가 약간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영어로 하는 거지. 그리고 바디랭귀지, 짜샤.” 시인이 과장하며 손을 크게 허공에 휘둘렀다. 

“혹시 스님께서 영어가 짧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혹시 형이?” 

조교의 말에 셋이 큰 소리로 웃었다. 이미 우리 셋은 만취 상태였다. 정작 시인이 미얀마에서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리고 그게 내 경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사실 물어보았다 한들 딱히 신박한 답을 내놨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3차는 노래방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노래를 고르면서 시인이 말했다. “너 그거 아냐? 시인은 가사 안 보고 그냥 지 꼴리는대로 ‘필’로 부르고, 소설가는 가사 안 틀리려고 기를 쓰고, 평론가는 옆 사람이랑 어깨동무하면서 부른다.” 

그날 시인은 오른쪽엔 나를, 왼쪽엔 조교를 어깨동무하고 가사와 상관없이 ‘지 꼴리는대로’ 마이크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시인도 평론가도 아닌 원장님 스타일인가?). 나는 마이크를 들고 흐릿해진 눈으로 화면을 겨우 쳐다보았고, 조교는 눈을 감고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흐느적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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