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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닌데(12-1)

졸업생 공연 연습

by 생각의 변화

1207 과유불급


<로미오와 줄리엣> 기획이었던 정은의 어머님 빈소에 들렀다. 진료를 마치고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리엣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십 년이나 차이가 나서 데면데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치 매주 만나던 사람처럼 인사가 자연스럽다. 빈소 앞에서 성복을 만났고 우리 셋은 같이 문상을 하고 나온다. 어머님은 1년 반 전에 췌장암을 진단받고 지내시다가 최근 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에 돌아가신 거라고 한다. 영정사진 속의 어머님의 눈매와 동그란 콧망울이 정은과 꼭 닮았다.


안으로 들어오니 비슷한 또래의 연극반 후배들이 인사를 꾸벅한다. 이런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니!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먼저 도착해있던 <로미오와 줄리엣> 극회장이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정은이 우리 테이블에 앉으면서 “뭐야, 여기 로줄(로미오와 줄리엣) 테이블이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했던 후배들과 그렇지 않은 후배들로 자연스럽게 나뉜 모양새가 됐다. 지금까지 오십 년 넘는 인생에서 단지 두 달 같이 있었을 뿐인데 그 시간의 밀도가 새삼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무섭다, 친밀함과 함께 상처도 깊어졌을 걸 생각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문상객들이 늘어나고 점점 빈자리가 채워진다. 9시가 조금 넘었을 때 정은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한다.


전체 연습이 없던 토요일 성복과 나는 따로 연습을 하기로 한다. 성복은 나와 연극을 세 번이나 같이 했다. 연출과 배우로 두 번, 그리고 이번엔 상대 배우로. 게다가 이번 연극의 연습 기간은 무려 1년이니 밀도로만 따지면 지구상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희토류인 오스뮴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성복과 전혀 다르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오스뮴 수준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아닐까.

몸을 가볍게 풀고 발성 루틴을 마치고 연습에 들어간다. 연출이 노교수처럼 보이면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젊어지긴 했는데 왠지 모르게 어정쩡한 느낌이다. 우리가 모르는 ‘은~밀한’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지만 우린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연출이 만들어준 동선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반복해 본다. 원리는 모른 채 답안지를 달달 외워서 풀고 있는 기분이다. 열심히는 하는데 신나지 않는 건 왜일까.


연습을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목사님을 돕고 있던 아내가 우리가 연습하는 걸 보기 위해 올라왔다. 나와 성복은 연출이 만들지 않은 ‘마조히즘’(대사 중에 나온다) 장면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이게 원극에서는 진짜 웃긴 장면인데 관객들이 하나도 안 웃더라구요. 제 생각엔 관객들이 웃긴 장면인지 심각한 장면인지 헷갈려서 그런 것 같아요. 어머니와 형사 리액션도 조금 애매하고.” 성복이 예전의 방언을 뿜어내던 그 에너지를 회복해서 신나서 설명을 한다.

“유성주 배우가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잘 만들었는데 사실 나도 동영상을 두 번째 볼 때 그 장면이 웃긴 장면이란 걸 알게 됐어.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좀 과하게 웃기게 짜면 되지 않을까?” 내가 말한다.

과유불급은 논어에서는 진리일지 모르지만 연극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연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택도 없다. 만약 우리가 하려는 게 코미디라면 더더욱. 과하고 유치하고 웃긴 게 무난하고 적절하면서 안 웃긴 것 보다 백배 천배 낫다. 연출을 하면서 배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과한 건 자르면 되지만 모자르거나 없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과유불급 따위는 잠깐 개나 줘버리자.

우리 둘은 몇 가지 음란한 상상과 외설적인 용어들을 섞어가며 의사소통을 한 뒤 본격적으로 장면 만들기에 착수한다. 어쩌다 보니 이런 일을 오십 대 남자 둘이 교회에서 낄낄거리면서 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헐벗은 모델이 표지인 맥심 최신호를 펼쳐 놓은 채. 뭐,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민망하지만 성복이가 옷 안의 상처를 보는 척 내 몸을 더듬고 나는 신음소리를 내고, 음~ 뭐, 그렇고 그런 장면을 아주 유치하고 매우 과장되게 만든다. 같이 따라온 아내가 우리 둘이 만드는 장면을 보면서 유쾌하게 웃는다.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어쨌든 적어도 한 명의 관객은 만족했으니 일단 성공.


연습이 끝날 무렵 나와 성복이 오스뮴 정도의 밀도를 갖게 된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게 된다.

“형, 저는 우리가 많이 부족하고 심지어 완전히 틀렸더라도 자기만의 뭔가를 만들어 가면서 해야지 의미있는 연극이 될 것 같아요.” 성복이 말한다. 아, 그렇구나. 우린 결국 만들고자 하는 연극이 비슷했던 거였어.

<지킴이> 동영상을 보면서 나는 그 연극이 비록 당시의 내가 추구했던 연극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런 연극을 보지도 하물며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탈춤을 추고 택견을 배우고 노래를 부르는 연극. 하지만 그 연극을 하던 스무 살의 ‘나’는 사라지지 않은 채 오십이 넘은 내 맘속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성복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게 됐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그 패기 혹은 씩씩함. 오늘 연습이 만족스러웠던 건 우리가 만든 장면이 너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걸 우리가 상상한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성복의 방식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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