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게임
다음날 성준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환자가 경찰과 통화하는 장면을 보호자가 점심시간에 목격한 것이다. 아마도 경찰 쪽에서는 보호자가 하루 종일 붙어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신고할 때 충분히 상황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처음에는 병실에서 가벼운 말다툼으로 시작됐지만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다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아저씨, 적당히 좀 해요. 두 사람만 이 병실 쓰는 거 아니잖아요.”
언성이 높고 시끄러워지자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결국 불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무대응이던 지동수가 나중에는 살기 등등해져서 눈을 부라렸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환자 중에 한 명이 간호사에게 얘기를 했고 원무과 남자 직원 두 사람이 사태를 수습하러 올라왔다.
“썅년아, 쥐뿔도 없는 니 년을 받아 준 은혜도 모르고 쥐새끼처럼 경찰에 나를 꼰질러.”
복도로 끌려나온 이선진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땅바닥에 엎어진 채 있었고, 이성을 잃은 지동수는 인정사정없이 환자의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 찼다.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말렸지만 다시 뿌리치고 환자에게로 달려가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했다. 환자의 양쪽 허벅지에 감아놓은 붕대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얼마 안 있어 원무과 직원들이 합세했고 상황은 종료됐다, 고 생각했다. 완전히 제압되어 꼼짝할 수 없게 됐을 때 지동수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붙잡고 있던 원무과 직원 둘이 진정을 시키려고 병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잠시 후에 병실 안에서 ‘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야 이 개새끼들아!”
들어갔던 원무과 직원 둘이 밖으로 뛰쳐나왔고 한 명은 오른쪽 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칼을 들고 있어요.” 누군가 소리쳤다.
“그년 어디 갔어?” 지동수가 병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땐 이미 쓰러져 있던 환자를 다른 병실로 숨긴 상태였다. 간호사에게는 경찰에 연락하도록 했다. 원무과 직원과 성준과 나는 급한 대로 수액용 폴대와 대걸레 자루 같은 걸 들고 지동수와 대치했다. 달려오던 지동수를 향해서 원무과 직원이 폴대를 휘둘렀고 병실로 도망친 지동수를 다른 보호자들과 여러 사람이 엎치락 뒤치락 하던 끝에 다시 제압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결박을 시켜놓은 상태였다. 경찰서로 압송할 때 형사들이 지동수의 칼을 찾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다. 증인들이 많으니 따로 증거물이 없어도 되지만 다시 한 번 찾아봐달라고 했다. 과도 크기의 끝이 뾰족하고 은색 손잡이가 달린 칼이었다. 경찰이 떠난 뒤에도 병실과 복도를 샅샅이 뒤졌지만 칼은 없었다.
점심시간에 한바탕 난리를 겪고 난 후에 문득 오늘 우주가 캠프를 마치고 병원으로 오기로 한 날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우주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 오니?”
“몰라.”
“시간 정해지면 알려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오늘 저녁에 아빠랑 병원에서 자고 내일 같이 서울로 올라가자.”
다시 아무 대답도 없었다.
“오늘 갈 거면 기차표 예매해야 되니까 미리 얘기해.”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우주와의 대화는 늘 어려웠다. 모든 걸 알아듣는 것 같다가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가도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대답하고 싶을 때 다시 전화해라.” 결국 대답을 한참 기다리다가 참다못한 내가 말했다.
우주랑 통화가 길어지면서 배터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사고로 환자가 많아져서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점심시간에 난리를 겪은 통에 입원환자들의 드레싱이 훨씬 더 늦어졌다. 원래 마감 시간보다 훨씬 늦게 끝났다.
난리통에 오늘 익스투베이션을 하기로 했던 중환자실 환자를 잊고 있었다. 익스투베이션을 하려던 원래 계획을 조금 늦춰서 기계환기만 떼고 자발호흡 훈련을 한 후에 시도하는 쪽으로 바꿨다. 회진을 돌고 나왔는데 오늘은 직장 동료 동섭이 없었다. 아마도 병원 일정이 늦어지면서 오늘은 올라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외래가 거의 끝날 무렵 우주에게 다시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결국 코치에게 전화했다.
“우주요? 저희가 5시쯤 병원 근처에 내려줬는데요.”
병원 위치도 알고 있고 내 핸드폰 번호도 알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지만 한 번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게 서너 번 전화를 걸고 카톡과 메시지를 남겼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메시지가 왔다. 금방 갈게.
혹시나 우주가 근처에 있나 보려고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왔다. 소나기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려서 밖이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6시가 넘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병원 건물의 시계는 여전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도 고장 난 상태였다.
요란하게 울리는 원내 사이렌 소리에 깼다. 당직실에서 잠깐 잠이 들었던 것이다. 방안에서 탄 냄새가 심하게 났다. 가끔 병원 건물 뒤쪽에 소각장에서 연기가 건물 쪽으로 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사이렌까지 울리는 경우는 없었다. 통화되세요? 권상욱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충전하기 위해 전원을 연결하려고 할 때 밖에서 ‘불이야!’ 라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