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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Oct 27. 2023

이청준(1)

의사는 국문학수업이 필요없나요?

이청준


그 시절의 나는 두 개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하나는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급박한 알람 소리와 함께 정신없이 돌아가는 응급실 당직을 서는 밤의 세계였고 다른 하나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교정을 가로질러 강의실로 들어가 느긋하게 국문학 수업을 듣는 낮의 세계였다. 나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세계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두 세계는 여전히 평행선이었고 영원히 그럴 것만 같았다. 

둘은 불안이라는 공통점만을 가진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당직을 설 때마다 불빛과 알람 소리에 내 몸은 계속 닳고 닳아서 결국 조그만 점처럼 작아져 소멸될 것만 같았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결국 일 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시간은 이미 강물처럼 흘러가 버렸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물 위에 두둥실 뜬 채로 저쪽 뒤편으로 떠내려 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아가려고 발버둥을 쳐야 겨우 제자리에 있을 수 있었지만 나는 허우적거리며 끝없이 뒤로만 가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문학 수업은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의 끝은, 그것이 의과대학원이든 국문학과 대학원이든, 학위 논문이었다. 비록 틈틈이 수업을 듣고 발제문을 여러 번 썼다고 해도 과연 국문학을 주제로 연구해서 논문을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런 결과물 없이 대학원 과정이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점점 더 무겁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민교수가 국문학과 대학원을 지원했을 때 지도교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막상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그 말이 실감 나지 않았다. 첫 학기 수강 신청을 선택할 때 말고는 지도교수와 상의할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학기가 끝나갈 무렵 지도교수가 나를 불렀다. 지도교수는 책임감이 강한 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이 면담도 안 하고 잠수를 타고 있으면 수시로 연락을 해서 논문 진행 상황을 묻곤 했다. 나를 부른 이유도 바로 그 ‘논문’ 때문이었다. 

교수실은 4인 소파와 책상을 중심으로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몇 겹의 슬라이딩 책장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마치 이 방의 주인은 책장에 꽂힌 책이고 소파에 앉아 있는 우리는 그곳을 관리하는 집사처럼 느껴졌다.  

“논문 주제 정했어요?”

내가 말없이 지도교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설은 좀 읽죠? 이청준 씨 소설로 써봅시다. 그분 등단 작품이 ‘퇴원’이에요. 다른 소설에서도 환자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전집으로 나온 거 싹 다 읽고 한 번 만나서 얘기합시다.”

지도교수가 말을 마치고 A4 용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가 검색한 참고문헌 리스트였다.  

“이청준 소설로 논문을 쓰려면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돼요. 문학 쪽에서랑 의학 쪽에서. 여기 나온 참고문헌도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보고.”


거의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중앙도서관과 의대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면 책을 대여하고 자료를 모으고 복사했다. 자료를 읽고 밑줄을 긋고 글을 썼다. 의대 도서관에 앉아서 복사물을 잔뜩 쌓아놓고 논문을 쓰면서 가끔씩 과연 이 논문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매번 생각은 돌고 돌아 결국 이제와서 무를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곤 했다.   

국문학과에서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논문예심이다. 예심에서 허가가 떨어져야지만 논문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예심은 국문학과의 모든 교수가 참석하는 가장 큰 행사이다. 그해 석·박사 논문을 쓰고자 하는 학생은 원고지 백 매 정도 분량의 발표문을 써서 교수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국문학과 역시 꼼꼼하고 엄격한 잣대로 학생이 쓰고자 하는 논문의 주제, 논리의 정합성, 결론의 타당성을 따진다, 가끔은 지나치게 혹독하다 싶을만큼. 


그날은 어버이날 다음 날이었던 5월 9일이었다(생각해 보니 그때까지도 부모님께 국문학과 대학원을 다닌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예심을 받고자 하는 학생은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고 나는 예심자 중에서 두 번째 발표자였다. 들은 바에 따르면 예심의 전체 분위기는 첫 번째 발표자에 달려 있고, 본인 논문의 성패는 첫 번째 질문자에게 달려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발표자는 주제가 불분명하고 논리 전개가 느슨하다고 심한 질타를 받았다. 예심장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예심의 시작은 일단 어두웠다. 다음 차례였던 나는 조금 떨렸지만 발표문을 끝까지 읽었다. 발표가 끝나자 학과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의사라고 했죠?” 

학과장이 책상 위에 놓인 발표문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안경 너머로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문학 하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부분을 건드려 주니 좋네. 주제가 참신하고 논리 전개가 매끄럽고 의미 있는 결론이네요. 이번 학기에 완성하도록 하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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