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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May 14. 2024

기본

나는 왜 응급의학 전문의가 되었나

기본   

  

1958년 피터 사파는 노르웨이 고스달(Gausdal)에서 열린 스칸디나비아 마취과 학회에 참석한다.  2년 전 그는 기도유지, 구조호흡, 흉부압박으로 이루어진 현대적인 심폐소생술의 틀을 제시했고 구강대 구강호흡법과 기존의 두 가지 호흡법(흉부 압박법과 상지 거상법)을 비교한 연구를 발표하러 참석한 것이다. 사파는 비욘 린드를 만나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고민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교육’이었다. 심폐소생술을 가르칠 사람도 있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도 정했지만 아직 적당한 방법 또는 도구를 찾지 못했다. 

구강대 구강 호흡법을 비롯한 사파의 초기 연구들은 동료 연구자들과 군대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구강대 구강호흡법이라는 것이, 또는 심폐소생술이라는 것이 소수의 연구자들과 군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든 일반인을 위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니 방법을 찾지 못하면 절반의 성공일 뿐이었다. 


결국 둘이 생각해 낸 최선의 방법은 사람과 흡사한 교육용 마네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 다 그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다. 린드는 부드러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형을 생산하고 있던 스타반게르 컴퍼니의 래달을 사파에게 소개시켰다. 당시에 래달은 적십자에 부드러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상처(imitation wound)를 납품하고 있었다. 


당시 스타반게르 컴퍼니 최고의 히트 상품은 아기 인형 '앤(Anne)'이었다. 래달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서 개발한 부드러운 플라스틱 인형으로 만든 앤은 나무 장난감이 주종이었던 이 시장에서 새로운 유행을 창조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1959년 마텔사가 개발했던 성숙한 모습을 한 바비인형의 전 세대 인형이었던 셈이다. 래달은 1958년 11월 사파를 만나 그들의 계획에 합류했고, 1960년 5월 드디어 향후 세상의 모든 일반인을 교육하게 될 가장 유명한 심폐소생술 교육 도구인 구조 인형 애니가 탄생한다. 


응급의학과 1년차가 되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 애니를 봤다. 지금은 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인명구조술 과정을 통과해야 하지만 예전에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정도 돼야 구조인형 애니로 교육을 받을 일이 생겼다. 

응급의학이 공식적인 전문과목으로 인정받은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던 1998년에 나는 응급의학과에 지원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사상 초유의 IMF에 의한 국가부도사태를 겪고 있었고 온갖 직장에서 해고와 명예퇴직의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새로 옮긴 회사가 대기업과 합병되면서 명예퇴직을 했다. 세상 물정을 좀 알았다면, 응급의학과처럼 미래가 불투명한 과가 아닌 좀 더 안정적이고 개업이 쉬운 과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수술방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고 개업은 골치 아픈 일처럼 느껴졌다.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는 막연했지만 어떤 환자를 만나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기본적인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되면 기본인명구조술 뿐 아니라 전문인명구조술을 배워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알고리듬이 몸에 배도록 숙지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1년차는 가운 속에 청진기, 해머, 펜라이트와 같은 진찰 도구와 함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알고리듬이 정리된 손바닥만한 매뉴얼을 넣고 다닌다. 모두 이름도 용도도 다르지만 가운 속에 들어있는 모든 물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기본적인 처치, 또는 기본. 

심폐소생술에 대한 문헌을 읽다 보면 유스타인 스타일이란 단어를 자주 만나게 된다. 찾아보니 유스타인은 수도원의 이름이었다. 이 수도원은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인 라이파일케로 가는 입구와 스타반게르의 남쪽 방향으로 향하는 통행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팔백 년 전에는 이곳의 수도승들이 육체와 영혼을 치료하는 중세 시대의 유일한 의사였다고 한다. 유스타인 수도원이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중요한 건 1990년 처음으로 심폐소생술 기록 표준화에 대한 논의를 이곳에서 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육체와 영혼을 치료했다는 수도승들이 환자들에게 배푼 의술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불로장생의 명약과 죽은 자도 살리는 신비의 마법?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그런 건 허구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일 뿐. 아마도 지극히 단순하고 기본적인 처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임상의학은 19세기를 지나서야 시작되기 때문이다.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중세 시대 유스타인 성당의 수도승과 응급의학과 의사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기본'을 베푸는 것. 


수도승과 응급의학과 의사를 비교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는 얘기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전공의였던 시절을 돌이켜 봐도 환자를 보는 시간보다는 교통 정리(환자분류)를 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고, 기본적인 처치에 실망하고 불만을 품은 이들의 민원에 시달렸고, 응급실을 방문하는 거의 모든 환자를 대기시키거나 돌려보내야 하는 날에는 의사가 아닌 주차요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좋아져서 퇴원하고 나면 어차피 처음 만났던 응급의학과 의사 따위는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대체 무슨 황당한 정신 승리인가. 나 또한 전공의로 일하는 동안 유스타인 수도원의 숭고한 ‘기본’을 떠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전문가 취급을 당하고, 환자를 보는 시간보다는 다른 과 의사와 통화하며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의사가 아닌 주차요원의 정체성에 가깝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믿어도 상관없다.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지는 각자의 자유니까. 하지만 인간은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살 건지가 결정된다.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의 역사를 믿으면 기독교인으로 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 수도 없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는 대로 믿고 싶지 않으면 믿는 대로 살아야 한다. 과연 응급의학과 의사로 살고 싶다면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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