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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Nov 14. 2023

퍼펙트게임(5)

퍼펙트 게임


밖으로 나가니 연기로 매캐했다.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환자가 두 명 입원 중이었기 때문에 근무 중인 간호사 두 명이 한꺼번에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한 명은 기계환기가 연결된 상태여서 혼자서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중앙계단으로 4층까지 뛰어 올라갔다. 

4층 복도를 지나 중환자실 문을 열었다. 오늘 기계환기를 뗀 함명국 환자가 입 안으로 들어간 삽관튜브를 통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옆에는 김동섭이 서 있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나는 약간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른 환자를 1층으로 옮기는 동안 잠깐 있어 달라고 해서요.”

“아, 예. 지금 저랑 같이 1층으로 옮길까요?”

“예. 그러죠.”

그 순간 함명국이 갑자기 심하게 몸부림을 쳤다. 기계환기를 뗀 상태여서 약하게 재운 상태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식이 있었다. 내가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김동섭은 환자의 귀에 대고 괜찮다고 진정하라는 얘기를 하면서 환자의 가슴 쪽을 토닥거렸다. 환자가 더 심하게 움직였다. 튜브를 거의 뽑을 것 같은 기세였다.

“책상에 간호사 번호 있으니까 전화를 좀 해주세요. 둘이서 어려울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직장 동료는 간호사실이 있는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자동문이 열리자 밖에 있던 매캐한 연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 오셨나봐요.”

네, 내가 기침을 쿨럭쿨럭 하면서 대답했다. 

“잘하셨네.” 동섭이 말했다. 

나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동섭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 희미하게 웃고 있어서 조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동섭이 자동문 쪽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고 내 쪽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냐. 사람 무안하게시리.”

동섭이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오른손으로 왼쪽 소매를 더듬어 뭔가를 꺼냈다. 은색 손잡이의 칼, 낮에 사라졌던 그 칼이었다. 그 칼을 왜, 그 순간 동섭이 갑자기 내 오른쪽 팔을 찔렀다. 순간적으로 피하지 않았으면 가슴을 찔렸을 것이다.   

“씨발, 쬐끔 복잡해졌네.” 피 묻은 칼을 왼쪽 소매에 슥슥 닦았다.  

“아빠!” 


자동문이 열리면서 우주가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나와 동섭 모두 당황했다. 동섭은 오른쪽 팔을 붙잡고 쓰러져 있는 나와 우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우리 셋은 중환자실 출입문부터 그려진 노란색 중앙선 위에 나란히 일자로 서게 됐다. 내 왼쪽 편에는 함명국이 삽관튜브를 한 채 누워있었고 정면에는 동섭과 우주가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다. 우주는 두 개의 알루미늄 배트가 삐져나온 빨간 색 나이키 백팩을 메고 있었고 오른쪽 손에는 야구공을 쥐고 있었다. 동섭이 우리 둘을 한 눈에 보기 위해서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더니 우주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우주가 가지고 있던 야구공을 다가오는 동섭을 향해 힘껏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동시에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섭의 허리 아래쪽 급소를 맞힌 것이다. 동섭은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우주야, 도망가!” 내가 벌떡 일어나서 우주 쪽으로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우주가 자동문 쪽으로 갔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화재 경보가 울리면서 자동문이 고장 난 것이다. 옆쪽에 있던 보호자 출입구로 나가느라 시간이 지체됐고 그 사이에 동섭이 일어나서 이쪽으로 비틀비틀 걸어 오고 있었다. 

나와 우주는 연기가 자욱한 중환자실 밖으로 나왔다. 맞은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1층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중앙계단 쪽을 향해 뛰었다. 중환자실은 비상용 전력으로 전원이 들어왔지만 밖은 완전히 깜깜했다. 피를 갑자기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연기 때문이었는지 걷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워서 중환자실 앞을 지나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우주야, 아래층으로 먼저 내려가서 어른들한테 알려.”

“싫어. 아빠랑 같이 갈래.”


우주의 뒤쪽에서 어느새 동섭이 나타났다. 도망치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가 우주의 뒷덜미를 잡았다. 하지만 우주가 재빠르게 가방을 벗으면서 배트를 빼서 들었다. 우주가 덜덜 떨면서 배트를 들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고 동섭도 가방에서 뺀 배트를 들고 서 있었다. 

“우주야 도망쳐. 어서!”

동섭이 배트를 힘껏 휘둘러서 우주가 들고 있던 배트를 쳐냈고 배트는 힘없이 오른쪽으로 복도 끝으로 날아갔다. 


“하, 요 쥐방울만한 새끼가. 그러게 어른 말을 잘 들어야지.” 

동섭이 들고 있던 배트를 옆으로 던지고 다시 칼을 꺼냈다. 동섭의 뒤쪽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이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우르릉 쾅쾅. 천둥 소리와 함께 세찬 빗소리가 들렸다. 동섭이 움찔했다. 그 순간 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동섭이 악 비명 소리를 지르며 내 쪽으로 고꾸라졌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수다. 이럴 땐 테이저건이 짱이네.” 

형사가 숨을 몰아쉬면서 동섭의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이틀 전에 병원에 왔던 그 형사였다. 


처음부터 의심을 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죽은 고양이가 결정적이었다. 직원들을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하면서 공사 현장 근처에서도 죽은 고양이가 종종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부 직원들은 그걸 재난에 대한 전조(前兆)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형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누군가가 죽인 거라면 동일한 인물이 병원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이 병원의 환자로. 

그날 이후로 병원 근처에서 잠복을 시작했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위주로 뒷조사를 했다. 돈이나 여자 쪽으로는 전혀 건질 게 없었지만 딱 한 가지가 수상쩍었다. 함명국과 김동섭의 관계다. 원래 함명국과 김동섭은 일하는 중에도 충돌이 잦았고 대개는 나이도 많고 경력이 있는 덩치도 좋은 함명국이 김동섭을 혼내는 쪽이었다고 했다. 어떤 날은 주위 사람들이 말려야 할 정도로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다.


“직장에서 그렇게 원수로 지냈는데 매일 와서 보호자 노릇을 한다는 게 영 이상합디다. 그러다가 진짜 결정적인 걸 발견했소. 김동섭이 심신 미약으로 의병 전역을 했더라구. 확인해 봤더니 부대 내 화재 사건과 관련이 있더만요. 내일쯤 함명국도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한 번 들르려고 했었는데 이 새끼가 그 틈에, 나 원 참.” 형사가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다행히 때마침 쏟아진 소나기 때문에 화재가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화재는 1층 건물 전면에 있는 중앙연구소에 시작됐다. 병실은 주로 기역자 모양 건물의 오른쪽 측면에 몰려있었고 응급실 직원이 초기에 방화셔터를 내려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형사 얘기로는 김동섭이 병원 창고를 뒤져서 나온 난로용 휘발유가 많은 양이 아니었다고 했다. 원래 목적이 병원을 불태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함명국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리 많은 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 아드님이 고민이 많은 것 같습디다. 병원 근처를 거의 한 시간도 넘게 배회하더라구. 아주 잠깐이었지만 고양이를 죽인 게 김동섭이 아니라 아드님이 아닌가 생각도 했소. 허허허.” 


다음 날 성준의 배려로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퇴근할 수 있게 됐다. 병원을 나서면서 보니 소나기로 조금 씻겨 내려 갔지만 전면 건물벽이 어제 화재 때 발생한 그을음으로 시커매졌다. 1층에서 시작된 검은 그을음은 중앙 맨 위쪽에 걸려있는 시계까지 이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고장난 시계가 1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다시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병원을 나와서 우주와 기차역까지 걸었다. 주로 내가 앞에서 걷고 우주가 뒤따랐다. 십 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두세 번 정도를 멈췄다. 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우주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만할래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동안 우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주가 야구를 그만 두지 않기를 바랐지만 충분히 생각해 보고 내린 결정일 거라고 믿었다. 계속하는 것도 그만 두는 것도 모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사실 우주에게 답을 못 들었을 뿐이지 이미 예상하고 있지 않았던가. 내가 궁금한 건 하나 더 있었다. 

“어떻게 바로 중환자실로 올라올 생각을 했어?”

“요즘 중환자실 환자 보느라 바쁘다며.”

사춘기 아들이 아무 것도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모든 걸 듣고 있는 것 같을 때, 바로 이런 때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날 저녁 나는 여름리그의 마지막 부분을 썼다.      


우리 팀은 플레이오프에서도 38점을 얻는 동안 단 1점만을 내주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이 압도적인 경기력에서 우주의 위력적인 투구도 크게 한몫 했다우주는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서 10과 2/3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 주지 않았다진짜 야구에 소질이 있는 걸까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우주가 야구 선수가 되는 상상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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