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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Nov 09. 2023

퍼펙트 게임(2')

2부 두권의 책

(당부하는 말: 이 글은 저자의 상상과 약간의 사실을 재구성해서 쓴 이야기입니다. 전혀 일어난 적이 없는 사실임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퍼펙트 게임


그해 여름에는 전국적으로 유난히 사고가 많았다. 태풍 산사태 홍수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불도 많이 났다. 여름에 웬 화재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화상 환자는 겨울이 아닌 여름에 압도적으로 많다.

청주에서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도 그해 일어난 대형 화재 중 하나였다. 중환자 8명을 포함한 20명의 환자가 근처였던 대전 화상센터로 내원했다. 하지만 당시에 대전에 있던 인력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꽤 큰 화재였기 때문에 지역신문사와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왔다. 보호자들은 중환자가 이렇게 많은데 왜 의사가 두 명 뿐이냐며 서울의 큰 병원으로 전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바이탈 사인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전원을 하는 건 위험했다. 4개 도시의 화상센터를 관리하는 총책임자인 센터장은 주말에 대전으로 다른 센터의 화상외과의 열다섯 명을 불러서 수술하도록 했다.

비록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그중 두 명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고 그나마 상태가 조금 좋아진 두 명은 타 병원으로 전원 됐다. 이래저래 중환자가 네 명으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두 명의 의사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수준이었다.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내가 대전으로 파견을 나가기로 했다. 세종 캠프에 들러서 우주가 잘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캠프가 끝나는 날 같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진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 생각이었다. 덧붙여 파견 나가 있는 동안에는 당직을 자주 서야 했기 때문에 의사실에서 틈틈이 글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야구가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고 어쩌고’ 하는 그 글 말이다.


대전의 화상센터는 기차역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에 갈 수 있을 정도에 있었다. 병원 정문에서 보면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이글거리는 사우론의 눈이 올려져 있던 탑처럼 생긴 한국철도공사 건물이 병원 건물의 뒤쪽에 솟아있었고, '두 개의 탑' 아래에는 사우론의 검붉은 눈동자 대신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의 눈처럼 커다란 시계가 병원 전면건물 맨 위쪽 한 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금색 로마숫자가 새겨져 있는 파란색 원형 테두리 속에서 두 개의 검은 색 바늘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차장을 중심으로 기역자 모양으로 꺾여있는 병원 건물의 왼쪽에는 담쟁이 넝쿨로 된 지붕과 작은 나무로 만들어진 그늘 속 벤치에서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뒤로는 3층짜리 병원 건물의 꼭대기에 설치된, 병원 이름이 새겨진 간판과 그 밑으로 '새파란 아동연구소'와 ‘중앙 연구소' 간판이 보였다. 두 연구소는 각각 2층과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건물은 오랫동안 중학교였던 곳을 병원으로 개조했다. 운동장은 아스팔트 주차장이 됐지만 병원 안팎으로 학교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1층의 원무과와 외래 진료실은 교무실이었고, 나무 바닥으로 된 복도를 따라서 이어진 2층의 중환자실과 3, 4층의 일반병실은 중학생들이 수업을 받던 교실이었다. 나무로 된 바닥이어서 회진을 돌다 보면 유난히 발소리가 크게 들리곤 했다.


“수고하십니다.”

대전에 근무한 지 사흘 정도 됐을 때 하얀 반팔 셔츠차림의 남자가 부채질을 하면서 외래로 들어왔다. 화재가 난 지역의 담당형사였다. 중환자실 환자들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려고 온 것이다. 네 명중 두 명은 이번 주에 올라갈 것 같고 기계환기를 하고 있는 두 명 중 한 명은 이번 주에 익스투베이션(삽관한 튜브를 빼는 시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근데 수사에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네요. 병실로 올라갈 환자는 모두 외국 사람인데 한국말을 전혀 못해요.”

“모두 다요?” 형사가 울상이 됐다.

“아! 삽관 제거 예정인 환자는 가능하겠네요”

“한국 사람인가요?” 형사가 물었다.

“그렇지는 않은데 한국말을 잘한다고 하더라구요. 보호자가 그러던데요?”

“보호자가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보호자는 아니고 직장 동료죠.”

아, 형사가 약간 실망한 듯한 탄식 소리를 냈다.


“신문을 보니까 유증기에 엘리베이터 공사하면서 용접 불꽃이 튀어서 불 난 거라고 하던데 경찰에서 수사할 게 더 있나 보죠?”

“시공사 측에서는 엘리베이터 공사 안 했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죠. 결국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한테 물어서 확인해야 하는데 죄다 한국말이 잘 안 통해서. 깨어나면 그 사람한테 물어봐야 겠네요. 불꽃이 튀었으니까 불이 났겠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요. 근데 그렇게 순식간에 불이 붙은 거면 산소용접기나 절단기나 그런 게 발견됐어야 하는데,”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입원해 있다는 직원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창밖으로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환자들이 보였다.

“저기 계시네요.” 내가 그 무리 쪽을 한 사람을 가리켰다.


형사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갈 때 밖에서 ‘꺄악’하는 여자의 새된 비명소리와 ‘어떡해 어떡해’ 하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원무과 남자 직원 한 명이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에 들어왔다.

“요즘 병원 화단에서 고양이 시체가 종종 있어요 저번 주부터 이삼 일에 한 마리씩 병원 주변에 죽어 있더라구요. 고양이 목을 날카로운 걸로 여러 번 쑤셨던데, 근처에 미친 놈이 있나 봐요.” 원무과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퇴근하기 전에 중환자실 회진을 돌았다. 회진을 끝내고 나가보니 입원 중인 직장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삼십대 중반이었고 눈이 크고 충청도 억양이 조금 섞여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연기를 많이 들여 마셔서인지 아직도 쿨럭거리며 마른 기침을 했다.

“본인도 환잔데 빨리 나아서 퇴원해야죠.”

“저야 나이롱 환자죠. 이번 주에는 모두 일반 병실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두 명은 가능한데 함명국 환자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일단 삽관 빼고 이삼일 숨 잘 쉬는지 보고 결정할 겁니다.”

“회사에 연락해서 그즈음에 만나러 오라고 할까요?”

“그러세요. 근데 의사소통이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저녁 회진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의 레지던스 호텔에 도착했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 캔을 사서 들어왔다. 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전원을 켰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오전에 비가 내리긴 했지만 경기를 하는 데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우주와 나는 보슬비를 맞으며 스무 개 정도의 연습 투구를 했다. 공을 받아 보니 오전에 연습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스피드와 제구가 모두 좋았다. 구속측정기로 시속 65마일(104킬로미터)이었다. 이런 공을 열 살 아이들이 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날 받았던 우주의 공은 미국에 와서 야구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좋은 공이었다. 하지만 연습 투구만 보고 실전을 예측할 수는 없는 법이다. 불펜 선동렬이 얼마나 많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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