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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Nov 10. 2023

퍼펙트 게임(3)

퍼펙트 게임


다음날 회진을 돌고 외래에 앉아 있으니 밖에서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는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던 환자들을 지나서 응급실 정문 앞에 멈췄고 이어서 두 명의 구급대원이 환자를 내렸다. 구급대원 중 한 명은 환자를 응급실로 넣은 뒤 밖으로 나와서 벤치 주변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얼마 안 있어서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구급대원이 내민 이송확인서에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적었다. 환자를 보고 나올 때 밖에서 “최대위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기억 안 나세요? 헬기 타고 후송 같이 갔던.”

권상욱이었다. 

“짜식, 짬 좀 된다고 병원 와서 담배나 피고 말야.” 상욱의 등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제가 그 정도 짬은 되지 말입니다.”

상욱이 짐짓 군대 말투로 말했다. 우리는 응급실 앞에 서서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근황에 대해서 얘기했다. 

“아, 누구지. 낯이 익은데.” 상욱이 가려다가 말고 밖을 보며 잠시 섰다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왜?”

“아까 담배피는 데서 동창을 만난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 안 나지 말입니다.”

“꼭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냐?”

“그걸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상욱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충성!’이라는 구호와 함께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고 구급차에 올라탔다.  


오전 외래가 끝나고 같이 일하는 외과의 박성준과 병원 근처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성준이 식사를 마치고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내 환자 보호자 아무래도 스토커같아.”

“왜?”

“일주일 전에 3병동에 입원한 여자 환자인데 양쪽 허벅지에 열탕 화상을 입었어. 환자는 삼십대 중반이고 같이 따라온 보호자는 사십 대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 되는 남자야. 나이 차가 좀 있지만 처음에는 당연히 부부라고 생각했지. 나도 그렇고 간호사들도 그렇고. 둘이 거의 붙어 다니거든,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간호사들은 처음에는 부부가 금슬이 좋아서 그러려니 생각했대. 하지만 좀 이상하긴 하잖아. 아무리 금슬이 좋아도 부부가 하루종일 같이 붙어있다는 게. 환자가 다치기는 했지만 혼자서 거동이 충분히 가능하거든.”

“스토커 같다며, 병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내가 채근하듯 물었다. 

“간호사들이 보기에는 두 가지 점이 이상했나봐. 보호자가 환자 화장실까지 따라간다는 거야. 낮이나 밤이나 할 것 없이. 너무 이상하지? 그리고 하나 더 있어. 보호자가 칼끝이 뾰족한 칼을 갖고 다닌대. 간호사들이 환자 안전 때문에 안된다고 하니까 환자가 과일을 좋아해서 깎아주려고 그러는 거라면서 계속 안 줄려고 하다가 결국 빼앗았어. 그러고 나서 과일을 깎으려면 필요하다면서 빌려갔다가 안 돌려주고 그러다가 다시 뺐고를 몇 번 반복했나봐. 수간호사가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원무과에 확인해 봤는데 남편은 아니고 동거 중인 남자친구라고 했대.”

성준이 앞에 놓인 물을 마셨다. 


“그것만 가지고 스토커라고 하기는 좀······” 내가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끝까지 들어봐. 이게 끝이 아니야. 진짜는 지금부터야. 어제 그 환자 수술을 했거든. 수술방에서 연락이 왔어. 환자가 마취하기 전에 주치의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갔지. 그랬더니 환자가 그 남자, 사실 저 새끼라고 했어, 는 남편이 아니고 옛날에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다시 쫓아다녀서 석 달 전부터 다시 만난 거래. 근데 그 새끼가 개버릇 남 못준다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폭력적이고 성격이 불같아서 밥 먹다가 밥상을 엎어서 자기가 화상 입은 거라구 하더라. 밤마다 간병한답시고 옆에서 칼을 가지고 자는데 무서워 죽겠대. 신고해 달라는데 어떻게 할까?”

“신고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경찰이 그 남자를 깔끔하게 격리를 할 수 있을까? 일이 이상하게 꼬이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성준이 고민스럽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들어오면서 병원 건물의 시계가 여전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맞지 않았다. 우주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오후에 수술을 하고 나와서 다시 연락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퇴근 전에 중환자실 회진을 돌았다. 내일 정도에는 익스투베이션이 가능할 것 같다고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를 사서 방으로 들어왔다. 노트북을 켜고 여름리그 결승전을 이어서 쓰기 시작했다.       


6회 말 우주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우주는 세 타자를 삼진과 땅볼로 가볍게 처리했다. 8:0. 우리는 여름리그에서 우승했다. 4회에 나온 투런 홈런도 멋졌지만 오늘 경기 최고의 장면은 우주의 완벽한 투구였다우주는 1회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후 모든 타자를 삼진과 범타로 처리했다이른바 무사사구 완봉승첫 타자에게 맞은 안타만 아니었으면 퍼펙트게임이 되었을 것이다경기 전에 우주의 공을 받을 때의 내 느낌이 맞았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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